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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소녀 유리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18 00:04
최근연재일 :
2016.12.28 01:54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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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48
추천수 :
31
글자수 :
449,261

작성
16.07.21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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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대면

DUMMY

데이비드 오언은 피니엘이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젊었고, 또 매력 있는 모습이었다. 금발벽안에 훤칠한 키, 조각과도 같은 마스크와 몸매를 지닌 이상적인 서양 미남의 면모를 그대로 갖춘 20대 중후반 가량의 이 젊은이를 피니엘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의 외모에 현혹되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짜맞춘 듯한 그의 모든 매력 요소들과, 나래에게 들었던 오언 파이낸셜의 배후 가능성을 결합하자 피니엘 역시 나래와 비슷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남자, 뭔가 심상치가 않다고.


그는 모든 면에서 너무 우월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재력, 빼어난 외모, 그리고 단 한마디뿐이지만 리하를 마치 조카처럼 여기는 듯 다정한 말투와 거기서 바로 드러나는 부드러운 성격까지.

완벽해 보이기에 거꾸로 어딘가 꾸미고 치장한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여겼을 때, 피니엘은 이미 브레이슬릿을 통해 데이비드 오언과 오언 파이낸셜에 연관된 자료들을 조사 중에 있었다.


“갈수록 예뻐지는구나. 지금이라도 진로 바꿔서 전문 모델로 나가는 건 어때?”


데이비드의 미소와 농담에 리하도 경계심 없이 밝게 웃어 보인다.


“감사합니다만 사양할래요. 하고 싶은 일은 스스로 정해서 하자는 게 제 원칙이라서요.”

“책임지고 전속 모델로 계약시켜줄 수 있는데. 모델 싫으면 우리 회사에 자리 마련해 줄 테니······.”

“낙하산 소리 듣기 싫으니까 그것도 사양할게요.”

“아니, 자리 마련해 줄 테니 신입사원 채용공고랑 자격조건 잘 보고 거기 맞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졸업하거든 이력서, 입사지원서, 자기소개서 잘 챙겨들고 면접 보러 오라는 얘기였는데.”

“자격조건 중 하나는 지금 바로 채울 수 있겠는데요. 영어는 자신 있으니까.”

“그럼 리하는 안 되겠는걸, 영어 빼고 나머지 과목들은 궤멸적이라 들었으니까. 우리 회사 자격여건에는 못 미치는 거 아냐?”

“제가 사념체 정화하고 다니느라 공부할 시간 많이 까먹어 그렇지, 마음먹고 하면 상위 1프로 진입도 문제없거든요?”

“자신만만한 건 알겠는데, 면접 볼 때는 그런 식으로 스펙 속이고 거짓말 하면 안 돼. 면접관들은 바보가 아니란다, 리하야.”


주고받는 농담들은 얼핏 들으면 과격하나, 데이비드와 리하 모두 웃는 얼굴이어서 마치 삼촌과 조카, 또는 나이 차가 좀 나는 오빠와 동생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동물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해 리하의 품에 안겨 있는 동안 피니엘은 브레이슬릿으로 계속 정보를 검색했다. 보안모드로 가동시키면 이 개인 휴대용 양자 컴퓨터는 눈으로 확인 가능한 화면을 띄우지 않고, 사용자의 뇌에 직접적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리하와 데이비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지만 피니엘은 현재 브레이슬릿이 전하는 정보를 꼼꼼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데이비드 로버트 윌리엄 오언. 오언 가문의 후계자로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오언 파이낸셜에 입사, 꾸준하고 견실하게 실적을 올려 인정받은 뒤 한국 지사장으로 부임한지 올해로 3년째이다. 한국 내에서 운영 중인 대형 쇼핑몰 업체 오마트, 자동차 브랜드 오블릭, 보험회사 WLS, 그 외 전자, 에너지, 식품, 유통 등의 계열사들을 총괄하고 있다. 경쟁력 있고 탄탄한 기업이라 업계 내에서도 위상이 크고, 데이비드 오언 개인의 명성과 평판 또한 높은 거물 기업인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리하가 안고 있는 그 동물은 뭐지?”


그 거물 기업인이 동물로 변해 있는 피니엘을 의아하게 내려다보았다.


“고양이 같기도 하고, 여우 같기도 하고, 뭔가 신기한 동물인데.”


빤히 바라보는 데이비드의 시선을 피니엘도 지지 않고 마주보았다. 리하는 정작 별 거 아니라는 듯 피니엘을 살짝 들어올리며 웃어 넘겼지만 말이다.


“저도 뭔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 동물병원에 한 번 데려갔다 오는 길이예요.”

“동물병원에?”

“돌아다니면서 사념체 정화도 좀 하고, 그러는 김에 건강검진도 한 번 받고, 그랬죠.”


데이비드는 그 말에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병원에서는 이 동물이 뭐래?”

“자기들도 잘 모르겠다고 하던데요.”


피식 웃은 리하는 피니엘을 다시 품에 안으며 말했다.


“그래도 고양잇과에 가까워 보이니까 고양이용 예방주사 한 대 맞히고 왔어요.”

“부작용 생기면 어쩌려고.”

“괜찮아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그리고 계속 여기 서서 떠들다간 내 배에 먼저 부작용이 올 것 같네요.”


데이비드는 그 말에 가볍게 웃으며 리하의 안내를 받아 집안으로 들어갔다. 둘 다 서로 친근하고 훈훈하게 말을 주고받는 것이 심상치 않아 피니엘이 아주 조심스럽게 리하를 향해 속삭였다.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닌 것 같은데?”

“영국에서 살 때 데이비드가 항상 나하고 놀아줬거든. 나한텐 삼촌 같은 사람이야.”


리하 또한 조심스럽게, 하지만 웃는 얼굴로 피니엘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리하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피니엘은 그런 리하를 보는 순간 어떤 불안감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같이 놀아준 삼촌 같은 사람이 사념체 사건의 배후이거나 또는 범인인 경우가 벌어지면 과연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었다.

데이비드 오언이 범인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의혹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리하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할지 조금 걱정이 된 것이었다. 지금만 해도 데이비드의 옆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으니까. 오전에는 분명 오마트를 돌아다니며 증거를 찾으려 했었는데 태도가 이리도 빠르게 변할 수 있는 걸까.


“어서 와요, 데이비드. 오랜만이군요.”


친한 삼촌, 그 이상으로 데이비드 오언에게 어떤 동경과 선망을 느끼듯 들뜬 리하와 달리 그녀의 어머니인 캐시는 매우 조용하고 차분했다. 가벼운 미소만을 지을 뿐, 리하처럼 호들갑스레 손님을 맞이하려 들지는 않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부인. 모처럼 폐를 끼치는군요.”


정중하지만 딱딱하지는 않은 태도로 데이비드 또한 캐시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미소로 화답하고, 캐시는 리하를 점잖게 타일렀다.


“손님과 함께 저녁을 들 거란다. 옷 갈아입고 나오렴, 리지.”

“알았어.”


아이처럼 순순히 말을 들은 리하가 2층의 자기 방으로 올라가는 걸 흐뭇한 모습으로 바라보면서, 캐시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데이비드를 바라보았다.


“일족 회의는 다음 주에 있으니 굳이 바쁜 일정을 잠시 비우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으셔도 됐을 텐데요.”

“워낙 중요한 안건이라 회의 전에 미리 언질을 드릴까 해서 찾아뵙게 됐습니다.”

“일부러 바쁜 걸음을 하실 정도로 중요한 사항이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일족 전체의 안위와 관련된 일이니까요.”


캐시의 얼굴이 그 말에 잠시 굳었다. 일족 전체의 안위가 걸릴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는 것까지는 공지에서 본 적이 없는데.


“어느 정도로 심각한 일이기에 그러시는 거죠?”


그리고 데이비드 또한 표정이 진지하게 변하며 말했다.


“식사 전에 죄송합니다만, 잠시 말씀 나눌 수 있겠습니까?”


데이비드가 눈짓으로 거실의 소파와 테이블을 가리켰다. 워낙 점잖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나온 말이라, 캐시는 그가 지금 막 엄청난 소리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일족의 안위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기에 그런 말씀을 하신 건가요?”


먼저 소파에 앉자, 데이비드가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어째서인지 조금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은 채로.


“오늘도 수십 개의 정화석을 전송해주셨더군요.”

“저와 딸아이 모두 정화자니까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당분간 그만두시면 안 되겠습니까? 부인도, 리하도.”


너무 담담하게 들려온 말이라 캐시가 잠시 논점을 잃어버린 동안, 데이비드는 고개를 저을 듯 턱을 약간 내려보였다.


“지금은 굳이 정화자로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십니다.”

“일족의 안위가 걸려있다는 문제에 앞서 저와 리지가 맡은 정화자의 역할을 중지하라는 말씀부터 하시는 이유가 뭐죠?”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념체 사건의 범인을 잡는 것보다 더 시급한 현안이 일주일 뒤의 회의에서 오갈 것입니다. 일족의 안위와 관련된······.”

“그러니까 그 안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사념체 사건 피해자들의 고통까지 외면하며 중단할 필요가 있느냐 이 말입니다.”


데이비드는 대답 없이 손가락을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테이블 위로 반투명한 빛의 구체 하나가 떠올랐고, 거기서 어떤 영상 하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것 때문입니다.”


캐시는 의아한 시선으로 데이비드가 띄운 영상을 바라보았다.


“NASA에서 입수한 목성 탐사선의 조사 영상입니다. 이 탐사선은 일주일 전에 파괴되었는데, 지금 나오는 영상이 바로 파괴되기 직전에 포착한 것이죠.”


NASA의 목성 탐사선, 그것도 파괴되기 직전에 포착한 영상이라면 이것은 기밀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런 영상을 입수하는 건 아무리 오언 파이낸셜이라 해도 쉽지 않았을 텐데 대체 무슨 수로······.

하지만 캐시의 상념은 영상에 잡힌 무언가를 보는 순간 충격에 휩쓸려 사라져버렸다.

목성과 그 위성 모두의 표면이 무언가에 의해 시커멓게 가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 기후나 현상 같은 것이 아니었다. 표현 그대로, 마치 수많은 벌레가 불빛 앞에 몰려드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숫자의 괴물들이 목성 주위에 몰려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포착함과 동시에, 카메라의 앞으로 무언가 불빛이 번쩍하면서 곧 화면에는 노이즈만 가득하게 되었다.


“이게 뭐죠?”


전혀 생각도 못한 광경을 보게 된 캐시의 목소리가 어느새 떨리고 있었다. 데이비드 또한 무거운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의 선조가 지구에 정착하게 된 계기를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어요. 우리 세대들이 모를 리 없죠.”

“부인께서 생각하시는 그것입니다. 수천 년 전의 선조들과 우리의 원래 고향까지 짓밟고 멸망시킨 그 놈들입니다.”


어느덧 하얗게 질린 캐시에게 데이비드가 깨우쳐주듯 다시 말했다.


“그 괴물들이 이제 태양계에 진입해 온 것 같습니다.”



* * *




“약간 지루하더라도 잠깐만 참고 기다리고 있어. 저녁만 먹으면 바로 올라올게.”


자기 방으로 올라온 리하는 피니엘을 침대 위에 내려주고 먼저 샤워를 하기 위해 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얌전히 앉아 기다리는 대신 욕탕 앞까지 졸졸 따라온 피니엘이 옷을 벗기 시작하는 리하를 빼꼼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 모습으로?”

“당연히 그 모습이지. 엄마랑 아빠는 네가 원래 사람이라는 걸 전혀 모르잖아.”


벗은 옷을 차례로 세탁물 바구니에 넣으면서 리하는 안심하라는 듯 웃었다.


“걱정 마, 애완동물 사료 대신 제대로 된 먹을 거 가져다 줄 테니까.”

“내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닌데.”

“그럼 뭔데?”

“오언 파이낸셜이 만약 범인이라면, 리하가 마음으로 망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속옷까지 마저 벗으려던 리하는 잠시 멈췄다가, 곧 피니엘을 번쩍 안아들었다.


“피니가 나한테 궁금하다는 거 하나 있었지?”

“예전에 리하와 나래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했던 거?”

“그래, 그거.”

“지금 들려주려고?”


리하는 피니엘을 품에 안았다. 또래의 다른 여학생들보다 월등히 풍만한 리하의 가슴은, 피니엘이 황녀가 아닌 황자였다면 크게 당황하여 거기에 닿는 걸 대단히 민망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 상태에서 리하는 조금 우울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나랑 나래는 3년 전에 처음 만났어.”


피니엘은 말없이 조용히 리하의 말을 들었다.


“우리 둘 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어. 나래는 나랑 다른 반이었고.”


천천히 시작된 리하의 이야기는, 이후부터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난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 좋아하는 오빠가 생겼어. 한 학년 선배인 윤하린 선배라고, 여러 모로 괜찮은 사람이었지. 학생회에 들어가서 만난 걸 계기로 많이 친해졌는데, 나한테도 무척 친절했어. 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그랬지만. 나는 그 선배한테 마음이 있었고, 선배도 나를 아주 후배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하지만 일이 복잡하게 꼬여 들어갔는데, 나랑 윤하린 선배 사이에는 은미래 선배가 또 있었다는 거지.”

“은미래?”


누군지 바로 짐작이 되는 이름이라 피니엘이 잠시 되묻자, 리하는 웃음 지은 얼굴 그대로 대답해주었다.


“나래 언니였어.”

“그 언니랑 리하랑 윤하린 한 사람을 사이에 두고 경쟁을 했겠네.”

“그랬었지.”


리하의 얼굴에 걸린 웃음이 점점 씁쓸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나하고 미래 선배 사이는 나쁜 것도 아니지만 좋은 것도 아니었지. 서로 무덤덤했지만 견제는 하는 그런 사이.”

“시간 더 흐르면 확실하게 사이 나빠지는 연적들의 초기 관계네.”

“그랬을 거야. 그 정도로까지 시간이 많이 흘러가진 않았지만.”

“언니였다, 라고 과거형으로 설명했는데······.”


조심스런 피니엘의 질문에 리하는 우울해했다.


“미래 선배는 죽었어.”

“······.”

“살해당했지. 사념체에 잠식당한 윤하린 선배한테.”


피니엘은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입을 벌렸다. 그런 피니엘을 한층 더 꼭 끌어안으며 리하는 우울하게 계속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벌어진 일이야. 윤하린 선배한테는 사념체가 기생하고 있었고, 나는 사념체가 있다는 걸 알았는데도 모른 척했어. 내가 선배와 친해지기 전에도 윤하린 선배와 미래 선배는 친밀한 사이였는데, 내가 그 사이에 끼어들자 미래 선배가 나를 안 좋게 본 거야. 하린 선배는 사념체에 정신을 지배당하면서, 그 제정신 아닌 마음으로 나한테 더 호감을 표시한 거지. 그런데 난 그걸 알면서도, 그냥 하린 선배가 내 쪽으로 마음 기울어지는 것만 좋아서 그냥 모른 척 해버렸어. 나중에 하면 되겠지, 그런 식으로. 그리고······.”


말을 멈추는 리하를 피니엘이 가만히 말렸다.


“그만해도 충분히 알았어. 괜찮으니 더 말하지 않아도 돼.”

“······미래 선배와 하린 선배는 어느 날 말다툼을 벌였지. 방과 후에 학생회실에 둘이서만 남아있을 때였고, 그때 사념체가 하린 선배의 정신을 폭주시켰어. 광란 상태에 빠진 하린 선배가 미래 선배를 살해한 다음 자기도 자살했고, 조사하러 나온 경찰들은 우발적 살해와 자살로 판단해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지. 하지만 미래 선배의 동생이었던 나래는 경찰의 발표에 의문을 품고 자기 혼자 수사를 다시 하기 위해 증인이었던 날 찾아왔어. 그렇게 나래랑 처음 만나게 됐고, 난 엄마와 함께 내 정체와 사념체, 그리고 우리 일족에 대한 것을 알려준 다음 나래의 협력을 구한 거야.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래는 나와 함께 하고 있지.”

“······.”


고개 숙인 피니엘을 내려다보며 리하는 다시 억지로 밝게 웃어 보이려 했다.


“그때 사건, 말로 하니까 이렇게 쉽게 넘어가는 거지 실제로는 정말 처참했어. 나 거기서 멘붕 제대로 겪었다니까, 진짜.”

“그런 일을 당하고도 사념체를 계속 정화하러 다니는 거야?”

“그런 일을 당했으니까 사념체를 계속 정화하러 다니는 거지.”


미소와 함께 피니엘을 다시 바닥에 내려주고, 리하는 말했다.


“미래 선배도, 하린 선배도, 둘 다 너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거든. 그래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사념체란 몹쓸 존재 때문에 그렇게 됐지. 나한테도 큰 상처가 됐고.”

“그래서 범인을 잡으러 다니는 거구나.”

“맞아, 난 용서 못해. 그 누가 됐든.”


방문 쪽을 지그시 바라보며 리하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아무리 삼촌 같은 데이비드라고 해도, 만약 범인이거나 또는 연관돼 있으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몸을 돌려 리하는 욕탕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벗은 속옷을 문 사이로 슬쩍 던지고는 다시 원래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돌아와 말했다.


“내려가서 내가 직접 확인하고 올 테니까, 피니는 말했듯이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할게.”


리하의 결의와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피니엘이 고분고분 대답했다. 그리고 리하의 말대로 침대 위에 올라가 다시 브레이슬릿을 통해 오늘 얻은 정보를 다시 검토했다.

그동안 리하는 몸을 씻으며 생각에 잠겼다. 피니에게 뭐하러 이런 말을 했을까 하는 후회가 몰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망설임도 함께였다.

말로는 아무리 데이비드라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는데, 만약 그가 정말로 범인이라면 그 말대로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생겨나지 않았다.

스스로를 나무랐다. 생각하는 것과 말이 너무 달랐다고 말이다. 사념체와 그것을 퍼뜨린 용서할 수 없어서, 그로 인한 피해자가 또 생길까봐 마법소녀를 하고 있는 건 사실 동기 중에서도 작은 부분에 속한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 라는 것도 핑계에 가깝다.

사실은 그냥 무서우니까, 한 번 내몰린 김에 어디까지 가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함이 생겼다.

3년 전의 그 사고로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나서지 않아도 될 일을 억지로 나서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사념체에 잠식된 사람은 나밖에 구할 수 없다고 믿으면서,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니 사전에 예방하자는 생각보단 그냥 내가 무서우니 그런 게 보기 싫어서 무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리하는 고개를 저었다.


난 그저 옳은 일을 하고 싶은 것뿐이다.


사념체와 범인을 반드시 잡아서 나와 나래 같은 피해자가 다시 나오지 않게 노력하려는 것뿐이다. 그것뿐이다.


작가의말

뭔가 혼돈에 빠져가는 것 같은 이번화였습니다.
프롤로그에 나왔던 괴물들이 이번 화에 다시 언급이 됐는데, 흐름이 어찌 될지 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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