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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소녀 유리하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18 00:04
최근연재일 :
2016.12.28 01:54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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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86
추천수 :
31
글자수 :
449,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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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07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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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악몽을 꾸다

DUMMY

“아까 부탁한 거 최대한으로 찾아봤어.”


피해자들의 신상정보에 대한 조사를 해달라고 했더니, 피니엘은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아 나래가 원하는 정보를 추려내어 전달해주었다.


“고마워.”


피니엘이 정리해 넘겨준 자료 파일들은 모두 다 현재 사념체의 숙주가 된 피해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요구한 대로 직업이나 사는 곳, 이력서 등의 정보들이 기재되어 있었고, 나래는 그 중 몇 개를 살펴보다가 오래잖아 한 번 찔러볼 만한 것을 찾을 수 있었다.


“덕분에 찾았어. 살펴볼 가치가 있겠는데.”

“정말? 어떤 건데?”


자료를 넘기자마자 단서를 찾아낸 듯한 나래를 놀랍게 여긴 피니엘이 바로 따라왔다.


“어제는 우리가 오마트 위주로 수색을 해봤고, 매장에서는 발견하지 못했잖아.”

“그랬지. 뭔가 반전이 될 만한 걸 찾은 거야?”

“피해자들의 공통점이 될 만한 것들 조금.”


나래는 자기 휴대폰으로 피니엘이 보내준 자료들을 화면에 띄웠다. 외계인의 양자 컴퓨터가 지구의 일반 휴대폰으로 자료를 보낼 만큼 호환성이 좋다는 게 신기하긴 했지만 당장은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숙주 대상자들 중에 만 16세 이하가 거의 눈에 띄질 않아.”

“그럼 중학생들 이하로는 숙주가 하나도 없다는 소리야?”

“그래, 거기다 아예 고등학생 대상자들조차 비율이 그리 높지 않아.”

“그게 왜 그런 거야?”


피니엘의 질문에 나래는 화면을 넘겨 다른 숙주 대상자들의 정보를 띄웠다.


“오언 파이낸셜과 관련이 있는 사람 중의 하나야. 협력업체의 과장으로 물류 운송을 감독하고 있지. 다음 사람은 역시 오언 파이낸셜 협력업체에서 알바한 경험이 있는 대학생이고, 그 다음은 오마트가 아닌 다른 계열사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 주부사원. 그 다음도 마찬가지로 계열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건물 관리인.”


그 말만 듣고도 피니엘은 상황을 대강 알아차렸다.


“오언 파이낸셜의 협력업체와 계열사 위주로 감염자들이 집중되어 있다는 거구나?”

“그래, 오마트를 제외한 다른 데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에 감염자 비율이 매우 높아.”


정리된 다른 사람들의 자료까지 한 번에 속독으로 넘긴 후, 나래는 확신하듯 말했다.


“비율이 거의 80프로에 가까워. 이만하면 용의자 1순위야.”

“그럼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은 어쩌다 감염이 된 걸까?”

“그 부분은 아직 모르겠어. 좀 더 조사하고 분석을 해봐야 할 것 같아.”

“오언 파이낸셜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 위주로 다시 자료 정리해볼게.”

“부탁해.”


조사에 진전이 있자 나래도 기운이 났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조사해왔던 부분을, 도무지 예상도 못한 인물의 도움으로 해결하게 되자 기쁜 것보다는 얼떨떨한 기분이 더 컸다.

그래도 단서를 잡았다는 생각에 얼떨떨함은 조금씩 흥분으로 바뀌어 갔다. 잘하면 단숨에 범인까지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기회다. 사념체를 다룰 수 있는 범인은 일족 외에 없으니, 그걸 계산하면 이 단서 한 방에 범인의 코앞까지 다가갈지도 모른다. 그놈을 잡아 일족에 넘기면 오랫동안 이어왔던 이 악연은 다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 증오와 복수심 또한 떨쳐버릴 수 있을 테지.


피니엘에게 부탁한 조사 역시 몇 분 되지 않아 끝났다. 되려 아까 전보다 더 빨랐다. 조사해야 할 인원 수가 그리 많지 않아 그런 것이라, 나래는 그 결과를 빠르게 살펴볼 수 있었다.


“아까랑 달리 공통되는 부분은 별로 없네.”


이번에 정리된 항목들은 조금 전과 달리 딱히 공통점이라 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 감염자 중 중, 고등학생들의 비율이 거의 없다시피하다는 것만 동일할 뿐, 그 외에는 나이도, 직업도, 연령도 제각각이라 추론해야 할 부분이 명확하게 잡히지가 않았다.


“여기만큼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정보를 한 번 더 모아봐야겠는데.”


적어도 이렇게 앉아서 뽑는 자료만으론 사념체와 연결이 될 만한 부분을 찾기가 어려워보였다.


“단서를 찾아서 정리하면 리하를 통해 일족에 넘길 거라 했지?”


피니엘의 질문에 나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범인을 증거를 확실히 나타낼 수 있다면.”

“일족도 아닌데다 평범한 학생이 조사한 자료라면서 무시하면 어떡할 거야?”

“그걸 방지하기 위해 되도록 경찰 같은 곳에도 알려서 공신력 있는 인증을 받고 싶은데, 이런 사건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테니 리하랑 리하네 어머니의 명성에 기대를 걸 수밖에.”


리하와 그 어머니 또한 일족이라는 걸 알고 있는 피니엘이 한 번 더 나래에게 물어보았다.


“리하네 어머니가 많이 대단하신 분인가 봐.”

“일족 내에서도 권위 있는 정화자셔. 나도 리하도 여러 번 도움을 받은 적이 있지.”

“그래서 그 분을 통하면 일족이 증거를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는구나?”

“맞아. 이왕이면 경찰한테 인증 받아서, 지구인 사회에서도 이걸 의식하고 있다고 으름장 한 번 딱 놓으면 지구인 사회에 섞여 살아가고 있는 입장상의 문제로도 발을 빼지 못할 테니 그게 더 확실하다고 보고는 있지만.”


말하고 나서 나래는 아쉬운 듯 비가 내리는 바깥을 바라보았다.


“단서 캘만한 부분이 나왔는데 나갈 수가 없는 게 답답하네.”

“밖에는 사념체와 감염자들이 우글우글하니까.”

“리하가 빨리 와야 우리도 나가볼 수 있을 텐데.”


나래의 중얼거림을 들은 피니엘이 다시 브레이슬릿으로 레이더 화면을 띄웠다. 리하와 어머니가 한꺼번에 사념체 정화를 나선 상황인데, 어느 정도로 폭주를 억제하고 있을까.


“이거 뭐지, 변한 게 거의 없는 것 같은데······.”


그때 레이더를 띄운 피니엘이 당혹스러워했다. 폭주하는 사념체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반대로 정화되어 소멸된 듯한 변화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라지는 사념체들은 있었지만 불특정한 위치에서 불특정한 움직임으로 사라지고 있어, 정화에 의한 것이라 판단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특히 이 근처 일대의 사념체들 숫자는 줄어들은 것 없이 거의 그대로여서 나래와 피니엘을 당황하게 했다.


“어머니까지 나가셨는데 어째서 사념체가······.”


특히 캐시의 능력을 알고 있는 나래는 더욱 놀라움이 컸다. 어머니라면 리하와 달리 단 몇 분이면 이 주변을 깨끗하게 정화할 수 있는 분인데, 어째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걸까.


“느낌이 뭔가 좋지 않은데.”


뭔가 불안한 기분이 된 피니엘이 레이더에 표시되는 정보를 바꾸었다. 그러자 폭주 사념체 외에 감염자들 위치까지 한꺼번에 표시되어 나타났고, 또 그것들과 완전히 다른 어떤 이질적인 무언가까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 이게 뭐야?”


그 무언가를 보자마자 피니엘이 흠칫 놀랐다. 뭣 때문에 그러는지 궁금해진 나래가 피니엘을 향해 말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생긴 거야?”


나래의 질문을 받고도 피니엘은 대답하지 못했다. 레이더에서 무언가 충격적인 것이라도 봤는지, 그녀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어떻게······.”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응?”


피니엘의 반응에 괜히 오싹해진 나래의 재촉이 있었으나, 피니엘은 그녀의 말에 대답할 겨를이 되지 않았다. 떨리는 목소리가 되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릴 뿐이었다.


“어째서 이곳에······ 프레네티코가······.”


프레네티코라는 말에 나래 또한 흠칫했다. 피니엘의 고향을 멸망시키고 그녀가 현재 머무르고 있는 차원계에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괴물들의 이름이 프레네티코라는 걸 기억하고 있어서였다. 그 괴물들이 이 세계에도 있다는 건가, 지금?

나래와 피니엘의 의문에 마치 대답할 사람이 나타났다는 듯, 기다렸다는 듯, 마침 바깥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 *




안 반장의 지시를 받고 새로운 사고가 터졌다는 현장을 찾아와본 진흥은 예상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에 이제 맥이 풀릴 지경이었다.

두강 인력 사무소에서 직원 하나가 칼로 다른 두 사람을 찌르고 본인도 자살했다는 소식에, 잔소리 듣고 부랴부랴 달려와 보니 다른 지역 사건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사망자 셋에 부상자는 없고, 셋 다 날카로운 흉기에 의해 난자된 상황이라······.”


사무소를 찾아 현장을 살피는 진흥의 옆에서, 두강 인력 사무소 소장이자 업체 사장이기도 한 조도열 사장이 완전히 사색이 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시, 신 형사님. 맹세컨대 이이, 이건 절대 저희 내부 사정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저희가 인력 사무소 간판만 달고 용역 위주로 일을 받기는 하지만 이렇게 막 나갈 만큼······.”

“알어, 새끼야. 아니라는 증거 찾아줄 테니까, 사건 당시 정황이 어땠는지 일단 싹 다 얘기해봐.”


조도열은 예전에 용역 업체를 동반한 폭행 사주 및 사건조작 건으로 그 자신뿐 아니라 밑의 수하들 몇 명까지 진흥에게 걸려 크게 데인 적이 있었다. 그때의 회상을 하자면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두들겨 맞고 업체는 업체대로 탈탈 털려서 감옥 가는 놈은 감옥 가고 벌금 내는 놈은 벌금 내고 하다 보니 하마터면 조직 자체가 통째로 뒤집어질 뻔했다. 그래봐야 형사 하나라고 방심했다가, 자신들이 얕잡아 본 것이 그냥 형사가 아닌 악마라는 것을 제대로 체험하고 난 후에는 진흥, 더 나아가 강동 경찰서 관할 구역 안에서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최대한 트집 잡힐 것 없이 성실하게 일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러한 그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혀 엉뚱한 살인사건이 터져 그 신진흥과 또 마주치게 됐으니, 이러다 아예 조직이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조도열의 걱정은 괜한 엄살이 아니었다.


“그때 일 이후로 저희가 딱히 눈에 띄거나 무슨 말썽을 부리거나 한 적이 없다는 거 신 형사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되려 찍히면 그 날 부로 죽은 목숨이라는 거 뻔히 아는데 저희가 어떻게 사무실에서 이런 짓거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아, 새끼. 사고 당시 정황만 말하라는데 뭔 서론이 이렇게 길어.”


진흥이 눈을 부릅뜨며 역정을 내자 조도열은 바로 움찔하며 그러잖아도 움츠러든 기세가 더욱 움츠러들었다.


“30분 전이었죠. 오늘이 일요일지만 인력 파견할 곳이 있어서 사무실 막내한테 오늘도 좀 나와서 일 좀 보라고 말을 했었고, 이 친구가 성실하게 나와서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은?”

“예, 그것이······. 이 친구가 어째 출근할 때부터 눈이 빨갛고 얼굴이 부어있는 게, 어디 밤새도록 술이라도 먹고 온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죠. 너 술 먹었냐고 물어보니까 아니라고 하길래 그냥 그런가 보다 했고요. 아 근데 이 자식이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책상 앞에 푹 엎드려서 갑자기 질질 짜기 시작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질질 짰다고?”

“예, 그냥 애처럼 막 목을 놓아 우는 거예요. 저랑 우리 애들이 가서 너 갑자기 왜 그러냐고 하니까, 이번엔 이 자식이 울다 말고 또 막 미친 듯이 웃는 겁니다.”

“웃어?”

“예, 진짜 미친놈처럼 막 웃어제끼는 거예요. 그러더니 지 여자친구 이름을 불러대면서 쌍욕을 하기 시작하는데,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게 이게 기분 오싹하더라고요.”


진흥의 눈가가 일그러지는 게 황당한 소리를 들어 그런 거라 판단한 조도열이 황급히 말을 이어붙이기 시작했다.


“아, 진짜예요. 형사님이 못 보셨으니 지금 믿지 못하시는 거라니까. 얘가 갑자기 울다가 웃다가 그러다가, 또 말도 없이 책상서랍에서 칼을 꺼내더니 준만이 배를 푹 쑤시더라고요. 우리가 깜짝 놀라서 이놈을 막으려고 하는데, 아 평소에 비쩍 말라서 비리비리하던 게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진택이마저 칼로 난도질을 하는 게 아닙니까. 그러고는 나한테도 오라는 거예요, 아주 죽여버리겠다고. 그러면서 또 웃기 시작하는 게 그게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어요. 체면이고 뭐고 여기 있다간 나도 죽을 것 같아서 일단 도망가고 보려는데, 얘가 나 쫓아오려다 말고 그냥 지 목을 칼로 푹 찌르더니 그 자리에 고꾸라지는 거예요.”


조도열의 말에 진흥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준만과 진택이라는 건달들은 둘 다 체구가 건장했고, 사무실 직원이라던 남자는 그들에 비하면 상당히 왜소한 몸집이었다. 그런데도 주먹과 칼 쓰는 것에는 이골이 나있을 건달 두 명을 칼로 찔러 죽였다고?


“너 이 새끼 니가 셋 다 죽여 놓고 누명 씌우려는 거 아냐?”

“아, 제가 왜 직원들한테 손을 대요, 손을. 그랬다간 진짜로 인생 종 칠 거라는 거 뻔히 아는데. 사무실 내에 CCTV 달아놨는데 그거 영상 보여 드릴게요, 제가.”

“농담이야, 인마. 지금 누구 하나를 특정한 범인으로 지목할 상황 자체가 안 되거든.”


여기와 비슷한 사례가 지금 여기저기서 너무도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걸 보고 조도열이 이때다 싶어 평소 맘에 안 들던 직원 셋을 살해하고 바깥의 소동에 묻어가려는 수작일 수도 있지만, 반응을 보면 당장은 그런 것 같지도 않아보였다.


“사무실 나와서 이 소동 벌어지기 전에 바깥이 꽤 시끄러운 것 같았는데, 지금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몰라? 밖에도 지금 이거랑 비슷한 일로 난리야. 어떤 놈들이 자살했고 자살하기 전에 주변 사람을 죽였고, 똑같은 짓거리들이 갑자기 막 쏟아지지 뭐냐.”


진흥은 수첩을 꺼내들고 방금 조도열의 증언을 간략히 요약해 적었다.


“그래, 조 사장 말대로라면 이 사무직원이 오늘 갑자기 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그 때문에 정신이 망가진 듯한 행동을 보이며 살해 행각에 들어갔다는 거지?”

“예, 맞습니다. 정말 미친놈이 따로 없는 모습이었지요.”

“얘가 평소에 정신과를 다녔다는 기록이나, 아니면 따로 병원에 드나든 적이 있었어?”

“그런 건 없었어요. 몸이 말랐을 뿐이지 어디가 딱히 아프거나 불편하다거나 그런 얘기는 일절 없었죠.”

“그럼 오늘 아침에 갑자기 그랬다는 건데······.”


20조도열의 증언과 현장정황만으론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었다. 왜 갑자기 사람이 미친 것처럼 보이고, 거기서 왜 살인까지 가게 된 거지? 정신과 기록도 없다고 하는데? 하지만 조도열은 이 모든 게 사실이라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고, 이미 제 손으로 CCTV 영상을 틀어놓고 진흥에게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요일에도 못 쉬고 일 나오게 하니까 불만이 폭발한 거 아냐?”

“아니에요, 평소엔 격주로 주5일씩 하다가 이번 주만 일이 바빠서 한 번만 나와달라 한 거예요. 당연히 특근수당도 쳐줬고요.”

“뭔 일이 그렇게 바쁜 건데?”

“오언 파이낸셜에서 빌딩 증축공사 하는 게 있는데 거기에 우리가 인력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한창 내부공사 바쁘게 돌아가가지고 주말에도 잡부들 보내고 있어요. 죽은 친구가 지난 주 금요일에 현장에도 한 번 가봤구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억울함을 호소하는 표정으로 조도열이 항변했다. 그 증언까지 수첩에 받아 적은 진흥은 여기서도 더 볼 게 없다 판단해 우선 물러나려다가, 문득 마음에 걸리는 것을 하나 물어보았다.


“여기 인력 사무소, 혹시 외국인들도 파견하고 그러냐?”

“예, 파견하죠.”


조도열의 대답에 진흥은 그를 한 대 후려칠 듯 주먹을 들어보였다.


“불법체류자들 받아들여서 임금 떼먹고 그러는 거 아냐, 혹시?”

“제 입으로 이런 말하기도 그렇지만, 저 예전 그 일 때문에 강동서에 찍혀 있는 상황입니다. 불법체류자 받아들이는 것도 위법인데 거기서 임금까지 떼먹었다가 무슨 꼴 당할 줄 알고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신원 확실한 애들만 받고 있다는 거지?”

“그럼요, 허가까지 받고 장사하는 건데요.”


그러다가 문득 조도열이 궁금해하며 물어왔다.


“근데, 외국인 노동자는 뭣 때문에요?”

“아냐, 그냥.”

“그리 말꼬리 흐리시면 제가 불안합니다. 뭔가 말이 있으면 확실하게 말씀을 해주셔야 저도 수사에 도움을 드리던가 할 것 아니겠습니까.”


진흥은 여기 오기 전에 도로 위에서 만났던 백인 소녀를 떠올렸다. 반쯤 정신이 나간 듯 보인 소녀였지만 그녀가 했던 말은 거의 기억하고 있어서, 진흥은 그냥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도열을 돌아보았다.


“여기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중에, 혹시 모민이라는 사람 있어?”

“모민이요?”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하던데.”

“방글라데시의 모민?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조도열이 컴퓨터로 방금 진흥이 말한 사람을 찾아보았다가, 곧 속이 뜨끔해지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아, 며칠 전에 한 번 온 적이 있네요. 방글라데시, 모민, 일주일 전에 여기서 두 번 정도 파견 나가고 일당 받은 기록이 있어요.”


그 말에 진흥은 번개같이 조도열의 자리로 가 그를 밀치고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정말로 모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의 이름과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나지르 아흐메드 모민. 연령은 한국 나이로 스물일곱. 국적 방글라데시. 다갈색 피부에 검은 곱슬머리를 가진 중동인 청년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은 그다지 오래 되지 않은 석 달 전의 일이었다. 제대로 취업비자까지 마련하고 등록한 걸 보니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그렇듯 그 역시 한국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들어온 것 같았다.


그걸 보고 나자 진흥은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 정신 나간 것 같은 계집애가 한 말이 의외로 맞아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모민이라는 사람이 있고, 방글라데시 사람이라는 것도 맞고, 20대 중반이라는 것도 들어맞는다.


이거 대체 뭐지?

그거 그냥 정신 나간 계집애가 아니었던 거야?


뭔가 논리적으로 설명할만한 건 없지만, 현재 상황에서 들어맞는 부분이 너무도 많았다. 사념체인가 뭔가인가 하는 것의 범인이라 들었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캐볼 만한 어떤 구석이 있다는 소리 아닐까, 이거.


한 번 찾아봐야할 것 같았다. 모민이라는 사람과, 그걸 알려준 여자아이도.


모민은 정식으로 비자를 받아왔으니 방글라데시 대사관에 연락해 신상을 문의하면 될 테도, 문제는 백인 여자아이인데 이 역시 짚이는 구석이라면 있었다. 백인에 가까운 혼혈아였으니 이 또한 신상정보 알아내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고, 진흥은 안 그래도 옛날 사건 알아보는 도중 이름이 눈에 익은 백인 소녀 하나를 알고 있었다.


이쪽은 유리하와 그 가족들에게 연락을 한 번 해보면 되겠지. 운 좋으면 한 방에 빙고일 테고, 빗나가면 다시 찾으면 된다.


여기서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이 나올까. 스스로도 반신반의했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헤매는 것보단 나을 거라 생각하며 진흥은 우선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의 뒤처리를 마쳤다.


작가의말

신 형사님, 그리고 리하양이 제대로 대면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리하양의 멘붕이 아주 크게 일어날 것 같은데, 형사님이 어른으로서 잘 다독여주시기를...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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