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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소녀 유리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18 00:04
최근연재일 :
2016.12.28 01:54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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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60
추천수 :
31
글자수 :
449,261

작성
16.07.06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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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의혹

DUMMY

남편을 배웅하고 아이는 잠시 밖에 내보냈으니, 보통의 가정주부라면 식구들이 아무도 없는 이쯤에서 집안일을 시작한다. 청소와 빨래, 그리고 장보기. 하나같이 힘들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다 끝내고 나면 거의 저녁이 다 되어있곤 한다.

남들한테는 이렇게 중노동이 되는 집안일이나, 캐시는 그리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청소나 빨래쯤은 마법으로 모두 정리가 되는 수준이니까. 집안의 먼지와 쓰레기는 그녀가 한 번 휘두른 손짓에 남김없이 모두 허공으로 날아와 한데 뭉쳐서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갔다. 빨래 또한 세탁기에 넣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역시 손짓 한 번으로 때와 얼룩이 모두 말끔하게 제거된 것도 모자라 고이 접힌 형태로 각자의 주인 방으로 배달까지 되었다. 옷장과 서랍장이 저절로 열리고 그리로 세탁물들이 들어가 정리되는 광경은 누가 보았다간 동화 속의 마법 걸린 저택이라도 보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채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청소와 빨래를 모두 마친 캐시는 슬슬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저녁에 손님이 방문할 예정이니 장도 봐와야 하고, 차에 기름도 새로 넣어야 하고, 나간 김에 세차도 좀 하고, 돌아오면서 사념체 정화도 하고, 할 일이 태산이었다.


오늘 오전, 집 근처의 동네 미용실에서 사념체의 기운을 감지했지만 그것은 딸인 리하에 의해 빠르게 정리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 근처는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다 여겼는데, 누군지 모를 범인은 사념체의 씨앗이 숙주에게 잠복해 있는 기간 동안은 마력이 추적되지 않도록 방책을 마련한 모양이었다.

새로운 수법을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해내려면 또 골치 깨나 썩을 것 같았다. 별 일이 없기를 바라는 건 너무 지나친 생각이겠지. 나름대로 사람들을 지킨다고 지키고는 있지만 그래도 보호하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이들이 가득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오언 파이낸셜인가······.”


오늘 아침 나래가 품고 있던 의혹에 대해 캐시 역시 생각을 해보았다. 자신과 같은 일족의 후예들이 오너로서 경영을 맡고 있는 기업 오언 파이낸셜.

사념체 사건의 범인은 일족 중의 누군가라면 오언 파이낸셜을 경영하는 데이비드 가문도 용의자 선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은 일족이라면 그 누구라도 의심을 해봐야 하는 시기이다.

역으로 데이비드 가문에서는 우리를 의심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일족 회의가 다음 주인데, 그 전에 먼저 만나자고 하는 걸 보면 의심이 반, 그리고 상황의 타개를 위한 협력제안이 반일 것이다.


캐시는 차고로 내려가 집에서 쓰는 중형 세단을 몰고 나갔다. 장도 보고 조사도 할 겸 오마트에 한 번 들러볼 생각이었다.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 편이지만 그거야 걸어갈 때 얘기고, 차를 타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곳이 정말 마의 소굴이라는 것보다는, 가봤자 별 거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컸다. 오마트라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이용하는 편이었고, 갈 때마다 어떤 특별한 마력의 흐름 같은 건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나래의 추리가 완전히 빗나갔거나, 아니면 범인이 흔적을 철저히 감추고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벌써 몇 년 동안 그곳에서는 이렇다 할 사건이 벌어지지 않은 걸 보면 아무래도 나래가 잘못 생각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만의 하나라는 경우가 있다. 지금까지 없었다 해서 앞으로도 없을 거란 보장도 없다. 생각난 김에 가보는 게 좋겠지.

오마트까지 가는 동안 캐시는 길거리 이곳저곳에서 사념체가 내뿜는 마력의 흐름을 느꼈다. 습도 높은 여름 날씨처럼 불쾌하고 끈적끈적한 그런 느낌이 생각보다 여러 방향에서 흘러오고 있었다. 오전 동안 이 근처는 리하가 다 정리한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오늘은 그냥 둔 모양이다.


캐시는 작게 한숨을 지었다. 정체가 뭔지 수상한 그 작은 동물이 딸아이를 홀리기라도 한 걸까. 우리 애가 이런 걸 그냥 보고 넘길 성격이 아닌데.

하는 수 없지, 내가 하는 수밖에.


신호등의 빨간 불 앞에서 대기하는 동안, 캐시는 변신도 주문도 없이 그냥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한 번 딱 튕겼다.

그러자 사방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 비슷한 울림과 함께 길가의 행인들의 몸에서, 또는 자동차에서, 건물 안에서, 십여 줄기나 되는 검은 안개들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캐시가 손을 다시 까딱이자 연기들은 한 곳으로 모두 모여 뭉쳤고, 캐시의 손짓에 맞춰 검은 연기 덩어리는 그녀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으로 끌려 들어왔다. 역시 주문 한 번 외우지 않은 채 캐시의 손끝이 마치 말 안 듣는 애완동물 야단치듯 연기를 탁, 가볍게 한 번 내려치자마자 연기는 순식간에 형체를 바꿔 작은 마법진의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형광등처럼 불빛을 몇 번 깜박이고 나더니, 열 개 정도의 정화석을 토해내듯 내놓고 마법진은 서서히 형체가 허물어져버렸다.

정화석들을 집어 들고 핸드백에 집어넣으며 캐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념체들 덕분에 돈은 잘 벌고 있지만 마음이 너무 불편하네. 사람 목숨 담보로 이런 짓들을 꼭 하고 싶을까.”


정제석은 마력이 필요한 만큼만 교환하고 나머지는 자금으로 융통 받아서, 사념체 피해자 지원재단에 기부 액수를 늘려야 할 것 같았다. 길을 가면서도 이 정도로나 숨어있는 사념체들이 무더기로 걸려 나오는데 서울시, 아니 대한민국 전체로 따지면 얼마나 더 많이 도사리고 있을까. 전 세계로 따지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숫자겠지.

어떻게든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캐시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바로 차의 액셀을 밟았다.



* * *



“그래서, 그 IAC인가 하는 데는 결국 못 찾은 거야?”


여의도에 도착해서 발견한 사념체를 모두 정리한 것까지는 좋은데, 정작 이곳까지 가자고 끌고 온 장본인은 자기 목표를 전혀 이루지 못해 시무룩해 있었다.


“없었어. 리하의 세계는 IAC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인가 봐.”


울적한 목소리로 밀크셰이크를 홀짝이는 피니엘은 아까 사념체에게 공격을 당한 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매우 기운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입장을 돌아보면 피니엘이 기운 없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하는 리하였다. 낯선 세상에서 하루 넘게 혼자 떨어져 있는 상황이고, 원래 세계와 비슷하거나 공통되는 연결점은 하나도 못 찾은 데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괴현상에 휘말리기까지 했으니 지극히 혼란스러울 테지.

덤으로 괴현상에 휘말려들면서 옷까지 찢어지는 피해를 입는 바람에 리하 자신이 용돈을 털어 웃옷 한 벌을 구입해 입혀주었다. 그리고 마음의 진정도 시키기 위해 거리 근처의 디저트 카페에도 데려와 밀크셰이크 하나를 시켜준 참이다. 얻어먹고 얻어 입고 잠까지 얻어 자고, 우주를 지배했다던 제국의 황녀라는 신분이 어울리지 않는 궁색한 모습이다. 자기 자신의 초라함이 느껴져 우울해지지 않을까.


“너희 세계에서는 IAC에서 무슨 도움을 받았어?”


국제 외계인 관리사무소라는, 명칭도 희한한 기관에 호기심이 생긴 리하가 피니엘의 기분도 달래줄 겸 그렇게 말했다.


“네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찾으려하는 거 보니까 꽤나 의지가 되는 곳인 것 같은데.”

“신세 많이 지고 있는 곳이긴 해.”


원래 세계에서는 정말 많은 도움과 협력을 서로 주고받는 기관이지만 차이차원인 이곳에는 그 존재를 찾아볼 수 없으니 지원을 기대하기는 틀린 상황이다. 덕분에 기운이 빠진 피니엘은 빨대로 셰이크를 휘저으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IAC한테 도움 받으면 필요한 마력도 금방 모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리하가 약속한 정제석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겠네.”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

“내 브레이슬릿에 지금 우리 세계의 케이브 좌표가 저장돼 있어. 발동 시키는 건 언제라도 가능하지만 필요한 마력이 부족하지.”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마력이 얼마나 되는데?”

“잠깐 기다려봐.”


피니엘은 브레이슬릿이라 말한 차원제어 컴퓨터로 무언가를 계산했다. 리하의 눈에는 작은 홀로그램 영상이 떠다니는 정도로밖에 안 보였으나, 피니엘은 익숙하게 그것을 다루더니 머잖아 탄성을 터뜨렸다.


“이거 뭐지······. 어, 정말······?”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리하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정제석을 꺼내 들고 다시 무언가를 황급히 살펴보던 피니엘이 좀 얼떨떨해하는 얼굴로 그런 리하를 바라보았다.


“이 정제석 기준으로 한 200개 정도 있으면 될 것 같아.”

“200개?”


그리고 피니엘의 말을 전해들은 리하도 얼굴이 좀 기우뚱해졌다.


“정말 200개면 돼?”

“응. 오차 수치와 평균값 상향 또는 저하를 고려해도, 100개 안팎이면 차원도약 시스템을 가동시킬 마력은 모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피니엘은 말끝에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하지만 200개를 모으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은데······.”

“아니, 별로. 그렇게 많이 안 걸려.”


피니엘의 결론에 오히려 약간 김이 빠졌다는 반응을 보이는 리하였다. 꽤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들어갈 줄 알았는데······.


“200개 정도는 내가 일주일만 좀 빡세게 하면 금방 모이거든.”

“뭐······?”


정제석 200개가 별 거 아니라는 리하의 발언에 이번엔 피니엘이 당황했다. 꽤나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았는데, 그 미션을 오히려 아무렇지 않아 할 줄은 몰랐으니까.


“나 혼자 하다 힘들 것 같으면 엄마한테 얘기해도 되고. 엄마랑 나랑 같이 하면 일주일도 안 걸리고 길어야 4, 5일 안에 다 모을 수 있을 걸.”


리하의 말에 상황의 해답을 찾은 듯 한 피니엘이었으나 기쁨은 잠시였다. 정제석 200개분의 마력이면 차원도약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데는 충분하겠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어떤 의혹이 생겨난 것이었다.


이곳은 알지도 못하는 다른 세계다. 원래 세계와의 공통점이라곤 이곳이 서울이라는 것 하나뿐, 살고 있는 사람의 존재는 물론 기업이나 단체조차 판이하게 다르다. 돌아갈 수 있는 수단은 있지만 그 수단을 사용할 때까지의 과정이 너무 까마득해 막막한 판인데, 고작 하루도 안 돼 이곳에서 신비한 힘을 사용하는 소녀를 만났다. 그리고 그 소녀를 통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도 같다.


모든 일이 이렇게 내가 바라는 대로, 나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걸까?

너무나도 쉽게 모든 상황이 풀려가니 오히려 의심이 들었다.

그런 피니엘은 속마음을 마치 읽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리하가 가만히 미소 지은 얼굴이 되어 말했다.


“지금 의심하고 있지?”

“······.”

“하루도 안 됐는데 모든 일이 너무 술술 잘 풀리니까 갑자기 경계심 들고 그러지?”

“어떻게 그걸······.”


조심스레 대답하는 피니엘에게 리하는 두 손을 모아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솔직히 말할 테니까, 듣고 나서 나한테 화내지 말아줘.”

“그럴게. 어떻게 지금 내 마음을 알고 있는 거야?”

“사실 어젯밤부터 쭉 네 마음을 읽고 있었어.”

“······.”


얼떨떨한 표정이 된 피니엘에게 리하는 정말 미안한 건지, 아니면 무안해서 그런 건지 모를 웃음을 띠었다.


“일족의 마법이야. 클린 미러Clean mirror, 지정한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떤 속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지.”


리하의 설명이 끝나자 당혹스러워진 피니엘은 조금 화가 난 표정이 되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미안해. 웬만하면 이런 마법 안 쓰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좀 그랬잖아. 주워온 동물이 사람으로 변해있고, 그 사람은 자기가 우주를 정복했던 제국의 황녀라고 떠들고, 우주는 또 무한대의 다른 우주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 누가 그걸 곧이 믿니.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마법을 한 번 써봤지.”


리하의 침착한 설명에도 피니엘은 화가 난 얼굴 그대로였다. 당연할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 속마음을 허락도 없이 들여다봤다면 열에 아홉은 이런 반응을 보일 테니까.


“난 전혀 몰랐는데.”

“지금은 안 쓰고 있어. 앞으로도 안 할 테니까 화 풀어,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하며 웃는 리하를 피니엘이 가만히 쏘아보았다. 무례하다면 무례한 리하의 행동이었으나, 달리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리하 스스로 말했듯, 온갖 희한한 현상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피니엘 스스로도 상대방의 본모습을 알아내려 했을 것이다. 마법으로 간단하게 알아낼 수 있다면 필시 자신도 그렇게 했을 테지. 거기다 리하가 말도 안 하고 다짜고짜 마법부터 쓴 것도 아니고, 서로 대화로 풀면서 그 와중에 생겨난 의혹을 거두고 확인하기 위해 그런 것이라 여긴 피니엘이었다.

하지만 이해를 한다고 바로 화가 풀리는 것은 아니어서, 그 다음 피니엘의 목소리는 아직 불퉁거리는 면이 남아있었다.


“차라리 믿지 못하겠다고 면박을 주는 쪽이 나았을지도.”

“정말 미안해. 그래서 내가 우리 집에서도 자게 해주고 이것저것 도와주기고 하고 그러려는 거잖아.”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가 거짓말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낸 거구나.”

“응, 그리고 피니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어.”

“나에 대한 모든 걸 그 마법 한 번으로 볼 수 있었던 거야?”

“피니에게는 불행하게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아낸 건데?”

“피니가 과거에 겪었던 일, 지금 맞이한 일, 그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거랑······ 한마디로 거의 다.”


리하의 말에 기어이 한숨을 쉬게 된 피니엘이었다.


“싹 다 드러났다는 거로군.”

“나한테는 좀 충격적인 내용들도 많이 있었어. 피니는 그동안 고생이 정말 많았구나.”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지금 나아가려고 하는 방향도 뚜렷하고, 무엇보다 착한 아이라 다행이야.”


만족스러운 듯 싱긋 웃는 리하에게 피니엘은 다소 새침한 시선을 보냈다.


“허락도 없이 정말 많이도 들여다봤네.”

“덕분에 피니에 대한 걸 알 수 있었지. 반드시 저쪽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 그 절박함도. 차원계를 침략하는 괴물들에 맞서서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한 정의감, 그 순수함, 착한 마음, 그것 때문에 기필코 돌아가려는 거잖아.”

“그것 때문에 날 도와주려는 거야?”

“피니엘이란 사람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그런 피니엘을 도와주면 설마 별나라 공주님씩이나 되는 위인이 자기 곤란할 때 도와준 사람을 그냥 모른 척 입 싹 닫고 그냥 있을까. 말했잖아, 난 그냥 정의감만으로 마법소녀 노릇 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날 돕는 대가로 내가 리하에게 무엇을 주면 좋겠어?”

“딱히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려는 건 아닌데.”


리하는 일부러 계산적으로 들리는 말투를 꺼냈다. 딴에는 그냥 장난이었지만, 듣는 피니엘게는 정말 긴장되는 말이었다.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으니까 본론부터 말해줘.”

“그럴게. 두 가지 조건인데, 하나는 사념체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줬으면 하는 거야. 피니가 사념체를 쉽게 추적할 방법이 있다고 했지?”

“이제부터 실험해 보겠지만, 만약 안 된다면 그때는 다른 방법을 써야겠지. 리하 말대로 도움 받고 모른 척할 마음은 없으니까, 두 번째 조건을 알려줘.”

“나중에 너희 세계로 돌아갈 때, 나도 같이 가서 잠깐 구경 좀 하고 와도 될까?”

“우리 세계에?”

“불가능한 게 아니라면 구경 가보고 싶어. 재미있을 것 같거든.”


여기서부터는 순진하게 눈빛을 반짝이는 리하를 보고 피니엘은 잠시 경계하는 기색이 되었다.


“마력만 모이면 불가능하진 않은데······.”

“그래? 그럼 같이 갈 수 있는 거야?”

“우리 세계는 관광하기에 좋은 곳이 아냐. 그 괴물들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단체와 조직들의 이해관계와 대립이 얽혀서······.”

“구경뿐이라면 그런 일에 엮이지도 않을 것 같던데. 피니엘의 마음속에서 들여다 본 그 갤럭시 블레이드라는 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엄청났거든.”

“우리 갤럭시 블레이드도 쉽게는 움직이지 못하는 판이라······.”

“네가 말한 괴물들보다 네 동료들이 훨씬 더 괴물 같더라. 그런 사람들이 옆에서 지켜주면 든든하지 않을까?”


징징대는 투만 아닐 뿐이지 완전한 떼쓰기였다. 그러나 원래 자기 세계의 험악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피니엘로서는 선뜻 허락하기 어려운 일이라, 그냥 흘려 넘기기 위해 슬쩍 말을 바꿔보았다.


“그러려면 우선 정제석부터 모아야하니까, 자세한 의견은 나중에 천천히 맞춰보자.”

“좋아. 당장 급한 것도 아니니까.”


피니엘의 난감한 기색을 본 리하가 먼저 선선히 물러났다. 피니엘의 의견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슬슬 나가봐야 할 때였다.


“사념체를 하나 붙잡아 달라고 했었지?”

“정보를 구해야 하거든.”

“어려운 일 아니니까 해볼게.”

“고마워. 나가기 전에 나도 뭐하나 물어봐도 될까?”

“어떤 건데? 듣고 나서 답변에 제한이 좀 있을 수도 있지만.”

“리하는 어떻게 해서 마법소녀가 됐어?”

“······.”


리하의 움직임이 멎었다. 화가 난 것은 아니고, 당황한 것도 아니었다. 예상외의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무엇을 위해 사념체라는 위험한 존재를 리하가 맡고 있는 거야?”

“······.”


리하의 표정은 거기서부터 진지해졌다.


“피니.”


일어설 듯하다 도로 자리에 앉은 리하가 진지한 시선을 피니엘에게 보내며 말했다.


“그건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해줄게.”

“말하기 곤란한 일 때문이면 대답 안 해줘도 돼.”

“그렇기도 해. 남한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피니의 허락 없이 내면을 들여다봤으니 스스로에 대한 벌칙으로 내 얘기 또한 피니에게 건네야 공평해지겠지. 하지만 말야.”


리하는 이어서 피니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나래 앞에서는 절대로 말하지 마. 나래는 내가 무엇을 위해 마법소녀를 하는지 알고 있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말하지 마. 그 애한테는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니까.”

“알았어.”


리하가 마법소녀라는 자칭을 붙여가며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데에는 역시 어떤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이유가 뜻밖에도 나래와 관련돼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고 또 궁금했지만 나중에 들려준다는데 굳이 조를 필요 없을 것 같아서, 피니엘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리하와 더불어 카페를 나왔다.


“다음 사념체는 어디로 갈 거야?”

“근처 적당히 돌아다니다 보면 알아서 하나 잡혀. 수가 너무 많아서 곤란할 정도거든.”


리하는 그러면서 다시 지하철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의도를 벗어나려 하는 것 같아 피니엘이 그녀를 따라가며 물어보았다.


“다른 곳으로 가려는 거야?”

“여기서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으니 이제 다른 곳으로 가봐야지.”


휴대폰으로 무언가 메시지를 보내면서 리하가 말했다.


“이제부터 나래랑 만나서 같이 움직이려고.”


작가의말

저는 항상 초반이 약점입니다...
초반 부분에 눈길을 확 끄는 무언가가 없이 항상 초, 중반부가 이렇게 늘어지네요ㅠ

세계관 설정 및 현 상황 설명하기... 하지만 이렇게 너무 루즈하면 이건 전개상 단점도 뭐도 아닌 그냥 독이로군요ㅠ

1부를 빨리 끝내고 싶습니다. 글쓴이조차 지루해요!
하지만 2부로 넘어가기 전에 이 지루한 1부에서 설정과 방향을 잡는 게 우선이겠죠.
...어쨌든 해보도록 하겠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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