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30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7.12.23 07:00
조회
123
추천
3
글자
10쪽

41화

DUMMY

“.....못 봤던 거겠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봄이와 상훈은 고요한 바람 소리만이 들려오는 눈 덮힌 큰 차도 위에서 정 씨가 사라진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둘은 정 씨가 돌아올 때까지 그들이 지금 밟고 서 있는 지면 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눈 덮힌 도로에는 타이어 자국으로 인해 생긴 틈이 있었다. 봄이는 잠시 앉아서 손바닥으로 자국 틈새를 쓸어 보았다. 손이 시린 동시에 까끌까끌한 아스팔트 재질이 만져졌다. 손으로 쓸어 낸 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흰 사각형이 도로 한복판에 드러났다. 그 도로는 횡단보도였다.


횡단보도 건너편에는 아까 봄이가 창문에 낀 서리 때문에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큰 건물과 정류장이 보였다. 정류장과 횡단보도 사이에는 알루미늄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정류장 바로 옆에는 경찰서가 보였다. 봄이가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봤지만 불은 켜져 있지 않았다. 봄이가 씁쓸한 표정으로 경찰서에서 눈을 돌리자 상훈이 자신의 옆에서 아까 전의 큰 건물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봄이는 천천히 상훈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서서 그를 따라 큰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의문의 큰 건물은 초등학교였다. 초등학교는 크기는 컸지만 앞의 몇 건물들에게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건물 전체가 보이지는 않았다. 상훈이 초등학교 건물에서 눈을 떼질 못하고 있자 봄이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초등학교는 뭘 그렇게 유심히 쳐다보고 있어요. 옛날 생각 나요?”


“음, 아니, 그게 아니라.”


상훈이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봄이의 기척을 눈치채자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리고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봄이는 그가 얼버무리자 그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어딘가 아련했다. 추억에 잠기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내가 남동생이 한 명 있는데, 여기 초등학교 나왔었거든.”


상훈이 그렇게 말하자 봄이는 머릿속이 따끔했다. 초등학교의 모습과 상훈의 그리움에 찬 눈빛, 그리고 꿈에서 본 소년이 서로 겹쳐 투영되었다. 봄이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봄이의 머릿속을 마구 긁어대는 것 같았다. 봄이는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 다음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 채 상훈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말이에요.”


“응? 왜 그래, 갑자기.”


봄이가 시선을 허공에 향한 채로 머리를 짚었다. 그리고 소년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의 인상착의를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기억은 잘 안 나는데, 혹시 그 동생이란 사람..... 하늘색 털 잠바를 자주 입나요?”


“응? 어떻게 알았어.”


봄이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20미터 높이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벽돌을 머리에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동시에 소년이 처음 자기네 집에 데려가서 해줬던 말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봄이는 상훈의 가족사를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만약 그녀의 예상이 맞다면 상훈 역시 부모님을 모두 잃고 말았다는 뜻이 아닌가. 그녀는 확신을 가지기 위해 계속해서 되물었다.


“이만한 키에, 하늘색 털 잠바를 입은.... 6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그 꼬맹이.... 맞나요?”


봄이가 자신의 가슴께에다 손을 갖다대고 높이를 어림잡으며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상훈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딘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 무슨 소리야. 내 동생은 고등학생인데.”


“에?”


봄이가 그 말을 듣고 나자 그녀의 얼굴을 삼켜버릴 정도로 어두웠던 표정이 풀렸다. 동시에 봄이의 초조하던 눈빛은 이내 당황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봄이가 눈을 크게 뜨고 상훈을 바라보자 상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는 아직도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는 봄이에게 말했다.


“학교가 수업을 중단한 지 몇 달은 지나서 잘 모르겠는데, 지금은 아마 고등학교 3학년....열 아홉 살 정도는 되었을 걸. 꼬맹이가 아니라 너보다 키도 훨씬 큰데 말이야. 아는 사람이랑 헷갈리기라도 했냐?”


봄이의 얼굴이 당황한 기색과 창피함으로 물들었다. 봄이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끼어들어 되물었다.


“그, 그럼 아저씨네 가족은요? 아저씨네 가족은 무사한가요? 혹시 연락이 안 된다던지 그런 건 아니구요?”


상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우리 가족들은 잘 있어. 여기에서 가깝지는 않지만 조금 더 가다 보면 우리 집이 있어. 아마 오늘 밤은 통제소에서 자고, 내일이나 내일 모레 쯤에는 도착할 거야. 만약 아직까지 우리 가족들이 무사하다면 집에 멀쩡히 잘 계시겠지. 그러고 보니 물자를 구하러 집 밖에 나온 지도 일주일 정도 지났으니까 이제 슬슬 집에 돌아가야겠어. 괜히 가족들한테 걱정 끼치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그런... 거군요.”


봄이는 본능적으로 그와의 이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어딘가 후련했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은 좋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공허했다. 그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통제소 뚱보에게 맞아죽을 뻔한 자신을 구해 준 상훈에게 짜증을 내며 그를 떠나보낼 뻔 했던 불과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그날의 일을 다시 한 번 후회했다. 봄이는 자신의 몸 속에 커다란 응어리라도 생긴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그 때, 자신에게 질린 상훈이 떠나가려는 걸 잡았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그 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별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요, 그럼 우린 얼마 안 가 작별이겠네요.”


“뭐, 그렇게 되겠지. 너랑은 꽤나 정도 들었는데, 아쉽네.”


봄이는 겉으로는 아무런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말하는 상훈에게 화가 났다. 봄이 자신도 그에게 불만을 가지게 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지금 그에게 화가 나는 걸까? 그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가 자신을 붙잡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을까? 자신의 존재가 상훈에게는 이렇게 쉽게 떠나보낼 수 있을 만큼 하찮은 존재였을 것이라는 걸 알아서였을까? 아니면, 순수하게 자신을 아무런 감정도 없이 떠나보내려 하는 그가 미치도록 미워서였을까?


봄이는 한참을 그가 다시 대답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의 입은 굳게 닫힌 채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봄이는 갑자기 외로워졌다. 결국에는 또 다시 자신이 이 황무지에 버려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입맛이 씁쓸했다. 늘 혼자였던 봄이에게는 익숙했던 일이었지만 왠지 모를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온 몸의 기운이 전부 빠지는 것 같았다. 봄이는 더 이상 괴로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상훈에게서 등을 돌렸다.


봄이가 그에게서 등을 돌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풀이 죽은 봄이의 등 뒤에서 상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참 그렇지. 괜찮으면 너도 우리 집에 올래?”


봄이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 후 자신이 잘못 들은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가슴을 꽉 조이고 있던 끈이라도 풀린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던 봄이의 표정도 약간은 걷혀 있었다. 봄이는 아까보다는 분명 홀가분하긴 했지만 갑작스런 그의 말에 순간적으로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뭐, 뭐라구요? 제가 아저씨네 집에 왜 가요? 아저씨네 가족분들한테 민폐가 될 수도 있고, 그리고.....”


“사양할 것 없어. 우리 집에서 조금 쉬었다 가도 되고, 마음 내키면 거기서 살아도 돼.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가족들한테 잘 말해볼게. 분명 우리 가족들은 이해해 줄 거야.”


“그, 그래도 그건 안 돼요.....”


이미 봄이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정상적인 사고를 포기한 것 같았다. 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다가 이내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 광경을 본 상훈은 다시 한 번 웃으며 봄이의 헝클어진 머리를 빠르게 쓰다듬고 나서 말했다.


“싫어? 싫으면 안 와도 돼.”


“아니, 싫다는 게 아니라.....”


또 다시 봄이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상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다.


“됐어,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도 돼. 여기서 그리 가까운 편도 아니라니까.”


봄이는 이윽고 할 말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런 봄이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상훈은 봄이를 앞질러 가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 친구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이렇게 늦어?”


“그냥 두고 가자니까요.”


“그래도 일행인데 모른 척 할 수는 없지. 찾아보자.”


상훈은 정 씨가 사라진 골목 방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봄이는 그런 상훈이 아니꼬왔지만 할 수 없이 뒤를 따랐다. 봄이는 상훈의 뒤를 따라가느라 정류장 표지판에 까마귀들이 내려앉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작가의말

소중한 코멘트 감사합니다아ㅏ아아앙!!!!!!!!!!!!!!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지막 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6 113화 21.02.13 31 0 9쪽
115 112화 21.02.05 30 0 15쪽
114 111화 21.01.25 33 0 12쪽
113 110화 21.01.20 53 0 12쪽
112 109화 21.01.15 29 0 11쪽
111 11. 끝나지 않는 밤 21.01.11 48 0 13쪽
110 107화 21.01.08 34 0 12쪽
109 106화 21.01.06 124 1 11쪽
108 105화 21.01.05 32 1 12쪽
107 104화 21.01.03 65 1 13쪽
106 103화 20.12.21 46 0 9쪽
105 102화 20.12.20 27 0 16쪽
104 101화 20.12.16 63 1 12쪽
103 100화 20.12.11 29 0 13쪽
102 99화 20.12.08 38 0 12쪽
101 10. 종착점 20.12.07 37 0 11쪽
100 97화 20.12.02 58 0 13쪽
99 96화 20.11.29 67 0 11쪽
98 95화 20.11.28 30 0 14쪽
97 95화 20.11.23 41 0 13쪽
96 94화 20.11.20 40 1 9쪽
95 94화 20.11.19 62 1 9쪽
94 93화 20.11.17 70 0 13쪽
93 92화 19.11.27 57 0 9쪽
92 91화 19.11.24 57 0 17쪽
91 90화 19.11.23 50 0 26쪽
90 89화 19.11.19 55 0 18쪽
89 88화 19.11.17 52 0 17쪽
88 87화 19.11.16 87 0 19쪽
87 86화 19.11.15 57 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