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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42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7.04 06:19
조회
63
추천
1
글자
7쪽

77화

DUMMY

“잠깐, 저 사람들은 뭐죠?”


봄이가 말하자 차량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옆면 창가로 쏠렸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상민은 벨트를 풀고는 상훈이 앉은 운전석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씨발, 저 새끼들은 뭐야?”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그림자에 당황한 상민의 동작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상훈은 상황을 파악한 뒤에 행동하려는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불청객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자꾸만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봄이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듣기 위해서 창가에 대고 바짝 귀를 기울였다.


차 유리창 너머로 자세히 보니 그들 중 한 사람은 목발을 짚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털 코트를 껴입은 채로 봄이에게 마구 손을 휘젓고 있었다. 목발을 짚고 있는 사람의 다리는 완전히 피범벅으로 물들어 있었다. 목발을 짚지 않은 다른 한 사람은 가슴과 팔에 검붉은 피를 묻히고 있기는 했지만 멀쩡해 보였다. 그들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그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봐요, 잠깐만 기다려요. 사람이 다쳤어요. 좀 도와 주세요.”


다리를 다쳤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걸음걸이는 상당히 빨랐다. 무엇인가 안 좋은 예감을 느낀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시며 차 문을 잠갔다. 그 절름발이를 처음 보자마자 봄이는 그를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경계심이 더 앞섰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그 낯선 절름발이의 말이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가 차량을 빼앗기 위해 거짓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목발을 짚고 있던 남자가 핏자국으로 물든 다리를 벌벌 떨며 경련했다. 봄이가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하고 상훈에게 얼른 벗어나자고 부추기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왜였을까?


봄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상민이 초조한 듯이 운전대를 잡고 있던 상훈에게 윽박질렀다.


“뭐 하고 있어? 저런 뻔히 보이는 수법에 넘어가지 마. 지금 당장 저 녀석들한테서 멀어지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상훈 역시나 쉽사리 엑셀을 밟으려 하지 않았다. 봄이는 상훈의 어두운 표정을 보자 본능적으로 그가 어떠한 이유로 고뇌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지금 그가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봄이는 도저히 상훈을 재촉할 수가 없었다.


두 절름발이가 차량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들은 창가 너머의 봄이에게 피로 얼룩진 손바닥을 뻗어 보였다.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좌석 뒤로 슬그머니 물러났다. 마구 뒤엉킨 절름발이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그의 일그러진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봄이에게는 그 모습이 마치 죽음의 광기에 휩싸인 사신처럼 느껴졌다. 그의 소름끼치는 몰골에 봄이의 몸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더 이상 그녀의 목구멍에서는 아무런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제발 도와주세요. 부탁입니다.”


“아니 씨발,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보다 못한 상민이 상훈의 멱살을 잡으려는 순간 봄이의 몸이 앞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두 절름발이의 모습이 쏜살같이 옆으로 지나쳐 사라졌다. 차량은 매정하게도 간신히 손을 뻗은 절름발이에게서 빠르게 멀어져갔다. 일어서서 상훈에게 덤비려던 상민은 갑작스런 출발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봄이는 재빨리 뒤돌아서 좌석 등받이에 손을 짚고 트렁크 창문을 통해 멀어져가는 절름발이를 바라보았다. 절름발이는 모든 희망을 포기한 채 목발을 땅에 내던진 채로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봄이에게서 돌아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어서 있던 다른 남자는 허리를 구부리고 주저앉아 있는 절름발이를 부축하려 하고 있었다.


봄이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그 두 사람의 그림자가 완전히 눈앞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봄이는 제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을 외면한 것은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상민은 상훈에게 뭐라고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상훈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봄이는 운전대에 올려진 상훈의 손가락이 문득 보였다. 그의 손가락은 미미했지만 떨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봄이는 한 가지 의구심을 가졌다. 그는 과연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 것일까?


봄이는 직접 상훈에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려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네요.”


봄이조차도 자신이 한 그 말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는 몰랐다. 다만 그저 누군가가 들어주었으면 했을 뿐이었다. 그것은 인간성이란 게 완전히 메말라 버린 이 황무지 한가운데서 홀로 부르짖는 외침과도 같았다. 또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자신에게 던진 말이기도 했다.


“잠깐, 방금 뭐라고 했어?”


상민이 봄이에게 물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씁쓸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봄이는 고개를 빠르게 흔들어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분명히 다짐했었는데. 두 번 다시 약한 마음 먹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었는데.


봄이는 물기 하나 없이 메말라 있던 눈가를 손등으로 닦아냈다. 그러자 앞이 조금은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봄이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민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니예요.”


상민은 조용히 표정을 구기더니 흥미가 떨어졌는지 몸을 돌려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 앉았다.


한참 동안이나 차량 내부에는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정적을 깬 사람은 봄이였다. 그녀는 조용히 일어서서 앞좌석으로 고개를 불쑥 내밀고 말했다.


“분명히 누군가가 도와주겠죠?”


지금껏 앞만 보며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상훈이 봄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봄이는 상훈의 눈과 정말 오랜만에 마주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우리보다 훨씬 더 착한 사람들이 틀림없이 도와줄 거예요. 그렇죠?”


그 말을 들은 상훈의 시선이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그 때도 봄이는 그 역시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단숨에 꿰뚫어볼 수 있었다.


상훈은 씁쓸하게 피식 웃어 보이고는 대답했다.


“분명히 다른 사람이 도와줄 거야.”


바라고 있던 대답을 들은 봄이는 만족해했다. 그리고 이후로는 더 이상 그에게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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