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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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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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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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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57,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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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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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붉은 바오샨 1

DUMMY

어떤 결과가 나와도 수긍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막상 옐로 네임카드가 나오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사실은 많이 당황했다. 검사지를 받아든 손의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무얼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람들이 혹시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까.


조금은 억울했다.

비록 내가 당장에 꿈이 없고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지만,

내 삶이 앞으로 아무런 희망도 의욕도 없을 거라는 분석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었다.


‘누구나 다 하고 싶은 게 뚜렷이 있는 건 아니잖아.

먹고 살기 위해 직업을 가지고 그냥 거기에 적응해 나가는 거잖아.’


“김진우 군?”


출렁거리던 마음에 자신을 부르는 말이 돌처럼 던져지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검사 진행요원이었다. 안경을 낀 40대 후반의 노인은 그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며 위로해줬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옐로 카드를 가졌다고 해서 사람들이 당신에게 돌을 던지거나 욕하지 않아요.

당신은 그저 당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한 명의 사람일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의 위로는 김진우의 마음을 많이 안정시켰다.


“방을 나가서 오른쪽 복도를 따라가면 대기실이라고 적힌 방이 나올 거예요.

거기에 들어가면 안내할 사람이 올 겁니다.”


친절한 진행요원의 설명대로 복도를 따라간다.

검사를 받으러 들어갈 때와 결과지를 받고 나가는 복도의 느낌이 전혀 달랐다. 심장이 약간 빨리 뛴다.


내 인생이 망가질거야. 괜찮아.

검사결과 하나로 내 인생이 그렇게 달라지겠어? 다 사람 사는 세상이야.


스스로 불안과 안도를 반복하며 검사실에 도착했다.

그곳엔 옐로우를 받고 먼저 도착한 또래들이 6명 있었다.


“한 명 또 왔네! 반가워.”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떠드는 아이들을 보자 무언가 안심되었다.

그래. 뭔가 큰 불이익이 있다고 하면 이렇게까지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지는 않겠지.


문이 열리자 머리를 모두 뒤로 넘긴, 표정없는 40대의 여성이 들어왔다.


“모두 저를 따라오세요.”


아무런 설명도, 감정표현도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을 안내하는 여성.

무언가 불길했지만 모두가 고분고분 따라가자 김진우도 별 일이야 있겠냐 하는 심정으로 따라갔다.


아까는 몰랐는데 헉슬리 타워 안에서 그들의 모든 경로에 안내요원을 빙자한 여성들이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통제되지 않은 다른 길로는 가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입구를 향하는데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버스가 있었고,

그 안엔 진우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절반 넘게 타고 있었다.

슬픔과 체념을 동시에 담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닐 거야. 저 버스에 태우려고 우리를 끌고 가는 게 아닐 거야.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죠?”


안내하는 여성은 진우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검사자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결국 버스 앞에 서고 말았다.


“타라.”


그제야 동요하는 아이들.

진우는 그들의 태연한 태도로 애써 자신의 불안함을 달랜 건데.

그들도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왔을 뿐인 거다.


‘당연히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처지였을 거잖아!’


“저는 어디로 가는 거죠? 부모님은요? 저 전화 좀 하고 올게요!”


진우는 버스에 타지 않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안내자는 그런 진우를 붙잡을 생각도 않은 채 냉정하게 얘기했다.


“전화는 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도 지금 당장은 볼 수 없습니다.”


“아니야. 싫어. 이런 건지 몰랐어!”


진우가 본격적으로 그곳을 달려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헉슬리 타워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번화가에서 사람들 틈에 섞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이 반복될 것만 같았다.


진우는 달리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여태껏 바보같이 살았을까.

이 세상에 대해 의문같은 것은 가지지 않은 채 남들이 시키는대로 잘 따르면 어찌어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느슨한 생각.

목표같은 것은 상정하지 않은 채 나를 귀찮고 불편하게 하는 생각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태도.


지금만 해도 그랬다.

옐로우 판정을 받은 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불길한 예고를 몇 번이나 해줬건만,

자신은 두려움의 실체와 마주서야만 도망칠 생각을 하는 게으름뱅이다.


만약 어렸을 때부터 내가 무언가를 의심하고 그것을 검증하는 마음을 아낌없이 썼더라면 옐로우 판정을 받지 않을 수 있었을까.


“김진우. 반역자로 심판받기 전에 얌전히 버스에 탑승해라.”


그의 후회는 너무 늦었다.

17살의 소년이 헉슬리 타워 정문에서 정부 요원들을 따돌리고 도망칠 방법은 없었다.

몇 년 뒤에 론리 져스틴이라는 인물이 선례를 남기긴 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없다.


버스에 탑승한 아이들은 대기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반갑게 맞이하거나 떠들지 않았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떨었다.

대부분은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버스가 이동하면서 각자의 자리마다 설치된 스크린이 켜졌다.

그곳에는 아나운서처럼 예쁘고 단정한 여자가 옐로우 수용소에 대해 홍보하고 있었다.


“여러분들의 미래는 정해져 있었습니다.

노숙, 범죄, 자살을 저지를 확률이 90% 이상인 옐로우들은 여태껏 사회에서 적응해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옐로우 수용소가 생긴 뒤 그것들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정부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주거와 끼니, 안전을 보장받을 것입니다.

적절한 교육을 받을 것이며, 그것으로 당신이 수용소 안에서도 자립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줄 것입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수용소에 가기 전에는 충남 논산에 위치한 기초훈련소에서 수용소 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훈련을 받고, 지역별로 배치...”


김진우는 고개를 돌린 채 눈을 감았다.

스크린에 있는 여자는 끊임없이 옐로우 수용소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라고 그를 설득시키려 했다.

마치 보험 설계사처럼.


그 여자의 목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


‘엄마.... 아빠...’


두 분 다 블루였다.

자식인 본인이 봐도 머리가 썩 좋은 편인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진우에게 더없이 든든한 지붕이었다.

자신을 특정한 기준에 빗대어 평가하거나 규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주시는 분들.


지금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집에 돌아가서 자신이 옐로우 판정을 받았다며 투정을 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당신들은 실망한 기색 없이 쌤통이라며 농담하고 깔깔 웃어주실 텐데.


“도착했습니다. 모두 내려주세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잠들었나보다.

자면서 쌓인 열이 후끈 올라왔다.

잠이 덜 깨서 그런지 몽롱했는데 사람들이 바깥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줄 선 사람들을 따라 천천히 내려 바깥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빨리 가서 대열에 합류해 이 새끼들아!”


목소리를 듣자마자 진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위협적인 말투. 그런 것으론 부족할 만큼 적개심이 가득한 으름장이었다.


여러 대의 버스가 도착해있었고, 버스의 입구마다 그들을 사람들이 군집해있는 대열에 합류시키기 위해 명령을 내리고 재촉하는 요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불친절하다 못해 화가 나있었다.


“너 걷냐 지금? 안 뛰어 이 자식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잠이 덜 깬 진우의 정신이 번쩍 들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사람들 앞에 누군가가 섰다.


“나는 이곳 2훈육대의 훈육대장이다. 밥버러지들아 환영한다.

내가 지금부터 자유라는 핑계로 썩어갔던 너희들의 정신상태를 몽땅 고쳐주겠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어디서 이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부터 세계에 대한 큰 의심이 들었다.


나는 정말로 자유를 박탈당해 마땅한 인간인지.

누군가의 강요를 수긍하고 위협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인지.

나는 내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없는지.


「기억나니? 너는 네가 누군지 스스로 선택한 인간이야.」


속삭이듯 말하는 어떤 목소리.


「네가 누군지 기억해봐.」


“어이 거기!”


훈육대장이 김진우를 가리키며 소리지른다.


“내 말 똑바로 듣고 있나?”


목소리를 듣고 난 후 이상하게 훈육대장의 지적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훈육대장은 저렇게 생기지 않았어.’


훈육대장의 얼굴은 매우 낯이 익다. 그것은 바로 사막의 매다.


“요상한 술수를 부렸군.”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김진우 앞으로 나와라.”


“내가 왜 너의 말을 들어야 하는거지?

오늘 처음만난 사이인데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수상해.”


“네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군.

당장 앞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오늘 지옥을 맛보게 해주지.”


“나한테 명령하지 마라. 내 생각과 행동은 내가 결정한다.”


김진우가 보는 세계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정말로 화면을 보여주는 모니터에 금이 가서 깨지듯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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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붉은 바오샨 2 19.10.17 28 1 8쪽
» 붉은 바오샨 1 19.10.16 24 1 9쪽
67 블랙 프라이데이 4 (수정 - 19.10.16) 19.10.15 23 2 11쪽
66 블랙 프라이데이 3 19.10.14 24 2 6쪽
65 블랙 프라이데이 2 19.10.13 30 1 9쪽
64 블랙 프라이데이 1 19.10.12 27 2 8쪽
63 냉혈한 3 19.10.11 22 1 8쪽
62 냉혈한 2 19.10.11 28 1 9쪽
61 냉혈한 1 19.10.10 61 1 7쪽
60 독쓰루 작전 5 19.10.07 24 1 6쪽
59 독쓰루 작전 4 19.10.06 20 1 7쪽
58 독쓰루 작전 3 19.10.05 25 1 7쪽
57 독쓰루 작전 2 19.10.04 27 1 10쪽
56 독쓰루 작전 1 19.10.02 30 1 8쪽
55 2부 프롤로그 - 챔핀코의 맥박 19.10.01 30 1 7쪽
54 1부 에필로그 - 부활 19.09.30 36 1 8쪽
53 죄인의 세상 7 19.09.27 45 1 8쪽
52 죄인의 세상 6 19.09.24 56 1 6쪽
51 죄인의 세상 5 19.09.23 51 2 8쪽
50 죄인의 세상 4 19.09.21 122 3 8쪽
49 죄인의 세상 3 19.09.19 45 3 8쪽
48 죄인의 세상 2 19.09.18 47 2 9쪽
47 죄인의 세상 1 19.09.16 47 4 8쪽
46 결전의 날 6 19.09.15 50 3 11쪽
45 결전의 날 5 19.09.14 58 2 6쪽
44 결전의 날 4 19.09.13 64 3 8쪽
43 결전의 날 3 19.09.12 59 4 13쪽
42 결전의 날 2 19.09.11 59 5 10쪽
41 결전의 날 1 19.09.10 66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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