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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바람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소녀 유리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6.05.18 00:04
최근연재일 :
2016.12.28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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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2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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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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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캐서린 로즈 유는 일족의 조상들이 고향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그 전쟁의 패배를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다. 그것은 데이비드 오언 또한 마찬가지다. 그 두 사람 모두 일족이 지구에 정착하고 오랜 세월이 지났을 때 태어났기 때문이다.

출생 연도를 따지면 그들은 일족 중에서도 젊은, 아니 무척이나 어린 편에 속한다. 당장 나이를 따져 봐도 보통의 평범한 지구인들과 다르지 않다. 캐시가 37세, 데이비드는 27세. 일족의 수명이 평균 5천년이라는 점을 보면 이들의 현재 연령은 일족 내의 풋내기라 봐도 심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둘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일족의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현재 상태와 과거의 조상들이 겪었던 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상들이 겪은 일은 언제 현실이 되어 우리에게 닥쳐올지 모른다는 주의도 단단히 받았다. 의식과 사고방식은 모범적인 시민의 것이지만 마음 한쪽으로는 일족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지닌 두 사람이라 지구인으로서도, 일족의 일원으로서도 나무랄 데 없는 인물들이다.

지구상에 사실 그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은 일족의 구성원들은 서로에 대한 유대감이 각별하다. 그리고 일족을 지금과 같은 상태로 만들어 놓은 원흉들에 대해서는 깊은 원한과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동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캐시는 데이비드가 보여준 영상자료를 보고 나서도 주저하는 반응이었다.

수천 년 전의 조상들을 멸망 직전으로까지 내몰고, 이제 자신들에게도 위해를 끼치기 위해 나타난 그 괴물들을 보고도 별다른 말은 없이 표정만 살짝 일그러뜨리는 캐시를 보며 데이비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놀라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요.”

“너무 갑작스러우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캐시의 솔직한 반응이었다. 아무리 데이비드 오언이 친분이 있는 사이이고, 또 많은 도움을 받은 데다 그의 가문이 일족 내에서도 권위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 사건은 너무 뜬금없게만 느껴진 것이다.


“목성 부근에 나타난 이 괴물들에 대해서는 지구에서 어떤 뉴스도 보도되지 않았잖아요?”

“그렇습니다. 탐사 자체가 극비 프로젝트였고, 이런 걸 발표해 시민들의 혼란을 야기할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데이비드의 평온한 대답을 듣자 캐시는 무언가 마음속에 석연찮은 기분이 드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커다란 이슈를 가져와 놓고 어떻게 동요 한 번 없이 사람이 이리 침착할 수 있는 걸까. 마치 일부러 꾸미는 듯한 그런 느낌에 캐시가 다시 표정을 찡그렸다.


“이 영상은 언제 촬영됐나요?”

“3개월 전입니다. 지금쯤이면 목성 전체가 이 괴물들의 소굴이 되어 있겠죠.”

“어째서 이 괴물들이 목성에 몰려 있는 거죠?”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선조들께서 남겨주신 기록에 대조해보면, 목성 자체를 전진기지로 삼으려는 듯합니다.”

“전진기지? 무엇에 쓰기 위한 전진기지인가요?”

“생명체, 즉 먹잇감이 몰려 있는 지구를 침공하기 위한 기지일 겁니다. 목성 부근의 무인 우주선이 파괴된 후에도 꾸준히 조사를 들어가 본 결과, 이 괴물들은 이미 지구를 향해 출발한 상태입니다.”


캐시는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괴물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이 남자가 대체 어떤 의도로 이런 대화를 이끌어낸 건지 그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어서였다.

이런 소리를 왜, 지금, 이제야 꺼내서, 나와 내 가족에게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괴물들이 쳐들어오는 판국이니 사념체 정화 같은 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말씀이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사념체를 정화할 필요가 없다는 게 설마 괴물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어이없는 이유 때문이기라도 한 걸까. 그렇게 여긴 캐시에게 데이비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한층 더 엄청난 소리를 했다.


“그것 때문입니다. 앞으로 30일 이내에 지구는 멸망하는데, 굳이 사념체 정화를 하고 범인을 추리고 그런 수고를 들일 이유가 없죠.”


결국 입을 벌려버린 캐시와 달리 데이비드는 품위를 유지하며 찻잔을 들고는 말했다.


“일주일 후에 있을 일족 회의는 회의랄 것도 없습니다. 의제고 뭐고 아무 것도 없어요. 단지 지구상의 우리 일족들을 모두 한데 모은 뒤 지구를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한 피난 캠프일 뿐입니다.”

“무슨 그런 어처구니없는······.”

“수천 년 동안에 걸친 교육과 그에 따른 경고가 우리 세대에서 현실이 되었으니, 이럴 때를 대비해 마련된 방책 중 하나를 실행하는 것뿐입니다. 일주일 내에 주변을 정리하시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을 하기 위해 일부러 우리 집에 들르겠다 한 건가요?”


날카로워지기 시작한 캐시의 눈빛을 데이비드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받아냈다.


“사념체 같은 건 지금 우리가 맞이하게 될 사태 앞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일입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시점이지요.”

“괴물들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증거도 정황도 없는데 추측만으로 그런 일을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요.”

“불행히도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괴물들에 대한 대비를 해왔고 그것이 이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괴물들은 30일 이내로 도착해 지구의 모든 것을 파괴할 겁니다. 맞서는 게 불가능한 상대예요. 피하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일족을 모두 모아 다른 곳으로 피난시키겠다 했는데, 대체 어디로 보낼 작정이죠?”


여러 모로 황당한 말을 듣자 무수한 질문거리가 생겨난 캐시가 그 중의 하나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데이비드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 부분은 기밀입니다.”

“이미 목성에 다다랐고 지구로까지 움직이기 시작한 괴물들을 어떻게 뿌리칠 생각입니까?”

“그 부분 역시 기밀입니다. 일주일 후의 회의에서 모두 알게 되실 것입니다.”

“당신, 또는 오언 가문이 그 계획의 주동자인가요?”


이 질문에서 데이비드는 유일하게 침묵했다. 쓴웃음을 짓는 그 반응에 캐시는 그가 털어놓지 않은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란 직감을 받았다. 그리고 그 모든 의문의 기반이 되는 질문을 그에게로 던져 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벌이려 하는 겁니까?”

“일족의 안위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해도 말이죠.”


뭔가 애매모호한 대답이었다. 논점을 알 수가 없는 덮어놓기 식. 결국 캐시가 다시 한 번 꼬집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에게 클린 미러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숨기는 게 없다면 방어하지 않을 것이고, 꿍꿍이가 있다면 방어를 할 거란 계산이시군요. 왕년의 성질 다 잠잠해진 줄 알았는데, 지금도 여전하신가 봅니다.”


캐시는 더 말 붙이지 않고 클린 미러의 마법을 사용했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는 일족의 마법이라면 지금 데이비드가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데이비드 스스로가 말했듯 숨기는 게 없다면 이 마법을 방어하지 않을 것이나······.

그는 캐시의 마법을 방어했다.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뭘 숨기고 있는 거죠?”


이 방어로 데이비드의 의중에 자신이 모르는 다른 속셈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캐시가 무섭게 추궁했다. 하지만 데이비드의 여유로운 미소는 떨어지지 않았다.


“저녁 얻어먹고 일족에 대한 사안으로 잠시 얘기만 하러 왔을 뿐인데, 손님 대접이 이리 거칠어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당신의 행동을 보니 오언 파이낸셜에 대한 의혹이 깊어지는군요.”

“저희 회사에 무슨 의혹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사념체 피해자들의 상당수가 오언 파이낸셜과 관련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사원, 고객, 관련 업종 하청업체 위주로.”


캐시의 차가운 말투에 데이비드는 실소를 흘렸다.


“저희 기업이나 또는 제가 사념체의 범인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증거는 없어요. 의혹일 뿐이죠.”

“그런 건 이제 와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지구의 운명이 오늘 내일 하는 사건이 터졌는데.”


농담조가 흘러나왔으나 캐시의 표정은 이제 무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일족회에 진정서를 내야겠군요.”

“아무도 눈여겨 볼 일이 없을 텐데요.”

“지금으로선 당신이 사념체와 관련되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지요. 의혹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지금 당신의 석연찮은 행동과 설명은 심증을 굳히게 만드는 군요.”

“제가 심심해서 부인 댁에 자폭이라도 하러 왔다, 그렇게 여기시는 겁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유언비어와 허위사실 날조가 있죠.”

“인증된 영상자료를 분명히 보여 드렸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일족에 전해 사실유무를 확인 검토하겠습니다.”


이제 싸한 냉기가 들기 시작한 캐시를, 데이비드는 한 번 더 넉살 좋게 받아넘겼다.


“좋습니다. 어느 쪽이든 부인 뜻대로 하십시오. 단······.”

“단?”

“모처럼 찾아왔는데 이대로 돌아가라 하시면 문전박대 아닙니까. 의견에 충돌은 있었더라도, 저녁 한 끼 정도는 부탁드리고 싶은데요.”


캐시는 대답 않고 한참 동안 데이비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의중을 알 수 없고, 꿍꿍이가 따로 있고, 의혹이 깊어지는 이 남자를 계속 한 자리에 머무르게 해도 괜찮은 걸까.


“엄마, 저녁 아직 다 안 됐어?”


2층에서 내려오는 딸의 목소리가 그런 캐시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싸한 시선은 거두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굳은 캐시가 데이비드를 조용히 식탁으로 가게 했다.


“초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데이비드 역시 싱긋 웃어 보였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불신이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한 캐시는 그를 더 이상 고운 시선으로만 바라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 * *



캐시와 데이비드 사이에 의견 다툼이 있기는 했으나, 식사 자리는 꽤나 화기애애했다. 마침 시간 잘 맞춰 집에 도착한 유은후 교수와 아빠 왔다고 반기는 리하, 오랜만에 안부 인사를 건넨 손님 데이비드는 정말로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저녁식사 분위기에 일조했고, 그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도 심각하고 험악했던 좀 전과는 달리 무척 평범한 것들밖에 없었다.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것뿐인, 어디에나 있는 훈훈한 가족들의 모습.


그러나 그 자리에서, 우연이지만 어떤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하고 있었다.


데이비드를 정말로 수상하게 보기 시작한 캐시, 그리고 처음 그를 보았을 때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피니엘이었다.

피니엘은 캐시와 데이비드 사이에 오간 대화를 알지 못했다. 지금 거실에 내려와 있는 것도 리하가 고양이 아니니 알레르기도 없을 거라며 거듭거듭 우겨댔기 때문에 간신히 한 구석에 들어왔을 뿐이다. 그리고 먼 거리에서나마 데이비드가 하는 말과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데이비드는 언뜻 평범한 것 같지만 자신에 대한 실상은 교묘히 감추고 있었다. 내용이 상투적인 것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오늘은 주말이라 좀 바빴다, 집에 가면 무엇을 할 예정이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을 해야 하고. 이런 것들을 대충 뭉뚱그려 설명하는 타입이었다. 언변이 화려하지 않은 편일 수도 있고, 기업하는 사람이라 해서 자신의 모든 행적을 시시콜콜 체크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지만, 이 사람은 조금만 들어보면 너무 티가 난다.


뭔가 중요한 것을 뒤로 감추려 한다는 것.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수상하게 여겨질 그런 타입.

캐시와 피니엘은 우연히도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각자의 입장과 생각을 정리한 두 사람은 결론마저도 서로 비슷했다.

캐시는 이 자가 감추고 있는 무언가와 그에 대한 증거와 정황의 파악을,

피니엘은 이 자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을.

그러려면 조사가 필요하다. 오늘부터 데이비드 오언이란 인물에 대해 캐 들어갈 계획을 생각하며 두 사람이 심각해진 동안, 데이비드는 유은후 교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교수님은 다음 번 계획,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매진해야죠. 승급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유은후 교수는 곧 부교수로의 승급을 앞두고 있으니 데이비드의 질문은 언뜻 듣기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 다음도 그랬다.


“가족 전체가 축하할 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별 거 아닌 듯한 대화, 그리고 그 다음의 리하에게도 딱히 이상할 것 없는 질문을 한 데이비드였다.


“아직 리하가 남자친구를 사귄다는 제보가 없네.”

“제가 보는 눈이 좀 높거든요.”


일부러 거만하게 대답하는 리하의 옆에서 유은후 교수가 정색을 했다.


“만약 그런 게 생긴다면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딸 사수, 라는 아빠 입장은 나도 잘 아는데 너무 걱정 마. 당분간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아.”


쾌활하게 웃는 리하와 민망해하는 데이비드를 바라보며 유은후 교수는 정색을 풀지 않고 말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오언 씨가 리하의 사적인 일에 대해 궁금해 하는 건······.”

“교수님 입장에선 쉽게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었죠. 죄송합니다.”


다소 능글맞게 넘어가는 데이비드의 앞에서 리하가 놀리듯 말했다.


“내 걱정 말고 오언 씨 본인부터 챙기는 건 어떨까요? 오언 씨도 지금 애인 없으니까.”

“난 마음만 먹으면 애인쯤은 언제든지 만들 수 있어.”

“그러면서 왜 안 만들고 있대요?”

“기업을 경영한다는 건 생각보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


장난스럽게 웃어넘기는 데이비드와 어울려주는 리하가 어딘지 못마땅한 피니엘이 리하에게 다가갔다. 너무 넋 놓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피니엘이 그러는 것처럼 캐시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리하를 점잖게 제지하려했다. 그때 리하가 웃는 얼굴 그대로 피니엘도, 캐시도 하지 못한 질문을 데이비드에게 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사념체를 정화하다가 알게 된 건데요.”

“왜, 뭔가 범인의 실마리 같은 거라도 잡았어?”

“그런 건 아니고, 입장 바꿔 생각하기 같은 거죠.”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봐.”

“만약 오언 씨가 범인이라면 오언 파이낸셜을 이용해 어떤 식으로 사념체를 뿌리고 수거할 것 같아요?”


유은후 교수만 그게 무슨 무례한 소리냐는 듯 딸을 제지하려 했으나, 데이비드는 유쾌해 하는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생각해볼만한 문제인데, 그건.”

“사념체가 너무 대규모로 퍼져있으니까 그냥 궁금해서요. 범인이 아무리 여럿이라 해도 이렇게 많은 사념체를 불특정다수 대상으로 퍼뜨리기에는 힘들 것 같거든요.”

“어째 네 말투는 꼭 내가 범인이길 바라는 것 같다.”

“그냥 해보는 말이에요.”


리하의 웃음에 데이비드 또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리고는 그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말을 빠르게 풀어놓았다.


“만약 내가 범인이라면 이렇게 하지. 사념체는 그리 복잡한 구조가 아니니까, 봉인된 마력 덩어리를 여럿 정제해 이것들을 저장해둔 마력의 심볼을 제작해둘 거야. 그리고 이 제작 레시피를 사내 생산라인에 전달하고, 공장에 들어가는 원재료에 심볼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섞어서 들여보내야겠지. 그럼 따로 손을 댈 것도 없이 심볼이 포함된 제품들이 자동적으로 생산되고, 그게 수출이 되고 유통이 되고 하면서 시장을 돌게 될 텐데, 그 와중에 직원들이나 물건을 사간 고객들이 상품과 접촉하면서 심볼에 섞인 마력을 체내에 흡수해 자체적으로 사념체를 부화시켜 가지 않을까. 누가 걸리든, 언제 걸리든, 당첨도 랜덤에 기간도 랜덤.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니 이 기업 라인을 최대한 활용하게 되겠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데이비드는 말의 끝맺음을 지었다.


“나라면 이렇게 할 거야.”


그리고 리하 역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굉장히 창의적인 방법이네요.”

“뭔가 칭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기분이 드는데.”

“누가 되든 범인이 빨리 잡혔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래. 하지만 앞으로 그리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거야.”

“왜요?”

“그건 이따가 어머니께 한 번 여쭤봐. 안 그래도 내가 아까 설명을 한 참이거든.”

“그냥 직접 말해주세요.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요.”


리하가 은근슬쩍 졸랐고, 캐시 또한 데이비드에게 직접 말하라는 눈치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유은후 교수는 표정이 굳은 채였다.


“그래, 알았어. 하지만 듣고 놀라기 없기다?”

“뭐가 그렇게 감출만한 일이길래요?”

“앞으로 30일 내에 지구는 멸망하거든.”

“네······?”


리하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바라보며 데이비드는 다시 태연하게 말했다.


“그걸 피하기 위해 일주일 후에 우리 일족, 그리고 그의 가족들 대상으로 회의가 있을 예정이야. 리하도 되도록 참가했으면 해.”


자리에서 일어난 데이비드가 유은후 교수, 그리고 캐시에게 작별인사를 해보였다.


“좋은 대접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캐시는 물론 유 교수 역시 의외로 말이 없었다. 리하만 어처구니없어 하는 가운데, 데이비드는 정중한 투로 그 세 가족을 향해 말했다.


“저는 여러분들을 일족으로서, 그 가족으로서 지킬 생각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그런 제 믿음이 헛되지 않게 앞으로의 대처를 잘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분쟁을 우리가 다시 되풀이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원만하게 가는 것이 이상적인 흐름인 만큼, 여러분 모두 앞으로의 일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주셨으면 합니다.”


캐시와 리하, 그리고 피니엘에게는 뜻 모를 소리이건만 어째서인지 유 교수는 알아듣는 듯했다. 혼자서만 굳은 안색이었으니까.

지구가 곧 멸망할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도, 그리고 이어진 데이비드의 영문 모를 발언에 모두가 혼란에 빠진 동안 데이비드는 다시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더 추가했다.


“일족 회의까지 앞으로 일주일입니다. 내일부터 어떻게 할 건지 결단을 내리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집을 나갔다. 남은 사람들 사이에 침묵이 잠시 감돌았다가, 곧 캐시가 그것을 가장 먼저 깨뜨렸다.


“데이비드가 한 말의 뜻, 혹시 뭔가 아는 게 있어?”


남편은 유은휴 교수를 돌아보고 하는 말이었다. 리하, 그리고 식탁 밑의 피니엘도 궁금한 듯 바라보자 그는 무거워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도 리하도, 사념체 정화는 당분간 멈추고 피난 준비를 해.”

“피난 준비? 아빠, 왜?”


가장 영문을 모르는 것은 리하였다. 그녀는 데이비드가 한 말도, 지금 아버지가 하는 말도 무엇 때문에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으로부터 피난 준비를 하라는 걸까?


“오언 씨의 말대로 지구에 얼마 안 가 큰일이 닥칠 거야. 정말 멸망할지 어떨지는 확실치 않지만 재난에는 대비를 해야겠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그래?”

“우주에서 괴물들이 침공해올 거야. 캐시, 리하. 너희 선조의 고향을 멸망시킨 그 괴물들이 지금 지구까지 멸망시키러 오고 있어.”


그 말에 누구보다 놀란 것은 피니엘이었다. 다리 밑에서 움찔하는 감촉에 리하가 진정하라는 듯, 발로 피니엘을 살짝 밀어주며 말했다.


“아빠는 대학교수인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에 넘어갔다는 거야?”

“말도 안 되고 자시고, 내가 천문학 교수고 그쪽으로 지인들도 있는데 우주 탐사 소식에 대해 모를 리가 없잖니. 시민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언론에도 절대 유포하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 가족만큼은 알고 대비를 하고 있어야지. 너희 일족과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


그 말에 캐시가 표정을 찡그리는 것이 보였다.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남편에 대한 어떤 반감이 인 것이었다. 리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피니엘을 안아들고 조용히 말했다.


“밥 다 먹었으니까 들어갈게.”

“리하야, 이 얘기 절대 아무에게나 말하면 안 된다.”

“알았어.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소리니 해봐야 아무도 안 믿겠지.”


2층으로 올라오자 엄마와 아빠가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게 들려왔다. 하지만 리하는 신경 쓸 새가 없었다.

두근거리는 그녀의 가슴은 품안에 안겨 있는 피니엘이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었다. 리하가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주저앉자마자, 피니엘이 조심스레 그녀에게 말했다.


“믿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뭐가, 괴물들이 오고 있다는 거?”

“그래, 그거.”


리하는 대답에 앞서 한숨부터 쉬었다.


“모르겠어. 그냥 혼란스러워.”

“그게 당연한 반응이야.”

“피니엘은 어때?”

“나는 반반.”

“어떻게 해서?”

“데이비드 오언이 가져온 정보에는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었어. 괴물들이 온다는 것도, 자기가 사념체 사건의 범인이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설명도.”


리하는 그 말에 울적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원래대로라면 나도 안 믿을 텐데, 어제 피니가 보여준 영상 때문에 괜히 꺼림칙하네.”

“진정해, 리하.”

“우리 조상님들이 수천 년 전에 멸망했다는 거 난 실감도 안 나. 무슨 일이었는지도 몰라. 그런데 기록은 엄연히 남아있으니까 그런 게 있었나 보다 하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그게 현실이 될지 모른다고 하니까 무섭다기보단 뭔가 얼떨떨한 그런 기분이야.”

“진정하고 머리를 식혀. 그래도 우리가 할 일은 잡을 수 있으니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면 되는데?”


기운 없는 리하의 질문에 피니엘은 애써 담담한 척 연기를 하며 대답했다.


“괴물이 정말로 오고 있는지 어떤지는 우리가 당장 확인할 방법이 없어. 그러니 데이비드 오언에게 초점을 맞춰야 해. 그가 유언비어와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면 그걸로 일족에게 처벌을 받게 해야겠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의도가 무엇인지, 그의 이런 행동을 입증할 증거를 찾아내는 거지.”

“증거를 찾아내고 나서 일족에 신고를 하라고?”

“무언가 자신을 감출 게 있어 그 시간벌기로 이슈를 꾸며낸 걸지도 모르잖아. 지금으로서 가장 의심이 되는 건 사념체겠지. 이 사건을 더 조사해 데이비드 오언과 관련된 부분을 짚어내야 하고, 그게 안 된다면 정말 단순무식하게 나갈 수밖에.”

“어떤 건데?”


피니엘은 그 말에 정색하며 대답했다.


“리하가 내게 최대한 빨리 마력을 공급해주는 것. 그럼 원래 세계로 돌아가 내 동료들을 데리고 다시 올게. 사념체는 몰라도 데이비드 오언과 오언 파이낸셜에 대한 건 빠르게 알아낼 수 있을 거야.”


리하는 피식거리며 피니엘의 말을 받았다.


“오언 씨가 말했지. 내일부터 생각 잘 해야 할 거라고.”

“리하는 내일부터 움직이겠다는 거야?”

“지금은 생각할 것도 많고, 어차피 나래하고는 내일 만나 움직이기로 했으니까.”

“그래, 서둘러서 좋을 건 없지. 우선 오늘은 각자의 생각을 정리해두는 게 좋을 것 같네.”


데이비드 오언이 선고한 30일 내. 그리고 일족 회의까지는 일주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때까지 무엇을 하고 어떤 걸 이룰 수 있을지 리하도 피니엘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모든 게 그저 폭풍 전야의 잔바람, 파도조차 되지 못하는 잔물결에 불과할 뿐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리하와 피니엘 모두가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건 시작도 아니야. 그냥 작은 조짐일 뿐이지.

그리고 그로부터 몇 시간 후부터 그녀들은 생각지도 못한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작가의말

날씨가 정말 덥네요... 사람도 이 글도 계속 늘어지고 있습니다ㅠ
부족한 솜씨로 글을 쓰려니 정말 어려운 점이 너무 많네요. 쓸 때마다 자책하고 반성 중입니다.
좀 더 잘 써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이 아쉬움, 무력감...

다음 에필로그에서는 조금이나마 만회할 수 있으려나요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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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유리하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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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광풍이 몰아칠 때 16.08.10 209 0 14쪽
24 광풍이 몰아칠 때 16.08.04 228 0 11쪽
23 2부 프롤로그 16.08.03 143 0 9쪽
22 1부 에필로그 16.07.28 270 0 13쪽
» 권유 16.07.27 188 0 24쪽
20 대면 16.07.21 257 1 19쪽
19 대면 16.07.20 189 1 14쪽
18 포획 16.07.14 155 1 15쪽
17 포획 16.07.13 181 1 18쪽
16 의혹 16.07.07 174 1 14쪽
15 의혹 16.07.06 182 1 20쪽
14 사념체 16.06.30 92 1 16쪽
13 사념체 16.06.29 167 1 23쪽
12 단서의 추적 16.06.23 113 1 14쪽
11 단서의 추적 16.06.22 120 1 13쪽
10 Pair 16.06.16 113 1 17쪽
9 Pair 16.06.15 102 1 18쪽
8 일족의 후예 16.06.09 110 1 15쪽
7 일족의 후예 16.06.08 127 1 23쪽
6 망국의 황녀 16.06.02 184 2 23쪽
5 망국의 황녀 16.06.01 154 2 17쪽
4 신비한 것과의 조우 16.05.26 160 3 14쪽
3 신비한 것과의 조우 16.05.25 169 3 17쪽
2 비가 오는 날 +4 16.05.19 347 4 20쪽
1 프롤로그 16.05.18 440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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