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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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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작품등록일 :
2011.11.1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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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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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17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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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전쟁이야기 83 - 전사의 외침3

DUMMY

*

갑자기 지휘소는 조용해졌다. 누구도 함부로 말문을 꺼내지 못할 정도로 일순간 적막해지자 철장패는 텁석 의자에 앉았다.

``지금까지 모두 고생이 많았다. 이곳 공작성을 얻은 것은 무엇보다 훌륭한 성공이었다. 그렇다고 나태할 정도로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전투가 끝나지 않은 상태이기에 긴장을 풀지 마라. 조금 있다 중요한 발표를 하겠지만 조금만 더 집중하고 견디자! 모든 지휘관들이 모일 동안 잠시 휴식한다."

그 말을 끝으로 총사령관이 입을 다물자 지휘관들은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조금씩 잡담을 나누었다.

잠시 후에 제복에 묻은 비를 털며 한 명씩 지휘소로 들어왔다. 왕국군에 소속된 천인장 이상의 지휘관들이었다. 수백 명의 지휘관들이 들어오자 임시로 마련한 넓은 지휘소는 빽빽하게 찼다. 의자가 부족해 계급이 낮은 지휘관들은 서서 대기한 가운데 의자에서 일어난 철장패는 연단에 섰다. 총사령관이 등장하자 모든 지휘관들은 작은 소근거림마저 멈추고 갑자기 모이게 한 이유가 궁금해 연단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부관, 지도를 펼치게."

부관 김현우에게 시선을 돌렸던 철장패는 연단 옆에 펼쳐진 큰 지도를 지휘봉으로 두드리며 접근했다.

``여기에 모인 너희들은 행운아임이 분명하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후작이 될 나에게 약속된 땅은... 하피쉬영지와 쿠타하타영지로 정해진 상태이다. 그리고 그 땅은 또다시 너희에게 나누어 진다."

밑도 끝도 없이 던져진 총사령관의 한 마디에 참석한 지휘관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최소 80개가 넘는 땅이 너희에게 분배될 것이다. 다섯 명의 백작에게는 국경선에 근접한 영지가 배당이 되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군사권의 독립을 보장할 생각이다. 이러한 혜택은 여기에 참석한 너희들의 피와 땀의 댓가이다. 이번 전쟁만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수행한다면 고생한 보람은 분명히 너희 자신에게 돌아간다. 몇몇 지휘관은 관행과 다르다고 생각할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놈이 중앙에서 내려와 나의 땅에 영주가 될 수 없다. 내가 이곳의 대영주가 된 이상은 그런 방식은 내가 거부한다. 내가 원하는 건 나와 함께 싸운 존재와 영광을 나누는 것이다."

약간 피곤하면서도 느긋한 면도 없지 않았던 지휘소는 한밤임에도 불구하고 불끈 달아올랐다.

``밖은 비가 온다. 싸움이 끝난 뒤라 적군들도 우리도 힘든 상황이다. 몸을 움직이기 싫은 시간이다. 그래서 적군들의 대부분은 이 시간에 잠이 들었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잠에 빠진 적군을 치기 위해 이 밤에 움직일 것이다. 내일 늦은 오후면 우리는 쿠타하타영지의 상당 부분을 정복한 후가 된다.... 우리가 정복할 지역은 적군이 방어막을 펼친 동부 지역의 요새와 성곽이다. 지친 상태에서 깊은 잠에 빠진 적군을 오늘밤 공격해 방어막을 빼았는다."

누군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릴 정도로 조용한 가운데 철장패의 목소리는 잔잔하게 이어졌다.

``이제 너희들은 수십 갈래로 나뉘어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지정된 땅을 정복하면 그곳이 너희들의 영지가 된다. 오늘밤부터 내일까지 빼앗지 못하면 그 영지를 갖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겠다. 차후에 정복하더라도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

말을 멈춘 철장패는 지휘관들을 빛나는 사파이어 보석의 맑은 면처럼 투명하게 응시했다. 지휘관들에게 시선을 던졌던 철장패는 지도를 툭툭 건드렸다.

``우선 팔십 명은 신분과 직위에 따라 영지의 우선권이 주어진다. 지위가 낮아 영지를 갖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싸운 만큼 직위와 댓가를 주겠다. 지금부터 지도에 표시된 지역에 대한 공격권을 정한다. 공격권을 얻어 요새를 함락시키면 별도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 그곳에서 지켜라. 특히 점령한 방어막이 뚫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너희의 임무이다. 이상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철장패가 연단을 내려가자 부관의 진행으로 공격권을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숨막히게 벌어졌다. 갑작스런 총사령관의 폭탄 선언에 당황할 겨를도 없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4군은 피곤한 상태였다. 전투를 치른 패왕대는 물론이거니와 공작성의 치안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무장을 풀지 않고 출동준비를 갖추고 대기한 후라 기사단과 왕국군은 지쳐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눈을 부라리며 다그치는 총사령관의 명령과 광분하는 지휘관들의 외침에 애써 정신을 집중하며 전투 준비를 갖추었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마갑기들 사이로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쳤다.

으슬으슬 몸은 점점 추웠다. 몸놀림은 점점 굼떠 가는데 짜증이 날 정도로 한밤에 내리는 비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공작성의 영지민들이 따스한 방구석에서 추운 몸을 녹일 때 패군의 기사단과 왕국군에 속한 마갑기와 병사들은 정문 광장에 도열한 채 서서히 공작성을 빠져나갔다. 자세한 상황을 전해 듣지 못한 기사들은 비가 내리는 길을 걸으며 재수없다며 욕설이 저절로 나오는 동안에도 총사령관을 향해 투덜거리지는 못했다. 총사령관을 향한 충성심일지도 몰랐고, 그동안 패배하지 않은 정예기사로서의 자긍심일지도 몰랐다.

남겨진 후발대의 마갑기가 도열한 채 배웅할 때 관도를 따라 선발대, 중갑대, 별동대가 출동했다. 특히 패왕대는 육백 대에서 칠백 정도로 나뉘어 다섯 갈래의 길로 흩어졌다. 각각 지도를 살피며 들판과 숲을 뚫고 지나갔다. 여포가 이끄는 칠백 대의 마갑기는 전투가 힘들 것으로 여겨지는 세 곳 중의 하나인 알파벌쳐 요새로 향했다. 그 뒤를 철장패는 공작성에 남아 지켜보았다.

영지를 얻기 위한 전투였다. 총사령관인 철장패가 참가한다면 볼상사나운 꼴이었다. 부하들을 위한 잔치였다. 무엇보다 전세를 굳히기 위한 작전이었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지나 며칠 후에 적군이 다시 공격하기 전에 방어막을 근거로 굳건하게 지킬 계획이었다. 몸이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겠지만 충분한 보상을 약속했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다. 남은 것은 기다리는 일이었다.

직접 적군과 싸울 때와 마냥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느낌부터 달랐다. 상황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직접 전선에서 뛴다면 이렇게까지 답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부하들의 재량에 의해 전쟁의 승패가 갈리는 시간이었다.

``부관, 연락이 없나?"

철장패는 병사들이 출격한 지 한 시간이 미처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안절부절못하고 부관과 부장들을 독촉하고 있었다. 와이번나이트를 이용해 주변 정찰을 마치고 충분히 검토한 끝에 나온 작전이었지만 걱정이 앞섰다. 지금은 가만히 앉아서 전투의 승패를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다. 새삼, 황태자인 독고명린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일선 지휘관이 아닌 전체를 조율하는 사령관이 되어 보니 점점 기다리는 일이 많아 졌다. 칠흑처럼 보이지 않는 미래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과만을 기다리는 건 쉽지 않은 인내력을 요구했다.

손국부 백작은 공작성의 상황실에서 사군의 전체적인 보급과 이상 변동에 대해 확인을 바삐 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총사령관실에 있지 못하고 상황실의 한켠에 앉아 주시하는 철장패에게 연신 시선이 갔지만 한밤에 벌어지는 작전이라 작은 사건들이 자꾸 터졌다. 쏟아지는 비에 강물이 깊어져 마갑기로 넘다가 엉뚱하게 휩쓸려 내려간 일부터 보급품을 실은 마차가 적군에 의해 훼손되자 다시 실어서 보내야 했다. 대부분의 전투는 기사단에 의해 결정이 되지만 적재적소에 보급품이 도착하지 않는다면 승리했던 전투가 한순간에 패배로 바뀔 수 있었다. 중요 사안을 제외한 제반 사항의 결정은 굳이 총사령관에게까지 올라 가지 않고 손국부백작의 선에서 해결되고 추진되었다. 전쟁이 터진 이후부터, 손국부백작이 왕국군의 지휘하는 동안 기사단은 배고픔을 겪은 적이 없었다.

철장패는 상황실의 병사들이 총사령관의 등장으로 긴장하고 근무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사령관실에 가겠다. 언제든 일이 발생하면 나에게 보고하라."

``넵, 이곳의 일은 확실하게 해결하겠습니다."

듬직하게 말하는 손국부백작의 장담에 고개를 끄덕이며 철장패는 상황실을 나왔다.

영주관을 나서자 시간이 빨리 지난 것을 깨달았다. 벌써,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끝없이 내릴 것 같던 빗줄기는 언제 내렸나 싶게 멈추고 짙은 먹구름 사이로 붉은 해가 떠올랐다.

영주관의 광장을 지나는 영지민들이 패군을 피해 조심해서 지나가는 게 보였다. 어제와 같이 오늘도 일찍 일어나 마차에 짐을 실고 움직이는 영지민들을 영주관 옥상에서 내려다보며 서성거렸다. 차마 답답한 사령관실에 들어가 기다리자니 견딜 수 없었다.

``아침이 마련되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부관 진호가 와서 철장패의 대답을 기다렸다.

``부하들이 나가서 목숨을 걸고 전쟁 중이다. 나만 편하게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없다. 간단하게 아무 거나 갖고 와라."

퉁명스럽게 고개를 젖는 철장패에게 갖고 온 것은 야전식량이었다. 입에 아무렇게나 빵을 넣어 씹었다. 먹으면 고소름하게 맛있는 빵이었지만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몇 번 입에 넣어도 입맛이 생기지 않았지만 억지로 먹었다. 체력이 있어야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쉬웠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점심 무렵이었다. 곳곳에서 승리의 전보가 끊임없이 왔지만 막상 기다리는 소식이 도착하지 않았다. 방어막이 세워진 열두 곳의 성채와 요새였다. 지금도 맹렬하게 싸우고 있을 시간이었다.

일명, 회색여우 작전으로 불리는 원안은 하량의 제안이었다. 쿠타하타영지에 진입하자마자 도착한 하량의 작전서류를 보고 황당했던 기억이 났다. 아까운 작전이었기에 몇 가지 계획을 응용했다. 일꾼으로 전락한 적군을 통해 방어진지가 세워지고 원하는 방어망의 형태로 유도했다. 그 이후부터 회색여우 작전은 계속 철장패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마침내 어제의 전투로 타넬라공작의 병력이 헛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예기사로 소문이 났지만 실제로 전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햇병아리였다. 물론 실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실력은 충분히 정예기사로 이루어진 기사단이었다. 그 대신에 전투 경험이 부족했다. 우왕좌왕하며 명령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2만의 마갑기들을 상대하며 적군이 소유한 병력의 장단점을 발견한 순간부터 회색여우 작전은 실행가능한 작전으로 변했다.

무엇보다 통신구를 통해 들어오는 마샬공작의 행보가 걱정이었다. 이미 바르쏭왕국의 중부가 마샬공작과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타곤왕국의 병력도 오군과 육군을 상대로 수도를 중심으로 완강히 버티고 있었다. 잘못하면 적군의 전 병력이 역공을 가할 수 있었다.

당장에 공작성을 먹었다고 느긋하게 하루 이틀을 아깝게 버릴 상황 아니었다. 적군이 전투에 지친 지금이 적기였다. 쿠타하타영지를 두고 승부를 결정할 기회였다. 얼마 후면 적군이 대규모의 역공을 펼칠 징조가 사방에서 보였다. 아무리 전투에 강한 사군이라고 해도 사방이 포위된 채 공작성에만 갇힌다면 지금의 승리는 의미가 없었다. 최소한 방어가 유리한 지역을 얻어야 했다. 계획이 성공해 방어진지를 구축한 동부지역을 얻게 된다면 약간만 보수하더라도 충분히 적군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었다. 고산지대인 쿠타하타영지로 올라오는 길목을 차단한다면 적군이 대군으로 온다고 해도 방어의 숨통은 트였다. 일명, 회색여우 작전의 기본 골자였다.

전사로 전투만 하는 철장패로서는 상상하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작전을 하량은 멀리서 몇 가지 정보를 통해 기획해서 보내었다. 새삼 책사라는 존재가 무섭다고 느껴졌다. 철장패 독단으로 무턱대고 세운 작전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하량의 입김이 작용한 작전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믿음이 갔다.

한편으로는 가슴이 들떠서, 다른 한편으로는 긴장감에 목이 말랐다. 철장패가 애써 긴장을 누른 채 떠오르는 태양을 응시할 때, 계단을 급박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총사령관님, 큰 일이 났습니다. 살파성으로 향한 보급대가 적군의 공격으로 괴멸됐다는 보고입니다. 남은 병력이 없어 주허평백작에게 보낼 보급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외치는 부관 김현우의 말에 상황실로 발길을 옮겼다.

``보급대가 완전 괴멸이 되었다는 말인가? 적군에게 그럴 여유가 없을 텐데, 자세하게 말해라."

옥상의 계단을 내려가며 부관에게 묻자 김현우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습니다. 간단히 상황을 듣고 손백작님의 명령으로 달려온 길입니다."

상황실에 도착하자 새파랗게 질린 손국부백작에게서 지도에 빨갛게 표시된 세 곳을 볼 수 있었다. 살파성과 연계가 된 곳이었다.

``살파성은 중요한 곳이라 보급대에 신경을 썼습니다만 적에게 소드마스터 급이 다섯 기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지금 제대로 대응할 병력이 없어 난처한 상황입니다. 염하상 만인장이 이끄는 보급대는 서둘러 산을 근거로 적군에 대항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적군의 소드마스터가 문제여서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소드마스터 다섯을 해결하면 끝나는 문제입니까?"

철장패의 질문에 손국부백작은 주변의 가신들에게 몇 가지 대답을 구했다. 그리고 확신이 서자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분명한 대답을 듣자 철장패는 심안호 호위를 불렀다. 항시 총사령관에게 근접해 호위하던 심안호 부장은 총사령관의 얼굴을 직시했다.

``당장 열 명을 이끌고 살파성으로 향한 보급대를 구해라. 거기에 소드마스터 다섯 놈이 깐죽거린다고 한다. 빨리 해결하고 와라!"

``넵,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기사로서 허리를 숙인 심안호 부장은 서둘러 영주관을 떠났다.

한 문제가 해결되었다. 철장패는 손국부백작의 얼굴에서 안도하는 기운이 퍼지자 가볍게 안았다가 풀었다.

``문제가 생기면 머뭇거리지 말고 나에게 협조를 구하십시오."

상황실에서 나온 철장패는 다시 통신실에 들어갔다. 마법단장 피코코 단장이 진두지휘하며 소식을 적어 메모하고 있었다. 잠시 살피다가 나왔다.

사건이 발생하면 직책에 따라 어려운 문제일 수 있었다. 무력을 담당하는 기사는 보급에 관한 애로가 컸다. 반대로 치안과 보급을 위주로 하는 왕국군은 무력이 약해 조심스러웠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사건이 생길 때마다 속으로 끙끙 앓고 혼자서 해결하려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특히 상관이 어려운 사람이면 보고를 하지 않는 경우마저 생겨 간단하게 해결될 사건도 어렵게 꼬이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난감한 사항이라도 신속하게 보고가 된다면 지휘관에 능력에 따라 쉽게 해결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너무 상관이 가볍게 보여도 문제가 발생하기에 적당한 거리와 태도가 필요했다.

지휘소에 들어가자 전투의 이모저모가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철장패는 아직 전투의 개략에 대해 접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잠령해교남작에게 수고하라고 말하고 나왔다.

이유야 어쨌든 사상자가 상당히 나왔을 것으로 여겨졌다. 회색여우 작전에 희생되는 병사들을 직접 듣는다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피할 수는 없었지만 전투의 향방이 결정이 되는 상황에서 듣고 싶었다. 무엇보다 제대로 싸울 수 있게 돕는 게 우선이었다. 그 전까지는 전투보고를 나중에 듣고 싶었다. 최소한 급박한 일이 아닌 이상은 부하들을 믿어야 했다. 또한 한없이 의지했다. 그 누구보다 애간장이 녹을 정도로 불안했지만 그만큼 부하들에 대한 신뢰가 컸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부하들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부하들의 능력을 확신하지 않았다면 담담한 얼굴로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영주관의 옥상에 올라 공작성을 살피던 철장패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게 있었다. 그건 공작성에서 패군에 대한 강한 반발심이 없었다. 약한 반발이야 끊임없이 성 안의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감당할 수준이었다. 술꾼의 고성방가와 함께 벌어지는 난투극이나, 십대 소년으로 보이는 집단이 호승심에 대항하는 것도 있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조직적인 테러였다. 각 관청에 벌어지는 마법공격이나 관리의 사살은 아직 없었다.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조심했기에 공작성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 증거로 영지민들의 생업이 전쟁 와중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마갑기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마갑기사뿐이라는 생각이 전제가 되었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가만히 바람의 흐름을 느끼며 철장패는 눈을 감았다. 두세 시간만 있으면 전쟁의 윤곽이 드러날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두세 시간이 흐르면 쿠타하타영지의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할 결심을 하며 패배했을 경우에 탈출할 방법과 대항작전을 떠올렸다. 승리했을 경우에 확실하게 잡아야 할 요새는 물론이고 새롭게 새우게 될 방어벽마저 구상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많은 사상자가 없는 전투였으면 싶었다. 전사로서 너무 마음이 약한 희망이었지만 총사령관이 되어 처음으로 부하들만 의지해서 싸우는 전투였다. 그렇기에 부하 하나하나의 목숨이 철장패의 마음을 고동치게 만들었다. 제발, 사상자가 많이 나지 않기를 바라고 소원했다.

조용히, 운명의 시간을 기다리는 철장패 옆을 부관과 부장들이 침묵을 유지한 채 같은 마음으로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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