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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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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3.04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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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46화

DUMMY

그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곧게 뻗은 차도를 따라 걸어갔다. 눈이 계속해서 내려 금방이라도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들이붓는 눈송이 입자에 의해 파묻혀 버릴 것만 같았던 타이어 자국은 계속해서 이어져 있었다. 그 타이어 자국들은 사방이 넓게 트인 공터보다는 그늘진 지하차도 주위에 더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사실 그들은 누가 냈는지도 모르는 이 타이어 자국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이 타이어 자국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조차 몰랐다. 타이어 자국의 시발점과 도착점이 어딘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의심도 근거도 없이 무작정 타이어 자국을 따라 나섰다. 그들에게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인도하는 그 길이 올바른 길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일체 입을 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들 서로에게 이 하염없이 이어진 길이 올바른 방향이냐고 묻는다고 해도, 서로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걸 입 밖에 내는 순간, 정확히는 그 의문의 대답이 돌아오는 그 순간, 모든 희망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봄이는 자신을 향해 휩쓸리듯 몰아치는 칼바람을 다시 한 번 자각했다. 아까 전의 소란 때문에 봄이의 셔츠와 재킷은 모조리 흙탕물에 젖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방금 전부터 불어오는 칼바람을 몸으로 버텨 낼 자신이 없었다. 봄이는 젖은 재킷에 무자비한 칼바람이 몰아치자 순간적인 체온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매서운 혹한이 혈관 속의 피를 전부 기화시키는 것만 같았다.


봄이가 이를 악물자 그것을 본 상훈이 그녀를 향해 알 수 없는 시선을 보냈다. 봄이는 그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별다른 행동 없이 재킷을 더욱 강하게 움켜잡기만 할 뿐이었다.


“춥지 않냐?”


상훈이 말하자 봄이가 뒤돌아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네, 춥네요. 누구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말 더럽게 춥네요.”


봄이는 입 속에 한가득 담고 있던 입김과 함께 짜증 섞인 말투를 뱉어냈다. 그렇게 말했지만 한순간 자신이 너무 심했나 싶어 상훈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폈다. 하지만 그 다음 이어지는 상훈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추우면 그거 벗고 이거 입어.”


상훈이 입고 있던 빨간색 패딩 지퍼를 내리려 하자 봄이가 손사래를 쳤다.


“관둬요, 관둬. 내 걱정은 필요 없으니까 아저씨 걱정이나 하세요.”


“네 옷들을 봐. 흠뻑 젖었잖아. 내가 예전에 말했었지? 이런 세상에서 몸살이라도 났다간 참 고달파질걸. 지금 날씨에 그렇게 젖은 옷을 대놓고 입고 다닌다는 건 딱 두 가지 이유뿐이야.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거나, 아니면 더럽게 멍청하던가.”


상훈이 비아냥대자 봄이가 입고 있던 후드 재킷을 벗으며 다시 말했다.


“그럼 얼른 이리 내놔요. 그런데 나중에 딴소리 해 봤자 소용없어요. 절대로 안 돌려줄 거니까.”


상훈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봄이에게로 패딩 재킷을 건네고는 그녀의 반 이상 흠뻑 젖어 있는 셔츠 차림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너..... 생각보다 많이 젖었구나.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알았으니까 쳐다보지 마요.”


“그런데 무슨 소리 안 들리냐?”


“무슨 소리요?”


상훈이 허공에다 대고 귀를 기울이자 봄이도 똑같이 그를 따랐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에 온 몸의 감각을 집중했다. 굉장히 낮으면서도 떨리는 진동 소리가 삭막한 허공을 떠다니고 있던 공기를 울렸다. 누군가 숨을 내쉬는 소리 같기도 했고,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처음엔 그들은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처음에는 작았던 그 의문의 소리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커져갔다. 공기의 흐름을 타고 퍼지던 그 소리가 봄이의 귓속을 윙하고 울렸다.


몇 초나 더 허공에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그들은 그 이상한 소리를 내뿜는 매개체가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허공에 퍼지던 낮은 기계음이 더욱 크게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를 내던 그것은-)는 점점 그들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동차 엔진음이었다.


환하게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가 그들이 있던 방향으로 달려오기 시작하자 봄이의 머릿속에서는 수 만가지 감정이 교차해 지나갔다. 애써 머릿속에서 상황을 정리하려는 봄이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 복잡한 수 만가지 감정들은 뇌 속에 거미줄처럼 얽혀 완전히 엉켜 버렸다.


봄이는 자동차를 보고 왜인지 경계심보다는 반가움을 더 먼저 느꼈다. 자동차의 속력이 빨라서 금방이라도 그들을 지나쳐 갈 것만 같았다. 봄이는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하고 나서 차도로 뛰어들어가 손에 들고 있던 젖은 재킷을 흔들며 힘껏 소리쳤다.


“여기, 잠깐만요. 말씀 좀......”


봄이는 그렇게 소리쳐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손에 든 외투를 흔들면서도 봄이는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운이 좋아서 목적지에 찾아갈 수 있다는 희망부터, 운이 나쁘면 사냥꾼들의 탐색조일 수도 있다는 최악의 경우까지. 봄이는 그 모든 수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의 앞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이 자동차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그들을 보기 좋게 지나쳐갔다. 온 힘을 다해 흔들던 봄이의 팔도 곧 아래로 떨어졌다. 봄이는 보란 듯이 배기가스를 뿜으며 멀어져가는 자동차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녀의 마음 속에서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치솟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분노가 섞인 절망감에서 비롯된 허탈감이었다. 그 허탈감을 참을 수 없었던 봄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작게 말했다.


“와..... 저 씨발..... 그렇다고 그냥 저렇게........”


봄이는 이 끔찍할 정도의 허무함에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았다. 지금 자신이 이 상황에서 소리 내어 웃었다면 자신의 얼굴을 자신의 주먹으로 쳐버릴 것만 같았다. 봄이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애써 참으며 뒤늦게 쫓아오던 상훈을 뒤돌아보았다.


그는 얼음장처럼 꽁꽁 얼어버린 건물 외벽을 힘겹게 짚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몸은 봄이에게 외투를 넘겨줘서인지 많이 핼쑥해 보였다. 그의 검붉게 얼룩진 다리에서는 더 이상 피가 흐르지는 않았지만 움직임이 상당히 뻣뻣해 보였다.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그는 쓴소리 하나 내지 않고 차분하게 봄이를 따라오고만 있었다. 봄이는 그런 그를 보며 아까의 짜증 섞인 감정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까지 그녀가 느껴본 적 없는 동정심이 피어오를 지경이었다. 봄이는 자기도 모르게 상훈에게로 다가가서 말했다.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더 걸을 수 있겠어요?”


어느새 봄이의 목소리에서는 걱정마저 묻어났다. 상훈이 그녀에게 손바닥을 한 번 내저으며 괜찮다는 표시를 취해 보였다.


“아무래도 저 차는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봐.”


상훈이 바닥에 널려 있던 삐걱대는 녹슨 철판을 밟으며 말했다. 봄이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이제 해도 거의 다 떨어졌어요. 곧 금세 어두워 질 거라구요. 장난 치지 말고 못 걷겠으면 빨리 얘기해요. 부축해 줄 테니까.”


상훈이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눈을 껌벅이며 말했다.


“너, 그런 말도 할 줄 알았냐?”


“시간 없다니까요! 빨리 말해요. 도와줘요, 말아요?”


봄이는 답답하다는 듯 버럭 소리질렀다. 하지만 진심은 담겨 있지 않았다.


상훈은 짚고 가던 건물 외벽에 등을 기대고 잠깐 숨을 돌렸다. 그의 눈앞에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봄이가 서 있었다. 그의 눈에 비쳐 보이는 봄이의 얼굴은 뻣뻣하게 굳어 있던 방금까지와는 다르게 입을 조그맣게 연 채로 눈썹을 조아리고 있었다. 어지간히 그가 걱정된다는 얼굴이었다.


상훈이 결정한 듯 자신의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선 봄이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럼 부탁한다.”


“팔 이리 줘요.”


봄이는 그가 내민 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어깨에 걸쳐맸다. 그리고 방금 전에 길바닥에 생긴 선명한 타이어 자국의 반대방향으로 그들은 한 발자국 내딛었다.


얼마 남지 않았던 노을 지는 어둑어둑한 그림자가 모두 사라지자, 끝없이 늘어선 큰 도로변에는 이윽고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만 같은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부족한 소설 읽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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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101화 20.12.16 63 1 12쪽
103 100화 20.12.11 2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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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5화 20.11.28 30 0 14쪽
97 95화 20.11.23 41 0 13쪽
96 94화 20.11.20 40 1 9쪽
95 94화 20.11.19 62 1 9쪽
94 93화 20.11.17 7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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