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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커피 님의 서재입니다.

도시 던전3: 까마귀와 뱀들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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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노란커피
작품등록일 :
2021.01.2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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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3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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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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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교장과 문제아

DUMMY

아침 식사를 마친 머르딘은 교장임을 상징하는 로브로 갈아입고 아침 정기 회의에 참석했다.


거대한 학교에 비해 교사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애당초 학생 수가 많지 않으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엠 바흐스르는 소수의 뛰어난 학생만을 가르치는 프란츠.... 아니, 이 대륙에서 손꼽히는 학교였으니까.


‘정말 그럴까?’


나이가 육십이 넘은 교장 머르딘이 한순간 의문을 표했다. 심장은 늙었는데, 이런 의문을 품다니. 스스로 주책이라 생각했다.


“교장 선생님?”


누군가 머르딘을 불렀다. 긴 회의용 탁자 좌측 첫 번째 자리에 앉은 ‘픽시’였다.


옆머리를 싹 밀고, 윗머리 5대5 가르마를 탄 중년 사내는 뱀 같은 검은 콧수염을 길렀는데, 금으로 만든 단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는 이 엠 바흐스르의 교감이자, ‘마법 도구 제조원론’과 ‘활용 실습’의 교사였다.


“왜 그러시오?”


“아뇨. 좀 집중을 못 하시는 것 같아서요.”


“미안하오. 오늘 좀 피곤한가 보오.”


“별일이시군요. 교장 선생님께서.”


“다시 사과하오. 나도 나이가 드나 보오... 무슨 말씀을 나누고 계셨소?”


픽시 교감은 큼큼거리고는 단안경을 다 잡은 뒤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썩 좋지 못했다.


“예산에 관한 문제입니다.”


머르딘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자료가 써진 종이가 팔랑팔랑 움직여 관련 서류를 찾아줬다.


“음... 예산이오?”


“예, 교장 선생님.”


“새로운 신입생은 정원에 맞췄소만?”


“예, 양은 맞췄죠. 다만, 질이 문제입니다.”


그때, 다른 교사가 끼어들었다. 포션(마법약) 과목을 가르치는 진딘 교수로, 교감인 픽시의 측근이었다.


“예, 맞습니다. 교장 선생님. 입학생 수는 맞췄지만, 과거에 비해 기부금을 내줄 이름난 가문의 자제는 확 줄었습니다. 덕분에 학교 예산도 빈곤해졌지요.”


빈곤. 그 단어에 사십 명 정도 되는 교수들이 웅성거렸다. 마법사는 그런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이유가 뭐요? 설마, 우리 엠 바흐스르의 명성이 떨어진 거요?”


“아뇨! 그럴 리가요!”


교감 픽시가 발작하듯 대답했다. 머르딘과 견해차가 있긴 했지만, 그 역시 이 학교를 사랑한 교수이니.


“저희 엠 바흐스르의 명성은 여전하답니다. 다만, 근래 마법 사회가 소란스럽다 보니 그런 거 같습니다.”


그 소란이 뭔지 알 거 같았다. 마법사만 상대로 소송을 거는 황제 변호사일 게 분명했다.


참, 웃기는 일이었다. 마법사 사회에 이런 파문을 일으키는 건 고대의 혈통을 가진 마왕쯤일 줄 알았는데, 일개 변호사에게 이런 꼴을 당하다니. 오래 사니 참 별일을 다 겪었다.


더 웃긴 건 그 변호사가 이 학교 출신이라는 것, 세상 참...


몇몇 평교수들이 중얼댔다.


“그 닭을 말하는 거야?”


“그렇지...”


“정말 이 학교 출신이라고? 헛소문 아니었어?”


“수치스럽게도 헛소문이 아니야.”


“하지만 그놈은 이제 끝났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내 사촌 녀석이 말하긴 그래. 모두가 등을 돌렸다지.”


“그거참 꼴좋군. 그 싸움닭은....”


머르딘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크음. 크음... 요컨대, 기부금이 줄었다는 겁니까?”


“예, 교장 선생님.”


“허나, 학생들에게 받는 등록금만으로도 학교 운영에는 차질이 없을 텐데요?”


“서류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각종 대회 및 행사까지 하려면 부족합니다.”


머르딘은 다시 한번 한숨을 토했다. 그 대회와 행사란 다름 아닌 명문가 학생들을 띄워주기 위한 일종의 선전행사였다.


마법 제품 발명대회, 새로운 마법 이론, 약초 연구, 마법 결투 대회.


초창기 목적은 분명 뛰어난 인재 발견을 위해서였지만, 이미 머르딘 앞세대 때부터 퇴색해 그저 보여주기식 행사로 타락하고 말았다.


아, 물론, 전부 그렇다는 건 아니다. 진짜 실력 있는 마법사가 이목의 집중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저 손에 꼽을 정도라 그렇지.


머르딘의 회의적인 생각을 읽었는지 픽시 교수가 먼저 선수 쳐 말했다.


“교장 선생님. 이 행사는 필요합니다. 우리 엠 바흐스르 얼마나 대단하고,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학교인지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이 행사 덕분에 해외의 마법 학교도 저희와 교류하려는 겁니다.”


“알고 있소. 이 부분에 관해서는 내가 학부모들을 만나보겠소.”


또 구걸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르딘은 침울해졌다. 허나, 픽시 교수를 비롯한 다른 교수들은 반대로 기뻐했다.


이 기부금 중 일부가 자신들의 보너스와 추가 수당, 연구비가 될 터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가장 큰 문제가 끝나자 정기 회의는 다시 힘을 잃고 평소와 같은 힘없는 회의로 변했다.


학생들을 어찌 나눌 건지, 수업은 어찌할 건지 새로운 의견은 없었고, 기본 방식을 그냥 재차 확인할 뿐이었다.


그곳에는 어떠한 열정도 의지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안일주의를 보고 있자니 머르딘은 순간 욕지거리가 나올 뻔했다.


의외였다. 이런 감정은 이미 몇 년 전 죽은 줄 알았는데.


픽시 교감이 물었다.


“교장 선생님. 이쯤에서 마무리하려 하는데, 어떻겠습니까?”


“... 뭐, 좋은 것 같소. 이만 일어들 납시다.”


머르딘이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



회의가 끝난 후 모든 교수는 자리를 떠났다.


수업이 있는 교수들은 강의실로 가 한 학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준비를 했고, 나머지 교수들은 수업 준비, 내지 개인 연구를 하기 위해 각자 사무실로 떠났다.


허나, 머르딘은 교장실에 남아 자신의 업무를 했다.


냇물처럼 잔잔하며, 변함없는 일을.


머르딘은 종이를 읽고, 넘기며, 기계적으로 도장을 찍었다.


이미 몇 년 동안 본 서류라 읽어볼 필요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머르딘은 읽고 도장을 찍었다.


그 뭐랄까?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교육자로서 정말 끝 같다고 할까?


그렇게 머르딘은 고문처럼 뻔하고 지루한 일을 반복적이지만, 정성껏 했다. 그러던 중 한 서류를 보고 손이 멈췄다.


서류 머리말에 [신입생 주의 요망]이라는 글귀가 고풍스러운 필체로 쓰여있었다.


[주의 요망] 이는 다름 아닌 엠 바흐스르에 상당한 기부금을 내는 명문 가문의 자제임을 뜻했다.


픽시의 말대로 수가 좀 줄었다지만 그럼에도 꽤 많았다. 그운해트 가문, 라해즈 가문, 핀투 가문, 랭지슈 가문, 윌 가문 등등.


머르딘이 이들 중 누구와 만나, 어떻게 거래를 제안해야 기부금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대회에서 눈에 띄게 해 준다고 할까? 마법 결투 대진을 좋게 짜주겠다고 할까? 것도 아니면 뛰어나고 순진한 학생을 댁의 가문에 취업하게 알선해 준다고 할까?


수많은 거래방법이 떠올랐고, 뒤이어 수치심이 올라왔다.


오늘따라 이상했다. 이미 체념한 현실. 그런데, 굳은살이 박힌 양심이 오늘따라 예민하게 굴었다.


꼭 자신에게 묻는 거 같았다. 이러려고 교사가 됐냐고? 평생 이런 일이나 하다 끝낼 거냐고? 과거 넘쳤던 혈기와 정력은 어디 갔냐고?


머르딘은 그 물음에 자괴감이 오며 하던 일을 멈추고 말았다.


안다. 주책인 거. 이 나이에 이런 생각하는 게 유치하고, 어린애 같은 거. 하지만 말이다....



찰칵- 찰칵- 찰칵-


갑자기 들리는 호출음. 머르딘은 반사적으로 책상 옆에 있는 악마상을 봤다. 악마상의 입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교장 선생님. 방문자가 오셨습니다.”


“방문자?”


“예, 이름이... 마티스 슈바크라고, 약속을 잡았답니다.”


머르딘은 깜빡했다는 듯 자기 이마를 때렸다. 아아... 정말 늙었나 보다.


“들어오라고 하게.”


허락이 떨어지자 곧바로 문이 끼익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바로, 슈바크 가문의 마티스였다.


놀기 좋아하고, 자기 통제가 안 되긴 하지만, 준수한 집안에 본인 자체도 꽤 실력이 있는 학생.


오래전 졸업한 학생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머르딘은 반가움을 느꼈다.


“어서 오게. 마티스 군.... 그런데 옆에 누군가?”


마티스 옆에 그림자처럼 따라온 사내를 보며 머르딘이 물었다. 체격이 좋은 그는 챙이 넓은 모자를 써 얼굴을 교묘히 가렸는데, 어딘가 낯이 익었다.


‘수행원.... 치고는 복장이나, 분위기가 아닌데? 이런, 마티스가 눈치를 보고 있군.’


머르딘이 다시 물었다.


“이보시오. 그대는 누구시오.”


질문에 정체불명의 사내가 모자를 벗었다. 놀랍게도 머르딘이 아는 얼굴이었다.


근래, 가장 이 학교에서 가장 언급된 자, 수많은 사고를 친 이 학교의 문제아. 바로, 벤자민 포그곤트였다.


그가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머르딘 교장 선생님. 만나 뵙게 되어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



몇 년 만인가? 10년? 아니, 더 된 거 같다. 15년 정도? 어쨌건, 엠 바흐스르의 문제아 벤자민은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머르딘의 기억이 맞다면 그는 꽤 마른 편에,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인상이었는데, 현재 눈앞의 남자는 전혀 달라 보였다.


몸은 탄탄하고, 건장했으며, 날카로운 인상은 있었지만, 신경질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여유와 유머가 섞여 어른스러운 관록이 묻어 있었다.


화장실에서 동급생을 패고, 처벌방에 3번이나 연속해 들어갔으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려고 무단시험까지 치른 치기 어린 소년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몰라보게, 변했군.”


머르딘이 맞은편에 마티스와 함께 앉은 벤자민을 보고 말했다. 소년. 아... 이제는 아니지. 어쨌건 그가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그렇네... 그보다 의외군. 그대 둘이 친했나?”


머르딘의 질문에 마티스가 난감한 듯 고개를 갸웃댔다. 긍정도, 부정도 못 하는 모습이 꽤 이상해 보였다.


“사람이란 게 언제든지 친해질 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 어쨌건 보기 좋구만. 이리 같이 찾아와 고맙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군요.”


“왜 아니겠나? 마티스 군은 학교에서 알아주던 인기남이었고, 여러 대회에서도 수상한 뛰어난 학생이었지. 그리고 벤자민 군 자네는.... 여러 의미로 대단한 학생이었지.”


“감사합니다. 문제아를 좋게 표현해 주시는군요.”


머르딘이 끌끌 웃었다. 본인도 자각이 있는 듯했다. 하긴, 원체 사고를 많이 쳤었어야지.


교양 수업인 마법결투 때 지팡이로 상대방을 후려쳐, 학교 규칙을 수정하게 했고.


약초수업의 최대 난관인 맨드레이크 채집 때, 새끼 맨드레이크를 인질로 잡아 어미를 포획했으며,


자기 누나를 골탕 먹인 선배 셋을 자그마치 세 번이나 때려눕혀 입원시킨 전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S·T·K·M·E(다목적 졸업시험)’ 때 몰래 시험을 쳐 3개 학교 1등을 해 시험 자체를 반쯤 무효화시키기까지... 하나하나가 거의 전설로 취급받았다.


머르딘이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참, 시끌벅적한 시기였지.... 그건 그렇고. 왜 날 찾아왔나?”


마티스가 대답했다.


“오랜만에 교장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거참, 고마운 말이군. 벤자민 군. 자네는?”


벤자민이 숨을 힘껏 들이켜곤 대답했다.


“흐음- 하.... 오랜만에 모교 공기를 마셔보고 싶어서요. 또, 여유 시간도 좀 생겼고요.”


“아, 얼추 소문은 들었네.”


“그렇습니까?”


“그래 자네 이야기를 의외로 많이 들리거든.”


“좋은 이야기인지, 나쁜 이야기인지 궁금하네요.... 하긴,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거지.”


아, 정정해야겠다.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근본적으로 변하진 않았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원망을 받고, 증오의 대상이 되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짓도 마다치 않는 공격적인 태도는 여전했다. 아니, 이제 더 위험했다. 연극 속에 나오는 어둠의 마법사보다 말이다.


“그럼, 곧 은퇴해야겠군. 나도 가끔씩은 은퇴 후 뭘 할까 고민하곤 한다네.”


“저도 슬슬 고민해야겠군요. 슬프지만요... 하지만, 그전에 마무리할 일이 있어서 그거부터 신경 써야겠습니다.”


머르딘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본론인가? 벤자민 군.”


“정말, 못 당하겠군. 머르딘 교장 선생님.... 마티스 선배님. 혹시 학교 구경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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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49. 첫번째 자리 +15 21.03.12 748 4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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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4. 책임 +29 21.03.07 735 5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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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2. 2분의 키스 +19 21.03.05 751 4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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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0. 약 +20 21.03.03 805 5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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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교장과 문제아 +17 21.02.28 790 5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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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4. 마법 개혁 위원회 뭐 그런 거 +14 21.02.25 771 56 13쪽
34 33. 첫 걸음 +14 21.02.24 779 61 13쪽
33 32. 마부 휴잇 +16 21.02.23 788 58 13쪽
32 31. 지나가며 말한 약속 +16 21.02.22 797 54 14쪽
31 30. 정쟁의 서막 +22 21.02.21 812 55 15쪽
30 29. 판 +28 21.02.20 815 4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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