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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검 님의 서재입니다.

아스톨리아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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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불타는검
작품등록일 :
2021.04.26 23:55
최근연재일 :
2023.05.19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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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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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4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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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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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11장

DUMMY

시간을 빠르면서도 느리게 지나갔다. 하루는 길었지만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갔기 때문이다. 유리스가 브리스톨에 온지도 일주일 하고도 하루가 지났다.


슬슬 브리스톨에서 생활도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성에서 생활이 익숙해져 갔다. 왜냐하면 성 밖으로 나가지 못 했기 때문이다.


나가는 길을 찾기도 어려운 대다가 시종이 성안에만 머물러 있으라는 당부까지 있었다. 그러니 둘은 꼼짝없이 성안에 지낼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성이 작지 않았기에 답답한 건 없었다. 하지만 성에 감금 당한 기분은 떨칠 수 없었다. 게다가 미로 같은 성안은 짜증까지 유발했다. 리아는 그랬다.


유리스는 미로 같은 성에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성안을 돌아다녔다. 그래서 일주일이 지난 지금 시종 없이도 리아가 머무는 방까지 갈 수 있었다. 리아는 유리스 방은커녕 식당도 시종의 도움 없이는 갈 수 없지만 말이다.


수라야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한 후 다시는 마주하는 일이 없었다. 시종에게 그녀가 매우 바빠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가끔 스치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혼자인 경우는 없었다. 대개는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쌓인 채 급히 이동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전부였다. 바쁘다는 말은 거짓은 아닌 거 같았다.


그러다 오늘, 점심을 먹은 후 한참이 지나고 아직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에 둘은 수라야의 집무실로 안내받았다.


“오랜만이에요. 유리스군. 리아양.”


“안녕하세요. 레이디.”


“안녕하세요.”


둘은 인사를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는 차와 다과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유리스는 이야기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 브리스톨에서 먹은 음식들은 모두 하나같이 최고였기 때문이다.


“더 일찍 부르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서 정신 없었네요. 손님을 초대하고 내버려두다니 제 불찰입니다.”


수라야가 고개를 숙이자 리아는 어쩔 줄 몰랐다. 일주일 전 아침 모습과는 천지차이였다. 복장도 정갈한 검푸른 색 드레스였다. 드레스 색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을 강조하는 이전 드레스와 달리 목까지 감싸는 드레스였다. 추워 보였던 이전 모습과 달랐다. 심지어 오늘은 모피숄까지 두르고 있었다.


"오늘은 두 분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불렀어요."


"또 무슨 얘기죠?"


리아가 경계를 하며 물었다. 수라야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저번 같은 대화는 아니에요. 그러니 리아양, 안심해도 되요."


속마음이 들켜서 움찔거렸다. 하지만 자세를 다시 고쳐 앉으면서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이전에 아스톨리아까지 간다고 들었어요. 할아버님의 물건을 전달하려고 한다면서요?”


“네. 맞아요. 브리스톨에서 아스톨리아까지 가는 길이 있다고 들었어요.”


“물론 있어요. 여기서 아스톨리아까지 일주일도 안 걸리는 길이요.”


“그럼 아스톨리아까지 가는 상단도 있나요?”


“물론 있죠.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유리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목소리가 커졌다. 유리스는 아직 감정에 따라 표정이나 목소리 톤을 조절하는 법을 제대로 몰랐다. 수라야는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이전 식사에서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확신을 못 했다. 그런데 지금 대화로 확신할 수 있었다.


“잘 됐네요. 저희가 그 상단과 함께 아스톨리아에 갈 수 있을까요?”


“네. 원하시면 제가 떠나는 상단을 확인해서 동행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도록 할게요.”


“진짜요? 정말 고마워요. 레이디.”


유리스가 환희 웃으면 감사인사를 했다. 수라야는 그 유리스의 구김 없는 미소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뭔가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어 보였다. 이런 세상에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리스의 미소는 오래가지 못 할 것이다. 왜냐하면 수라야가 더 이상 웃지 못하게 만들 테니까.


물론 수라야가 악취미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지난 일에 대한 복수도 아니다. 그저 원치 않은 소식을 전달하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어요.”


“어떤 거죠?”


“겨울에는 아스톨리아로 떠나는 상단이 없어요.”


“네?”


예상대로 유리스의 미소는 사라졌다.


“봄이 되어야 있을 텐데 말이죠.”


“어··· 그럼 어쩌죠?”


“혹시 아스톨리아에 급하게 전달해야 하는 물건인가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 겨울 동안 브리스톨에 머물 곳이 없어서요.”


“그건 걱정마세요. 유리스군. 겨울동안 이 성에 머물 수 있도록 할 게요.”


“정말 겨울 동안 이곳에 있어도 되는 건가요?”


“물론이에요.”


“와! 진짜진짜 고마워요. 레이디.”


수라야는 거짓말을 했다. 아니, 정확히는 사실을 말했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말하진 않았다. 어떻게 보면 기만이나 다름없었다.


겨울에 아스톨리아까지 오고가는 상단은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고가는 행상인들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브리스톨과 아스톨리아가 가까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마을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길이 좁고 경사가 심하다. 마물도 문제지만 겨울 바람이나 폭설에 조난을 당하면 꼼짝없이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만의 길을 알고 있는 행상인이나 대단히 급한 일이 아니면 아무도 겨울에 아스톨리아로 떠나지 않는다.


수라야는 유리스가 그런 모험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이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또한 이렇게 말함으로써 최소한 유리스는 겨울동안 브리스톨에 묶어 둘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브리스톨의 지배자인 수라야의 영향 아래에 있게 된다. 하지만 수라야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아, 유리스군. 급한 건이면 제가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전달하도록 할까요? 그럼 유리스군은 계속 여기 머물 수 있으니까요.”


“네?”


“제가 사람을 시켜서 그 물건을 대신 전달하는 건 어떻겠냐는 거에요. 유리스군이 직접 갈 필요 없이요.”


“어··· 아니요. 아니에요. 제가 전달할 게요.”


“중요한 물건인가요?”


“저도 무슨 물건인지 몰라요.”


“그럼···”


“그래도 제가 직접 전달하겠습니다. 레이디.”


처음이었다. 유리스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한 건 처음이었다. 목소리도 단호했다.


“혹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아니면 물건이 대단히 중요한 건가요?”


유리스가 물건이 뭔지 모른다고 말한 건 거짓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직접 전달하려는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할아버지 때문이다. 마지막에 죽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평소와 정말 달랐기 때문이다.


유리스는 그 광경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이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감정적으로 말하는 걸 보는 걸.


평소에 대하던 할아버지와 너무 달랐다.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유리스에게 감정적이 말 또한 전혀 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할아버지는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 말했다. 무조건 직접 전달해 달라는 말을. 그리고 그 말은 곧 유언이 되었다. 이 말은 곧 유리스에 머리에 각인이 되었다. 그래서 그랬다.


사실 대단히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이런 이유 뿐이었다. 그런데 이걸 설명할려니 어려웠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그건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반드시 직접 전달하라고 말해서요.”


수라야는 대강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할아버지의 의도도 대강 눈치챘다. 분명 하나 밖에 없는 손주를 안전한 아스톨리아에서 머물게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여기서 그 유리스의 생각을 고치게 만드는 건 매우 어려워 보였다. 유리스가 너무도 확고히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급하게 발을 들이미는 순간 모든 걸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선 한발짝 물러서기로 했다. 아직 시간은 많이 있다.


“알겠어요. 그럼 물건을 전달한 다음에 계획이 있나요?”


“계획이요?”


“네. 물건만 전달한다고만 들어서요. 그 후 계획이 어떤지 궁금해서요.”


“어··· 음··· 그건 전혀 생각을 안 해봤어요.”


“왜요? 힘들 게 아스톨리아까지 갔잖아요.”


수라야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브리스톨에서 겨울을 보내고 아스톨리아에 가면 거진 반년에 걸쳐 아스톨리아에 가게 되는 것이다. 원래 계획은 갔다 돌아오는데 한 달을 잡은 계획인데 말이다.


“저는 그냥 물건만 전달하고 다시 집으로 갈 생각만 해서요. 출발할 때 세상이 이런 줄 전혀 몰랐어요.”


“그렇군요. 그럼 지금 아무 계획도 없는 거네요?”


“네. 없어요.”


유리스의 간단명료하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리아는 또 수라야가 무슨 말을 꺼낼지 신경을 곤두서 있었다. 또 다시 결혼 얘기를 꺼낸다면 이번에 제대로 화를 내주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럼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 이곳, 브리스톨에서 살아보는 건 어때요?”


“브리스톨에요?”


“네. 이곳에서요.”


“······”


너무 갑작스런 제안 때문인지 유리스는 퓨즈가 나간 거 마냥 멍했다.


“저기, 레이디, 유리스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해요.”


“아, 맞다. 리아양. 리아양도 유리스군과 같이 이곳에서 사는 게 어때요? 둘.이.서.”


수라야는 일부러 둘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럼 리아는 당황할 것이기에.


“아, 우에··· 네? 무···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에요. 둘이서 여기 브리스톨에 사는 거죠.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아요?”


둘이서라는 말에 리아는 짧은 공상이 펼쳐졌다. 수라야 말대로 즐거운 일이다. 리아는 늘 자신의 마을을 배경으로 유리스와 사는 상상만 했다. 하지만 오늘 수라야 말에 스케일이 확 커졌다. 물론 유리스와 결혼해서 사는 상상은 똑같지만.


“어때요? 도시에서 살아보는 건요? 유리스군. 유리스군이 이곳에 머문다면 작위도 내릴 거에요. 바로 마법사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말이죠.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며 유리스군이라면 이 브리스톨을 재건하는 일등 공신이 될 거에요.”


작위라니. 그것도 지휘관이라니. 리아는 또 공상의 범위가 넓어졌다. 브리스톨의 명문 귀족의 아내라는 상상이 말이다.


“당장 결정해야 하는 건가요?”


최근 유리스의 눈치가 제법 좋아졌다. 수라야는 당장 그 결정을 듣고 싶었다. 바로 닦달해서 그 대답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또 망칠 수는 없었다.


수라야는 깊은 숨을 들여 마셨다. 성급한 심정을 다스린 후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유리스군. 누군가 유리스군에 좋은 제안을 할 거에요. 아마 그런 날이 올 거에요. 그럼 이것만 기억해 주세요. 어떤 조건이던 제가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수라야의 부드러운 미소에는 미소만이 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유리스와 리아 모두 그 미묘한 의미를 잡아내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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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7장 22.01.07 171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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