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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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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7.15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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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8. 작은 집 전투

DUMMY

8. 작은 집 전투



봄이가 뒷좌석에서 다시 창 밖을 내다봤을 때에는 눈부신 태양빛이 그녀의 눈을 직접적으로 비추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주택가 베란다 창살에 맺힌 고드름들도 제각기 햇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뒷좌석의 유리창은 앞좌석과는 다르게 곧바로 내리쬐는 자외선을 그다지 잘 막지 못했다. 봄이는 빙벽등반을 할 때에는 자외선을 차단할 고글이 필수적이라는 이유를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이는 좀처럼 유리창 너머로 걸린 시선을 떨어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씩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내리던 눈송이들이 봄이가 내다보던 유리창 표면에 달라붙어 녹아내렸다. 봄이가 밟고 있던 차량 밑바닥은 이미 그녀의 낡은 운동화에서 흘러나온 물기 때문에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들이 탄 차량은 좁은 주택가로 들어섰다. 아직까지는 해가 지평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좁고 낮은 주택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거리는 햇볕이 잘 들지 않아서인지 어둑어둑하고 음침해 보였다. 여전히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텅 빈 거리였다. 그렇지만 봄이는 그 광경을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봄이는 차량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상훈이 브레이크를 밟았던 것이었다. 그는 차량을 완전히 세운 뒤에 앞좌석 등받이를 뒤로 확 젖히고 말했다.


“상민아, 네가 슬슬 내려서 가야겠는데.”


“그럴게.”


상민이 그렇게 말하며 몸에 걸린 벨트를 풀고 나서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의 행동에 궁금증을 느낀 봄이가 의아해하며 상훈에게 물었다.


“아저씨, 왜 갑자기 가다 말고 한 사람이 내려서 가야 하죠?”


봄이의 질문에 상훈이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멀리서부터 우릴 감시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의 말에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새카맣게 앉아 있던 까마귀들이 떠올랐다.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봄이가 다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예요?”


“글쎄 뭐랄까, 곧 알게 될 거야.”


상훈이 대충 대답하고는 등을 돌리려는데 봄이가 그의 어깨를 붙잡아 세웠다.


“계속 그렇게 의미심장하게 얼버무리려고만 하지 말고 알려 주세요. 다 알고 계시잖아요. 왜 자꾸 숨기려고만 해요? 아는 것 있으면 좀 털어놔 보라구요.”


봄이가 재촉하자 상훈은 좌석 등받이 위에 팔꿈치를 걸쳐올렸다. 그는 왼손으로 턱을 한 번 쓰다듬고 나서 창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유리창을 손등으로 똑똑 두드리며 말했다.


“바깥을 한 번 내다 봐.”


봄이는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순순히 따랐다. 차량 내부에 떠다니던 공기마저 얼어붙은 채 물방울이 맺혀 있는 차디찬 유리창에 손을 짚었다.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손바닥이 쓰라렸다. 별다른 점을 눈치채지 못한 봄이가 상훈에게로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아무 것도 없는데요.”


뜻밖에도 상훈은 봄이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아무 것도 없어.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나 버리고 주인 없는 텅 빈 건물들만 수십 채 남아있을 뿐이야. 눈을 씻고 둘러봐도 도저히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지는 않은 풍경이지. 그런데 봄아, 분명히 아무 것도 존재하지 말아야 할 이 주택가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네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해 봐. 기분이 어때?”


그의 말의 의미를 조금도 알아듣지 못한 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그를 바라보자 상훈이 얼굴을 낮게 일그러뜨리고 몇 마디 덧붙였다.


“지금부터는 조심해야 돼. 너는 분명히 이 쥐새끼 한 마리 없는 주택가 한가운데서 무슨 일이 있겠느냐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나도 처음에는 그랬어. 하지만 그건 전부 사실이 아니야. 눈을 크게 뜨고 둘러봐.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겠지.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걸까?”


가만히 앉아서 듣고만 있던 봄이는 그의 난데없이 진지한 태도가 너무나도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상훈이 한 마디 더 덧붙이려 하는 순간 누군가가 차량 바깥에서 주먹으로 유리창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형, 뭐 하고 있어? 안 갈 거야?”


유리창을 두들기는 소리에 깜짝 놀란 나머지 안 그래도 잔뜩 긴장하고 있던 봄이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그제서야 상훈은 시선을 정면으로 향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곧 알게 될 거야.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또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의 목소리와 동시에 차량이 천천히 나아갔다. 결국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는 봄이의 얼굴이 실망스런 기색으로 가득 찼지만 더 이상 캐물으려고 들지는 않았다. 이 상황에서 더 집요하게 묻는다고 해도 이 남자는 말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또한 그가 말한 곧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서이기도 했다. 어차피 곧 알게 될 사실이라면 벌써부터 굳이 알려고 들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상훈은 그 이후로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더 이상 이야기에 흥미가 떨어진 봄이는 가만히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로 창 밖을 내다보고만 있었다. 차량의 속도는 아주 느렸는데 아마도 내려서 걷는 상민의 걸음걸이에 맞춰져 있는 것 같았다. 봄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 하고 생각하는 도중 상훈이 차량을 완전히 멈춰세웠다.


“인제 다 왔어. 여기서부터는 너도 내려서 상민이랑 같이 있어. 나는 이 덩치를 숨길 만한 장소를 좀 찾아봐야겠어.”


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 문 레버를 젖혀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콧등에 감도는 차갑고 삭막한 바깥 공기의 감촉이 느껴졌다. 바깥 땅에 발을 내려놓자마자 봄이는 푹 빠지는 길바닥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그녀는 땅바닥을 내려다보기 전까지 푹푹 빠지는 발목이 수북이 쌓인 눈 때문이었는지, 지저분한 흙탕물과 섞여 흐르는 진흙 더미 때문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봄이가 오른손에 움켜쥐고 있던 망토 자락이 땅바닥에 질질 끌렸다. 그녀는 망토를 제대로 뒤집어쓸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주택가를 바라보았다.

세상이 변해버렸을 때,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세상이 변해버리고 난 후의 도시 풍경에 대해 묻는다면 틀림없이 그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시가지를 제일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폭격기 편대가 쏟아붓고 지나간 폭탄에 허물어진 건물이라던지, 탄도 미사일에 의해 땅이 움푹 패인 채 완전히 무너져 내린 건물들처럼 지옥같은 광경을 떠올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봄이가 올려다보는 건물들은 하나같이 긁힌 자국조차 없이 멀쩡했다. 폭격을 당해 반쯤 허물어진 건물 같은 것도 없었다. 모든 건물들은 표면이 말끔했고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다. 인간들이 창조해낸 그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그 색이 바래지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을 만들어낸 인간들은 그 위대한 창조물들만을 남긴 채로 단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자취를 감춰버렸다.


수많은 주택들이 제각기 마주보고 있었고, 집집마다 있는 철제 대문들은 모두 굳게 잠겨 있었다. 대부분의 도로에는 눈이 거의 다 파헤쳐져 있었지만 어느 주택 근처에는 한 쪽 구석에만 눈더미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도로 바닥에는 빈 병들이나 신문지 조각들만 굴러다녔다.


텅 비어버린 도심가 뒤편에는 아치형으로 지어진 건축물 주위에 우뚝 솟아오른 교회 첨탑이 보였다. 봄이는 그 첨탑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제야의 종소리를 떠올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도심가 한복판에서 금방이라도 성스러운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기다려도 교회 종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건물들 창문을 그렇게 오래 쳐다보지 않는 게 좋을걸.”


갑작스런 남성의 목소리에 봄이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상민이 능청스런 얼굴로 서 있었다.


봄이는 그와 눈을 꽤 오랫동안 마주치고 있었다. 상민은 여전히 달갑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더니 그녀에게서 등을 돌려 멀어져갔다. 그가 말했다.


“따라와.”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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