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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님의 서재입니다.

전쟁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관해
작품등록일 :
2011.11.10 19:59
최근연재일 :
2015.12.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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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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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전쟁이야기 63 - 위험한 순간5

DUMMY

연회는 독살 시도가 일어났어도 계속 이어졌다. 왕세자가 무도회가 나타나지 않자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하타곤왕국으로 급한 일에 생겨 떠났다는 소문부터 애인과 도피 행각을 벌여 잠적했다는 뜬소문까지 왁자지껄하게 귀족들의 입과 귀를 즐겁게 했다.

사육자 109호, 연회에서 사용하는 이름은 담연궁이었다. 서류상으로 황보후작의 숙부인 황보금석이 후원자로 등록이 된 상태였다. 황보금석의 친척으로 궁궐의 대연회장에 출입했다.

어린 나이에 이성을 찾았을 때는 오크동굴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생존한 다음에는 유일한 휴식처에서 두 명의 감시자이자 스승에게서 글과 말을 배웠다. 그리고 몇 가지 동작을 익혔다. 처음에는 가르치는 동작의 의미를 몰랐다. 오크들의 동굴에 떨어지고 나서야 살기 위한 수단이라는 걸 깨달았다. 단검 한 자루를 들고 오크동굴에서 나왔을 때는 반병신이 된 상태였다. 두 명의 감시자이자 스승은 부러진 뼈를 맞추었고 상처난 곳에 약을 발랐다. 도저히 움직이지 못할 몸을 완쾌시키자 시키는 대로 모든 걸 따라서 배웠다.

시간이 흘러 청년이 되었을 때는 잠입, 암살, 독살, 고문 및 살인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곳에 가면 일정한 의미를 상징하는 암호표시가 나타난다. 암호에 따라 자리를 이동하면 명령서만 달랑 있다. 아무 것도 없으면 그냥 스치듯 지나가면 되었고 암호가 새겨진 봉투가 있다면 슬그머니 집어서 호주머니에 넣었다.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다. 발에 실이 묶인 잠자리처럼 자유가 없는 인생이었다. 도망치려는 시도는 몇 번이나 했지만 몸뚱이에는 7서클 흑마법사의 금제가 걸린 상태였다. 지독한 고통으로 한 달에서 일 년 정도를 고생하고 나면 도망칠 엄두도 나지 않게 변했다. 지시하는 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단순히 잠향령주라고 일컬었다. 어릴 때부터 가르쳤던 두 명의 스승이 한 말이었다. 그들이 죽은 뒤였으니 물어볼 상대마저 없었다.

명령서에는 죽여야 할 상대와 방법 등이 적혀 있고, 임무를 완수하면 돈이 은행에 입금이 되었다. 입금이 될 때마다 입금인의 이름은 달랐다. 때로는 이번의 살인청부처럼 독약과 필요한 선금은 물론이고 궁궐로 잠입할 수 있는 마차까지 준비하는 특별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마차를 모는 마부까지도 사정에 대해 입을 꾹 다무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번의 독살은 끝난 상황인데 철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살인대상이 죽지 않았다.

담연궁은 무도회에 나오지 않는 왕세자를 잠시 생각했다. 살인대상에게 불쌍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운이 나빠 잠향령주에게 찍혔나 보다 여기며 빨리 일을 끝내고 돌아가서 쉴 생각만 가득했다.

오일 동안 왕세자가 연회에 나오지 않자 불길한 소문은 점점 퍼졌다. 왕세자에 대해 궁금해서 질문하는 귀족들에게 하량은 대답은 썰렁했다. 복도를 걷다가 잘못 넘어져 코가 깨졌다는 말에 와르르 웃어야 했다. 왕세자의 코가 낫는 대로 나온다는 설명에 불길한 소문은 번지지 않고 입담 좋은 마담의 단골소재가 되었다.

왕세자 독고명린, 그는 세자궁에 마련된 아담한 정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거닐었다. 가끔 휠체어를 멈추고 직접 걸으며 꽃이 만발한 정원을 산책했다.

그동안 이공주와 사왕자, 오공주와 육공주가 왕세자에게 조용히 다녀갔다. 휠체어를 탄 상태로 내성으로 가서 종종 어머니를 뵙기도 했다. 물론 귀족들의 시선을 의식해 마차를 탄 상태로 내성으로 들어갔다.

몸이 아픈 왕세자로 인해 하량과 철장패는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철장패는 떠나고 싶지 않아도 간혹 일이 생겨 떠나야 했다. 떠나기 전에는 꼭 여포와 고순을 왕세자에 바짝 근접해서 호위토록 지시를 내렸다. 서둘러 돌아와 왕세자를 호위하는 여포와 고순에게 휴식을 명했다. 암살자의 위기 때문에 몬스터처럼 감각이 예민한 여포와 고순이 필요했다. 감각이 남다른 루아족 청오는 근위대장실에서 기사총단 부사령이 된 묵대형과 티격태격하며 철백작의 지시사항을 점검했다.

의외로 오일 동안은 조용했다. 자객도 없었고 큰 사건도 없었다. 그렇지만 철장패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패야, 이제는 괜찮아. 가서 일해라. 너처럼 최고위급 지휘관이 하릴없이 놀면 백성들이 그만큼 고생한다."

독고명린의 말에도 듣는 척도 않고 조용히 휠체어만 밀었다. 떼를 쓰며 가라고 야단치면 그제야 한마디 했다.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철장패의 심각한 표정에 시무룩해진 독고명린은 말이 없어졌다.

``...아직도 내 목숨을 노릴까?"

``우리가 예상하는 곳에서 너를 노렸다면 잠도 못 자고 너의 죽음을 기다릴 것이다."

냉정한 철장패의 확답에 독고명린은 울화통이 터지기도 했고 겁이 나기도 했다. 크게 위급한 상황에 처한 후로는 겁을 먹고 싶지 않아도 몸뚱이가 독약의 맛을 기억했다.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는 무척이나 달콤했다. 어느 순간부터의 고통은 뼈 마디마디가 온통 바늘로 쑤셨다. 팔과 다리를 움직이려 해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지옥에서 겪는 고통이 있다면 그때 느꼈던 아픔이었다. 독약을 먹어도 조용히 죽는 독약이 있다고 하는데 운이 나쁘게도 정반대의 고통을 경험하게 하는 독약이었다. 마지막에는 머리가 빙글빙글 돌면서 뭐라고 외친 기억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틀 동안의 추위와 공허함은 너무나 무서웠다. 억지로 이를 악물었다. 잘못하면 두려움과 분노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부하가 생긴다는 건 쉽지 않은 고통을 요구한다. 너는 한 나라의 왕세자이다. 그만한 고통은 가볍게 이겨내라. 앞으로도 비슷한 고통은 종종 찾아올 것이다. 보다 냉철한 머리와, 보다 뜨거운 심장으로 너를 지켜라. 고통이 무섭다고 피한다면 너를 죽이려고 하는 자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 된다. 그도 처음에는 평범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지배자로 거듭나는 시험대에서 한 번씩 고통을 피하다 보니 너를 죽이려고 하는 인간 쓰레기로 전락했다. 쓰레기로 변한 귀족은 보다 쉽게 권력을 얻고자 방해가 되는 너에게 독약을 썼다.... 지지 마라."

눈이 시뻘개진 독고명린은 힘겹게 말했다.

``장패야, 너도 비슷한 경험이 있니? 나처럼 이런 고통을 경험한 적이 있냐고?"

점점 비명이 되어 외치는 독고명린에게 밀던 휠체어를 멈추었다.

``...나는 철패왕의 후예다. 고통은... 나의 친구다."

별로 대단한 말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고통이 친구로 여겨질까 싶었다.

조용하게 시간은 흘렀다.

헐레벌떡 하량이 뛰어왔다.

``오늘부터 무도회에 나갈 수 있겠어? 도저히 귀족들의 성화를 못 견디겠다. 코가 깨졌어도 좋으니 얼굴이나 보자고 야단이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움직이자. 궁궐에 잠입한 독사도 잡아야 하고... 어쨌든 명린아, 걸을 수 있겠어?"

독고명린은 금방까지 너무 아파서 못 견딜 것 같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도 못 쉬게 힘이야 들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친구들의 눈동자를 눈으로 더듬으며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뛰지 못해서 탈이지, 그럭저럭 걸을 정도는 된다."

오지 마라고 외쳐도 저녁은 왔다. 대연회장에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몰랐다.

막상 대연회장으로 오자 독고명린은 입술이 새파랗게 변했다. 벌벌 떨었다.

``어이, 왕세자양반. 얼굴을 파란 물감으로 온통 칠했네. 거기에 광대분장만 하면 딱이겠다. 멋진 광대로 등장할 마음이 없어? 당장이라도 분장을 해줄까?"

농담을 잘하지도 않던 철장패의 짓궂은 말에 왕세자의 눈은 도끼눈이 되었다.

``왕세자가 광대로 무도회에 나선 적은 없었어!"

엉뚱한 것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렇군... 이번에 새로운 기록이라도 세워. 잘하면 역사에 오래오래 남겠네."

진담으로 하는 말처럼 들렸다. 화가 치솟아 독살을 걱정할 겨를이 없었다. 갑자기 걷다가 멈춘 독고명린은 철장패를 불러세웠다.

``좋은 생각이 났다. 네가 광대로 분장해라. 딱 어울린다!"

``말같은 소리를 해...."

붙잡으려는 왕세자를 피해 당장 도망부터 갔다.

발이라도 걸어 멈춰 세우려던 독고명린은 얼떨결에 대연회장까지 왔다. 천천히 무도회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걸어야 했다.

입구에서 하량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철장패에게 남들이 못 보게 몸을 돌려 주먹을 쥐었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라도 챌까봐 얼른 주먹을 내리고 앞으로 한 걸음씩 걸었다.

두 눈을 잠시 감고 살짝 떴다.

``아직 코가 낫지 않은 관계로 얼굴이 시퍼렇네요. 제가 없는 동안에 많이 이뻐지고 멋지게 변하신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오래 자리를 비우면 더 예뻐질까 두려워 나왔습니다. 그럼, 무도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왕세자의 말과 함께 왈츠가 흘렀다. 궁정악대의 화려한 연주에 맞추어 연회장은 들뜨기 시작했다. 신나게 춤을 추며 돌아가는 담연궁은 곁눈질로 왕세자의 몰골을 보았다. 독약을 이기고 목숨을 건졌다. 대단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어차피 다시 죽을 목숨이었다. 왕세자에게 조금이라도 남은 시간을 즐기도록 내버려두었다.

예민하게 감각을 세우던 철장패는 미약한 살기를 느꼈다. 하지만 이내 사라졌다. 상당한 경지의 암살자였다. 의외로 암살자가 대단한 놈이라고 여겨졌다. 정확히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수 없었지만 이곳에 있는 걸 확인했으니 천천히 범위를 좁혀야 했다. 암살자의 눈앞에서 먹음직한 먹이는 펄펄 뛰어다니고 있었다. 왕세자라는 이름으로, 목숨을 건 도박이 시작되었다.

하량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망울을 반짝이며 묻는 듯한 시선이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심각하게 변한 하량은 대연회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평범한 귀족의 복장으로 차려입고 철장패는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때로는 하인이 들고 다니는 쟁반에서 와인을 들고 한 모금을 마시기도 했다. 살짝 구운 고깃살을 몇 조각 입에 넣기도 했다. 음식이 놓여진 자리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없었다. 춤추며 시끄럽게 떠들기에 바빴다.

왕세자에게 귀족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뚱뚱하고 못 생긴 것 같은 아줌마들이었지만 인기가 많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될 수 있으면 예쁜 아가씨가 왕세자에게 접근하지 않기를 바랐다. 잘못하면 예쁜 아가씨에게 온 신경이 쏠릴까 두려웠다.

하량에게서 신호가 왔다.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미끼를 문 암살자가 왕세자에게 접근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직 암살자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왕세자 곁에는 암살자가 없었다.

최소한 암살자는 유능한 놈이었다. 유능하다는 뜻은 자세가 안정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일부러 불안정한 자세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한번 자세가 안정이 되면 불안정한 자세도 쉬운 게 아니었다. 병에 오래 걸리거나 술로 인해 몸이 바뀌지 않는 이상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예의 주시하는 자의 숫자는 축소가 되기 시작했다. 한 명씩 철장패의 시선속에서 까발려졌다.

또다시 오늘의 연회가 끝날 시간이 다가왔다. 가볍게 몇 번의 춤도 추었지만 될 수 있으면 못 생긴 아가씨와 췄다. 잘못해서 아름다운 아가씨와 춤을 춘다면 왕세자에게 집중이 되어야 하는 시선이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왕세자가 휴식을 갖기 위해 물러났다. 벌써 중간에 몇 번을 쉬었지만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오랫동안 왕세자가 있을 필요는 없었지만 이번 기회에 암살자를 잡아야 했다. 다음으로 미루면 언제 잡을지 기약할 수 없었다.

왕세자는 계획된 탈출로를 따라 움직였다. 철장패는 시선 안에 담아두었던 스물다섯 명 중에서 한 명이 사라진 걸 발견했다. 정확한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주시하던 귀족 중에 한 명이었다. 철장패는 하품을 하며 뻐근한 팔을 쭉 뻗으며 크게 벌렸다.

부사관 김현우는 철백작만 살피다가 신호를 받자 부리나케 움직였다.

왕세자가 향한 곳은 다른 곳이 아니었다. 대연회장 3층의 휴식실이었다. 전에는 5층의 휴식실에서 하인의 도움을 받으며 안내가 된 곳으로 들어갔었다. 이번에도 3층에 들어오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하인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뒤따라 온 하량이 고개를 흔들었다.

넉넉한 소파에 앉을 생각이던 독고명린은 의문으로 고개를 들었다.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였다. 다급한 태도로 팔을 휘두르며 앉지 마라는 신호를 연신 보냈다. 그리고 하는 소리가 엉뚱했다.

``영예로운 왕세자님께서 연회장의 일로 노곤하시겠지만 이곳에서 쉴 틈이 없습니다. 긴급한 일이 생겨 세자궁에 가셔야 합니다."

예정에도 없던 이야기가 하량의 입에서 나왔다.

``왜... 이러는 거야?"

다급하게 휴식실의 문이 열리며 철장패가 들어왔다. 그 뒤를 여포와 고순이 뒤따랐다.

``그만 나오지?"

철장패의 말과 동시에 여포와 고순은 창문을 막아섰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는 철장패의 말에 왕세자는 영문을 몰라 눈을 끔벅거렸다.

``따라온 기사들은 이곳에 있는 하인까지 모두 체포해라. 한 놈이라도 놓치면 왕세자 살해 시도범을 놓친 것이니 죽었다고 생각해라. 상당히 강한 놈들이라 둘이서 합격해야 할 것이다."

왕세자를 끌어 몸 뒤에 숨긴 철장패는 긴 안락의자를 걷어찼다. 그 속에서 난데없이 그림자가 생기며 천장으로 파고들었다. 나무로 얼키설키 만든 천장이 진흙이라도 되는 양 그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여포의 손이 그림자의 발을 잡고 끌어당겼다. 한 번 크게 힘을 주자 여지없이 끌려나오며 바닥에 내팽개쳤다.

``어, 이상하다. 내 몸을 만지는 놈도 있었네. 평범한 사람은 잡아도 헛손질인데...."

그림자의 어이없는 하소연에도 상관없이 여포의 주먹은 그림자를 향해 퍼붓고 있었다.

궁궐이라 무기 착용을 할 수 없었던 여포는 손에 맞지 않는 장봉 대신에 단봉으로 그림자를 때려야 했지만 그림자에게는 창과 칼이 먹히지 않았다. 오직 감각 끝에서 걸리는 기감으로 몸뚱이를 잡아챌 수 있었다.

철장패는 느긋한 표정으로 싸움을 구경했다.

``저놈이 쓰는 건 쉐이드라는 기술이야. 쉐이드는 암살자라고 해서 아무나 배우는 기술이 아니야. 무슨 말이냐면 어릴 때부터 배워야 가능한 기술이야. 암살자로 자라기 딱 맞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다섯 살이 넘기 전에 배워야 가능한 기술이야. 지금처럼 특별한 감각이라고 해야할까 마나라고 할까 그게 아니면 건드리지도 못해. 다크포스라고 부르는 학자들도 있어. 다크포스를 사용하지 못하는 기사들은 그림자를 공격해도 소용이 없어. 신성력이야 당연히 그림자를 맞추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해. 그림자의 성질이 악이 아니라서 그래. 일반사람들이 만져도 그림자를 통과하듯 지나쳐 웃기는 기술이야. 하지만 암살자에게는 축복이나 다름없는 기술이기도 해. 재미난 놈이 명린이를 먹이로 삼았었네."

가볍게 말하는 철장패에게 독고명린은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뭐가 재밌냐, 살 떨려 죽겠구만."

철장패의 설명에 마음이 흔들린 건 독고명린뿐이 아니었다. 담연궁으로 불린 사육자 109호도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이 익힌 기술이었지만 처음으로 듣는 기술명이었다. 확실히 들리는 말처럼 같은 효과를 가졌다.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여포가 내지르는 손발에 정신없이 대응하는 게 우선이었다.

여포와 싸워서 한 대를 때리면 두 대를 맞았다. 맞으면 온몸이 출렁출렁하며 아팠다. 109호는 도망칠 기회만 노렸다.

``그림자씨,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라.... 그건 그렇고 밑바닥에서 불리는 이름이 뭐냐?"

지지부진한 싸움이 계속 되었지만 109호도 쉽게 도망가지 못했다.

``내가 흑영이다. 이름을 밝혔으니 너희만큼은 죽일 테다. 오늘부터 밤을 조심해라."

``재밌는 놈이네. 흑영이라 못 들어본 이름인데, 내가 활동하던 때에 듣지 못한 이름이다. 요새 활동했냐?"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뒤로 피해 잠깐 철장패를 보았다.

``1년이 됐다. 지금은 내가 최고다."

``사신이 나에게 깨지고 엉뚱한 놈이 나타난 모양이네. 그거 아냐? 사신의 그림자를 내가 먹었다는 걸... 그래서 그 영감은 조용하게 산다. 나를 보면 물건은 팔 생각을 않고 그림자를 내놓으라고 야단만 친다. 크크크."

사신은 암살자의 전설이었다. 갑자기 은퇴를 하는 통에 새로운 신화를 열기 위해 떠난 것으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쉐이드를 사용할 때에 몇 가지 단점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냐? 배울 때 안 가르치던? 혼자서 죽으라고 해도 못 배우는 기술인데 배웠다면 스승이 있었을 거다. 못 들었어?"

묵묵부답으로 침묵을 지키는 109호였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어쩐지 나를 보고도 얼굴이 태연하드라. 크크크, 이거 그림자를 또 하나 챙기게 생겼네."

손바닥 위에 도깨비불이 떠올랐다. 갑자기 등장하는 도깨비불에 그림자가 휘청휘청했다.

``주인으로 말한다. 내 발밑에 거하라!"

그림자는 도깨비불에서 멀어지려고 발버둥쳤지만 점점 철장패의 발바닥으로 빨려갔다. 그리고 이내 오른발에 붙잡혀 마구 요동쳤다.

``이것 봐, 흑영이라고 불리는 놈. 이제 너의 그림자를 내가 취하면 너는 평범한 인간이 된다. 믿기지 않는가 본데, 내가 바로 철패왕의 후예이시다. 어디서 함부로 까불고 있냐. 아, 밑바닥에서는 미친똘아이라고 불렸다. 달리 꼴통이라고 부르는 놈들이 있다. 들어봤냐?"

경악에 찬 외침이 터졌다.

``뺀질이와 꼴통?"

``크크크, 그래 맞다. 뺀질이와 꼴통 중에 꼴통이 나다."

지하세계에는 패나라의 천왕산을 흉내를 내어 칠대천왕이 존재했다. 그 중에 둘이 뺀질이와 꼴통이었다. 이름이야 엿가락처럼 이상했지만 지하세계에서 이름을 날렸다면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얼굴도 이름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둘이었지만 언제나 둘은 함께 행동했다. 그리고 줄곧 서로를 부르는 게 꼴통과 뺀질이였다. 그래서 굳어진 이름이었다.

암살범이 잡히는 과정에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지만 세자궁으로 이동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대연회장에서는 아직도 작은 여운이 남아 시끄럽게 떠들었다.

아무도 없는 자리에 함께 앉은 숫자는 여섯 명이었다. 여포와 고순이 움직이지도 못하게 109호의 몸을 잡은 상태에서 사연이 술술 나올수록 철장패는 골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왕세자 독고명린과 하량의 똥고집이 엉뚱한 곳에서 발동했다. 놈을 가엽다니, 불쌍하다니, 멋진 쉐이드 기술을 보여달라며 암살범에게 달라붙었다. 무섭다며 겁에 질려 피한 게 방금 전이란 사실마저 잊었다. 암살범의 배후를 캐다가 이름이 백구호란 말만 듣지 않았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암살범을 시종으로 쓰겠다는 독고명린의 외침이 터진 후부터 찝찝했다.

어쩔 수 없이 암살범과 단 둘의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엉겁결에 얻은 그림자를 돌려주었다. 물론 저주와 비슷한 제약을 걸었다. 철장패는 암살범을 믿지 못했다. 하량과 독고명린에게 아직 순수한 면이 남아 있었다.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괜히 철장패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왕국군에서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병사를 왕세자에게 붙이는 계획은 취소했다.

밑바닥에서 사는 놈들을 신뢰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오직 실력만 인정하는 세계였다. 독고명린은 겁에 질린 상태였지만 용기를 내어 외친 후로는 뭔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며칠 뒤에는 흑마법사의 금제마저 풀었다. 그것도 다섯 명의 7서클 흑마법사가 동원되어 가까스로 금제를 풀자 백구호의 표정은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로 돌변했다. 그리고 진정한 마음으로 왕세자 독고명린에게 절했다.

인생사 요지경이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암살범을 시종으로 삼는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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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89 발칸정중사
    작성일
    08.10.23 21:00
    No. 1

    잘 보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과거가 조금씩 흘러 나오는군요...
    건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8 닷지킹
    작성일
    08.10.23 21:37
    No. 2

    중간에 "철장패는 떠나고 싶어도 간혹 일이 생겨야 떠났다." 는
    "떠나고 싶지않아도 간혹 일이생겨 떠나야했다." 가 자연스럽지 않을 까요?

    그리고 나중에 수정 들어가면 뺀질이와 꼴통은 적당한 다른 별명으로 바
    꾸는 것을 고려해 보세요. 조금 깬다는 느낌이어서요.

    잘 읽고 갑니다. 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나니
    작성일
    08.10.23 23:03
    No. 3

    잘 보고 갑니다. 살수와 기사의 기예가 분야가 틀리다 할지라도 처음 실버나이트에게 죽을둥 살둥 하던 것과 너무 비교 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2 관해
    작성일
    08.10.24 09:37
    No. 4

    발칸정중사님~, 현현검주님, 나니님 감사합니다. ^^;;

    현현검주님, 수정하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뺀질이와 꼴통이란 단어가 깨죠? ^^'' 저도 애정과 불만이 교차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만 모르겠습니다. 우선 밀고 나갑니다.

    나니님의 충고도 감사합니다. 전체적으로 그 부분이 유난히 튀죠.^^;;
    처음 치르파노와의 결전이 읽을수록 이상하게 다가온다는... 하지만, 설정에서 제약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그렇게 풀려야 정상입니다만... ... 껄끄럽죠. 뭐, 우선 밀고 갑니다.

    이번 글도 마지막에서 장면을 더 넣어야 리듬이 사는데 팍 죽였습니다. ㅡㅡ;;
    감당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간단하게 10문장 내외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1차수정 때... 걸리는 리듬에 따라 내용이 바뀔 것 같습니다.

    고마운 충고를 주어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9 爆風처럼
    작성일
    08.10.29 00:59
    No. 5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김성구
    작성일
    09.05.08 23:32
    No. 6

    초반에 나오는 말중에 예전의 힘으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나오잔아요..

    글어면 예전에 힘이라는게 밑에 동네서 주름잡던 힘인가요??

    무지 궁금해서 그러는거니... 답변좀..ㅋㅋㅋ 안해주셔도 될듯하네요..

    읽다가 보면 나오겠죠 머 ㅎㅎㅎ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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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9 sfartar
    작성일
    11.06.28 23:49
    No. 7

    좋은 수하를 두었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3 별이
    작성일
    12.04.19 11:58
    No. 8

    다시 정주행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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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전쟁이야기 87 - 퇴각, 퇴각, 고립된 독고붕린3 +3 09.03.02 9,948 64 20쪽
86 전쟁이야기 86 - 퇴각, 퇴각, 고립된 독고붕린2 +5 09.02.27 9,733 70 16쪽
85 전쟁이야기 85 - 퇴각, 퇴각, 고립된 독고붕린 +4 09.02.20 10,246 69 16쪽
84 전쟁이야기 84 - 전사의 외침4 +4 09.02.19 10,132 74 19쪽
83 전쟁이야기 83 - 전사의 외침3 +3 09.02.17 10,097 73 18쪽
82 전쟁이야기 82 - 전사의 외침2 +4 09.02.13 10,026 76 20쪽
81 전쟁이야기 81 - 전사의 외침 +4 09.02.13 10,621 68 24쪽
80 전쟁이야기 80 - 하량의 작전3 +16 08.11.14 11,175 71 37쪽
79 전쟁이야기 79 - 하량의 작전2 +6 08.11.12 10,761 73 13쪽
78 전쟁이야기 78 - 하량의 작전 +7 08.11.11 11,187 73 22쪽
77 전쟁이야기 77 - 오군과 육군의 거병4 +9 08.11.10 11,041 68 16쪽
76 전쟁이야기 76 - 오군과 육군의 거병3 +6 08.11.07 11,170 73 13쪽
75 전쟁이야기 75 - 오군과 육군의 거병2 +8 08.11.06 11,286 74 16쪽
74 전쟁이야기 74 - 오군과 육군의 거병 +8 08.11.05 11,364 78 16쪽
73 전쟁이야기 73 - 불타오르는 전쟁4 +7 08.11.04 11,511 79 16쪽
72 전쟁이야기 72 - 불타오르는 전쟁3 +10 08.11.03 11,602 73 19쪽
71 전쟁이야기 71 - 불타오르는 전쟁2 +5 08.10.31 11,736 81 15쪽
70 전쟁이야기 70 - 불타오르는 전쟁 +11 08.10.30 12,007 66 13쪽
69 전쟁이야기 69 - 수도 함락, 환호6 +4 08.10.29 12,029 76 13쪽
68 전쟁이야기 68 - 수도 함락, 환호5 +8 08.10.28 11,921 76 16쪽
67 전쟁이야기 67 - 수도 함락, 환호4 +8 08.10.27 12,317 110 15쪽
66 전쟁이야기 66 - 수도 함락, 환호3 +7 08.10.26 12,177 72 15쪽
65 전쟁이야기 65 - 수도 함락, 환호2 +13 08.10.25 12,495 71 15쪽
64 전쟁이야기 64 - 수도 함락, 환호 +6 08.10.24 12,853 73 12쪽
» 전쟁이야기 63 - 위험한 순간5 +8 08.10.23 12,298 73 21쪽
62 전쟁이야기 62 - 위험한 순간4 +7 08.10.22 11,985 71 16쪽
61 전쟁이야기 61 - 위험한 순간3 +9 08.10.21 11,919 78 19쪽
60 전쟁이야기 60 - 위험한 순간2 +7 08.10.20 11,846 76 22쪽
59 전쟁이야기 59 - 위험한 순간 +6 08.10.19 12,669 75 25쪽
58 전쟁이야기 58 - 연합작전 그리고 전복4 +12 08.10.17 12,335 6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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