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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님의 서재입니다.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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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공자
작품등록일 :
2019.07.17 01:42
최근연재일 :
2019.11.16 23:00
연재수 :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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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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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57,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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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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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결전의 날 6

DUMMY

결전의 날이 밝았다.

사색의 정원으로 동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옥저는 이카루스가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가끔 잊어버고는 종종 그를 찾았다.

이카루스가 동원하기로 한 선전부의 인원들이 학생들을 모집해야 하는데 지시를 받지 못해 대기하고 있었다.

광장에서 뿌릴 선전물을 실은 트럭도 오지 않았다.


“회장. 이카루스는 지금 숨어있잖아.”


“확성기는 왜 안오는 거야? 크로노스는 어디갔어?”


광장에서 쓰게 될 많은 비품.

마스크나 마실물, 그리고 수건들을 책임지기로 한 크로노스가 오지 않았다.

거기에는 옥저가 선전을 위해 사용할 확성기도 포함되어있었다.


옥저는 새로 담당자를 뽑아 선전물과 비품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확성기가 오기 전까지 단상에 올라가 외쳤다.


“타협은 우리에게 당장의 안일함을 가져오지만 결국 우리의 숨통을 조금씩 조일 겁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싸워야만 우리의 손으로 스쿨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옥저의 외침에 결전의 날임을 알게 된 학생들 몇몇이 시위대에 참가했지만 많지 않았다.

확성기와 조직된 인원이 없는 옥저의 목소리는 사색의 정원 바깥을 넘어가지 못했다.


우왕좌왕하고 사람을 기다리다가 어느덧 노을이 지고 광장에 모이기로 한 시간이 다가왔다.

가장 가까운 임원 둘이 빠지니 교내의 학생들을 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선전과 안내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도 학생들은 너무 적었다.

애초에 모이기로 한 500명은 안 되더라도 300명 이상은 모여야 했다.

하지만 200명도 채 모이지 않았다.


옥저는 단상에서 대학본부의 건물, 그중에서 총장이 있는 창문을 바라봤다.

아마도 크로노스가 오지 않은 것과 시위 참여 학생들이 모이지 않은 것이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약속한 시간이 왔다. 시위대의 사기는 떨어져갔다.

행진을 시작할지 묻는 동료의 말에 옥저는 오지 않은 크로노스를 기다려야 하나 망설였다.


“30분만 기다려보자.”


30분 뒤에도 크로노스는 오지 않았다.

다른 급한 일이 생겨서 합류하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그가 설리반에게 회유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출발하자. 어차피 우리 말고도 광화문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어.

설리반의 공작은 여기까지가 끝이야.”


옥저는 시위대의 행진을 직접 지휘하면서 계속해서 광화문에 많은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외쳤다.

하지만 자꾸만 불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의 옆을 손발처럼 도와주던 크로노스와 이카루스가 없어 허전했기 때문일까.


행진을 하면서 시위대는 점차 이탈자가 생기며 위축되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치안관들의 시선이 그들의 온몸에 박혔고, 구호는 작아졌다.

속도를 높여 최대한 빨리 광화문에 합류하지 않으면 아키텍쳐 스쿨의 시위대는 중도에 해체될 위기였다.


“회장이 이렇게 풀 죽어 있으면 누가 믿고 따라오겠어?”


땅바닥만 쳐다보던 옥저가 놀라서 옆을 봤다.

론리가 함께 걷고 있었다.

옥저는 놀라고 기쁘면서도 그가 걱정되었다.


“매가 정부에 보고하면 어쩌려고?”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는데 말이야.

12구역에서 카이로스라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거든.

다른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자신의 삶도 의미가 없다고 얘기하는 친구가 있었어.

도망만 다니다간 등록금에 모두가 굶어 죽을 것 같아서 말이야.”


“카이로스는 우리 연합회장이야.”


론리가 놀라서 옥저를 쳐다봤다.


“카이로스가 누군데?”


뒤에서 난 소리에 옥저가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판도라가 따라오고 있었다.

판도라를 본 옥저는 눈살을 찌푸리며 론리를 바라봤다.

론리는 시위대를 바라보며 시선을 회피했다.

판도라는 옥저의 표정을 바로 알아채고 대꾸했다.


“나도 먹고살기 힘들어. 희토류랑 플로토늄 가격이 올랐거든.”


멀리서 광화문의 잔재가 보였다.

이제 저곳에 합류한 뒤엔 연합사령부로 향한다.

화이트 스쿨이자 연합 회장 카이로스, 그리고 바이올렛의 회장 미스테리오가 손을 흔들었다.

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거리가 가까워졌다.


론리는 카이로스에게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카이로스도 의외의 인물이 반갑다는 듯 기쁜 표정으로 더 빠르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여전히 여리고, 하얗고, 가늘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강했고 자신감이 충만한 채로 세계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 같았다.


판도라가 카이로스를 바라보는 론리의 표정을 보며 농담처럼 놀렸다.


“괜찮아. 디벨로이드는 일부일처제에 집착하지 않거든.”


론리가 얼굴을 찌푸리며 판도라에게 변명한다.


“그런 거 아니야.”


“궁색한 변명. 더 의심스러운걸?”


회장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속으로 모두가 사정이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모인 인원은 천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합류하기 전보단 사정이 좀 낫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됐다.


“혹시 크로노스는 오지 않았니?”


카이로스의 물음에 옥저는 그들이 남매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변명거리를 준비해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저기... 그러니까.”


“회유됐구나.”


너무 빠르게 적중시킨 카이로스의 추측에 옥저가 놀랐다.


“응? 그건...”


“괜찮아. 실망하지 않아.

지금의 오빠는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소명을 수행하는 거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카이로스의 눈에 슬픔이 비치는 것을 보고,

옥저는 더더욱 변명거리를 생각해왔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시위를 통제하기로 한 치안관들이 곳곳에 보였다.

만 명이라고 집회신고를 했는데 천 명도 되지 않는 인원을 보고 모두들 황당해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수많은 치안관들이 비번을 반납하고 투입됐기 때문이다.

약 5000명 정도가 투입됐는데 그것은 시위대가 정말 만 명이었다고 해도 과한 인원이었다.

시민혁명으로 정권을 세운 이들은 누구보다도 시민들의 힘을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끝은 보자.”


카이로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연합사령부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연합사령부는 5개의 지대로 구분된다.

1지대는 사령부의 코어로 유정무 사령관을 비롯한 수많은 고위 행정관료들이 집무를 보는 건물이다.

이곳 내부는 경호원들조차 자격에 따라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 있다.


2지대는 코어를 둘러싼 여러 가지 부속 건물이다.

고위 관료들의 집무를 수직, 수평적으로 보조해주거나 지원해주는 부서가 있고, 그 외 여러 가지 주거와 집무를 위한 편의시설들이 있다.


3지대는 일반인들이 견학을 왔을 경우 사진을 찍거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홍보관과, 2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검문검색 통로로 구성된다.


4지대는 외부에서 본격적으로 연합사령부 내부로 들어가기 위한 거대한 외벽과 검문소가 운영되는 곳이다.


5지대는 연합사령부를 방문하는 수많은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관광사업을 하는 상업단지라 엄밀히 말하면 연합사령부라고 할 수 없다.

단순히 보안과 경호를 위해 사령부 경호실에서 편의상 5지대라고 구분해놨다.


5지대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앞에는 수천 명의 기동대가 곤봉과 방패를 들고 진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지휘관들의 준비 명령에 맞춰 기합소리와 동시에 방패와 곤봉을 들었다.

지휘관이 다시 전진 명령을 내리자 진열들은 발을 맞춰 이동하며 다른 대열과 함께 약속된 진영을 만들었다.

사령부 입구까지 진입은커녕 단 한 문장의 구호라도 용납하지 않을 태세였다.


시위대는 그들의 모습에 서로 떠들면서 불안한 기색을 달랬다.


“수도 얼마 안 되는 학생들을 강력진압하진 않을 거야.”


머뭇거리는 학생들 사이에 카이로스가 선두에 서서 손을 들었다.

학생들은 각자 떠들던 것을 멈추고 카이로스의 손 끝에 집중했다.

각자 메고 온 배낭 속에 있던 선전물을 꺼내들었다.

카이로스가 손을 내리자 수많은 선전물이 길바닥에 뿌려졌다.

미리 근처 건물의 옥상에 올라갔던 학생들도 배낭을 털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학생들도 시민이다. 독재학교 물러가라!”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며 5지대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하자 무장한 기동대 사이로 누군가가 나왔다.

이무근이었다. 진압대는 광역기동단 본부였던 것이다.

이무근은 뒤에 있던 지휘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진압해. 심하게 반항하는 자들은 곤봉을 사용해도 좋다.”


“네?”


지휘관들은 그들이 무언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이무근에게 다시 물었다.


“진압하라고. 무력을 써서 당장 다 때려잡으라는 얘기다.”


“하지만 학생들인데요.”


“학생? 여기 어디에 학생들이 있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이무근에게 질려 지휘관들은 경례한 뒤 각 대열에 명령했다.


“전진 준비!”


지휘관의 말을 들은 진압대가 다시 한번 기합소리를 넣으며 자세를 낮춰 달릴 준비를 했다.

곤봉은 창처럼 세웠고 뒤에 있던 진열이 앞으로 나오며 한 줄이 되어 시위대를 포위할 수 있을 정도로 길게 늘어섰다.


“전진!”


무장한 진압대가 앞발을 먼저 내미는 보폭으로 걸음을 걸어 대열을 흩뜨리지 않은 채 학생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그 광경 자체만으로도 큰 압박감을 느꼈고,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서로 손을 잡았다.


“돌격!”

명령을 받은 진압대는 학생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겁에 질린 시위대는 뿔뿔히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행정실 조교는 출력된 50부의 문서에 도장을 찍어 기록철에 엮어 넣었다.

전액장학금을 지급했다는 확인보고서의 맨 앞장 성명란에는 이카루스라고 적혀있었다.

행정실장이 부르는 말에 조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바람이 불어 앞장이 넘겨졌다.

두 번째 장의 성명란에는 크로노스라고 적혀있었다.


“뉴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집무실에 있던 설리반은 그림자의 말을 듣고 TV를 켰다.

뉴스 아나운서가 사령부 앞에서 있었던 학생들의 시위에 대해 보도하는 중이었다.


“오늘 오후 6시경 시위대가 연합사령부에 무단 침입하려다 저지됐습니다.

이들은 시민 심화교육과정을 위해 스쿨에 다니던 학생들로 낮은 성적을 받아 퇴학당할 위기에 불만을 품고 이 같은 범행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1명의 중상자와 15명의 경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설리반은 TV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만면에 인자한 미소를 짓고 텅 비어 조용해진 사색의 정원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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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결전의 날 3 19.09.12 60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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