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톨리아의 불꽃 2부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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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야는 우아하게 차를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입을 뗐다.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두 분은 여행 중이신 건가요?”
“네. 맞아요. 아스톨리아까지 가요.”
당연히 그럴거라 생각을 했다. 누구나 아스톨리아에 가고 싶어한다. 인류 최후 도시를. 특히, 유리스처럼 마법 실력이 뛰어나다면 안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스톨리아에서 마법사에 대한 대우는 매우 좋다고 들었다. 작은 마을에 숨어 사느니 큰 도시에서 대우받으며 사는 걸 선택한 것이다.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유리스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상당히 먼데 그곳까지 가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
수라야는 짐짓 모른 척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뻔한 대답에 대한 답변을 미리 준비했다.
“네. 할아버지가 거기까지 물건을 전달하라고 해서요.”
뻔한 대답이 아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대답이었다. 수라야는 순간적으로 뇌정지가 왔다. 무슨 말을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리아의 가족이 처음 유리스의 말을 들었을 때와 같은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음··· 어째서··· 아니, 물건을요? 할아버님이요? 왜죠?”
“어?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전달하라는 얘기만 들었어요.”
“그 얘기만 듣고 아스톨리아까지 가시는 건가요?”
“네.”
“무슨 물건인지도 모르는 건가요?”
“네. 상자가 봉인되어 있어서요?”
“왜죠?”
“음··· 아, 혹시라도 악마 손에 들어갈까봐 그런 거 같아요.”
같다는 건 몰라요와 동의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럼 내용물이 뭔지 손자인 유리스군도 모르는 건가요?”
“네. 뭘 만든 거 같은데 별로 관심이 없어서요.”
“······”
짧은 대화였다. 대화 내용도 어렵지 않았다. 이해 못할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이해 못할 상황이 문제였을 뿐. 마음 속으로 계속 ‘왜’라는 의문이 꼬리처럼 이어졌다.
수라야는 대화를 따라가기 힘들어지는 걸 느꼈다. 대화가 어긋난 건지, 아니면 자신이 대화를 못 쫓아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혼란스런 모습을 감추기 위해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모습은 제대로 감추진 못 했다. 당연히 유리스는 그걸 눈치채지 못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한 번 겪은 사람이 있었다. 리아였다. 리아는 수라야가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느껴졌다.
백작부인이라고 해서 자신과 다른 세계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당황한 모습을 보니 같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대화가 더 산으로 가기 전에 리아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경위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렇군요. 정말, 정말로 고생하셨네요. 그럼 유리스군은 할아버님의 유언에 따라 아스톨리아에 가는 거였군요. 그 후에 리아양을 만나 결혼을 한 거네요. 그렇다면 두 분 결혼한지 얼마 안 되었네요?”
“네.”
리아는 무심코 긍정을 했다. 그러면서 수라야처럼 우아하게 차를 마셨다.
“푸웃! 켁켁, 네? 아아··· 아니에요!”
리아는 당황해서 마시던 차를 뱉어 버렸다. 뿜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지만.
“뭐가 아니라는 거죠? 혹시 제가 말실수한 게 있나요?”
“아, 아니요. 아니, 맞아요. 아니, 제 말은 말을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말씀했던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수라야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리아가 당황해서 의식의 흐름대로 말해버렸기 때문이다.
“저번에도 그렇고 리아를 계속 내 부인으로 생각하네.”
유리스가 순수한 궁금증을 가지며 말했다.
“그러게. 헤헤헤.”
안 순수한 리아는 머리를 긁으며 배시시 웃었다.
“그 말은 부인 아니라는 건가요?”
“네, 리아는 친···”
“아직은 아니지만, 서로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이에요.”
재빨리 리아가 말을 이었다. 물론 친구라는 말은 뺐다. 하지만 수라야는 바보가 아니다. 경험도 많았다. 헤쳐온 수라장도 만만치 않았다. 리아가 ‘친구’라는 말을 빼버린 걸 모를 리 없었다.
침묵. 수라야의 차를 마시는 소리만 조용하게 들렸다. 짧은 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수라야는 수많은 변수들을 생각했다. 생각이 정리되자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수라야는 의자를 바짝 끌어당겼다. 식탁 쪽으로 당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미묘하게 유리스 쪽으로 다가가 있었다. 몸은 노골적으로 리아가 아닌, 유리스 쪽으로 돌려있었다.
리아는 소외되었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그러기엔 수라야의 행동이 너무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럼 아직 유리스군은 결혼을 안 한 거네요?”
너무도 불안한 말. 리아는 뭔가 최근에 비슷한 일을 겪은 기시감마저 들었다. 사실 기시감은 아니다. 지오한테 당한 일이었다.
“저기, 무슨 소리를···”
“어머, 물어보는 것도 안 되는 건가요?”
수라야는 리아의 말이 끝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단숨에 끊어버렸다. 수라야에게 중요한 인물은 유리스다. 리아가 아니다.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공격적이었다. 어른으로서, 백작부인으로서 위엄을 더 이상 리아에겐 감추지 않았다. 더 이상 리아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부부도 아니니 말이다.
“그게 아니라···”
수라야의 너무도 갑작스런 위압감에 리아는 움츠려졌다. 솔직히 쫄았다. 수라야는 이제 리아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교묘하게 유리스에게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만 풍겼다. 물론 풍겼다고 해도 눈치챌 유리스는 아니지만. 다시 유리스에게 고개를 돌렸을 땐 세상 부드럽고 천상 여자인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저 궁금한 것 뿐이에요. 이런 세상이니까요. 다들 결혼을 빨리하더라구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혹시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해서요.”
유리스는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말했다.
“다들 그렇게 물어보더라구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없고?”
“보통 친구끼리 결혼한다고 들었거든요.”
“친구요?”
“네.”
“누구한테서요?”
“그야···”
그러면서 리아를 봤다.
“흐응. 그렇구나.”
리아는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빨개졌기 때문이다. 로이때처럼 반박을 하지 않았다. 로이와 수라야는 다르다. 수라야는 어른이다. 그것도 성숙미가 뿜어져 나오는 진짜 어른이다.
“아닌가요?”
“뭐, 꼭 틀린 말은 아니에요. 보통 친구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부부가 되는 경우가 정말 많거든요.”
리아가 빵긋 웃으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 그럼 역시 리아 말이 맞았네요.”
“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어요.”
“그게 뭐죠?”
“사랑이에요.”
“사랑··· 이요?”
“네. 사랑이요.”
“그게 뭐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에요.”
“좋아하는 마음이요?”
“네. 그것도 그냥 좋아하는 게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좋아하는 마음이죠. 진짜! 엄청나게! 좋아하는 마음이요.”
수라야는 올려다보며 과장스럽게 양 팔을 벌렸다.
“그를, 혹은 그녀를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바로 사랑이에요.”
유리스는 리아를 봤다. 왜냐하면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친구로서. 하지만 대신 죽을 정도라는 느낌은 아직 몰랐다.
리아는 얼굴이 완전히 빨개졌다. 그녀의 머리카락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수라야의 말이 정론이긴 했다. 수라야를 좋아할 순 없었지만 이런 얘기마저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아직 유리스군에겐 그런 여자가 없나봐요.”
하면서 유리스의 손을 맞잡았다. 부드럽게 잡은 손은 어느 새 깍지까지 끼었다. 이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워 리아는 넋 놓고 당했다.
리아도 둘 사이를 자연스럽게 끼어들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멀었다. 이제 수라야는 유리스 바로 곁에 앉아 있었다.
“손이 부드럽네요.”
“수라야씨의 손을 차갑네요.”
“빙결 마법을 주로 사용하다 보니까요. 하지만 제 가슴은 따뜻하답니다.”
그러면서 유리스의 손을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갖다되었다. 수라야의 말처럼 가슴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유리스는 그 온기가, 그 감촉이 싫지 않았다. 수라야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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