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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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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작품등록일 :
2011.11.1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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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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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13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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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기 82 - 전사의 외침2

DUMMY

타넬라공작의 목숨이 위태롭자 상황이 바뀌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철장패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패왕대를 공격하다 말고 적군이 타넬라공작을 구하기 위해 광분했다.

여포가 타넬라공작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자 사방에서 온몸을 던지며 적군이 막아섰다. 제대로 싸워도 시원치 않을 판에 공격하지도 않고 몸으로 막자 여포는 마갑대검을 휘둘러 적군의 소드마스터이자 호위기사를 갈랐다. 소드마스터 주제에 몸으로 막는 충성심이야 칭찬해야겠지만 여포는 칭찬하고픈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었다. 고작 한다는 게 타넬라공작의 죽는 시간을 늦출 뿐이었다. 그 댓가로 소드마스터 한 명이 죽었다. 이해타산이 전혀 맞지 않았다.

허겁지겁 적군이 움직이며 타넬라공작을 보호하자 여포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타넬라공작도 분명히 소드마스터가 분명할 텐데 너무 심하게 보호한다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제대로 공격다운 공격도 없이 온몸으로 막아서는 적군을 하나씩 때려잡으며 타넬라공작에게 접근했다. 가까이 근접하자 무더기로 나서서 길을 막자 검강을 크게 일으켜 주변에 확 뿌렸다. 검풍탄이지만 검기로 뿌린 게 아니라 검강으로 뿌린 것이라 와르르 죽었다. 간혹 몇 명이 살아남아 버티었지만 여포의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흑사자가 득달같이 뛰어들어 여포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게 도왔다.

``단장님, 몸 바쳐 길을 열고 있으니 걱정을 마시고 가십시오. 그 대신에 화끈하게 술과 고기를 먹게 해주십시오! 그것만 잊지 않으시면 됩니다."

한서류는 십 년 넘게 골드나이트에 있다가 소드마스터가 되자 기분 좋게 외쳤다.

먹는 것만 찾는 부하에게 싫은 정 고운 정이 든 상태라 차마 화를 내지 못하고 여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먹는 건 내가 주냐? 총사령이 먹으라고 해야 먹지. 객쩍은 소리는 하지 말고 후다닥 쫓아 오기나 해라!"

``넵, 걱정 마시고 달리십시오."

오늘따라 기분 좋게 외치는 한서류의 호언장담에 미친놈을 보듯 야려보면서 다시 타넬라공작을 쫓기 바쁜 여포였다.

이미 전투는 전투가 아니었다. 제대로 명령을 하지 못하는 타넬라공작 때문인지 몰라도 우왕좌왕하는 적군을 내버려둘 만큼 패왕대는 어리숙하지 않았다. 총사령의 명령에 따라 Q진형에서 D진형으로 변경이 되었다. 단순히 뒤에서 휴식하던 병사들이 일직선으로 오르며 앞으로 내미 자세에 불과했지만 Q진형이 멈춘 상태에 가까운 진형이라면 D진형은 전진하기 좋은 진형이었다. 적군의 숫자가 너무 많아 앞줄에 있던 기사단이 뒤로 밀리면 뒤에 있던 일직선이 좁혀지며 함께 싸웠다. 그리고 헐거워진 적군를 향해 뒤에 있던 기사단이 나서며 다시 D진형이 형성이 된다.

D진형은 타넬라공작을 따라 추격했다. 적군은 타넬라공작을 보호하기 바쁜 상황이라 진형이고 뭐고 없었다. 이미 명령체계가 사라진 상태였다. 명령체계가 살았다면 진형은 다시 꿈틀거리며 패왕대와 맞설 것이다. 타넬라공작이 안전하게 뒤로 빠지기 전에 쉬지 않고 D진형을 이끌고 타넬라공작의 뒤를 쫓았다. 뒤를 추적하지만 그렇다고 성급하게 타넬라공작을 죽일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지키기 위해 싸우는 적군이었다. 타넬라공작이 죽는다면 다시 위험하게 불타오를 것이다. 그 시간을 최대한 늦추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 철장패는 과감한 공격을 자제했다. 적의 숫자를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마갑기를 온전하게 죽이지 못한다면 팔이나 다리를 잘라서라도 불가항력으로 만들었다.

마침내 타넬라공작이 죽었다.

여포의 손에 죽는 순간, 전쟁터에 정적이 깔렸다. 모든 적군이 침묵했다.

적군이 충격으로 머뭇거리는 사이 서둘러 철장패는 Q진형을 형성하며 처음처럼 크고 넓은 진형이 아닌 좁고 두꺼운 진형으로 대비했다. 더 이상 적군을 쫓지 않고 타넬라공작을 죽인 자리를 에워쌓으며 자리를 지켰다.

예상한 대로 적군은 보호할 대상을 잃자 시선을 패왕대에 주었다. 무기력하게 죽던 적군이 아니었다. 마갑기의 우위가 아직도 건재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약한 강아지라도 호랑이를 물어뜯었다.

죽은 타넬라공작은 소드마스터가 아니었다. 휘황찬란한 소드마스터의 장식을 마갑기 전신에 달았지만 레드나이트에 불과했다. 검기조차 일으키지 못하고 여포의 손에 죽었다. 강력한 기사단을 갖고 있는 존재로서 허무하게 죽었다.

기사로서 능력은 약했지만 타넬라공작을 이용해 적군의 많은 숫자를 죽일 수 있었다. 자그마치 오천에 가까웠다. 그 짧은 순간에 적군은 불나방처럼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처참할 정도로 죽은 적군은 증오의 대상이자 보복의 상대인 패왕대를 향해 분노를 가슴에 품고 성큼성큼 다가섰다. 처음 공작성에 왔을 때처럼 또다시 가슴에 분노를 가득 채웠다.

다시 뜨거워진 전쟁터의 가장 앞에 철장패는 골드머니를 앞장 세웠다. 그리고 창기사단으로서 유일한 세 개의 기사단을 옆에 두었다. 철장패는 한창, 세창, 네창의 이름을 아직도 간직하는 롱팔로우 기사단장, 민우성 기사단장, 얀슨 기사단장에게 작전을 지시했다.

``이번에는 너희들이 투창이 될 차례이다. 레드나이트가 대다수라서 힘들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어려움은 이겨내리라 믿는다."

큼지막한 철장패의 손바닥이 세 명의 어깨에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마갑기를 탄 상태라 마갑기의 어깨를 만진 것에 불과했지만 세 명의 기사단장은 직접 총사령의 손바닥이 어깨에 닿은 느낌이었다.

Q진형의 단점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보다 강한 돌격으로 한순간에 적진을 뚫고 적의 후면을 강타하는 순간 진형은 깨졌다.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건 적군의 돌격보다 패왕대의 철벽이 튼튼했다는 증거였다. 그 정도로 정예기사로 구성된 패왕대였다. 하지만, 단순히 이 점뿐이라면 진형을 깨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형이 깨지지 않은 이유는 적군이 돌진하기 전에 투창으로 적의 기세를 죽이는 게 요령이었다. 적의 돌진을 미리 막지 못한다면 아무리 패왕대라고 해도 진형은 깨졌다. 그 무거운 부담감이 세 명의 기사단장에게 주어졌다.

투창으로 사용될 창기사단이 점점 무거워지는 분위기와 달리 가장 앞장서서 적군을 바라보는 골드머니는 한없이 뜨거워져 갔다. 명령에 따라 투창이 되어지는 건 답답한 일이었다. 마음껏 싸우려고 하면 뒤로 다시 빠져서 대기해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총사령의 명령에 따라 돌격했다. 싸움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적군이 미친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겁없이 달려오고 있었다. 패왕대의 골드머니를 우습게 보면 다친다는 걸 잊은 모양이었다.

신나게 적군과 싸우는 여포는 아까의 찝찝하게 죽은 타넬라공작을 잊을 수 있었다. 기껏 멋지게 싸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허망하게 죽었다. 엉겁결에 날린 검풍탄에 우연히 맞고 죽는 바보라니, 타넬라공작을 쫓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었다. 분노에 가득한 적군과 제대로 싸우자 기분이 한껏 고양되었다.

여포의 기분과 달리 패왕대는 고전했다. 만오천에 달하는 적군이 지휘체계도 없이 무작정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우습게 볼 상황이 아니었다. 이중 삼중으로 연거푸 달려드는 적군을 향해 쉬지도 못하고 싸웠다. 육포라도 길게 찢어서 입에 물고 싸워야 하는데 육포를 들고 입에 물 시간조차 주지 않고 적군이 덮쳤다. 조금이라도 지체해서 공격을 막지 못하면 마갑대검에 찔려 뒤로 물러나 동료의 핀잔을 들었다. 같은 레드나이트라서 죽지 않고 버티지 아니었다면 벌써 죽을 목숨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중에 짜증까지 일어나자 육포를 씹고 싸울 생각은 잊어 버리고 적군의 마갑기를 뒤로 튕겨내어 쉴 자그마한 시간이라도 얻고 싶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초만 쉴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는 느낌으로 검끝만 노려보고 휘둘렀다.

순간, 평상시와 다른 느낌이 전해져 왔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다시 휘둘렀다. 또다시 검끝에 뭔가 어렸다가 사라졌다. 적군이 뒤로 튕겨져 나간 틈을 타서 서둘러 육포를 왼손을 움직여 잡고 입으로 길게 찢었다. 그 이후론 아까와 같은 느낌이 오지 않았다. 육포를 씹을 때마다 느낌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괜히 신경질이 난 레드나이트 서경추는 육포를 씹다가 말고 뱉은 다음 마갑대검을 휘둘렀다. 몇 번이나 휘둘렀지만 아까와 같은 느낌은 오지 않았다. 다시 육포 생각이 슬슬 날 때 적군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최전선에서 적군을 막고 있던 서경추는 뒤로 물러나 쉴까 말까 고민하다가 조금 더 싸우기로 작정했다. 조금 전에 얻었던 그 묘한 느낌을 놓치기 싫었다는 게 옳았다. 몇 번이나 또다시 죽을 위기에 처하자 육포 생각이 간절이 났다. 죽더라도 육포 한 조각이라도 입에 물고 죽고 싶었다. 마갑대검을 힘차게 휘두르며 육포를 간절히 바라다가 또다시 검끝에 묘한 발광이 일어났다. 육포 생각이 간절한 만큼 발광의 크기는 커졌다가 작아졌다. 무심코 적군이 갖고 있는 육포라도 뻇어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마갑대검에 싯누런 발광이 어리며 적군을 베었다.

산골소년이자 사냥꾼이던 서경추는 레드나이트에서 실버나이트가 된 첫경험을 했다. 육포가 좋아 트롤의 고기를 육포로 만들어 씹어 먹던 어느 기사에게 벌어진 작은 사건이었다.

철장패는 사방을 살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환호하는 기사들이 종종 눈에 띄였다. 패왕대에 들어온 레드나이트의 대부분은 자질이 충분했다. 단지 나사가 하나 빠진 태엽처럼 긴장의 극한을 도달하지 못했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갖는 단점이었다. 하지만 누가 나서서 죽음을 앞에 두고 싸우겠나. 일부러 죽음을 눈앞에 두면 피하는 게 인간이었다. 전쟁터에서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죽음의 강을 지나 넘어야 하는 땅이었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은 누구나 잠재능력이 발휘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연달아 비슷한 상황을 계속 경험하면 체념이 아닌 오기와 근성이 분출된다.

진정으로 강해지고 싶다면 경쟁자만큼 좋은 약은 없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죽음을 강요하는 적군도 좋은 약이었다. 패왕대가 스스로 자포자기를 하지 않는다면 성장할 기회였다. 그것도 좋은 스승이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철장패라는 총사령이 하나씩 부하들을 성장시키고 있었다.

부하들이 적당한 상대와 싸울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야 했다. 철장패의 손이 다시 올라갔다.

``이번에는 3시 방향으로 돌진한다. 세 명 모두 나간다. 가장 앞은 한창이, 그 다음은 세창, 네창이 뒤따른다."

처음으로 색다른 주문을 하는 총사령에게 못한다고 발뺌할 수는 없었다. 롱팔로우를 기점으로 민우성과 얀슨이 뒤따랐다. 그들이 길게 내미 마갑창이 적군을 갈랐다. 처음과 달리 길게 이어진 투창의 끝에 전세를 살피던 한 기사단장이 죽었다.

예상과 달리 훌륭하게 목적을 달성한 창기사단을 보며 철장패는 흐뭇했다. 아까부터 전세를 살피며 지시하던 적군의 기사단장을 위협해서 전세를 살피지 못하게 할 의도였는데 그를 죽였다. 철장패는 부장 스물두 명을 돌아보았다.

``9시 방향에 흰독수리 깃발을 든 실버나이트로 구성된 녀석들이 있다. 소드마스터가 세 명이 낀 기사단이라 너희들이 처리해야겠다. 이번에는 너희 스물두 명이 투창이 된다. 너희들은 돌진하고 나서 소드마스터 세 명을 죽여야 돌아올 수 있다. 할 수 있겠나?"

부장 스물두 명 속에는 레드나이트가 다섯 명이 있었다. 실력과 잠재력이 높았지만 극한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유는 레드나이트인데도 불구하고 실버나이트를 상대로 이긴다. 심지어 골드나이트와 상대해도 쉽게 지지 않았다. 너무 잠재력이 강하기에 생긴 현상이었다. 철장패는 유심히 부장 스물두 명을 살피며 대답을 기다렸다.

총사령을 호위만 해서 몸이 근질거리던 부장들이었다. 하지만 총사령을 혼자 내버려두고 가기에는 불안했다. 스물두 명의 부장이 우물쭈물 대답이 없자 철장패는 손을 들었다.

``대답한 것으로 알겠다. 준비해라! 너희들에게 기대가 크다. 너희들 마음껏 저 속에서 싸워라, 그리고 살아남아라! 전투가 끝날 동안까지 쉬지 않고 저 속에서 싸워도 좋다. 단지 죽지 마라!"

황당한 명령에 눈을 크게 뜬 스물두 명의 부장은 총사령 철장패의 손을 치켜들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죽지 않겠다는 너희들의 뜻을 고맙게 받아 들이겠다. 셋, 둘, 하나! 돌격해라!"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훈련을 받은 대로 몸이 움직였다. 총사령의 명령과 함께 몸뚱이는 9시 방향으로 달렸다. 망연한 느낌에 휩싸인 스물두 명의 부장은 나중에 총사령에게 따지기로 서로 눈짓으로 다짐하고 눈앞에 적을 두자 전의를 다졌다.

스물두 명의 부장마저 옆에서 사라지고 진형의 한가운데 철장패와 부관 다섯 명만 남았다.

``너희들도 싸우고 싶어?"

철장패의 질문에 빙그레 웃으며 대답을 못하는 부관들이었다.

``나도 싸우고 싶다만 참아야겠지. 이번 전투로 점점 강해지고 있다. 단순히 정예기사로서만 불리지 않고 전사로 불러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크고 있다. 조금만 더 전투의 불길에 녀석들을 달구고 나면 쓸만한 놈들이 된다. 그때쯤이면 나도 직접 싸울 생각이다. 그때까지 참아라!"

다정하게 들리는 총사령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숙이며 뜻을 받아들이는 부관들이었다.

명령을 충실하게 완수한 창기사단은 총사령의 명령을 기다리며 옆에 대기했다. 종종 환한 얼굴로 변한 녀석들이 눈에 띄였다. 철장패는 속으로 웃으며 반갑게 두 팔을 벌려 창기사단을 맞이했다.

전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아니, 쉽게 끝낼 생각이 철장패에게 없었다. 적군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독이 오른 적군을 구하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것도 패왕대를 상대로 죽음까지 아슬아슬하게 자극할 만한 적군은 찾기조차 힘들었다. 지금이라도 전투를 끝낼 작정이면 패왕대를 이끌고 성 안으로 들어간다면 전투는 끝이 났다.

아니면 성 안에 있는 병력까지 모아 남은 적군을 공격한다면 크게 승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회란 왔을 때 챙겨야 했다. 패왕대는 지금 강해져야 했다. 강해질 기회가 왔을 때 강해지지 않으면 다음이란 기회는 없었다.

크게 숨을 들이키며 철장패는 주위를 살폈다. 아직은 안심하지 못했다. 언제 어디서 위험한 계기가 발생해 위기로 변할 수 있었다. 차분하게 전세를 살피며 적군과 아군의 준동을 예의주시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전투가 점심이 되고 오후가 되어서도 쉽게 그치지 않았다. 고작 삼천오백 대의 마갑기와 싸우는 전투인데도 불구하고 2만에 달하던 병력이 일만으로 준 상태에서도 패왕대보다 적군이 더 지친 상황이었다. 패왕대는 이틀을 쉬지 않고 싸우는 훈련을 종종 했다. 잠깐 쉬는 시간을 전투 와중에 활용했다. 하지만 적군은 휴식과 전투가 일정하지 못했다. 패왕대가 사십 분을 싸우고 이십 분을 휴식한다면 적군은 쉬지 않고 다섯 시간을 싸우고 한 시간을 휴식했다. 적군의 체력은 회복이 되어도 전투의 리듬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분노에 몸을 맡기고 쉬지 않고 싸워 몸이 견디지 못했다. 패왕대가 오랫동안 싸워도 견딜 수 있는 건 훈련의 덕분이었다. 훈련을 통해 전투의 리듬을 깨지 않았다. 단순히 의욕과 열정만으로 가능한 것은 한계가 있었다. 훈련으로 다져진 체력과 투지가 지탱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분노가 크다 해도 한순간의 격정이었다.

전투는 철장패의 의지와 달리 이상한 방향으로 끝이 났다.

오후쯤에 내린 비로 인해 들판은 전투를 속행하기 힘들어졌다. 미끌미끌한 흙바닥을 마갑기로 걷는 건 쉽지 않았다. 거대한 마갑기의 무게에 의해 주변의 풀들은 뽑혀 흙바닥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결국에는 마갑기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황까지 변했다.

몇 번의 전투가 종종 벌어지다가 급기야 전투를 벌이는 것조차 어려워지자 적군은 물러서기 시작했다. 패왕대를 이끌고 쫓아야 했지만 삼천오백 대 이만은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기세에서 지지 않고 싸운 것만으로도 철장패는 뿌듯했다. 기진맥진한 패왕대를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왔다.

패왕대가 공작성으로 들어온 순간, 공작성에서 생활하는 영지민의 태도가 완연하게 바뀌었다. 성벽 위에서 패왕대가 싸우는 모습을 본 탓이었다. 처음과 같이 맹렬하게 반항하는 태도를 버리고 순순히 패군의 명령에 따랐다.

아군의 환호를 받고 들어온 패왕대였지만 사상자가 의외로 많았다. 삼천오백 명에 가깝던 패왕대가 이제는 삼천삼백두 명으로 줄었다. 이백다섯 명이 전투에서 죽었다. 적군 이천삼백오십삼 명의 포로와 9천에 달하는 죽음을 선사했지만 슬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왕국군의 도움으로 사상자의 무덤을 비가 오는 와중에 만들고 패왕대 모두 고인을 향해 묵념했다.

모두 잠든 늦은 시각, 패군의 지휘부는 철장패의 소집으로 부산스러웠다. 건물 밖은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쏟아졌지만 지휘부는 심각한 얼굴로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지금이 기회이다. 적군이 물러선 지금... 공작성의 안전을 담당할 후발대를 제외한 모든 전력이 주변을 점령한다. 점령지역은 적군의 방책망이 세워진 곳까지 달린다. 현재 성을 포함해서 열두 군데를 점령해야 한다. 패왕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어두운 밤이라고 해도 관도를 따라 움직이기에 점령이 쉽다. 진흙탕의 길을 통해 점령하게 될 다섯 곳은 패왕대에서 맡겠다."

철장패가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하는 와중에도 소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질문이 있나? 왜 이렇게 시끄러워? 궁금한 것이 있다면 떠들지 말고 물어라."

모두를 대신해 나선 포암영백작이 주춤거리며 일어섰다.

``굳이 지금 공격해야 합니까? 비가 와서 제대로 걷기도 힘든 날씨입니다."

``그게 질문인가?"

``네... 공격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습니다만 전투가 끝난 오늘, 그것도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할 한밤중에 이동한다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질문이 없다면 포암영백작의 질문은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

가볍게 질문을 듣던 철장패는 질문을 끝나자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전투는 패왕대가 했다. 그리고 한밤중에 걷기 힘든 진흙탕 길도 패왕대가 가기로 했다. 그런데 고작 싸우지도 않고 한밤에 걷는 게 싫어 작전을 거부하는 건가?"

스산하게 외치는 철장패의 태도에 금별을 지휘하는 포암영백작은 정신이 바짝 들었다.

``금별에서 패왕대가 맡기로 한 다섯 곳을 공격할 뜻이 있다면 허락하겠다. 공격이 실패한다면 그 책임을 묻겠다. 다른 질문이 없나?"

암담해진 포암영백작은 서둘러 무릎을 꿇고 총사령관에게 용서를 빌었다.

``죄송합니다. 나쁜 뜻은 없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포암영백작! 자네는 내가 누구라 생각하나. 나는 군인이자 전사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싸워야 하는 게 나다. 그런데 고작 천둥번개와 한밤중이 무섭다고 움직이지 않겠다는 소리를 들은 내 기분이 어떻겠나. 지금 나와 장난을 하는 건가. 이곳은 전쟁터이다. 자네가 편하게 쉬는 집이 아니란 말이다. 한 번만 그따위 소리를 들으면 금별을 사군에서 빼겠다. 약한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태한 아군은 함께 한 동료마저 죽음으로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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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전쟁이야기 64 - 수도 함락, 환호 +6 08.10.24 12,853 73 12쪽
63 전쟁이야기 63 - 위험한 순간5 +8 08.10.23 12,298 73 21쪽
62 전쟁이야기 62 - 위험한 순간4 +7 08.10.22 11,985 71 16쪽
61 전쟁이야기 61 - 위험한 순간3 +9 08.10.21 11,919 78 19쪽
60 전쟁이야기 60 - 위험한 순간2 +7 08.10.20 11,846 76 22쪽
59 전쟁이야기 59 - 위험한 순간 +6 08.10.19 12,670 75 25쪽
58 전쟁이야기 58 - 연합작전 그리고 전복4 +12 08.10.17 12,335 6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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