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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pia 님의 서재입니다.

무격(武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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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usepia
작품등록일 :
2022.05.22 14:07
최근연재일 :
2022.08.14 13:34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6,331
추천수 :
116
글자수 :
180,418

작성
22.06.09 21:05
조회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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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9쪽

제 20장 : 그날의 비밀

DUMMY

[기필천]


예속과 천관이 마주 앉아있다.

천관의 뒤로 이선이 배석했다.

천관이 공창으로 말했다.


“예속, 시량과 박재화는 아직입니까?”

“매타는 어쩌고 있소?”


천관이 마뜩잖은 표정을 짓고는 공창의 높낮이를 조절했다.

낮게 위용위용하는 소리가 깔리고 예속의 귓전에서 속삭이듯 소리가 전해졌다.


“매타는 마희가 아닙니다.”


예속이 합죽선을 펼쳐 귓전에 대고 천천히 흔들었다.

천관의 공창이 풀리며 단조로운 음으로 들린다.


“매타를 만나야 시량과 박재화가 있는 곳을 찾겠지요.”

“설마 무격이 그런 사소한 일 조차 처리하지 못하겠습니까. 매타는 매타의 일이 있습니다.”


천관이 빈정거리는 표정을 짓고는 공창으로 다시한번 장난을 걸었다.

이번에도 예속은 차를 마시며 평온한 얼굴로 합죽선을 살랑살랑 흔들 뿐이었다.

천관이 차에 입술을 갖다 대며 손목에 찬 방울을 찰랑하고 건드리자 방울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우며 벽과 부딪혀 점진적인 파장을 만들어냈다.

천관의 장난이 지속되자 이선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들어갔다.

천관이 소리로 내는 파장은 웬만한 도력을 갖춘 사람들도 참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방어막을 친 것이었다.

예속은 합죽선을 접어 자신의 손바닥에 탁하고 내리쳤다.

합죽선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천관의 방울소리가 멈추고 파장의 방향이 뒤바뀌어 천관을 향해 바람을 일으켰다.

급하게 바람을 갈라 피한 천관의 오른쪽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매타는 천신당에서 무얼 하고 있소?”

“천신당 내의 일은 폐하도 묻지 않으십니다. 오늘 제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시량과 박재화 때문이었습니다. 헌데 아직까지 진척이 없다시니 가봐야겠습니다. 오랜만에 예속 형제님들끼리 대화라도 나누다 오시지요. 저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천관이 두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뒤쪽에 앉아있는 이선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자리를 떠났다.

이선은 명상을 끝내고 천관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예속은 자리에 앉아 찻잔에 입을 댈 뿐이었다.

앞좌석으로 자리를 옮긴 이선이 예속이 찻잔 옆에 내려둔 합죽선을 집어 들었다.


“이안이 합죽선을 쓰는 건 정말 오랜만에 보네.”

“예속!”


이선이 또 자신을 아명으로 부르자 예속이 단호하게 외쳤다.

이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무격이 서경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매타가 천신당에 있는 걸 본적이 있어?”

“아니, 나도 매타를 직접 보진 못했어. 다만 천관이 데려갔으니 천신당에 있겠다 생각한 거지.”

“시량과 박재화는 천관도 따로 쫓고 있을테니 그들의 동태가 궁금했던 건 아닐테고?”

“이안이 무슨 생각인지 떠보고 싶었던게지. 보기 좋게 당하고 나갔지만, 나를 대동한건 혼자 찾아와봤자 만나주질 않을테니 앞세운거고.”

“뭐 그가 제 발로 걸어들어와 준 덕에 그의 매타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네만.”


예속은 더 이상 말을 잇진 않았고 이선도 그런 예속에게 다시 묻지 않았다.



[서경 : 자비원]


“그날 일이 어떤 날을 말하는 것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아. 그 둘을 뒤쫓았네.”



##



타석과 지훤이 미행 중인 사실을 알리 없는 남녀는 서로 이웃한 채 살고 있었다.

두 집 모두 단칸방과 부엌이 전부인 작은 초가집이었는데 두 사람은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기 직전 분을 삭이지 못한 남자의 고함으로 언성이 높아졌다.


“자비원의 지배인은 외지 사람이라 우리 상황을 몰라 너를 지목했다 치자. 너는 무엇이 당당하여 그들을 내게 데려온 것이냐.”

“치매라도 오는 것이오? 도대체 왜 맨날 같은 말을 반복하여 사람 피를 말시는 게요?”

“치매? 무격들이 찾아왔을 때 대충 잘 모르겠다. 둘러댔으면 됐을 일이다.”

“아니 직접 둘러대면 될 거 아니요. 게다가 둘러대서 그들이 그냥 돌아갔다면서 왜 생난리를 피우는 게요?”

“생난리? 내가 지금 생난리를 안치게 생겼느냐? 네년이 그날처럼 또 입방정을 떨어 큰 화를 몰고 올뻔 하지 않았느냐?”


두 사람의 공방이 길어지자 주변 다른 집에서도 사람들이 나왔다.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을 뜯어말리기는커녕 둥글게 둘러싸고 바라만 보았다.

그중 한 노인이 소리를 지르는 차씨 막내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인데 그 날일을 입에 올리는 게냐?”


남자의 말에 차씨 막내는 씩씩거림을 멈추고 입을 꾹 다물었다가 풀며 여자에게 삿대질을 했다.


“저년이 오늘 낮에 무격들을 몰고 왔습니다. 그들이 매타 가문과 누님에 대해 물었구요.”


남자의 대답에 노인은 불같이 화를 내며 여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네 이년 또 네년의 입이 사단이구나! 너 또한 잘 하것이 하나도 없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그 날일을 입에 올리다니. 네 놈도 제 정신은 아니다.”


노인의 말이 끝나자 둥글게 모여있던 마을 사람들이 한발자국씩 앞으로 전진해 점점 작은 원안에 두 남녀를 몰아넣었다.

남녀는 마을 사람들의 행동에 겁을 먹고 바로 무릎을 꿇었다.


“잘못하였습니다. 무격이 나타나는 바람에 당황하여, 절대 나쁜 의도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잘 둘러대 그들을 돌아갔습니다.”


여자가 먼저 머리 위로 손을 모으고 연거푸 절을 하며 살려 달라 외쳤다.

남자도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며 눈치를 봤다.

소나무 가지 위에 올라 아랫 상황을 살피던 타석과 지훤은 서로 시선을 주고 받았다.


“계집은 다시는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하도록 멍석말이 10회, 사내는 그날을 입에 올리지 못하도록 멍석말이 5회에 처한다.”


노인의 명에 마을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여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남자는 겁에 질려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멍석말이가 끝나고 마을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각자의 자리로 흩어져 사라졌다.

두 남녀만이 어렵사리 꿈틀거리며 멍석을 밀어내고 엉거주춤 기어서 집으로 향했다.



[서경 : 자비원]


“그날의 일이란 것은 매타 가문의 일을 말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 이후에 벌어진 어떤 일인 것 같은데 그 이상의 이야기는 없었는지요?”


겸주가 타석과 지훤에게 물었다.


“이후에 모두들 집안으로 들어가 개미 한 마리 움직이질 않더군. 그래서 오늘 밤에 마을을 찾아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아.”


타석은 무격에게 밤에 다시 그들을 만나러 갈 것을 권했다.



##



무격은 여자의 집부터 찾아갔다.

무격이 방문을 열었을 때 여자는 이불을 펴고 누워 울고 있었다.

인기척도 없이 들이닥친 무격을 본 여자가 비명을 지르려 하자 겸주가 재빨리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여자가 바둥거렸으나 이내 겸주가 관자놀이 근처 급소를 누르자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 날이란 게 어떤 날입니까?”


겸주가 묻자 여자의 동공이 흔들렸다.

지훤이 여자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자신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가까이 다가갔다.

이마부터 광대까지 이어진 지훤의 흉터가 용의 문양처럼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고르십시오. 자비로운 겸주의 비폭력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실지, 조금만 힘을 줘도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타석 형님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실지, 귀찮으면 어찌할지 알 수 없는 저와 이야기를 하실지.”


지훤의 말에 여자가 눈동자를 움직여 겸주를 가리켰다.

겸주는 여자의 인중을 눌러 입은 자유롭도록 도왔다.


“제가 그 날에 대해 이야기 했다는 사실은 절대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



서경은 차씨 집성촌이기도 했다.

하지만 매타 가문과 사돈이라는 이유만으로 멸문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곤욕을 치렀고 대부분 집성촌을 떠나거나 성을 바꾸고 살았다.

차씨가 아닌 이들은 그간 차씨 집성촌에서 살며 그들의 보살핌을 받아왔기 때문에 대부분 그들의 비밀을 지켜주었다.

그렇게 그들만의 평온한 일상은 이어지는 듯했다.

적어도 시량과 박재화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늦은 밤, 박재화는 시량을 등에 업고 마을로 왔다.

남자의 집을 어찌 안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박재화는 막무가내로 남자의 집으로 들어섰고 시량을 방에 눕혔다.

그리고 박재화는 당장 남자에게 마을의 모든 약방을 뒤져서라도 말린 붉은 꽃을 구해오라고 했다.

처음에는 시량을 알아보지 못했던 남자가 조카임을 알아채고 시장 내 모든 약방 주인들을 찾아 다녔다.

아침이 돼서야 겨우 구한 꽃잎을 뜨거운 물에 우리는 동안 시량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꽃물을 들고 방으로 들어간 남자가 본 것은 조카 시량이 아닌 고통에 몸부림치는 마희였다.

새빨간 눈을 한 시량이 백지장처럼 하얀 피부 위로 검푸른 핏줄이 솟아 오른 채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남자가 놀라 문밖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쳤고 때마침 집앞을 지나던 여자가 그 모습을 보고 소리치며 달아났다.


“마희다! 마희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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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제 42장 : 비극 22.08.05 47 1 9쪽
41 제 41장 : 드러나는 그림자 3 22.07.31 42 1 9쪽
40 제 40장 : 드러나는 그림자 2 22.07.29 48 1 9쪽
39 제 39장 : 드러나는 그림자 22.07.17 63 1 9쪽
38 제 38장 : 급습 3 22.07.16 51 1 9쪽
37 제 37장 : 급습 2 22.07.10 57 1 9쪽
36 제 36장 : 급습 22.07.10 64 1 9쪽
35 제 35장 : 수수께끼 22.07.03 57 1 9쪽
34 제 34장 : 이상한 물 22.07.02 66 1 9쪽
33 제 33장 : 붉은 이슬 7 22.06.26 68 1 9쪽
32 제 32장 : 붉은 이슬 6 22.06.25 64 1 9쪽
31 제 31장 : 붉은 이슬 5 22.06.20 67 1 9쪽
30 제 30장 : 붉은 이슬 4 22.06.19 78 1 9쪽
29 제 29장 : 붉은 이슬 3 22.06.19 69 1 9쪽
28 제 28장 : 붉은 이슬 2 22.06.18 75 1 9쪽
27 제 27장 : 붉은 이슬 22.06.16 69 1 9쪽
26 제 26장 : 동공 22.06.15 86 1 9쪽
25 제 25장 : 수전(水戰) 22.06.14 92 1 9쪽
24 제 24장 : 사화산 마희 2 22.06.13 92 1 9쪽
23 제 23장 : 사화산 마희 22.06.12 79 1 9쪽
22 제 22장 : 산전(山戰) 22.06.12 89 1 9쪽
21 제 21장 : 그날의 비밀 2 22.06.10 86 1 9쪽
» 제 20장 : 그날의 비밀 22.06.09 80 1 9쪽
19 제 19장 : 의심 22.06.08 97 1 9쪽
18 제 18장 : 우호(友好) 22.06.07 111 2 10쪽
17 제 17장 : 기묘한 무녀 22.06.06 113 2 9쪽
16 제 16장 : 붉은 댕기 2 22.06.05 104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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