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불타는검 님의 서재입니다.

아스톨리아의 불꽃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불타는검
작품등록일 :
2021.04.26 23:55
최근연재일 :
2023.05.19 20:47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13,102
추천수 :
87
글자수 :
444,514

작성
21.12.24 21:00
조회
171
추천
1
글자
9쪽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5장

DUMMY

식사는 간단하게 나왔다. 빵과 햄과 포도주가 전부였다. 간단했지만 대단히 맛있었다. 빵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늘 먹던 돌멩이 같은 빵이 아니었다. 따뜻한 빵에서 단맛까지 나는 듯 했다. 유리스는 감탄을 했다. 빵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 하면서.


얇게 저민 햄은 소금에 절어 짭쪼름 했다. 역시나 늘 먹던 비릿하고 질긴 육포랑 차원이 달랐다. 진짜 고기를 먹는 기분을 느꼈다. 리아도 이 맛있는 음식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지금껏 먹은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그게 이런 절인 햄이 될 줄 몰랐다.


포도주는 진하고 달콤했다. 그동안 포도주를 얼마나 많은 물에 희석 시켰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마신 건 포도향 물이었다. 지금 마신 거야 말로 진짜 포도주였다. 포도주를 목구멍으로 넘겼음에도 포도향이 입안에 진하게 남아있었다.


안타깝게도 식사 시간은 짧았다. 양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 허기만 달랠 정도로만 나왔다. 유리스는 더 먹고 싶었다. 하지만 리아가 아무 말도 안 해서 가만히 있기로 했다.


사실 리아도 더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리아는 성에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니 먹을 걸 더 달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무례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유리스처럼 가만히 있었다.


사실 둘의 이러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둘이 더 먹고 싶다고 말해도 먹을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먹을 것도 간신히 준비한 것이다. 이 브리스톨의 지배자인 수라야 백작부인의 식사까지 줄여가면서 마련한 것이었다. 유리스와 리아는 예상치 못한 방문객이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둘은 다시 시종의 안내를 받았다. 성은 어두웠다. 군데군데 있는 횃불에 의지하며, 시종의 뒤를 쫓아갔다.


성은 미로같았다. 실제로 브리스톨 성 내부는 미로처럼 되어 있다. 적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서 말이다. 또 다른 이유로 드워프들은 원래 미로처럼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리아는 혼자선 절대로 식당에 못 돌아가거란 생각을 했다.


시종이 멈춰 섰다. 튼튼한 나무문이 있는 곳이었다. 시종은 열쇠를 꺼내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유리스와 리아를 손님용 방으로 안내했다.


방문에 들어서자 첫 소감은 넓었다. 아마 방크기로만 친다면 리아의 집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 소감은 황량했다. 그 넓은 방에 있는 거라곤 달랑 침대 하나와 서랍도 없는 협탁 뿐.


시종은 안내가 끝나자 인사를 하고 나갔다. 이제 이 넓은 방에 유리스와 리아 단 둘만 남았다.


“여기서 쉬라는 건가?”


유리스는 짐을 침대 옆에 두면서 말했다. 하지만 리아는 말이 없었다.


“리아?”


“어··· 그게··· 침대가 하나야?”


“응. 하나 밖에 없네. 그래도 제법 넓으니 둘이서 잘 수 있겠어.”


“침대에서··· 같이 잔다고?”


“바닥에서 자다간 입 돌아갈 걸?”


유리스가 고개를 갸우뚱 하며 말했다.


“아니, 그 얘기가 아니라···”


유리스는 리아가 왜 안절부절 못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게··· 그게··· 같은 침대에서··· 자는 건···”


“같은 침대에서 자는 건?”


“그게···”


“혹시 이상한 거야?”


“응···”


“그런데 리아. 지금까지랑 나랑 계속 같이 잤잖아.”


“무··· 무무무무무슨 소리야!”


“으앗,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는 거야?”


“아, 미안해.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가 언제 같이 잤다는 거야!”


“그야 브리스톨까지 오면서 계속 옆에서 같이 잤잖아.”


“그게 무슨··· 어?”


그러보니 그랬다. 리아는 계속 유리스 옆에서 잤다. 간혹 잠꼬대 하다가 유리스를 껴안은 적도 있었다. 추위에 약한 유리스는 품에 리아가 들어오면 역시나 껴안고 놓지 않았다.


리아는 그런 행운이 있으면 하루가 즐거웠다. 노숙이라 잠자리는 불편했다. 그럼에도 유리스와 함께 잘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같은 침대에서 못 잘 이유도 없었다. 지금껏 같이 잤는데 말이다.


“그렇지? 같이 잤지.”


“응. 그렇긴 한데···”


“그렇긴 한데?”


하지만 달랐다. 그건 노숙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는 거였다. 둘만이서 침대에서 자는 것과 달랐다. 결코 같은 상황이 아니다. 리아도 그걸 알고 있다. 하지만 유리스는 몰랐다. 장소가 바뀌면, 상황이 바뀌면, 할 수 있는 것도 안 되는 것을 몰랐다.


“그래도··· 한 침대에서 자는 건··· 그건···”


리아는 몸이 배배 꼬였다. 지금 상황이 어떤 건지 대강 이해가 갔다. 또 자신들을 부부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래서 침대가 하나 뿐인 방에 안내한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저 다시 시종을 불러서 상황을 말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 그런데 리아는 망설였다. 이 상황이 싫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리아도 모른 척 유리스와 한 침대에서 자면 된다. 리아는 이 기회를 잡고 싶었다. 그저 눈 딱 감고 한 번 만 모른 척 하면 됐다.


안타깝게도 리아는 악인이 아니다. 염치가 없지 않다. 뻔뻔하지도 않다. 그저 부끄러움이 많은 순진무구한 산골 소녀다.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건 말이지, 유리스. 한 침대에서 자는 건 서로 사랑하는 사이나 부부만 할 수 있는 거야.”


“그런거야?”


“그런거야.”


“그렇구나. 그럼 우린 한 침대에서 잘 수 없는 거네.”


“응···”


“그럼 우릴 왜 이 방으로 안내 해 준 걸까?”


“아마, 또 우리를 부부로 본 거 같아.”


“아, 그렇구나.”


리아는 내심 아쉬웠다. 벌써 후회가 들었다. 지금이라도 정정할까 고민을 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 이걸로 된 것이라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그럼 내가 사람을 불러올게.”


리아는 방문을 열었다. 하지만 나가지는 않았다. 마음의 갈등 때문은 아니었다.


“리아, 왜 그래?”


“저기··· 유리스. 어디로 가야 하지?”


유리스는 리아 곁으로 다가왔다. 어두운 복도가 보였다. 왼쪽으로 가는 길이 있고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그런데 어디로 갈지 몰랐다. 왔던 길도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지?”


“글쎄··· 어쩌지?”


유리스가 침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대로 누웠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침대는 생각보다 푹신했다. 오랜만에 침대에 누우니 피로감이 몰려오는 듯 했다.


“오늘 정말 피곤하네.”


리아도 유리스 곁에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리고 유리스 곁에 앉았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


“······”


침묵. 너무 어색했다. 리아는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입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리아.”


유리스는 누은 채 몸을 리아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네? 어, 아니, 그게 응. 왜?”


“부부가 아니면 절대 한 침대에서 자는 게 안 되는 거야? 나는 너랑 한 침대에서 자도 괜찮은데 말야. 너는 싫어?”


싫을 리가. 완전 좋았다. 너무너무 좋았다. 당장이라도 좋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유리스는 계속 리아를 쳐다봤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아는 유리스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얼굴이 보이지 않게 몸을 돌렸다. 쉼호흡을 했다. 여러 번. 그리고 지금껏 모은 모든 용기를 짜내어 간신히 말했다.


“괜··· 괜찮을 거 같아.”


“······”


유리스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리아는 돌아볼 용기가 없었다. 남은 용기는 아까 대답할 때 다 썼기 때문이다. 리아는 유리스가 대답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


“······”


“······”


“······”


“어··· 유리스?”


“······”


뭔가 이상했다. 너무 조용했다. 리아는 고개를 돌려 유리스를 쳐다봤다. 유리스는 눈을 감고 있었다. 조용한 숨소리를 내면서. 잠든 것이다.


리아는 맥이 풀리는 기분이 느껴졌다. 한편은 안도감도 들었다. 그리고 유리스를 옆에 조용히 누었다. 유리스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새근거리는 숨결마저 느껴지는 거리였다.


잘 생긴 얼굴이다. 여자인 리아보다 더 깨끗하고 하얀 얼굴이었다. 손으로 유리스의 더벅머리를 쓸어내려줬다. 그래야 잘 생긴 얼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이건 변명이다. 그냥 유리스 얼굴에 손을 대보고 싶었다.


리아는 유리스를 껴안았다. 이번에 잠결이 아니었다. 그냥 유리스의 껴안고 싶었다. 유리스의 체온을 느껴보고 싶었다. 아까 사용한 용기가 지금까지 유효한 거 같았다. 밤이 깊어가고 달이 기울어져 간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스톨리아의 불꽃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4 아스톨리아의 불꽃 3부 2장 22.10.14 133 0 14쪽
53 아스톨리아의 불꽃 3부 1장 22.10.07 131 0 15쪽
52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28장 (2부 끝) 22.06.03 136 0 11쪽
51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27장 22.05.27 134 0 13쪽
50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26장 22.05.20 162 0 12쪽
49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25장 22.05.13 171 1 13쪽
48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24장 22.05.06 145 1 10쪽
47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23장 22.04.29 168 1 11쪽
46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22장 22.04.22 189 1 10쪽
45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21장 22.04.15 143 1 11쪽
44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20장 22.04.08 138 1 11쪽
43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19장 22.04.01 145 0 11쪽
42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18장 22.03.25 150 1 11쪽
41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17장 22.03.18 152 1 9쪽
40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16장 +1 22.03.11 147 1 10쪽
39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15장 +1 22.03.04 162 1 12쪽
38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14장 22.02.25 147 1 14쪽
37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13장 22.02.18 161 1 10쪽
36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12장 22.02.11 161 2 11쪽
35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11장 22.02.04 151 0 11쪽
34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10장 +1 22.01.28 171 1 10쪽
33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9장 22.01.21 189 0 10쪽
32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8장 +1 22.01.14 158 2 10쪽
31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7장 22.01.07 171 2 9쪽
30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6장 +1 21.12.31 185 2 11쪽
»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5장 +1 21.12.24 171 1 9쪽
28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4장 21.12.17 170 2 10쪽
27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3장 +1 21.12.10 164 2 11쪽
26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2장 21.12.03 185 1 10쪽
25 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1장 21.11.26 171 1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