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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소녀 유리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18 00:04
최근연재일 :
2016.12.28 01:54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9,756
추천수 :
31
글자수 :
449,261

작성
16.06.0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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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일족의 후예

DUMMY

리하는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정체에 대한 것을 밝히고 있었다. 태어나기는 지구에서 태어났지만 핏줄을 따지면 순수한 지구인이 아닌 외계종족의 후예이고, 그 외계종족의 기술을 배워 활동하고 있는 마법소녀라고 말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믿지 않고 귀담아듣지도 않을 이야기이지만 리하의 옆에 함께 있는 그녀의 친구 은나래, 그리고 지금 자신이 모르는 차원계에 떨어져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입장인 피니엘만큼은 믿었다.


“너희 종족이 지구에서 활동한지는 얼마나 됐지?”


그리고 자신이 모르고 있던 새로운 외계종족과 마주친 피니엘은 리하가 밝힌 정체를 신중하게 받아들였다. 방금 전의 해이했던 모습이 사라지고, 초반의 경계태세와 비슷한 분위기를 띠는 그녀를 보자 리하는 왠지 자꾸 웃음이 나왔다.


“지구 시간으로 따져서 기원전 5600년 전 정도부터.”

“5600년 전인가. 생각보다 오래되지는 않았네.”


피니엘이 무심코 한 대답은 나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5600년이면 엄청나게 까마득한 옛날인데?”

“그런가? 마그도리아인들 평균 수명이 5천 년이라 나한테는 그다지······.”


더 놀랄 만한 대답이 돌아왔고, 이번에는 나래뿐 아니라 리하도 입을 벌리게 되었다.


“마그도리아 사람들도 그렇게 오래 산단 말야?”

“마그도리아 사람들도, 라는 건 리하의 종족도 수명이 길다는 뜻······?”

“우리는 4천 년 정도. 나는 지구인 혼혈이라 어쩌면 훨씬 더 짧을 수 있지만.”

“리하는 태어난 지 얼마나 됐는데?”

“딱 18년째.”

“너희 일족에서 보면 갓난아기겠네.”

“그러는 피니엘은 얼마나 됐어?”

“17년 째.”

“똑같이 갓난아기네, 뭐.”


리하와 피니엘이 서로 오가는 동안 나래가 왠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냐는 듯 두 사람이 돌아보자, 힘 빠진 미소와 함께 나래가 말했다.


“너희들이 알고 보니 나하고는 나이차 까마득한 그런 미지의 존재가 아닌 게 어쩐지 안심이 돼서.”

“같은 나이, 비슷한 나이에서 오는 연대감이란 거지. 내 수명이 정확히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나래하고는 쭉 친구일 테니까 신경 별로 안 쓰고 살려고.”


리하의 대답은 가벼워보였지만, 그녀에게서 수명에 대한 것을 듣자마자 피니엘의 머릿속에는 계산이 섰다. 평균 수명이 5천 년이나 되는 종족이 현재 시간 합쳐 7600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해 왔다면,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종족의 세대교체는 그리 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이야 지구에 정착한 1세대가 아닌, 리하의 어머니 같은 일족의 2세대가 실질적으로 이끌어가고 있겠지만 최초 정착한 1세대가 아직 남아있다면 원로로서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종족은 무엇 때문에 원래 존재했을 자기들의 고향을 버리고 지구에서 정착하게 된 걸까.


“리하, 혹시 알고 있어? 너희 종족이 어째서 지구에 내려와 정착했는지에 대해.”


그 질문에 리하는 힘겨운 미소를 지었다.


“난 원래 그런 역사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데.”

“전혀 모르는 거야?”

“아냐, 어느 정도는 알아. 일족의 역사를 알아둬야 다음 세대가 대비를 할 수 있다면서 우리 외할아버지가 나 어릴 때부터 잔소리처럼 달고 다니셨지.”


그런 리하를 나래가 어째 좀 측은해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리하가 지닌 일족으로서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는 게 아닌, 얘 이래가지고 장차 뭐가 될까 하는 근심이 담긴 눈이었다.


“넌 역사뿐 아니라 아예 공부 자체랑 별로 친하지 않잖아.”

“사실이긴 한데 대놓고 말하지는 말자, 응?”


찡그린 미소를 나래에게 지어보인 리하는 자신이 배워 알고 있는 일족의 역사에 대해 피니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일족이라고 부른대. 8000여 년 전 고향 행성을 둘러싸고 벌어진 타 종족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도망쳐서 지구에 정착한 것이 7600년 전이니까, 400년 동안 우주를 떠돌아다닌 셈이지.”

“타 종족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도망쳤다니······. 우리 마그도리아랑 같네.”


의구심이 이는 눈으로 피니엘이 말하자, 리하도 좀 기가 막힌다는 식으로 웃어 보였다.


“그 조상님 세대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랑 수천 년에 걸친 전쟁을 벌였다 하더라고.”

“괴물들?”

“응, 괴물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전쟁에서 패했다는 사실이 너희 마그도리아랑 같은 것 같은데?”

“혹시 그 괴물들에 대한 정보나 자료 같은 게 있다면 알아볼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어. 일족 내에서도 왠지 1급 기밀 취급인데 나 같은 어린애가 뭐 보여달란다고 순순히 보여주겠니?”

“지금 너희 일족의 수는 얼마나 돼?”

“그리 많지는 않아. 2백에서 3백 명 사이 정도?”


그렇게 대답한 리하가 걱정 말라는 듯 웃어보였다.


“피니엘하고 우리 일족 사이에 공통점이 몇 개 있기는 한데, 너무 신경 쓰지 마. 우리 일족을 몰락시켰다는 괴물이 설마 너희 마그도리아를 멸망시킨 그 괴물들이랑 똑같을 리 있겠니?”

“놈들은 차원계를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만약 우리 세계를 멸망시킨 놈들이 여기에 진출했다거나 반대로 너희 일족을 멸망시킨 놈들이 우리 세계에 넘어온 거라면 아주 불가능하지도 않지만······.”


가능성을 검토해보던 피니엘은 잠시 후 고개를 저었다.


“아마 우연일 거야. 그 괴물들이 우리 세계의 놈들과 동일한 개체라면, 너희 일족을 몰락시키고도 수천 년간 이쪽 우주를 돌아다니며 모든 생명체를 말살시키고 난 다음에야 건너 왔을 텐데 그 와중에 지구가 이렇게 무사했을 리 없지. 강한 힘을 가진 또 다른 미지의 무언가가 이 세계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정도로 봐야 앞뒤가 맞겠는걸.”

“그렇겠지? 뭐 아무튼 우리 일족도 괴물들 때문에 몰락하고 나서 지구에 정착한 후로는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았대. 그때 가장 논란이 됐던 게, 지구 탐사를 마치자마자 일족이 둘로 나눠졌다나 봐.”

“나눠졌다고?”

“지구의 문명이 아주 기초적인 수준이라서, 이 정도면 정복이 쉬울 테니 지구를 점령하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자원으로 회복을 서두르자는 의견이 있었고, 반대로 회복을 서두르는 데는 찬성이지만 지구를 점령하는 건 반대하는 의견이 서로 충돌했다네. 오랫동안 우주를 표류하느라 얼마 남지도 않은 힘을 쓸데없이 낭비할 필요가 없다면서.”


괴물들을 피해 도망쳐 나와 지구에 정착한 일족들은 처음에 의견 충돌이 굉장히 컸던 모양인 듯, 리하의 다음 설명이 당시의 처절했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지구 정복하느라 쓸데없이 힘쓰지 말고, 그 힘으로 회복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잘 맞춰져서 무난히 넘어갔대.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한 번 의견이 갈리게 됐지. 일족의 주 에너지원에 정신 에너지라는 게 있는데, 다른 물질 자원들은 지구에서도 어느 정도 보충이 가능했지만 정신 에너지의 수집이 더뎌서 그걸로 갈등이 일어난 거야.”

“정신 에너지라는 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


자신이 모르는 개념을 듣게 된 피니엘의 조심스런 질문에, 리하는 교복 주머니에 대충 집어넣어 두었던 회색빛의 정화석과 만년필을 꺼냈다.


“마력의 원천이 되는 기초 재료. 일족은 이걸 가공해 마력으로 바꿔 사용하고 있지.”


그리고 만년필을 들어 글씨를 쓰듯 몇 번 휘두르고 나자, 이번에는 피니엘이 놀랄 차례가 되었다.


“이게 뭐야······?”


회색빛의 보석에서 탁한 안개 같은 것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색깔만큼이나 음침한 기운이 감도는 그 안개는 리하와 나래와, 그리고 피니엘의 주위를 감싸며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정체 모를 현상에 피니엘의 경계의 기색을 띠자 리하가 태연하게 설명했다.


“정신 에너지라는 건 어떤 생명체의 정신적 부분에서 소모되고 흘러나오는 파장을 말해. 이건 정신적으로 연관되는 모든 부분에 적용되는데, 기쁨, 슬쁨, 고독, 환희, 희망, 절망, 이런 감정부터 시작해서 집중력, 판단력, 인내, 의지, 근성처럼 정신력으로 알려져 있는 부분에서도 흘러나오지. 이 모든 정신 에너지는 그 생명체가 지닌 생명력을 기반으로 해서 표출되는데, 한 번 쓰이고 난 에너지는 굴뚝에서 연기 나는 것처럼 인체의 바깥으로 흘러나오지. 우리 일족은 이렇게 한 번 연소된 에너지 파장을 모아서 정신 에너지란 이름으로 재활용 하고 있어.”


회색빛 보석을 들어 보이며 리하가 말을 이었다.


“이게 에너지 파장이 모여서 이뤄진 형태. 우리는 정화석이라고 부르는데, 긍정적인 정신 에너지를 바탕으로 생성한 정화석은 빛깔이 아주 곱고 예쁘지만······.”


그 다음 만년필을 가볍게 한 번 저어주자 기분 나쁠 정도로 주위에 깔린 회색빛 안개들은 한 점 남김없이 정화석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부정적인 에너지가 바탕이 되면 지금처럼 탁한 색이 돼. 시간이 지나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중화되면서 정화석 색이 하얗게 변하는데, 그렇게 된 정화석은 남아 있는 에너지 양이 엄청 적어져서 거의 쓸모가 없게 되지.”

“쓸모가 없어진다고?”


피니엘의 질문에 리하는 괜찮다는 듯 웃어보였다.


“그렇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야. 그리고 아예 텅 비어버리는 것도 아니니까 자원으로 쓸 수도 있지. 여기서 생기는 골치 아픈 문제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어진 탁한 정화석이 저장된 에너지도 많고 만들어 내기도 쉬워서 종종 악용이 된다는 거야.”

“어떤 식으로?”

“그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갈라졌던 계기가 이 정화석 때문이었어. 당시 지구 인류의 숫자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고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서 찾아다니기도 불편했지. 그러자 다시 지구 정복설이 불거져 나왔는데, 지구를 정복하고 인간들을 한군데 몰아넣어서 정신 에너지를 쉽게 채취하자는 의견이 나온 거야.”

“가축처럼 활용하자고 했던 거군. 반대의견이 당연히 나왔을 텐데, 어떤 명목이었어?”

“시기가 이르다고. 아직 일족이 다시 우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복구되지가 않았는데, 정신 에너지를 무작정 채취하고 부풀렸다간 그 에너지를 감지한 괴물들이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른다는 거였지.”

“괴물들이 정신 에너지를 감지한다고?”

“일족은 정신 에너지를 자원의 하나로 활용해 괴물들과 전쟁을 치렀는데, 세월이 지나니까 그 괴물들도 정신 에너지를 감지하면서 일족을 압박해 왔다는 거야. 그게 우리한테 중요한 에너지원이라는 걸 알자 정신 에너지를 미리 감지하고 그 활용을 최대한 방해하면서 마지막에는 결국 일족을 무너뜨렸대. 그 강대했던 시절의 일족도 괴물들이 정신 에너지 감지 방법을 알자마자 순식간에 무너졌는데, 지구에서 소수만 간신히 보전 중인 난민 무리가 정신 에너지를 섣불리 많이 모았다간 어떻게 되겠어. 언제 어디서 다시 침략 받아 무너질지 모르는 일인데.”


지구에 정착하고, 적응해 살아가면서부터 의견과 패가 갈리기 시작한 일족의 과거사가 어쩐지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7천 년이 넘게 지구에 살아오면서 큰일이 벌어지지 않은 게 용하다 싶을 정도로.


“그래서 결국엔 일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는데, 빨리 에너지를 모아 나가자는 급진파와 상황을 더 냉정히 살피자는 유지파로 나뉘어서 서로 전쟁 직전까지 갔다고 해. 그러다가 간신이 또 의견을 맞춰서 정신 에너지는 중요한 자원이긴 하지만 만능까지는 아니니까 1년에 채취 가능한 한도를 정해놓고 수집하기로 하자고, 그렇게 조약을 맺었대. 그래서 일족은 필요한 자원과 에너지를 수집하기 위해 지구 각지로 흩어져서 인류를 관장했고······.”

“그 과정에서 인류 각각의 민족마다 고유 신화가 성립되었다는 얘기?”


피니엘의 농담조에 리하는 아니라는 대답을 했다.


“괴물을 눈 피해서 숨죽이고 살아야 할 시기라 아무도 인류의 앞으로 직접 나서지는 않고, 그냥 뒤에서 조용히 관찰하고 자원만 채집했더래. 그리고 그때부터 정화석을 악용하는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분명 정해진 양의 자원만 채취해야 하는데도 일부러 인간들에게 손을 써서 정해진 양 이상을 뽑아내는, 그리고 그걸 몰래 숨기는 범죄 행위가 나오기 시작한 거지.”

“인간에게 손을 쓴다는 건······.”

“사념체.”


리하의 표정이 거기서부터 찡그려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고 부추기는 사념체를 만들어서 그걸 지구 곳곳에 뿌리기 시작한 거야. 여기에 걸린 인간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필요 이상으로 자기 내면을 가지고 고민하거나 하면서 정신적인 과부하가 걸리게 되고, 결국 어느 쪽으로든 폭주를 일으켜 마침내는 스스로의 목숨까지 끊게 되지. 그리고 그 인간이 가진 모든 정신 에너지와, 덤으로 생명력까지 빨아낸 사념체는 정화석으로 변하고, 그 정화석을 범인이 수거하면 에너지 수집이라는 탈을 쓴 범죄가 완성이 되는 거야. 일족이 정신 에너지를 모으는 방식은 이미 사람이 한 번 사용하고 나서 흘러나온 에너지 파동을 수거하는 건데, 이들은 아예 사람의 생명력에 기생해 그 생명력 자체까지 빨아들인 셈이니까. 말하자면 쓰레기 분리수거하고 재활용으로 끝내야 할 일을 사람 죽이고 돈까지 갈취해간 강도질로 바꿔버린 거지.”


서서히 불쾌감에 물들어가는 얼굴로 리하는 계속해 말했다.


“최초의 범인들은 발각되어 처벌을 받았어. 법정의 입장은 아주 단호했지. 범죄를 일으켜 일족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뻔한 죄로, 범인 다섯 명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고 그대로 집행을 당했어. 하지만 그들이 남긴 범죄 방식과 실제로 모아둔 막대한 에너지는 남은 일족들 몇몇에게도 동일한 유혹을 주었지. 그 후로도 이러한 범죄는 수시로 행해지다가, 최근에 들어와서는······.”


리하의 설명을 듣자 피니엘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서울 시내 전체에서 느껴지고 있던 불안정하고 불쾌한 마력의 흐름이, 지금 리하가 말하는 그 범죄와 관련된 현상이라는 걸.


“사념체를 이용한 범죄 횟수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거지?”

“12년 전부터. 일족 전체가 나서서 조사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범인의 실마리를 밝혀내지 못했어.”

“일족 전체의 수는 2백에서 3백으로 그리 많지 않다고 했는데, 그 중에 범인이 있지 않을까? 정신 에너지를 다룰 수 있는 건 너희 일족 밖에 없으니까.”

“그래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있어. 범인은 고사하고 사념체 정화하는 데만도 일손이 모자라서 내가 12살 때부터 마법소녀 노릇하며 어른들을 도와야 할 정도였으니까.”


한숨과 함께 리하는 정화석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사념체를 그냥 놔두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지 모르거든. 눈에 띄는 대로 다 정화해야지 어쩌겠어.”

“그래도 사념체 수가 많은 만큼 정화석을 수거하면 대량의 에너지가 모이지 않을까? 범인은 아마 그렇게 모이는 에너지를 노리고 있을 텐데.”

“그럴 거야. 그래서 우리는 정화석을 수거하는 대로 일족 내 보안팀에게 전달해주지.”

“보안팀?”

“언제 어디서 얻은 정화석인지를 기록해서 넘기면 보안팀에서 분석을 한 다음 정화석에 담긴 생명력을 사념체의 숙주가 됐었던 피해자들에게 다시 되돌려줘. 사실 정화석을 분석하는 건 일족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지만, 개개인에게 맡겼다간 정체가 누군지도 모르는 범인과 그 공범이 몰래 빼돌릴 수도 있잖아? 그러니 되도록 보안팀을 경유하도록 하는 거고, 또 그렇게 하도록 정화석마다 일정한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지.”


보상금 부분에서 피니엘이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상금이라······.”


그 다음은 말하지 않았지만 피니엘도,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듣기만 하던 나래도 이해하고 있었다.

리하가 순수한 선의만으로 마법소녀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눈치를 모를 리 없는 리하가 좀 켕기는 대로 대답했다.


“뭐, 한 달 꼬박 정화석 모아서 가져가면 용돈 쏠쏠하게 나오니까 난 사실 공부 안 해도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지만······.”

“그러면서 뭐 꿈이 없다느니, 장래희망이 없다느니 같은 소리는 왜하고 다닌 걸까.”


나래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더욱 찔린 리하가 어색한 헛기침 소리를 냈다.


“그래, 좀 속물적이지. 반은 돈 벌고 싶은 마음에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당당하게 고개 들어 피니엘과 나래를 마주보면서, 리하는 선언하듯 말했다.


“그래도 오해는 마. 사람들이 위험에 처한 걸 그냥 보고 넘길 수 없어서야. 아니면 뭐하러 마법소녀라는 오그라드는 표현까지 자칭해가면서 그런 짓을 하겠니.”


그 말만큼은 진짜라는 듯, 나래 역시 리하를 더 약 올리지 않았다. 나래 자신이 이렇게 말하는 리하에게 오래 전 한 번 도움을 받았고,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 리하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친구의 진심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범인 잡히면 정화석 수거해서 돈을 버는 일은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겠지.”

“그럼 리하처럼 정화석을 모으면서, 동시에 사념체를 뿌리고 다니는 범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피니엘의 조용한 질문에 리하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꾸했다.


“그야 모르지. 잡히면 그때에나 알게 되려나.”

“범인을 잡을 생각은 있는 거야?”

“당연히 있지. 하는 짓이 얄미워서 만나면 꼭 한 대 때려주고 싶어.”


마치 피니엘이 도와주려 하는 뉘앙스를 보였기에, 리하도 진지하게 자세를 고치며 피니엘을 바라보았다.


“혹시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거야?”

“여기 사정도 정보도 모르는 판국인데 내가 어떻게 도와.”


손사래를 치는 피니엘.


“하지만 알아는 봐야겠어. 우리 세계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으니 말이야.”

“그래, 빠릿하게 한 번 조사해 봐. 그리고 네가 부탁한 마력공급 방법도 알아볼 테니까 좀 기다리고.”


말을 마치자마자 리하는 크게 하품을 했다. 정신없이 떠들다 보니 어느새 새벽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 된 것이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네.”

“어쩐지 엄청 피곤하더라니.”

“나래 너 혹시, 지금까지 별로 말이 없었던 게 졸음 참느라고 그런 거였어?”


피식피식 웃던 리하가 문득 뜨끔한 얼굴이 되더니, 호일 도시락 뚜껑을 열면서 절망스럽게 중얼거렸다.


“아, 스파게티······. 먹어보지도 못하고 다 팅팅 불었네······.”


그러나 남길 수는 없다는 듯, 리하는 그 불어터진 스파게티를 기어이 젓가락으로 휘저어가며 억지로 먹어대기 시작했다.


“난 이거 먹고 한숨 잘 건데 나래랑 피니엘은 어떡할래?”

“나도 눈을 좀 붙여야겠어. 피곤한 상태거든.”


눈을 비비며 피니엘이 리하를 바라보았다.


“얘기는 내일 마저 해도 되지?”

“무조건 내일하자. 깨닫고 나니까 지금 무지 졸려.”


그런 두 사람을 놔두고 먼저 일어나며 나래가 말했다.


“그럼 나 먼저 샤워할게.”

“그래, 천천히 해. 어차피 난 안 씻고 바로 잘 거니까 샤워실 쓸 일도 없거든.”

“갈수록 저렇게 게을러진다니까.”


나래가 샤워실로 들어간 후, 리하는 방바닥에 누우려 하는 피니엘을 잠깐 제지했다.


“기다려봐.”

“왜?”


피니엘이 잠시 불안해하자, 리하는 자기 옷장에서 갈아입을 만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꺼내 피니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옷 갈아입고 자. 그 제복 밖에서 하루 종일 입고 돌아다니던 걸 텐데, 그거 그대로 입고 자려는 건 아니지?”


옷을 받아들고 얼떨떨해하는 피니엘에게, 리하는 싱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마음 편히 푹 쉬라는 소리야. 한숨 자고 정신 맑아지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고, 별나라 공주님.”


그러면서 리하 본인은 기름 묻은 손과 입가를 물티슈로 대충 닦고, 다 먹은 피자 상자는 발로 구석탱이에 밀어 넣은 뒤 교복 입은 그대로 침대에 올라가 눕자마자 곯아 떨어져 버렸다.

황당한 기분으로 피니엘은 중얼거렸다. 여기에도 괴짜가 있었네.

잠시 후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온 은나래가 피니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리하는 저러고 자는 거예요?”

“꽤나 털털한 성격인가 봐요.”

“털털한 게 아니고 습관이 더러운 거예요. 내일 어머니가 보시면 잔소리 엄청 하시겠네.”


어느새 리하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피니엘을 보자 나래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리하는 카르니엘 씨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첫 대면인데도 이러는 게 조금 당황스럽긴 했어요.”


경계심 없는 리하의 모습이 얼떨떨한 피니엘의 대답에, 나래 역시 이제 피니엘을 경계하는 모습은 전혀 없어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리하가 믿으면 나도 믿을 수 있죠. 잘 자요, 오늘 밤은 푹 쉬어야 할 것 같네요.”


그리고 나래 역시 리하의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의 옆에서 함께 잠들었다.

만사태평해 보이는 그 모습에 참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싫지는 않은 피니엘이었다.


“전혀 엉뚱한 데에서 엉뚱한 기회가 생겼네.”


원래 하려던 일은 이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신세를 지게 된 점은 고마웠다.

두 사람이 깨지 않게 조용히 몸을 일으킨 피니엘은 리하의 책상에 놓인 컴퓨터로 시선을 돌렸다. 전혀 모르는 세계의 정보를 검색해 보려면, 역시 그 세계의 컴퓨터만큼 유용한 물건이 없는 법이니까.


작가의말

스케일이 커지고, 약간의 가닥이 잡히고,

그렇게 됐으니 이제 아마 다음 화부터 본격적인 사건이 이어질 것 같군요.

전 항상 초반부가 이렇게 지루해 큰일이에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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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단서의 추적 16.06.23 113 1 14쪽
11 단서의 추적 16.06.22 120 1 13쪽
10 Pair 16.06.16 113 1 17쪽
9 Pair 16.06.15 103 1 18쪽
8 일족의 후예 16.06.09 111 1 15쪽
» 일족의 후예 16.06.08 128 1 23쪽
6 망국의 황녀 16.06.02 185 2 23쪽
5 망국의 황녀 16.06.01 155 2 17쪽
4 신비한 것과의 조우 16.05.26 160 3 14쪽
3 신비한 것과의 조우 16.05.25 169 3 17쪽
2 비가 오는 날 +4 16.05.19 348 4 20쪽
1 프롤로그 16.05.18 440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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