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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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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작품등록일 :
2011.11.10 19:59
최근연재일 :
2015.12.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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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13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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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전쟁이야기 81 - 전사의 외침

DUMMY

오랫동안 잠수를 타서 죄송합니다.


한 달은 충격을 먹어서 멍했습니다. 내일이면 써야지 하다 보니 한 달이었습니다. 구질구질하게 변명하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지금 쓰는 글도 석 달을 넘으면 게시판이 사라질 거 같아 썼습니다. 왠지 더 구질구질해지네요. 어쨌든 멋진 밤 되십시오!


아차, 바쁘게 쓰다 보니 문장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내일 고치겠습니다. 또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려고 하네요. 아, 괴롭지만 죄송합니다.


- - -



* 전사의 외침



아무래도 숫자가 많으면 위험하다. 그것도 독이 잔뜩 오른 독수리 다섯 마리는 조심해서 상대해야 했다. 때마침 찬바람이 매섭게 주변을 휘돌며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말을 먹이기 위해 만든 들판의 건초들이 바람에 부수수 휘날려 날아올랐다. 쏜살같이 뛰쳐나오는 패왕대 삼천오백여 마갑기를 마중하며 등뒤로 사라졌다.

서둘러 철장패는 패왕대를 이끌며 크게 한 번 휘돌았다. 곳곳에서 적군과 드잡이를 벌이는 와중에 커다란 원을 형성했다. 등뒤에 성벽을 두자마자 눈앞에 적군이 물밀듯이 몰려와 패왕대의 움직임은 늪속에 무거운 갑옷을 입고 빠진 전사처럼 힘겨워졌다.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자 비명소리와 다부진 기합들이 전투의 소용돌이로 급속하게 내몰았다.

패왕대 안에서 골드머니로 통하는 네 명의 기사단장들이 철장패의 명령만을 기다렸다. 거칠게 숨쉬는 여포의 뜨거운 콧김이 바로 옆에서 느껴질 것만 같았다. 격정을 억누르며 더욱 차부해진 서유와 이훈장, 전의를 다지는 한염도까지 골드머니의 호흡은 점점 거칠어졌다. 커다란 원 속에서 골드머니는 냉정한 시선으로 백병전을 벌이는 실버머니와 레드머니의 상대인 적군을 주시했다.

강렬한 충격으로 마갑기가 움찔한 황소 기사단의 버팔로잭은 고함쳤다.

``전열에서 이탈하지 마라. 적들의 돌격이 진열을 뚫지 못하게 해라!"

버팔로잭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패왕대의 황소기사단은 운이 없었다. 타넬라공작이 자랑하는 알파벌쳐 기사단의 목표가 되어 돌격을 당했다. 커다란 충격에 마갑기 서른 대 정도가 뒤로 튕겨졌다. 한 번 뚫린 구멍으로 적군 수십 대가 쏟아져 들어왔다.

``들어온 놈들은 무시하고 돌아라! 시계방향으로 최대한 돌아서 길을 막아!"

다급하게 울려퍼지는 기사단장의 외침에 황소기사단은 마갑기를 비집고 들어오는 적군의 몸통을 막으며 커다란 원을 따라 돌았다. 이미 들어온 적군이 뚫린 곳을 넓히기 위해 돌아설 때 골드머니가 나서서 칼을 맞댔다. 몇몇 곳에서 비슷하게 구멍이 뚫렸지만 이내 골드머니에 소속된 마갑기에 의해 잠잠해졌다.

일명, Q진형이었다.

본래 중요인물을 보호하기 위해 구상된 진형이었지만 적군의 한복판에서도 가끔 사용되었다. 단점이라면 커다란 원이 강한 철벽처럼 깨지지 않아야 했다. 깨지면 쉽게 진형이 와해되어 위험한 진형이었다.

진형이 완성이 되고 적군과 사방에서 붙는 상황이 되자 오히려 철장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형을 펼치는 처음이 어려웠지 전투가 벌어지면 처음과 같은 위험은 덜했다.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성벽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백병전이 벌어졌다. 강한 돌격은 멈추었지만 패왕대가 진형을 오랫동안 유지하며 전투를 계속할 능력이 있나 알 수 없었다. 이제부터 패왕대의 진정한 저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철장패는 여포를 보며 손짓했다.

``여포가 가장 먼저 나간다. 준비해라. 명령하는 순간 돌격해서 적군을 격살해라."

여포가 이끄는 흑사자기사단이 천천히 원의 중앙으로 나섰다. 돌격자세를 갖추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적군의 강한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점점 물러서는 1시 방향의 세창기사단을 주시했다.

세창기사단의 단장인 민우성은 모두 실버나이트로 구성된 쌍두독수리의 문장을 새겨진 적군의 기사단에게 곤욕을 치루었다. 아무리 패왕대에 소속된 세창기사단이라고 해도 기사 대부분은 레드나이트였다. 검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소드마스터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아량을 바랄 상황이 아니었다. 서른다섯 명의 실버나이트와 일곱 명의 골드나이트가 최선을 다해 검기를 막고 있었지만 한계였다. 레드나이트가 하는 건 고작 앞장 선 동료가 뒤로 물러서지 않게 온몸으로 미는 것뿐이었다.

철장패는 여포에게 신호를 보냈다.

``돌격해서 쓴 맛을 보여줘!"

총사령의 손이 올라갔다가 내려가자 여포의 흑사자는 둥근 원을 따라 달렸다. 들판에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며 세창기사단을 눈앞에 두고도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개문(開問) 시작!"

득달같이 달려서 크게 외치는 여포의 고함에 따라 민우성은 선봉에 선 다섯 부하에게 손짓했다. 민우성을 기준으로 다섯 줄의 후미가 서서히 뒤로 빠졌다. 그리고 마침내 선봉에 서서 막고 다섯 부하만 남자 여포의 흑사자가 바로 등뒤까지 왔다. 후미에 빠져서 돌격지점에 선 마갑기가 손을 크게 흔들며 여포의 흑사자에게 문이 열릴 위치를 정확히 알렸다.

후미에 빠진 신호병이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 오자 소리쳤다.

``개문 완료, 투창 돌진!"

소리가 들리자마자 민우성을 비롯한 다섯 대의 마갑기가 서둘러 좌측으로 길게 붙었다. 뚫려진 공간으로 적군이 몇 걸음을 걷지도 못하고 흑사자에 속한 일곱 명의 소드마스터가 휘두른 검강에 몸둥이가 터지며 뒤로 날아갔다. 거대한 충격음이 주변을 뒤흔드는 가운데 흑사자는 곧장 지휘관을 따라 꼬리까지 직선으로 쏟아졌다.

최소가 실버나이트였고 대부분 골드나이트인 여포의 흑사자였다. 추풍낙엽처럼 쓸려버린 적군의 마갑기를 밟고 사방으로 검풍탄을 날렸다. 머리에 해당하는 여포와 소드마스터들의 가공할 위력에 주변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신호병은 흑사자의 꼬리가 보이자 훈련을 받은 대로 크게 외쳤다.

``투창 완료!"

약속된 신호가 들리자 흑사자는 돌진하던 자세를 멈추고 돌아왔다. 돌아올 때도 곱게 돌아오지 않고 한 놈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 마갑대검을 휘둘렀다.

여포가 세창기사단을 구하고 대기하자 철장패는 사방을 살피며 명령했다.

``지금부터 반바퀴 회전한다. 시작!"

총사령의 외침에 따라 앞에서 적군과 마주치던 기사단은 시계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며 자리를 이동했다. 성벽을 끼며 휴식을 취하던 기사단이 적군과 싸웠고 쉬지 않고 싸우던 기사들은 성벽에 와서야 상처를 돌보고 옆구리에 찬 물병을 들고 목마름을 해갈했다.

성벽과 가까운 기사들이 작게나마 휴식하는 가운데 골드머니의 염룡, 한검, 코브라, 흑사자는 위험한 아군을 구했다. 때론 적군이 강하다고 여겨지면 개문하고 돌진했다. 골드머니가 움직이는 위치와 시간은 오직 총사령관인 철장패의 지휘에 온전히 맡겨졌다. 커다란 원을 형성하는 레드머니와 실버머니의 회전하는 시간도 철장패의 판단에 따랐다.

철장패는 사령관이었다. 기사들의 목숨을 책임진 지휘자였다. 패왕대라는 이름으로 묶인 서른 개의 기사단을 매시간 매상황마다 살피고 점검했다. 싸우는 적군이 적절한 상대인지 우선 살폈다. 싸울 만하다고 여겨지면 다행이지만 너무 강하거나 약하면 위치를 바꾸어야 했다. 적군이 너무 강하면 쉽게 기사들이 죽을 수 있었다. 너무 약하면 정신이 나태해져 위험했다. 기사들이 싸우면서 각오를 새롭게 하고 투지가 꺼지지 않게 조율해야 했다. 그래서 너무 강한 적군과 너무 약한 적군을 상대하는 기사단은 상황을 바꾸었다. 골드머니를 돌진시켜 적군을 와해시키거나 회전시켜 싸우는 위치를 바꾸었다. 전체의 전투를 머릿속에 새기고 상황에 따라 지시했다.

결국, 기사 하나하나의 몸짓과 투쟁심이 곧 철장패의 각오였고 의지였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패왕대의 상황만을 고려해서는 안 되었다. 적군에게는 타넬라공작이 있었다. 그가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 다가오나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패군을 죽일 것 같았지만 성벽을 나온 패왕대는 사나운 맹수였다. 타넬라공작은 눈앞에 보이는 쿠타하타영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어리석게 성벽을 나온 패군을 잡고 싶었다. 예상과 달리 패군과 전투가 길어질 것 같자 직접 나서기로 결정했다. 타넬라공작의 손짓에 따라 황금독수리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이 허공으로 솟구치며 패왕대를 향해 점점 접근했다.

철장패는 타넬라공작이 다가오는 장소를 유심히 살폈다. 적군은 연못을 지나 넓은 건초지대를 따라 공작성으로 다가왔다. 진형을 풀고 타넬라공작을 잡을 것인지 아니면 진형을 유지하며 상대할지 우선 결정해야 했다. 결정이 늦으면 타넬라공작의 선택에 따라 이곳에서 싸웠다.

성벽을 등뒤로 하고 싸우면 쉽게 지지 않겠지만 타넬라공작을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했다. 타넬라공작을 잡으려면 진형을 바꾸어 움직여야 했다. 그것도 지금보다 유리한 상황과 지형이 필요했다.

주위를 살피며 곰곰이 생각하던 철장패는 타넬라공작과의 전장을 우측 50미터 떨어진 곳으로 정했다. 관문으로 향하는 길가에 커다란 건물들이 세워진 곳이었다. 전쟁이 터진 지금은 아무도 머물지 않는 폐가였다. 그곳에서 타넬라공작과 한 판을 벌일 결심이 서자 철장패는 앞으로 나섰다.

``가볍게 적과 한 판 붙었으니 어느 정도 몸이 풀렸을 것이다. 적군과 한바탕 마음껏 싸우자. 단, 우측 50미터에 떨어진 광장에 도착하기까지 신나게 날뛰는 것으로 한계를 짓겠다.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죽지 말고 날뛰어라!"

``우우우~ 지금도 죽을 지경인데 날뛰라니, 까짓거 죽어보죠."

옆에서 여포가 가볍게 투덜거렸다. 엄살을 떨며 몸을 부르르 떨며 다른 지휘관보다 먼저 먹이를 찾아 눈을 희번득거렸다. 사방을 둘러보고 적당한 먹이를 찾자 다른 세 명의 지휘관에게 소리쳤다.

``저기 빨간 칼이 박힌 깃발은 내 것이다! 누구도 건들지 마라."

여포가 흥분할 때, 이훈장도 적당한 먹이를 찾아 어슬렁어슬렁 나섰다. 그 뒤를 한염도가 따르고 서유가 걸음을 옮겼다.

적당히 먹이를 찾아 눈을 부릅뜬 패왕대에게 철장패의 명령이 떨어졌다.

``셋, 둘, 하나~~ 시작하라!"

Q진형으로 대열을 깨뜨리지 않던 패왕대는 갑자기 산발적으로 메뚜기떼가 되어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갔다. 심지어 동쪽으로 달려야 하는데 북쪽으로 달리는 기사단이 존재했다. 여포의 흑사자와 소용후의 검천기사단 그리고 이훈장의 한검기사단이었다.

모든 기사단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먹이를 찾아 날뛸 때 철장패는 부관 다섯 명과 스물두 명의 부장들을 이끌고 천천히 동쪽으로 걸었다. 가끔 패왕대를 뚫고 다가온 적군은 주변의 부장들이 해치웠다. 문득 새까맣게 몰린 적군을 앞에 두고 사방으로 뛰쳐나간 부하들이 걱정이 되었지만 부하들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전사였고 기사였다. 또한 불굴의 의지를 가진 용사였다.

50미터의 거리는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한없이 먼 거리였다.

진형을 갖추었을 때보다 더욱 심한 열기가 터졌지만 최대한 철장패는 냉정한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걸었다. 부하와 함께 뛴다면 전사로서 유쾌하겠지만 지금은 전세가 위태롭지 않게 부하들을 돌볼 시기였다. 부하들의 외침이 자신의 외침이었고 부하들의 격렬한 움직임이 자신의 몸짓이었다. 간혹 불안하게 적군의 마갑대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부하가 보일 때마다 남모르게 가슴을 졸였다.

그리고 기어코 원하지 않던 상황이 터졌다. 카를로 슈워츠가 이끄는 기사단이 적군에 휩싸여 어쩔 줄 몰라 했다. 귀족답게 잘생긴 얼굴에 냉정하기까지 한 카를로 슈워츠가 얼굴이 벌겋게 변한 채 분전고투했다. 철장패는 동쪽으로 걷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다행하게도 주변에 혁무광이 이끄는 기사단이 있어 위기에서 벗어났다.

진형이 사라지자 걷잡을 수 없이 들어오던 적군은 눈앞에 총사령관을 뜻하는 휘장과 망토를 보자 크게 놀라 철장패가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순간부터 주변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적군의 공격이 패왕대를 향하지 않고 철장패를 향해 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패왕대의 기사단은 철장패에게 오는 적군을 막는 것과 해치우는 것으로 전황의 패턴이 바뀌었다.

철장패는 주변을 휘둘러보다 그대로 다시 걸었다. 다가오는 적군은 부장들이 나서서 해치우고 있었다. 멀리 타넬라공작이 가까이 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살피며 터벅터벅 목적한 장소로 걸어갔다. 간혹 스물두 명의 부장과 다섯 명의 부관의 손을 벗어난 적군이 철장패의 눈앞에 나서면 세이버를 들어 가볍게 휘둘렀다. 보다 빠르게, 보다 정확하게, 보다 힘차게 휘젖는 손짓에 따라 어중간한 적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걷다가 위태로운 기사단이 생기면 철장패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 호응할 기사단이 있으면 다시 걸었고 없으면 포위망을 뚫을 때까지 제자리에서 살폈다. 포위망을 뚫지 못해 죽기 시작하면 주변의 기사단에게 명령하거나 직접 뛰어들어야 했다. 패왕대주이자 총사령관인 철장패가 명령하기 전에 패왕대는 서로 알아서 호응하며 신나게 싸웠다.

전쟁이 즐겁다는 건 아니었다. 단지 죽을 만큼 싸울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건 전사밖에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는 전투가 아니었다. 살기 위해 싸우는 전투도 아니었다. 강자를 만나 마음껏 싸우기 위해 전쟁터에 섰다. 그만큼 적군은 패왕대에게 싸울 공간을 선사했다. 충분히 독이 오른 적군이었다. 가끔 적군의 칼에 죽는 기사도 보였다. 그때마다 철장패는 적군을 향해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기사단이 적군을 뚫고 나오자 철장패의 걸음도 다시 움직여졌다.

고작 50미터에 불과한 거리였지만 패왕대는 얼굴이 붉게 상기된 상태였다.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난투극에 개개인의 흥분과 희열과 분노를 모두 가슴에 묻어 두고 철장패의 지시에 따라 성벽과 폐가를 등뒤에 두고 타넬라공작을 맞이했다. 어느새 적응이 되어 커다란 원을 빠르게 구축하며 만들어진 Q진형이었다. 특별하게 타넬라공작의 황금독수리와 맞서 싸우고 있는 기사단은 롬멜의 써니로즈기사단과 느림보의 수호기사단이었다. 그 옆을 설호룡의 샤벨타이거기사단과 버팔로잭의 황소기사단이 받쳤다.

철장패는 옆에서 대기한 네 명의 지휘관을 돌아보았다.

``이번에 나가는 투창은 세 개이다. 한염도를 제외한 나머지 기사단이 동시에 나간다. 이번의 지휘는 여포가 한다. 서유와 이훈장은 최대한 여포를 보조해라."

골드머니의 지휘관들이 철장패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타넬라공작을 죽여야 한다. 죽이지 못하면 뒷탈이 많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잡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이훈장이나 서유보다는 여포가 좋다고 판단했다. 지금은 감각적으로 적의 허점을 찾는 여포의 뛰어난 감각을 믿어야 할 상황이다."

``그럼, 직접 총사령께서 움직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차분한 목소리로 한염도가 의견을 말했다. 한염도를 돌아보며 철장패는 피식 웃었다.

``그러면 타넬라공작이야 잡겠지. 하지만 진형을 돌볼 사람이 없다. 내가 돌봐야 한 명의 부하라도 살게 된다. 타넬라공작의 목숨보다 여기에 있는 내 부하들이 더욱 소중하다. 나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살리고 싶다."

순간, 모두 얼굴을 돌리며 딴짓했다. 괜히 얼굴이 뜨거워지는 말이었다.

시간은 마냥 멈추어 기다려주지 않았다. 패왕대의 다부진 기세에 많이 죽고 두려울 텐데도 불구하고 타넬라공작을 중심으로 적군은 끊이지 않고 공격했다. 타넬라공작을 막고 있는 진형이 깨지려고 했다. 검천기사단을 이끄는 소용후가 다급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준비해라! 타넬라공작에게 돌진한다는 흉내를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니 바로 돌진하지 말고 천천히 걸어서 바로 앞까지 다가서라. 그 다음의 행동은 여포에게 맡기겠다."

여포는 적군이 눈앞에 있는 데도 서둘지 않는 철장패를 잠시 노려보았다.

어떤 뜻으로 서유와 이훈장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에게 두 기사단의 지휘권을 넘겼는지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총사령이 자신을 믿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신했다. 설혹, 타넬라공작을 향한 투창이 실패하더라도 웃을 인간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젊은 나이에 상급귀족이라고 고까운 면이 없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급귀족에 어울리는 존재로 보였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한 여포는 무리를 이끌고 고전하는 소용후에게 다가섰다. 한 발자국을 걸을 때마다 고동치는 심장은 더욱 크게 들려왔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껴안고 여포는 서유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포의 시선을 느꼈는지 서유가 손을 크게 흔들며 불끈 주먹을 쥐었다. 어깨를 으쓱하고만 여포는 다시 걸었다. 걷다가 이훈장은 어떤 태도로 나올까 궁금해져 돌아보았다. 여포의 뒤통수만 보고 걷던 이훈장은 뜨거운 여포의 시선에 당혹스러워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싱거운 이훈장의 태도에 괜히 아이같은 심정이 들어 여포는 속으로 웃고 말았다. 막상 눈앞에 타넬라공작이 보이자 뒹숭생숭 하던 기분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직, 타넬라공작만 점점 크게 보였다. 타넬라공작은 소드마스터라는 막강한 호위를 주변에 수십 명이나 두었다는 걸 발견하자 총사령보다 약하겠다는 느낌이 들어 한결 가슴이 가벼워졌다. 진짜 강하다면 호위기사로 사방을 에워쌓으며 움직이지 않는다. 행동이 굼떠지기 때문이었다.

여포가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고민하는 가운데 타넬라공작이 이끄는 황금독수리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소용후의 검천기사단이 휘청거리자 여포는 즉흥적으로 호통쳤다.

``타넬라공작! 사내 새끼라면 나와 한 판 붙자. 일 대 일로 붙어서 내가 이기면 뒤로 후퇴해라. 내가 진다면 나를 따르는 백하고 스물다섯 명의 기사들이 이번 전투에서 빠지겠다."

어처구니없는 여포의 고함을 듣자 타넬라공작은 불같이 화를 냈다.

``뭣이 어쩌고 어째? 고작 그 말을 하기 위해 왔느냐. 건방진 소리를 작작하고 죽었다고 목을 길게 내밀어라."

흥분한 타넬라공작의 손짓에 따라 보다 세찬 공격이 터졌다.

위험해진 소용후의 검천기사단의 사이를 여포는 뚫고 지나가며 재빠르게 적의 마갑기를 한 명씩 부쉈다. 그 뒤를 이훈장과 서유의 기사단이 쫓았다. 확실하게 골드머니와 실버머니의 기사단은 실력의 차이가 많이 났다. 대부분이 골드나이트인 골드머니의 기세는 단순하게 검기를 두르는 실버머니와 달랐다.

힘겹게 소용후의 검천기사단이 상대하던 황금독수리를 벌목꾼의 도끼에 걸린 나무마냥 쓰러뜨리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여포는 급하게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예민한 사슴이 도망이라도 칠까봐 천천히 나섰다. 가까이 있는 타넬라공작은 의외로 소심하면서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파악이 됐다. 거칠고 과감하게 나간다면 새장에서 벗어난 앵무새처럼 소리치며 도망칠 거 같았다. 어느 정도의 거리까지 도착하자 여포는 서유와 이훈장에게 손짓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말은 없었지만 여포가 가리킨 방향은 타넬라공작을 포위하기 좋은 위치였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서유와 이훈장은 기사단을 이끌고 좌우로 갈라졌다.

심상치 않은 패군의 기세에 타넬라공작의 호위기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딱 보아도 대부분의 투구깃털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마갑기들이었다. 그것도 수십 명이 포함된 자주색 깃털마저 섞여 거침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적으로 크게 차이가 난 상태가 아니었다면 타넬라공작을 뒤로 빼어 위험지대에서 벗어나게 하고픈 호위기사들의 심정이었다. 뭔가 설명하기 힘든 위기감이 호위기사들의 가슴을 짓눌렀다. 소드마스터의 숫자가 두 배는 많다는 자부심에 억지로 자리를 지키며 패군이 다가오는 상황을 묵묵히 기다리며 마갑대검을 굳게 쥐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소드마스터와 소드마스터와 붙었다. 여포의 마갑대검이 날뛰자 고순의 검도 뒤따랐다. 덩달아 서유와 거인기사의 마갑대검도 불통이 튀었다. 오직 이훈장의 한검기사단만이 다가오는 적군을 상대하며 타넬라공작이 도망칠 경우 잡기 좋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여포는 마침내 기회가 왔다는 걸 느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고 느꼈다.

총사령처럼 부하들을 잘 지휘할 재주는 없었다. 그래서 고함쳐서 명령할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무작정 달렸다. 타넬라공작을 향해 미친듯이 달렸다. 적군이 막으면 몸뚱이를 두 쪽으로 갈랐다. 고급기술인 대도류를 펼치며 눈앞을 뻥 뚫는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경악에 찬 타넬라공작의 표정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십 명의 소드마스터들이 여포를 향해 검강을 들이밀고 있었지만 후퇴할 생각조차 없었다. 죽는다는 느낌도 없었다. 오직 타넬라공작을 잡으면 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여포가 흥분한 만큼 고순도 광분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여포의 기분을 모를 턱이 없었다. 위험에 처한 여포를 대신해 소리쳤다.

``앞에 보이는 놈들을 무조건 쳐라!"

부기사단장의 고함이 터지자 흑사자들은 맹렬히 달렸다. 단장의 눈이 팍 돌았다는 걸 알자 흑사자들은 무조건 앞으로 달리며 단장에게 돌진하는 소드마스터들의 가슴에 검풍탄을 날렸다. 단장에게 다가서는 순간 검풍탄이 몸을 가를 것이다. 단순하게 골드나이트의 검풍탄이라고 무시하고 나서는 소드마스터는 몸뚱이가 반으로 갈라졌다. 여포와 함께 한 세월 동안 흑사자는 놀고 지낸 게 아니었다.

단장이 총사령과 대련해서 얻어 터지고 오는 날은 흑사자에게 있어 지옥이었고 처절한 생존의 시간이었다. 검강을 마구 뿌리는 단장에게 죽지 않기 위해 얻게 된 검풍탄을 허접한 소드마스터 정도는 혼자 상대할 정도였다. 골드나이트를 십 년이 넘게 지낸 것도 서러운데 허접한 소드마스터에게 무시를 당하는 건 더욱 기분이 나빴다. 그동안 당한 설움과 울분이 복받쳐 오른 흑사자 한서류는 마갑대검에 검풍탄을 날리기 위해 울분을 응집시켜 힘차게 날리려 했다. 순간, 검에 검풍탄이 생기지 않고 이상한 기운이 앞으로 나가다가 멈추었다. 더욱 힘을 주었지만 검풍탄으로 나오지 않고 점점 색이 붉게 변하더니 마갑대검의 두 배 정도의 크기로 변하더니 멈추었다.

``와~ 소드마스터? 축하한다!"

옆에서 동료의 축하를 들으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 한서류는 아무 생각이 없이 마갑대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이내 친구의 말뜻을 알게 된 한서류는 경악과 희열과 광분에 빠져 여포의 뒤를 맹렬히 쫓았다.

전쟁터에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피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었다. 눈물을 흘릴 그 시간에 생존을 뛰어넘어 전쟁터를 주도하는 전사가 전쟁터에 필요할 뿐이었다.

엉겁결에 타넬라공작이 위험해지자 사방에서 패군과 싸우다 말고 적군이 타넬라공작에게 몰렸다. 싸울 생각을 버리고 보호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전사는 사라지고 호위기사만 남았다. 호위기사는 전사가 아니었다. 전선을 주도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지키는 자는 더 이상 전쟁을 주도할 수 없었다. 공격하는 자만이 전쟁을 휘어잡았다.

싸우는 장소, 시간, 방법까지 모든 게 공격하는 자의 것이었다. 지키는 자는 오직 공격하는 자가 걸어오는 시간과 장소에 순응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싸우는 방식마저 강요당한 채 지켜야 했다.

철장패는 멀리서 너무 헐겁게 흩어지는 적진을 보자 눈빛에 광채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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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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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전쟁이야기 87 - 퇴각, 퇴각, 고립된 독고붕린3 +3 09.03.02 9,954 64 20쪽
86 전쟁이야기 86 - 퇴각, 퇴각, 고립된 독고붕린2 +5 09.02.27 9,736 70 16쪽
85 전쟁이야기 85 - 퇴각, 퇴각, 고립된 독고붕린 +4 09.02.20 10,251 69 16쪽
84 전쟁이야기 84 - 전사의 외침4 +4 09.02.19 10,135 74 19쪽
83 전쟁이야기 83 - 전사의 외침3 +3 09.02.17 10,101 73 18쪽
82 전쟁이야기 82 - 전사의 외침2 +4 09.02.13 10,030 76 20쪽
» 전쟁이야기 81 - 전사의 외침 +4 09.02.13 10,625 68 24쪽
80 전쟁이야기 80 - 하량의 작전3 +16 08.11.14 11,181 71 37쪽
79 전쟁이야기 79 - 하량의 작전2 +6 08.11.12 10,767 73 13쪽
78 전쟁이야기 78 - 하량의 작전 +7 08.11.11 11,193 73 22쪽
77 전쟁이야기 77 - 오군과 육군의 거병4 +9 08.11.10 11,048 68 16쪽
76 전쟁이야기 76 - 오군과 육군의 거병3 +6 08.11.07 11,175 73 13쪽
75 전쟁이야기 75 - 오군과 육군의 거병2 +8 08.11.06 11,289 74 16쪽
74 전쟁이야기 74 - 오군과 육군의 거병 +8 08.11.05 11,369 78 16쪽
73 전쟁이야기 73 - 불타오르는 전쟁4 +7 08.11.04 11,514 79 16쪽
72 전쟁이야기 72 - 불타오르는 전쟁3 +10 08.11.03 11,605 73 19쪽
71 전쟁이야기 71 - 불타오르는 전쟁2 +5 08.10.31 11,744 81 15쪽
70 전쟁이야기 70 - 불타오르는 전쟁 +11 08.10.30 12,012 66 13쪽
69 전쟁이야기 69 - 수도 함락, 환호6 +4 08.10.29 12,035 76 13쪽
68 전쟁이야기 68 - 수도 함락, 환호5 +8 08.10.28 11,925 76 16쪽
67 전쟁이야기 67 - 수도 함락, 환호4 +8 08.10.27 12,320 110 15쪽
66 전쟁이야기 66 - 수도 함락, 환호3 +7 08.10.26 12,180 72 15쪽
65 전쟁이야기 65 - 수도 함락, 환호2 +13 08.10.25 12,501 71 15쪽
64 전쟁이야기 64 - 수도 함락, 환호 +6 08.10.24 12,856 73 12쪽
63 전쟁이야기 63 - 위험한 순간5 +8 08.10.23 12,301 73 21쪽
62 전쟁이야기 62 - 위험한 순간4 +7 08.10.22 11,989 71 16쪽
61 전쟁이야기 61 - 위험한 순간3 +9 08.10.21 11,923 78 19쪽
60 전쟁이야기 60 - 위험한 순간2 +7 08.10.20 11,851 76 22쪽
59 전쟁이야기 59 - 위험한 순간 +6 08.10.19 12,674 75 25쪽
58 전쟁이야기 58 - 연합작전 그리고 전복4 +12 08.10.17 12,339 6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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