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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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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작품등록일 :
2011.11.1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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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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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02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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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기 87 - 퇴각, 퇴각, 고립된 독고붕린3

DUMMY

*

창해력 980년 12월 17일 금요일이 밝아 왔다.

크로스로드 성채에 집결한 사군의 지휘관들에게 앞으로 계획을 말하는 도중에 하량에게서 긴급통신이 들어오자, 철장패는 회의를 멈추어야 했다. 한적한 곳을 찾아 마법통신을 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쿠타하타영지를 벗어나지 말고 지키라는 주문을 했다.

``적군을 쫓아 하버민영지로, 하타곤왕국의 수도로 진격을 하지 마! 이제부터 사군은 쿠타하타영지를 확실하게 지켜. 장원관에서 크로스로드 성채까지 한달음에 가도록 길을 정비해줘. 물론, 쿠타하타를 빼앗겨서도 안 돼!"

``적군의 대대적인 공세가 벌써 시작된 거냐?"

궁금증이 가득한 철장패의 질문에 하량은 한숨을 풀풀 날렸다.

``벌써부터 사방에 깨지고 있다. 멍청한 삼왕자 독고붕린은 하노버성에 갇혀 꼼짝도 못해. 심지어 후퇴한 오군은 하피쉬영지를 의지해 타페즌트영지를 지키기 바빠. 삼만의 대군이 투입된 오군이 겨우 이만에게 깨져서 도주한 게 어제였다. 생존자는 오천 마갑기에 불과했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당장이라도 오군사령관을 앞에 두고 물씬 두들겨 패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

안색이 저절로 찌푸려진 철장패는 오른손 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졌다.

``흠, 하타곤군이 며칠 내로 이곳 쿠타하타로 몰려온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불행하게도 너의 말이 맞다. 이제 하타곤왕국에 큰 걱정은 바로 너야! 너를 향해 하타곤군의 전력이 쏟아질 예정이다. 들어온 보고로 판단한다면 이틀 후에는 너의 영지로 하고스티후작이 공격할 예정인 모양이다. 하피쉬영지를 뒤에 두고 오군이 타페즌트영지에서 버티고 있지만 오군은 믿지 마라. 하고스티후작이 타페즌트영지를 뚫고 하피쉬영지로 공격할지, 하버민영지에서 크로스로드 성채를 향해 공격할지 예상할 수 없다. 지금 그 문제로 적군의 지휘부는 시끄러운 모양이다. 어쨌든, 하피쉬영지로 적군이 몰려올 것에 대해서도 대비해라. 영~ 오군은 믿을 게 못 된다."

``알았다. 다른 할 말이 없다면 이만 끊겠다."

철장패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하량은 급히 입을 열었다.

``작전명 `대왕'을 지금 이 시각부터 발효한다. 그에 따라 행동해!"

``드디어 대왕이란 작전이 시작된 건가... 알았다!"

크로스로드 성채는 크고 화려했지만 전쟁에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움이었다. 성벽 위에 세워진 도로는 마갑기가 두 대가 서면 꽉 차서 위태롭다. 성벽 위를 걷는 길도 들쭉날쭉했다. 언짢은 기색으로 성벽 위를 돌아보던 철장패는 지휘소로 들어갔다.

시끄럽게 지휘관끼리 떠들던 소음이 철장패가 연단에 가까이 갈수록 조용해졌다. 공작성에 보관중이던 삼천 대와 적군에게서 얻은 오천 대의 마갑기, 하타곤의 반란세력이었던 삼천 대의 마갑기가 합류해서 새롭게 지휘관으로 오른 기사들이 대거 참석한 상태였다.

지휘소에 가득한 지휘관들이 선 상태로 조용히 입을 다물자 철장패의 입이 열렸다.

``하버민영지로 향한 출발은 중지한다! 우리는..."

갑작스런 총사령의 선언에 지휘소가 시장통처럼 시끄럽게 변했다.

``조용, 조용히 하라!"

총사령을 대신해 백작들이 나서서 주변을 정리하자 지휘소는 다시 침묵했다. 하지만 이유를 묻는 뜨거운 시선이 철장패의 얼굴에 와르르 박혔다.

``지금부터 새로운 작전을 시행한다. 작전명 대왕이다. 작전명 대왕에 의해 우리는 적군을 쫓지 않는다. 다음 주 금요일 정도가 되면 우리 영지에 수십 만의 대부대가 도착할 것이다. 쿠타하타영지에 도착할 기사단의 숫자가 최소 이백 개는 거뜬히 넘어갈 것이다. 우리는 그 준비에 돌입한다!"

모든 지휘관이 새롭게 변하는 작전에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하타곤의 반란세력으로 새롭게 가세한 숀쿤 천인장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앞으로의 계획들이 총사령관의 입에서 하나씩 풀려 나올 때마다 막막했다. 자신을 따르는 서른다섯 명의 동료에게는 모종의 임무이자 의무가 있었다. 멀쩡하게 하타곤왕국에서 잘 살고 있다가 굳이 쿠타하타영지를 정복한 패군에 가담한 이유는 하고스티후작을 직접 죽이기 위해서였다. 하고스티후작은 뱀파이어였다. 그것도 벌써 삼백 살이 넘은 늙은 뱀파이어였다. 그는 마계의 문을 열려고 하는 이단자였다. 하타곤왕국 안에서 하고스티후작을 죽일 수 있는 인간은 신의 은총을 받은 무기 소지자인 자신밖에 없었다. 심장에 일반적인 칼을 박아도 죽지 않는 특별한 뱀파이어였다. 불사의 마법에도 관여된 뱀파이어이기에 그를 죽이기 위해 신의 은총이 필요했다.

오랜 세월부터 마계이단자와 인간수호자는 쫓고 쫓기는 원수였다. 그 시작은 천 년 전에 벌어졌던 마계마수 세계대전에서 비롯되었다. 전장의 주역인 마갑기의 탄생도 마족의 마수와 괴수를 상대하기 위해 이 땅에 살아가는 지성체들이 지혜를 다한 결과였다. 그 이전의 인간은 마수와 괴수의 먹이에 불과했었다. 천 년 가까이 인간수호청은 마계에서 소환되는 마수와 괴수를 막아 왔었지만 지금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 어느 때보다 마계이단자들이 극성인 까닭은 천 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어둠의 재림'이 몇 년 남지 않은 탓이었다.

숀쿤 천인장은 용병이었다. 그것도 사방을 마음대로 떠도는 특급용병이었다. 인간수호자의 한 명으로서 하고스티후작을 처치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암담함부터 느꼈다. 전쟁 중에 그를 죽일 방법이 없었다. 암살마저 시도했지만 함께 해온 동료들을 잃었다. 전쟁이라는 특별한 경우이기에 인간수호청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 며칠 후에 인간수호청에서 연결해준 사람이 패군의 손국부백작이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인간수호청과 인연을 맺은 그는 패군의 실세였다. 비밀리에 만나서 토의한 결과는 패군의 합류였다. 일부러 패군에 들어왔는데 쿠타하타영지에서 방어만 한다면 하고스티후작을 죽일 기회는 점점 멀어졌다.

숀쿤 천인장이 막막함에 고개를 숙일 때, 철장패는 방어를 주도적으로 수행할 다섯 명을 뽑았다.

``앞으로 이곳에 4개의 거대한 성과 타스쿼럴영지로 향하는 북쪽에 하나의 성이 생긴다. 그곳을 다스릴 다섯 명을 호명하겠다."

지휘관들이 큰 기대를 안고 서로의 대장을 주시할 때 철장패의 입에서 한 명씩 호명되었다.

``주허평백작, 묵대형백작, 한염도백작, 여포자작, 서유자작! 지금 호명한 다섯 명은 독자적인 권한으로 주변의 병력을 다스리게 된다. 여포자작과 서유자작은 전쟁이 끝나면 백작으로 오를 테니 다른 자작과 남작들은 두 자작의 명령에 불만을 품지 마라. 호명된 다섯 명은 지켜야 할 지역을 확인하고 점심 전까지 필요한 병력을 검토해서 보고하라. 나머지 지휘관들은 점심 때까지 휴식하며 기다려라. 이상이다!"

임시 사령관실로 들어가던 철장패는 공작성에 있어야 할 손국부백작이 크로스로드 성채에서 보자 놀랐다.

``손백작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우선, 안으로 들어가죠."

따라오는 손국부백작의 뒤로 숀쿤천인장도 들어와 철장패의 얼굴을 마주했다.

차분한 얼굴의 손백작은 신중한 태도로 철장패에게 허리를 숙였다.

``총사령께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 왔습니다. 하고스티후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침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총사령의 태도에 손백작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연하게 하고스티후작이 마계이단자라고 인간수호자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무엇보다 뱀파이어 종족이라고 합니다. 인간수호자로서 그를 처치하기 위해 인간수호청에서 파견된 숀쿤천인장이 이천오백 대의 마갑기를 이끌고 패군에 합류했습니다. 하고스티후작이 죽으면 합류한 이천오백 명의 마갑기사는 자유기사로 풀어줄 것을 총관예정자인 제가 약속한 상태입니다. 모쪼록 숀쿤천인장이 하고스티후작을 죽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제 마음대로 이천오백 대의 마갑기를 합류시킨 걸 머리를 숙여 사죄합니다. 하지만 후작성의 총관예정자로서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했기에 허락했습니다."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철장패는 어리둥절해졌다.

``하고스티후작이 뱀파이어라고? 그거야 그럴 수도 있지만 마계이단자라니, 그건 또 뭔가? 인간수호청은 무엇이고?"

인간수호청과 약간의 인연이 닿아 있던 손백작은 자세하게 마계이단자에 대해 몰랐다. 숀쿤천인장을 돌아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땅을 천년 전처럼 마계의 땅으로 만들어 마족들이 살아가기 편한 세상을 만드려는 종족이나 집단을 마계이단자라고 부릅니다. 마계이단자 대부분은 마족과 연관된 종족이기도 합니다. 마족의 지배를 원하는 자가 행동으로 마수 베이모스 종족을 소환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을 특별히 마계이단자라고 부릅니다. 인간수호청은 천년 전에 벌어진 마계마수 세계대전 이후에 생겨난 곳입니다. 또다시 마족에 의한 지배를 받지 말자는 뜻에서 의견을 같이 하는 인간과 엘프와 드워프 종족이 중심이 되어 만든 곳입니다."

숀쿤천인장의 말을 듣고 무엇보다 놀란 건 마수 베이모스종족의 소환이었다. 마계의 마수들이 인간들이 사는 중간계에 현신하면 마계와 비슷한 땅으로 만드려고 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 능력이 베이모스종족에 이르러서는 무척이나 탁월했다. 베이모스 한 마리만 한 달을 주변의 산에서 살게 되어도 베이모스가 사는 산이나 숲은 마계의 영향을 받아 괴이하게 변한다. 베이모스를 죽이고 나서도 숲과 산을 신관들이 나서서 정화해야 일반 숲으로 돌아왔다.

``단도직입적으로 하고스티후작이 베이모스를 소환하려고 한다는 말인가?"

눈을 번뜩이며 묻는 총사령의 질문에 숀쿤천인장은 단호한 태도로 대답했다.

``이미 두 번에 걸쳐 베이모스를 소환했습니다. 워낙 은밀하게 소환을 해서 하고스티후작이 범인이라고 주변에서 생각하지 않을 뿐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우르크가 사는 땅은 물론이고 지성체가 사는 곳이라면 베이모스를 소환하려고 하는 자들이 늘었습니다. 여차 잘못되면 천 년 전에 벌어졌던 마계마수 세계대전이 다시 펼쳐질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8년 후에는 어둠의 재림입니다. 그때 마계와 비슷한 지역이 중간계에 있다면 마계의 문이 열려 마계마수 세계대전은 현실로 다가옵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엉뚱한 문제가 철장패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의자에 깊숙히 몸을 묻은 철장패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천 년 전에 벌어졌던 마계마수 세계대전이 다시 터질 지도 모르겠군.... 흠."

마음 속으로 몇 가지 상황을 예상하고 패나라의 군사적인 대응 방안마저 떠올린 후에 철장패는 숀쿤천인장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모르고 있었다면 베이모스 소환에 난감했을 것이다.

``숀쿤천인장이 원하는 것은 하고스티후작과 직접적으로 싸우는 것인가?"

``마계이단자를 죽이기 위해 인간수호자가 존재합니다. 하고스티후작과 싸울 수 있도록 해주시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이틀 정도가 지나면 하고스티후작이 대부대를 이끌고 이곳으로 공격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때 내 옆에 있어라. 그럼 싸울 기회를 주겠다."

패군에 합류해 합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과 패군이 방어만 한다는 이야기에 막막함으로 가득했던 숀쿤은 사령관 철장패의 새로운 소식에 먹장구름 속에서 태양을 본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고마움을 느낀다면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마계이단자의 특징과 소환이 되는 마수들의 생김새와 성질 등을 보고서로 작성해 주었으면 좋겠다. 특히 베이모스에 관한 것은 아는 대로 보고서에 담아 읽어볼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보고서 작성은 옆에 있는 김현우 부관과 함께 해라."

``알겠습니다! 아는 대로 세세히 적겠습니다."

``아차, 하고스티후작이 죽으면 곧바로 너희들을 자유기사로 만들어 주어야 하나? 하타곤군이 개미떼처럼 공격하는 상황이 될 거라 한 사람의 손이라도 부족한 실정이다. 특별한 일만 없다면 너희 이천오백 명을 따로 탐색대라고 칭해서 베이모스와 마계이단자와 관련된 일만 종사하도록 하겠다. 그게 오히려 숀쿤천인장이 일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된다. 나의 제안을 숀쿤천인장이 거부한다면 지금이라도 자유기사로 만들어 주겠다. 손백작이 명예를 걸고 약속한 것을 깰 마음은 없다."

사군 사령관의 갑작스런 제안에 숀쿤천인장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꾸물거리며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눈 다음 결정해서 대답하기 바란다."

숀쿤천인장이 김현우 부관에 이끌려 임시 사령관실을 나서자마자 묵대형백작을 비롯해 새롭게 성주로 임명된 다섯 명의 중진이 들어섰다. 그 뒤를 이훈장, 소용후, 청오가 뒤따랐다.

묵대형의 화통을 삶아 먹은 큰 목청이 사무실을 울렸다.

``갖고 싶은 성채는 물론이고 필요한 병력마저 적었습니다!"

철장패는 또다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아직도 점심을 먹지 않은 상황이라 부관이 내오는 간식거리를 입에 넣으며 가볍게 점심을 떼웠다. 쿠타하타영지의 방어에 필요한 열두 개의 성에 각각 병력을 배당하고 세워야 할 성의 구조와 크기를 조율했다.

마침내 한시름을 놓게 된 건 늦은 저녁이었다. 그 밤에 새롭게 성주가 되거나 영주가 된 자들만 모여 조용한 가운데 철장패 앞에 나와 신하의 맹세를 했다. 기사의 맹세, 마법사의 맹세는 물론이고 군인의 맹세마저 하며 군신 간의 관계가 되었다.

쿠타하타영지가 새로운 틀에 새롭게 꿈틀거렸다. 그 중심에는 철장패가 있었다.

장원관에서 하피쉬백작성으로, 크로스로드 성채로 하루가 다르게 도로가 건설되고 넓어졌다. 청란강을 인접해 성벽이 세워졌다. 그 뒤를 거대한 성채들이 지어졌다. 급하게 세우는 건물이라 모두 나무였다. 하지만 삼 일에 불과한 시간에 급한 대로 새로운 전선을 구축했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창해력 980년 12월 20일 월요일, 패나라의 총회의사당에서 만장일치로 전군 동원령이 내려졌다. 패나라 전체가 전쟁의 흥분으로 온몸이 뜨거워졌다. 마샬공작령의 키링영지에 모였던 패군은 칠군부터 십오군으로 확정되었다. 장원관에 모였던 패군은 십육군부터 이십일군으로 편성되었다. 지휘관들이 패나라의 수도 중경에서 출발해 자신의 군대가 머문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패나라의 온 세상이 들끓기 시작할 때, 두 곳만은 싸늘한 정적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노버성을 지키던 삼왕자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지옥의 탈주를 벌였다. 함상세가를 따르는 병력과 삼왕자를 따르는 병력이 다툰 게 실수였다. 우연하게 경계망이 엷어진 그 틈으로 바르쏭군이 침입하여 커다란 전투로 변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탈출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변했다. 고작, 며칠만 견디면 될 것을 배급품이 서로 다르다는 사소한 말다툼이 크게 번져 삼왕자의 탈출로 이어졌다. 분통이 터지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살기 위해 삼왕자는 율리포드로 향했다. 하노버성을 벗어나는 삼왕자는 한없이 울적하고 씁쓸했다.

급박한 상황은 침묵한 철장패와 말채찍을 쉬지 않고 휘두르는 패왕대도 마찬가지였다. 의외의 기습에 철장패는 두 눈을 부릅뜨고 북방 한계선까지 밤을 새워 달렸다. 하고스티후작의 대군이 하버민영지 쪽이나 타페즌트영지를 뚫고 하피쉬영지로 돌입할 것이란 예상은 완전히 벗어났다. 그가 나타난 곳은 타스쿼럴영지를 통한 북방 한계선이었다. 그나마 서유자작이 이끄는 코브라기사단과 병력이 북방협곡을 지키고 있었지만 숫자에서 너무 밀린다는 통신이 끊이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북방협곡이 뚫린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거한성에 도착했을 때는 북방협곡은 무너져 코브라성을 주축으로 거인성, 거목성, 거한성을 기반으로 응전해야 했다.

``지금부터 모두 마갑기에 올라탄다. 거인성까지 쉬지 않고 달린다!"

거한성에서 말을 내리고 마갑기에 올라탄 패왕대는 잠시의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거인성으로 달렸다. 그곳에 하고스티후작이 있었다. 그곳에서 코브라기사단이 적군과 피말리는 응전을 벌였다.

늦은 저녁에서야 거인성에 도착한 패왕대는 지옥을 보았다. 수많은 시체와 불타는 도시, 붕괴된 건물의 잔해 그리고 학살을 끊임없이 자행하는 하고스티후작의 군대였다. 같은 사람이었고 핏줄일 텐데 하타곤군이 도시민들에게 하는 만행은 멈추지 않았다. 피난민들의 행렬은 끊임없이 거인성으로 다가왔다. 주요 길목을 지키며 벗어나지 못하는 서유의 군대는 분노했다. 당장이라도 코브라성의 성주인 서유의 명령을 기다렸다.

거인성은 요충지에 건설된 성이었다. 성이라고 부르기도 힘들었다. 커다란 나무들을 옹기종기 얽어 대충 세운 것에 불과했다. 나무를 베어낸 커다란 터전 위에 천막으로 세워진 막사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 거인성이었다.

패왕대의 도착과 함께 서유가 철장패에게 달려왔다.

``면목이 없습니다. 주군의 명예에 흠집을 낸 것에 벌해 주십시오!"

왠지 격분한 서유가 한쪽 무릎을 꿇고 울분에 가득차서 고함을 질렀다.

서유의 몸짓에서 하고스티후작의 군대와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었다. 마갑기를 타고 움직였을 텐데도 마갑기를 열고 나온 서유의 갑옷은 여기저기 헤어졌다. 피고름이 말라붙어 보기 흉할 정도였다.

가만히 서유의 어깨를 두툼한 손바닥으로 만진 철장패는 서유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수.고.했.다!"

고마움과 안쓰러움이 담긴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고 철장패는 몸을 돌렸다.

``하고스티후작이 어디에 있나 알고 싶다. 안내를 해주겠나?"

많은 말은 아니었어도 격분에 찼던 서유의 가슴은 의지할 곳을 찾은 어린 양처럼 평화을 얻었다. 하고스티후작을 상대하면서 느꼈던 무력감, 패배감, 울분 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평소의 냉철하고 침착한 태도를 되찾은 서유는 방금 전처럼 부리나케 뛰지 않았다. 붉게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침착하게 총사령 앞에 다가가서 하고스티후작이 머무는 진지로 안내했다.

거인성 옆에 자리한 세인트 도시는 크지 않았다. 순수하고 따스한 마음이 가득한 시골 같은 분위기의 도시였다. 그 도시를 불태운 하고스티후작의 군대는 도시의 우측에 넓은 진지를 구축하고 자랑스럽다는 태도로 도시가 불타오르는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거인성에서 나온 패왕대는 하고스티후작의 군대와 마주했다.

도시를 탈출하던 세인트의 백성들은 서둘러 하타곤군을 피해 패군에게 달려왔다. 백성들을 쫓던 하타곤군은 패왕대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살인마로 변한 군대를 피해서 노인, 여자, 어린아이까지 한데 뭉쳐 패군이 상주한 거인성으로 도망갔다.

전장에 서게 되면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게 싸우는 장소였다.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넓은 들판이었다. 우측으로 작은 강이 흘렀다. 주위를 둘러보던 철장패는 점점 어두워지는 저녁이라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하고스티후작은 뱀파이어라고 들었다. 한 밤에도 군대를 동원해 공격할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적군의 숫자는 이만 대를 넘어서고 있었다. 지금쯤 적군은 주변에 퍼졌을 테니 적어도 삼만 대가 넘게 공격을 왔다. 이곳에 온 패왕대의 숫자는 삼천 대가 못 되었다. 서유가 이끄는 군대는 사천 대의 마갑기가 있었지만 서유가 직접 키운 코브라기사단을 제외한다면 모두 약했다. 무엇보다 패왕대는 쉬지 않고 달려온 상태였다. 한 시간만의 휴식이라도 주어진다면 좀 더 좋은 상황이 될 것이다. 그래서 철장패는 패왕대를 이끌고 거인성으로 향하는 산등성이로 올랐다. 좁은 산등성이였지만 적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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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전쟁이야기 67 - 수도 함락, 환호4 +8 08.10.27 12,317 110 15쪽
66 전쟁이야기 66 - 수도 함락, 환호3 +7 08.10.26 12,177 72 15쪽
65 전쟁이야기 65 - 수도 함락, 환호2 +13 08.10.25 12,495 71 15쪽
64 전쟁이야기 64 - 수도 함락, 환호 +6 08.10.24 12,853 73 12쪽
63 전쟁이야기 63 - 위험한 순간5 +8 08.10.23 12,298 73 21쪽
62 전쟁이야기 62 - 위험한 순간4 +7 08.10.22 11,985 71 16쪽
61 전쟁이야기 61 - 위험한 순간3 +9 08.10.21 11,919 78 19쪽
60 전쟁이야기 60 - 위험한 순간2 +7 08.10.20 11,846 76 22쪽
59 전쟁이야기 59 - 위험한 순간 +6 08.10.19 12,670 75 25쪽
58 전쟁이야기 58 - 연합작전 그리고 전복4 +12 08.10.17 12,335 6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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