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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36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3.24 05:30
조회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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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7쪽

52화

DUMMY

봄이는 양 옆으로 늘어진 천막 사이를 비집고 나오면서 자연스레 천막과 천막들 사이에 있는 틈을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공터로 발을 들이게 되었다. 공터는 봄이가 상상하던 것보다는 컸지만 사방이 수북이 쌓인 물류상자와 드럼통들로 막혀 있어서 좁아 보였다. 주변 여기저기에 타다 만 그슬린 모닥불 흔적들이 보였고, 가끔 땅에 버려진 쓰레기들도 바람에 따라 굴러다녔다. 공터는 한적했지만 분명히 깨어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봄이는 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봄이는 혼자서 보건소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자 로비 층 맨 앞에 떡하니 세워진 창구를 기준으로 양 옆으로 길게 퍼져 있는 기둥들이 보였다. 기둥들은 상당수가 칠이 벗겨져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굳건해 보였다. 기둥 사이사이마다 한두 대씩 끼어 있는 방문들은 거의 다 닫혀 있었다. 어떤 방에도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전부 로비 길바닥에 나앉아 있었다. 보건소 건물 내에서도 역시 전력은 돌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는 곳에는 백열등이 존재하지 않아서 그늘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봄이는 처음 그 곳에 발을 디뎠을 때, 빛도 없이 둘러앉아 있는 그들을 보고 괴물 쥐 떼인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랄 뻔했다.


이들 대부분은 몸 주위에 두꺼운 외투나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주로 혼자 있는 사람보다는 모여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봄이는 로비에 몰려 있는 사람들이 보건소에 남은 자리가 없어서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생김새는 특별히 환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로비 바닥에 둘러앉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를 골며 자고 있었지만 몇 명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대화를 나눴고, 몇몇은 꿇어앉아 기도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야윈 얼굴로 가만히 바닥에 앉아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핼쑥한 얼굴에 음푹 패인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넋이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마치 육체를 떠난 영혼이 돌아오지 못한 채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봄이는 곁눈질로 이들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이들은 봄이가 옆을 지나가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 중 상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봄이는 깨어 있는 어둠 속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창구로 향했다. 창구 건너편에 앉아있던 남성은 봄이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자 돌려앉았던 의자의 방향을 제자리로 돌리고는 더욱 가깝게 당겨 앉았다.


“보건증 있으십니까?”


남성이 투박한 어조로 말했다. 봄이의 얼굴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진찰 받으러 온 건 아니구요, 사람을 찾고 있어요.”


남성은 피가 눌러붙은 봄이의 손등을 한 번 쓱 살펴보았다. 그의 다음 말투는 유난히 피곤해 보였다.


“본인 성함이랑, 찾으시는 분 성함이?”


“윤 봄이구요. 또 뭐였지, 유상훈이요.”


봄이는 남성이 알아듣기 쉽도록 또박또박 말했다. 창구 남성은 봄이를 다시 한 번 힐끗 올려다본 다음 창구 건너편 서랍을 열어 서류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남성이 서류를 집어들더니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찾으시는 분 성함이랑 보건증 확인됬구요, 몇 분 전에 18번 진찰실로 들어가셨네요.”


“고마워요.”


봄이가 그대로 등을 돌리려 하는 순간 창구 남성이 가로막았다.


“혹시나 해서 말해주는 건데 지금은 못 들어가요. 방금 전에 오신 분이라 아직 진찰이 안 끝나셨을 테니까.”


봄이는 창구 남성이 자기에게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대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창구를 지나쳐 로비 내부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1층이기는 했지만 건물 내부도 바깥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이따금씩 문이 열리고 흰 가운을 걸친 사람들이 돌아다녔지만 이 건물에 활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환자들의 관계자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가끔씩 돌아다니긴 했지만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것들만 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진찰실을 찾지 못한 봄이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2층에는 인적이 더욱 없었다. 심지어는 진찰실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봄이는 그 내부에 누가 있는지까지는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가보지는 않았다.


봄이는 번호가 적힌 표지판을 따라가다가 숫자 18의 앞에서 멈춰 섰다.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 손잡이를 당겨 볼 수도 있었겠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언가 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지 봄이는 한참 동안이나 문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내리고만을 반복하다가 이내 등을 돌렸다. 그리고선 문에서부터 몇 발짝 떨어진 곳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앉았다.


실내 공기는 차갑고 건조했다. 난방이 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공기 중에 황처럼 잔뜩 퍼져 있는 삭막함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실내 공기를 더욱 차갑게 식히고 있었다. 물론 봄이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시곗바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함 자체가 문제 되지는 않았다. 심란한 봄이의 마음을 거슬리게 하는 무언가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녀의 눈 앞에 있는 나무 문 한 짝이었다.


사실 나무 문 자체는 생각해 보면 보잘것 없는 것이었다. 문 손잡이 역시 그녀가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었다. 이제 그녀가 하면 되는 일은 그저, 문 손잡이로 손을 뻗어 문을 여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니 방금 전까지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던 삭막한 공기가 그녀의 몸을 강하게 짓눌러오는 것만 같았다.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봄이 자신도 자신이 왜 이런 별 것도 아닌 일이 그토록 신경쓰이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그녀를 괴롭히는 절망감에 맞서 일어섰고, 운명에 맞서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왔다. 그런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익숙해져 있던 봄이였지만, 지금 그녀는 왠지 모르게 자신이 없었다. 봄이는 일순간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확실치 않았지만, 확실한 것이 단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의 그녀를 억누르고 있는 감정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감정이었다는 것이었다.


봄이가 결심을 굳히기도 전에, 별안간 18번 방의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흰 가운을 걸친, 꽤나 키가 큰 남성이었다. 그는 오른손 겨드랑이에 서류 파일을 낀 채로 방문을 나서다가 문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봄이를 보고 잠깐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그녀를 본 체 만 체 하며 지나쳐갔다.


봄이는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에서 솟은 것인지 몰랐지만 조금이나마 용기가 생긴 것 같았다. 봄이는 더 이상 길게 생각하지 않고 닫혀 있는 문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작가의말

구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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