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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소녀 유리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18 00:04
최근연재일 :
2016.12.28 01:54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9,751
추천수 :
31
글자수 :
449,261

작성
16.06.0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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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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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23쪽

망국의 황녀

DUMMY

“우선 평행차원은 같지만 조금 다른 세계야. 그냥 보기에는 원래 내가 있던 세계와 모든 것이 같지. 내가 알거나 관계가 있던 사람들이 그곳에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잘 모르는데, 조금만 있다 보면 알게 돼.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또는 인과관계 등이 원래 내 세계와는 조금씩 다르다고 말야.”

“어떤 식으로?”

“이런 식으로. 지금 이 세계에서 당신들 두 사람은 친구 사이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평행세계에서는 그런 인간관계나 그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 조금씩 다른 경우가 있어. 어떤 세계에서는 변함없이 친구관계일 수도 있고, 어떤 세계에서는 두 사람이 친구가 아닐 수도 있고, 또는 아예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일수도 있고, 심하면 서로가 서로의 원수인 경우도 있지. 존재는 같지만 인과가 조금씩 다른 세계, 그렇게 보면 돼.”


피니엘의 말을 듣고 난 리하와 나래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너랑 나랑 원수가 된 세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데?”

“리하 네가 어렸을 때 내 과자를 다 뺏어 먹은 적이 있었지. 그것 때문에 싸우고 나서 원수가 됐을 가능성이 있어 보여.”

“그렇다고 갑자기 흑역사 꺼내지는 말자.”


나래의 코를 꼬집는 시늉을 하고, 리하가 피니엘에게 말했다.


“차이차원은 그럼 뭐니?”

“차이차원을 이해하려면 먼저 상이차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그럼 그것부터 말해줘. 상이차원은 뭐가 다른 거야?”


리하가 묻자 피니엘은 수많은 녹색 구체 중 하나를 앞으로 끌어오며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상이차원은 한마디로 전혀 다른 세계. 이건 그 예시 중의 하나야.”


피니엘이 녹색 구체를 확대시키자 주위는 다시 우주 공간 한가운데로 바뀌며, 역시 푸른빛의 행성 하나가 떠올라있었다. 지구는 물론 조금 전의 마그도리아와도 전혀 다른 모습의 바다와 육지를 가지고 있는 그 행성의 모습을 확대시키며 피니엘이 설명을 계속했다.


“마그도리아 멸망 후에 차원계를 떠돌아다니며 들렀던 세계 중 하나지.”


행성의 모습을 확대하자 리하는 깜짝 놀랐다. 아까 자신이 피니엘에게 말했던 것과 아주 비슷한 세계가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중세시대 정도의 문명을 갖추고, 과학의 발전은 그리 크지 않은 세계.


“여기는······.”


그러나 리하와 나래를 더욱 놀라게 한 건 그 세계에서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다른 존재들이었다. 마그도리아를 멸망시킨 그것들만큼은 아니나, 그래도 역시 흉포하고 무시무시한 외양을 가진 괴물들이 서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튼튼한 체격과 녹색의 피부를 가지고 인간처럼 두 발로 걸어다니는 야만인 같은 괴물들, 5, 6미터나 되는 키에 거무죽죽한 갈색피부, 그 덩치에 걸맞는 어마어마한 완력으로 야생동물이나 다른 괴물, 심지어 인간마저 사냥해 잡아먹는 괴물이 있고, 머리는 짐승의 형태지만 몸은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괴물들의 부족까지 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괴물들이 대륙 이곳저곳에 퍼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리하와 나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몸길이만 수백 미터가 되어 보이고, 머리에는 악마와도 같아 보이는 거대한 뿔이, 등에는 커다란 날개가 달린 채, 마치 도마뱀이 거대하게 변한 듯 보이는 거대한 괴수의 모습이었다. 이쪽의, 그러니까 현대의 세계에서 그것을 표현할 수 있을 만한 가장 적절한 단어를 살펴보자면······.


“나래야, 저거······ 그거지······?”

“응, 딱 봐도 그렇게 보여······.”


리하와 나래는 서로 돌아보며 의견을 맞춘 후 동시에 피니엘을 바라보았다.


“저거 혹시 드래곤 아냐?”

“영화나 게임 같은 데서 많이 봤는데, 모습이 엄청 비슷해요.”


그리고 피니엘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맞아, 드래곤.”


상이차원이 무슨 개념인지 지금의 영상와 그 한마디에 이해하게 된 리하와 나래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는 아예 근본부터 다른 존재의 세계, 라고.


“그리고 차이차원은 평행차원과 상이차원이 적당히 섞인 세계라고 보면 돼.”

“못 알아듣겠어.”

“이것도 말보다는 직접 봐야 이해를 할 것 같은데요.”


설명을 정말 몰라서 하는 말 반, 또 다른 세계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 반이 섞인 두 사람의 대답에, 피니엘은 이번에도 또 다른 녹색구체를 끌고 와 확대시켜보았다.

이번의 세계는 리하와 나래도 알아볼 수 있는 세계였다. 피니엘이 가져온 것은 지구였고, 그 지구를 확대시키자 주위의 모습이 리하네 집 바깥의 골목길로 바뀐 것이다.


“어, 우리 동네잖아?”


낯익은 모습에 리하가 어쩐디 반가운 소리를 냈다. 익숙한 동네 골목길과 그 중 한군데에 자리 잡은 2층 주택, 즉 자기네 집이 보이자 그녀는 무척 신기해했다.


“이게 차이차원이야? 지금 우리 동네랑 다를 게 전혀 없어 보이는데?”

“차이차원보다는 평행차원에 더 어울리는 모습이네요.”


나래 역시 동글동글해진 눈으로 사방을 돌아보았다. 그냥 영상이라고만 하니 실제로는 리하의 방에 앉아있는 셈이겠지만, 눈으로 보이는 광경이 바로 집 바깥의 골목길이라 낯선 세계를 볼 때와는 다른 친숙함이 생긴 것이다.


“좀 더 살펴봐. 그럼 이해하게 될 거야.”


피니엘의 차분한 어투에 리하는 즐거운 눈으로 영상을 통해 비쳐보이는 자기네 집을 바라보았다. 다른 세계의 나는 여기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은근한 기대를 품고 피니엘의 보여주는 영상에 집중해 있는데······.


“잠깐, 저거 누구야?”


영상이 주택 안의 모습을 비추자마자 리하는 당황했다. 집의 모습도, 구조도 거의 같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리하 자신과 가족들의 모습은 없고, 웬 낯선 젊은 부부 한 쌍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우리 집 식구가 아니잖아? 진짜 누구야, 저 사람들?”


당황한 리하와는 달리 나래는 차이차원이 무슨 개념인지 이해를 한 듯,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런 거구나. 얼핏 보기엔 공간도, 시간도, 모든 배경이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차원에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존재가 자리하고 있는 것. 그래서 같지만 미묘하게 다른 평행세계, 아예 다른 상이차원, 그 둘이 합쳐진 단계가 같은 듯 다른 차이차원······.”


황당해서 말을 못 잇는 리하를 대신해 나래가 피니엘에게 말했다.


“리하네 집에 살고 있는 저 사람들은 누구죠?”

“지금 나와 갤럭시 블레이드가 크게 신세 지고 있는 은인들.”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군요.”

“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주소가 바로 여기여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러봤어. 우리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차원계이기를 간절히 빌었지만 결국 아니었고, 우리의 은인이자 조력자인 임세령 씨와 손채원 씨가 아닌 당신들 두 사람과 만나게 된 거지.”

“저 세계를 거점으로 삼고 있다고요?”

“이것저것 조사할 것도 많고, 움직이기 용이하기도 해서.”

“저 차원계에서 거점을 잡고 무슨 일을 하고 있던 건가요?”


나래는 무심코 한 질문이지만 그게 실은 사건의 핵심이었는지, 피니엘의 얼굴에 무척 심각한 기색이 떠올랐다.


“마그도리아를 멸망시킨 그 괴물들, 알고 보니 우리나라한테만 그런 게 아니었어.”

“정확하게 무슨 의미죠, 그게?”

“기원도 모르고 역사도 모르는 놈들이지만, 확실한 건 그놈들은 차원을 넘나드는 능력이 있다는 거야. 그걸 이용해 다른 차원계에 침공해서 그곳의 우주와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먹잇감으로 삼고 있지.”


조금 전 영상에서 봤던 괴물들의 모습을 떠올린 나래가 그 말에 몸서리를 쳤다. 피니엘도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돌아다녀본 차원계와 비교했을 때, 마그도리아는 확실히 최상위권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어. 마그도리아는 우주뿐 아니라 차원계를 오가는 수준의 과학기술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도망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는데, 그 괴물들 역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지. 분명 케이브를 타고 다른 차원계로 도망쳤는데, 놈들은 우리가 도망쳐간 그 세계에 한 발 앞서서 들어가 있지 뭐야.”

“와······.”


멍한 감탄사의 리하. 그리고 피니엘은 점점 두려움에 질려가는 표정이 되기 시작했다.


“도망쳐가는 차원계마다 마주치는 괴물들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잃었어. 그러다가 간신히 그 괴물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차원계에 도달했지.”

“그 차원계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이번에는 나래의 멍한 목소리. 피니엘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맞아, 이 세계야. 여기서도 지구라는 이름이었어. 우리는 이곳을 거점으로 삼고, 차원계는 물론 케이브의 수색을 통해 언제 그 괴물들이 나타날지 경계중이지.”

“괴물이 나타나면 나가 싸우는 거고?”

“아직까지 그런 일은 많이 벌어지지 않지만 그 못지않게 골치 아픈 사태는 많아. 저쪽 지구는 괴물들만 없을 뿐, 온갖 존재들로 인해 싸움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서.”

“무슨 싸움이 있는데?”

“인간들, 외계인들, 이세계인들, 각기 다른 꿍꿍이 품고 모인 존재들끼리 모여서 치고받는 시커먼 진흙탕 싸움.”

“암울하네.”

“그렇지.”


작은 한숨과 함께 피니엘은 말을 이었다.


“이번에 저쪽 지구와 연결된 케이브 한 군데에서 대규모의 에너지 파동이 감지되었어. 나와 갤럭시 블레이드가 알아보기 위해 출동했는데, 그게 알고 봤더니 누군가의 음모였지 뭐야.”

“누가 꾸민 일이라고?”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 아무튼 가보니까 괴물들 모습은 코빼기도 없는데 에너지의 파동은 그대로인 거야. 그래서 대원들이 조사를 하는데, 뭔가 인위적인 흔적이 있다고 했어.”

“케이브를 가본 적이 없으니까 에너지 파동은 뭐고 그 흔적은 뭐였는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만······.”

“쉽게 말하자면 우리 말고도 차원을 넘나드는 기술력을 가진 누군가가, 일직선으로 뻗어서 한군데의 차원계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는 케이브의 구조를 인위적으로 바꿔놓은 거야. 차원좌표 한 군데에 서로 상반되는 케이브 좌표를 두 군데씩 이어서······.”


그쯤에서부터 리하와 나래의 표정이 멍하니 변하자 피니엘은 작게 헛기침을 했다.


“아까 내가 차원계끼리 이어져 있는 영상을 볼 때, 케이브는 다른 우주로 이어져 있었지?”

“응, 그랬어.”

“그런데 우리가 발견한 건 케이브가 우주와 연결돼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케이브와 연결이 된 상황이었어.”

“케이브끼리 연결이 돼 있었다고?”

“우주와 연결되어 있어야 할 케이브가 엉뚱하게 다른 케이브와 이어지고 그 좌표를 경유하고 있었던 거야. 그 덕분에 차원 좌표가 엇갈리면서 케이브를 통해 흐르는 차원 에너지에 부하가 걸려 에너지 파동이 일어난 거였고, 더 시간이 지나니까 케이브 공간이 무너져 내리면서 폭발이 일어나더라고.”


그 다음은 피니엘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반드시 다른 차원계와 연결이 되어야 할 케이브가 엉뚱하게도 다른 케이브와 연결이 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그걸 조사하던 중 케이브가 폭발해 그 여파로 피니엘이 이쪽 세계에 불시착하게 되었다는 사정을 말이다.


“그래서 네가 이 세계로 떨어졌다는 소리구나.”

“걱정되는 건 나뿐 아니라 다른 갤럭시 블레이드 멤버들도 같이 휩쓸렸다는 거야. 내가 이렇게 다른 세계로 떨어졌다면 나와 같이 폭발에 휩쓸린 다른 동료들도 지금쯤 같은 신세가 됐을 거란 소리인데······.”


작은 한숨과 함께 피니엘은 영상을 중지시켰다. 그러자 주위의 광경은 다시 익숙한 방 한가운데로 바뀌면서, 마치 기나긴 여행을 하고 온 듯한 느낌에 리하와 나래는 각기 심호흡을 했다.

거기서 타이밍 좋게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주문해 놓은 피자가 이제 도착한 것 같아, 리하는 나래에게서 카드를 받아 들고 일어났다.


“일단 나가서 피자 가지고 올게. 신기한 얘기를 들었더니 왠지 허기가 지네.”

“먹을 때는 참 별의별 핑계를 다 댄다니까.”


나래의 작은 한숨에 리하는 악동 같은 웃음을 짓고 부리나케 방을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큼지막한 피자 상자와 콜라 한 병을 들고 되돌아왔다.


“자, 먹으면서 계속 얘기해 보자. 엄청난 경력을 가지신 전직 별의 공주님께서는 이 미천한 일개 여고생 나부랭이에게 어떤 도움을 바라고 계시는 거지?”


피니엘의 표정이 좀 얼떨떨해지자 리하는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콜라 한 잔을 컵에 따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놀리는 말 아니니까 오해하지는 말고.”

“그게 아니고, 체계는 다르지만 어쨌든 마법을 쓰는 당신이 그냥 일개라는 표현을 쓰니 뭔가 어색한 것 같아서.”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라서. 사념체 정화는 일족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조금만 배워도 할 수 있는 수준이야.”

“그래도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 그쪽 마법도 사용하는 에너지 자체는 동일한 듯하니까.”


리하는 눈빛을 진지하게 해 그런 피니엘을 바라보았다.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보자. 내게서 무슨 도움을 바라지?”

“마력의 공급.”

“마력공급? 그걸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주면 되는 건데?”

“여유가 되는 선에서 내게 마력을 전달해주기만 하면 돼.”


리하의 표정이 다시 멍해지는 걸 목격한 피니엘이 머쓱하게 말했다.


“혹시 그런 거 없니?”

“없는 건 아닌데······ 그게 진짜로 될까? 체계가 다른 마법이라면 뭔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잖아.”

“그래도 마력이 없으면 차원도약 시스템을 가동시킬 수가 없는 걸.”


이번에는 피니엘의 표정이 실쭉해지기 시작했다.


“한 번 가동시키려면 상당량의 마력이 필요한데, 지금 나는 필요한 에너지를 채우지 못하고 있어. 불시착으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버렸거든.”

“마력이 필요하다는 건 알겠지만 난 진짜 위험하게 보여. 아까 치유 마법 걸었을 때 네가 동물 형태에서 몸부림쳐가며 사람으로 변했거든. 또 한 번 그렇게 직접 마법 써줬다간 왠지 네가 셀프로 목이라도 꺾을까봐 겁나지 뭐야.”

“그랬어? 마나 서클에 자극이 됐었나 보네.”

“마력을 네 신체로 직접 공급하는 건 위험성이 있다고 봐. 다른 방법 뭔가 생각나는 건 없니?”


리하의 대답에 피니엘은 실망한 듯 다시 왼쪽 손목의 기계장치를 조작했다. 이번에는 피니엘의 바로 앞에 뭔가 작은 마법진 같은 것이 그려지더니, 거기에서 손바닥 크기만 한 원반형의 기계장치가 솟아 나왔다.


“그건 또 뭐야?”


리하의 입이 다시 벌어지자 나래는 뭔가 허탈한 기분이 들었는지 맥빠진 웃음을 지었다.


“도대체 어느 쪽이 마법소녀인지 알 수가 없네.”


두 사람이 멍하니 있는 동안 피니엘은 기계장치의 한가운데를 열고 그 안에서 작은 막대 같은 것을 하나 꺼냈다.


“이 장치는 개인용 간이 차원도약 포트이고, 이 막대는 사용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마나 게이지. 이 게이지에 마력을 모아서 포트를 가동시키려고.”

“그 막대기로 마력을 보내주면 되는 거야?”

“충전 방식이 따로 있어서 그냥 마력을 보내기만 하는 걸로는 안 돼. 나한테 마력이 있으면 내가 알아서 하겠지만······.”


피니엘은 거기서부터 갑자기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폭발이랑 불시착 때문에 몸을 보호하느라 마력을 거의 다 소모해서 당장은 힘들 것 같아. 다시 모을 때까지 시간도 걸릴 것 같고, 그래서 말인데······.”


그리고 동정심을 유발하려는지 처연한 눈길이 되어 리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당분간 여기서 신세 좀 져도 될까?”

“갑자기 그런 소릴 해도······.”

“아까 전엔 너희 어머니께 키우는 거 안 되냐고 허락도 구했잖아. 가족 앞에서는 동물 형태를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안 돼?”

“이보셔요, 별의 공주님. 아까부터 조금씩 비굴해지는 것 같습니다만······.”

“그치만 바깥은 너무 춥고, 하루 종일 굶고······. 아는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는 이 낯선 세계를 혼자 떠돌아다니다가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해. 리하찡이 책임질 거야?”

“······리하찡······?”


아까 전까지 매우 사람을 경계하면서 무뚝뚝한 태도로 일관하더니, 지금은 또 매우 친한 척 달라붙으려 하는 피니엘의 분위기 차이 심한 태도 변화를 보자 리하와 나래의 뺨에 가볍게 경련이 일었다. 집에 눌러앉으려는 것도 눌러앉으려는 거지만, 뭐? 리하찡? 어딘가의 세계에서 날아왔다는 이 외계인 공주님께서는 그런 말투를 정말 어디서 배워온 걸까.


“괜찮아, 그냥 식객으로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 정당한 숙박비를 지불하는 걸로 어때?”


기도하는 자세가 된 피니엘을 향해 리하는 한숨 짓듯 중얼거렸다.


“동물은 모를까, 사람은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어떡하지.”


그리고 나래 역시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되었다.


“저기요, 카르니엘 씨. 만약 우리가 남자였고, 당신 요구를 들어주는 대가로 우리가 당신의 육체에 대한 걸 원하면 어쨌으려고 그런 소리를 막무가내로 늘어놓으시는 거예요?”

“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거라고 다짐한 몸이라. 그런 상황이라도 어쩔 수 없었겠지.”


오히려 담담한 말투였다. 그리고 말로만 그러지 않고 피니엘은 정말 입고 있는 제복 상의의 단추에 손을 가져갔다.


“만약 두 사람이 동성취향이라면 응해줄 수 있는데, 어떡하겠어?”

“아니, 그러지 마. 난 백합도 BL도 취향 아닌 사람이니까.”


리하가 힘겹게 손을 뻗어 피니엘의 행동을 막았다.


“하루 정도는 재워줄 테니까 오늘은 여기서 쉬어. 내일부터는 네가 알아서 하도록 하고.”

“오늘만 재우고 내쫓겠단 소리구나.”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뿐이야. 나는 몰라도, 우리 부모님이 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니까.”


뉘앙스가 마치 여기 계속 있어도 좋다는 듯 했기에 나래와 피니엘이 모두 놀라며 리하를 바라보았다.


“리하야, 괜찮겠어?”

“오갈 데 없는 불쌍한 동물 한 마리 정도는 집에서 키워도 되는 거 아니냐고 하면 되니까.”

“그럼 이걸로 계약 성립이네. 나는 리하찡에게 숙박비와 마나 구입비용을 지불하고, 동물의 모습으로 이 집에 잠시 신세지는 거.”

“아직 확실하게 정해지지는 않았으니까 설레발은 그쯤 하시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리하가 피니엘을 바라보았다.


“근데, 너 돈은 제대로 가지고 있는 거야?”

“있지, 비상금으로 바꿀 수 있는 금괴를 항상 가지고 다니니까.”

“금괴 대신 비상용 마력 에너지 여유분을 준비하고 다니는 건 어떨까. 이런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지금 반성 중이야. 앞으론 마력도 넉넉하게 확보해서 다녀야겠어.”


피니엘은 이제야 처음으로 방긋 웃는 얼굴이 되었다. 딱딱한 표정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채, 그 나이대의 소녀로 어울리는 모습이 된 피니엘에게 리하가 의아한 듯 말했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너 상당히 밝은 모습이다?”

“멤버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부분도 좀 있지만, 사실 내 성격은 원래 그런 편이야.”

“천성적으로 밝은 편이라는 거네. 그런데 보여주기 위한 거라니?”

“우리 팀원들도 조국과 고향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신세니까, 리더인 내가 우울해하고 있으면 팀 분위기도 저하되잖아? 그러니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거지. 나중에 다 잘될 거라고.”


그리고 이번에는 도리어 피니엘이 묻는 듯한 눈길을 하고 리하 쪽을 바라보았다.


“아까 리하찡은 마법소녀라고 했는데, 그게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거야?”

“나? 나는 그냥······.”

“여기에 불시착하고 하루 종일 내가 아는 곳을 최대한 돌아다녀봤지만 별 소득은 없었어. 덕분에 좌절감에 빠졌지만 대신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게 있고.”


자세를 고쳐 앉고, 피니엘은 자신이 이곳에서 감지했다는 그 이상한 것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지금 거점으로 삼고 있는 지구에서도 가끔 느껴지곤 하던 것이었어. 어느 한군데에 비정상적일 정도의 마력이 뭉쳐 모여 있는데, 그 느낌이 아주 불쾌했단 말이지. 매우 부정적이고 악의에 차 있고 허무하고 쓸쓸하고, 그런 것들이 모여 있는 걸 저쪽의 서울에서 가끔 가다 만났는데, 이쪽의 서울은 거의 도시 전체에서 그런 게 느껴졌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규모에, 비교도 안 되는 많은 숫자들로 퍼져 있었지. 그게 무슨 현상인지 우리는 저쪽 세계에서도 아직 밝혀내지 못했고.”


피니엘이 하는 말 중에서 저쪽의 세계에서도 그런 현상이 있었다, 라는 걸 알아들은 리하와 나래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해갔다.


“너희 세계에서도 그런 느낌이 있었다고?”

“혹시 그쪽 세계에도 사념체가 존재하는 게······.”


굳은 표정이 된 리하와 나래를 보자 피니엘은 조심스러워하며 말했다.


“그 정체를 알고 있는 거야?”

“사념체라는 거야. 인간에게 기생해 감정을 빨아먹고 숙주를 파멸로 밀어 넣는 아주 악질적인 범죄 행각이지. 그런데 그게 너희 쪽 세계에도 있다는 건 대체······.”


혼란스러워하는 리하와 달리, 나래는 무언가 생각을 해보고 어떤 결론을 얻어내고 있었다.


“이곳은 차이차원의 개념이라고 하니까 우리 세계에 있는 사념체가 저쪽 세계에도 존재하는 경우 역시 있을 수 있어. 사념체를 만들어서 범죄 짓을 벌이는 행위가 저쪽 세계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건, 어쩌면 혹시······.”


나래가 리하를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쪽 세계에도, 너와 네 어머니는 아니지만 역시 너희 일족이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말에 피니엘도 호기심을 드러내 보이며 말했다.


“너희 일족이라는 건 어떤 존재고,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해왔는지 물어봐도 될까?”


서로 다른 차원에서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알게 되자, 리하와 피니엘은 그 순간부터 마음이 맞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경력과 신분을 지닌 피니엘.

특이한 혈통을 지녔고 능력 역시 범상치 않지만 삶 자체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리하.

걸어온 길은 다르고 그 만남도 우연이지만 두 사람이 서로 마주한 지금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그녀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주요 등장인물인 피니엘의 내력, 그리고 대략적인 세계관 설명 하나가 끝났습니다.

차원계와 우주를 넘나드는 스케일의 황녀님 앞에서, 우리 소박한 리하양은 일족에 대한 어떤 설명을 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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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포획 16.07.13 182 1 18쪽
16 의혹 16.07.07 174 1 14쪽
15 의혹 16.07.06 182 1 20쪽
14 사념체 16.06.30 92 1 16쪽
13 사념체 16.06.29 168 1 23쪽
12 단서의 추적 16.06.23 113 1 14쪽
11 단서의 추적 16.06.22 120 1 13쪽
10 Pair 16.06.16 113 1 17쪽
9 Pair 16.06.15 103 1 18쪽
8 일족의 후예 16.06.09 110 1 15쪽
7 일족의 후예 16.06.08 127 1 23쪽
» 망국의 황녀 16.06.02 185 2 23쪽
5 망국의 황녀 16.06.01 155 2 17쪽
4 신비한 것과의 조우 16.05.26 160 3 14쪽
3 신비한 것과의 조우 16.05.25 169 3 17쪽
2 비가 오는 날 +4 16.05.19 347 4 20쪽
1 프롤로그 16.05.18 440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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