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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pia 님의 서재입니다.

무격(武覡)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musepia
작품등록일 :
2022.05.22 14:07
최근연재일 :
2022.08.14 13:34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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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8
추천수 :
116
글자수 :
180,418

작성
22.05.2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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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
추천
23
글자
10쪽

제 1장 : 긴급 회동

DUMMY

깊은 밤, 기필천(紀泌㟫)을 찾은 왕의 호위는 예속에게 손안에 들어가는 작은 패를 보였다.

예속은 호위를 향해 간단히 목례를 하고 기필천 안으로 들어서며 집사에게 말했다.


"무격이 필요한 밤이네요. 그들을 불러주세요."


고려시대, 무격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무격(巫覡)이란 남자 무당, 즉 박수무당을 의미하지만, 같은 음 다른 의미 전혀 다른 신분의 무리가 하나 더 존재했다.


무격(武覡), 이들은 죽었으나 죽지 않은 귀신인 마희(魔戱 : 귀신의 장난.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귀신)와 싸우는 무사로 '예속, 태호, 지훤, 겸주, 타석' 다섯 가문이 대를 이어 책임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가문 전체를 무격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무격은 지휘관인 예속을 필두로 각 가문에서 가장 뛰어난 가문의 대표자 한 명씩을 간택해 그 5인에게만 부여되는 관직명으로 가문 대표 예정자가 열여섯살이 되면 아명(兒名 : 어릴적 이름)을 버리고 오직 가문의 성만으로 불렸다.

즉, 가문이 그가 되고 그가 곧 가문이 되는 셈이다. 왕의 책사로도 불리는 예속만이 20대 후반에 임명되나 선대 예속(진월)이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해 현 예속은 열아홉의 나이에 가문의 이름을 받았다.


이들은 가문마다 자신들의 문중을 알리는 색상의 도포를 입었는데, 출타시에는 반드시 문중의 도포를 입었기 때문에 나라 어디서든 도포의 색으로 그가 어느 문중의 자제인지 알 수 있었다.


예속은 매끄럽게 반짝이는 흰 도포 위에 짙은 회색 모시로 된 답호를 걸쳤다.

태호는 짙은 남색의 도포를 지훤은 흰색, 타석은 검은색, 겸주는 노란색을 입었다.

이들은 각각 문중을 알리는 도포를 입고 외출을 하며 본가에 가까운 일가일수록 가문 색에 가깝고 먼 친척일수록 옅은 색을 사용했다.

다만, 옷깃에는 같은 색의 문장을 수 놓을 수 있었다.


"마희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무리를 지어 공격하는 형태가 분명하게 두드러진다.“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에 날카로운 눈빛, 쪽빛이 도는 검은 눈동자, 외눈 안경을 곧게 뻗은 콧잔등에 얹힌 예속이 직사각의 탁자 중앙 상석에 앉아 차분히 말했다.


예속의 오른편 두번째 자리 등받이 의자에 앉은 지훤은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팔짱을 낀 채 왼발 끝을 위아래로 까딱이며 약과를 우물거렸다.

예속은 그런 지훤에게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예속과 지훤의 사이에 앉아있는 태호만이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지훤을 향해 낮게 말했다.


"지훤, 단정히 앉아!“


미간을 찌푸리고 있기는 하나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한 반듯한 이마와 짙은 눈썹이 그의 유려함을 헤치지는 못한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 예속도 별말씀 안하시는데 우리 대장은 나한테 너무 엄해!"


지훤이 손에 들고 있던 약과를 마저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오른쪽 이마부터 왼쪽 광대까지 깊은 흉터가 되려 문양처럼 보일 만큼 미남인 지훤은 예의 장난스러운 눈웃음과 색기를 묘하게 띄며 흰색 도포에 떨어진 약과 부스러기를 툭툭 털어냈다.


"때와 장소를 가리란 말이야."


태호는 화가 치미는 걸 막듯 미간을 조금 더 찌푸리며 말했다.

두 사람의 승강이에 예속이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었다.


"태호, 이곳에서만큼은 지훤도 숨통이 트여야지 않겠나? 괜찮네."

"기필천이기 때문에 더욱 안됩니다. 예속도 이 녀석을 너무 감싸지 마세요."


기필천은 무격들이 모여 회의를 주관하거나 심신의 안정을 취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예속이 정신 수련을 하는 곳으로 예속의 기를 흐트러트리지 않기 위해 신성시되는 곳이다.

하지만, 지훤은 기필천에서 만큼은 아이처럼 거침이 없어 항상 태호의 신경을 거슬려왔다.


"예속도 보셨죠? 이 녀석은 제가 숨쉬는 것도 싫을 겁니다. 항상 잔소리를 달고 살아요. 저를 태호가의 도련님으로 만들고 싶은 겐지 하나부터 열까지 태호가 식으로 뜯어고치려고 한다니까요."


예속의 말에 기세등등한 지훤이 오른다리를 왼쪽으로 꼬며 투덜거리자 태호가 검집으로 지훤의 오른 무릎을 밀쳤다.

지훤은 휘청이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시늉을 하더니 호들갑을 떤다.


"아이구, 아이구. 예속 보셨죠? 겸주 아우? 타석 형님! 보셨죠? 보셨죠? 태호가 이제는 이렇게 폭력도 행사합니다. 아이고 분해. 아이고 억울해. 아이고오오."


지훤의 허풍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겸주와 타석까지 웃음이 터졌다.


"예속, 마희들의 습성이 바뀐 것이라면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무격 중 가장 키가 크고 선이 굵은 외모의 타석이 분위기를 바꿔 이야기를 꺼냈다. 예속도 미소를 거두고 말을 이어갔다.


"아직까지는 추측이네만, 북계에 위치한 흥화진을 살펴보고 오게. 천리장성 부근 젊은 남자들이 유독 마희화 되는 속도가 빠른 듯한데 흥화진은 북계에서도 가장 군사 수가 많은 지역이니 원인을 알아차리기 쉬울 걸세."



##



"대장, 대장! 태호?"


지훤이 웃으며 태호의 곁으로 다가갔다. 태호는 지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걸었다.

두 사람의 뒤로 타석과 겸주가 나란히 걷고 있다.

겸주는 열일곱으로 무격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겸주 가문은 대대로 부처님을 특별하게 모시는 가문이라 남자들은 모두 삭발을 하며, 사치를 일삼지 않고 성품이 온화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런 가풍 탓인지 겸주는 소년처럼 맑고 티 없이 순수한 모습이다.


"지훤 형님, 태호 형님 좀 내버려두세요. 장난이 너무 심하십니다."


걱정스런 표정의 겸주를 뒤돌아보며 지훤이 오른 눈을 찡끗하자 겸주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곁에 있던 타석이 습관처럼 겸주의 민둥머리 위에 손을 얹어 맨질맨질 만지며 말했다.

타석의 검은 도포가 겸주의 얼굴로 흘러내리자 겸주는 도포를 치우지도 못하고 살짝 들어올려 시야를 확보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태호와 지훤은 만나면 항상 투닥거리지만 정말 사이가 안좋은 것은 아니니까. 물론, 지훤이 조금만 태호처럼 어른스러우면 좋을 테지만, 그러면 지훤이 아니지 않아?"

"예, 저도 형님들 모두를 존경해요. 하지만, 저러다 태호 형님이 정말 화를 내시면 어쩌나 걱정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게 그런 걱정일랑 할 필요가 없다고."


타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호가 검집으로 지훤의 머리를 내리치고는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넌 집에 돌아가면 절대 집 밖으로는 나오질 않는다던데 집에 좋아하는 여자라도 숨겨둔 거냐고 물은 게 그렇게 잘못이야? 우리 가문의 아리따운 처자들이 항상 묻는다고. 태호에게 정인이 있는지 말이야.“

"도대체가 진지함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군. 지금 그런 농이나 할 때야?"

"아니 질문이지 이게 어떻게 농이란 거야? 특히 너는 고려 최고의 미남으로 손꼽히는 우리 형님과 쌍벽을 이루는 닮은꼴 미남이잖아. 물론, 우리 형님은 항상 웃으신다만. 그러니 우리 가문 처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당연하고 같은 무격이니 내게 물어오는게 또 당연하고. 처자들의 속앓이를 내버려두는 것은 가문의 대표자로 책무 위반이니 가문 대 가문으로 대표해 물은 것 아닌가 태호 도령!"

"하!?“


태호는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걸었고 그 이후로는 지훤의 말에 어떤 대답도 하질 않았다.


"타석 형님, 정말 태호 형님이 지훤 형님의 친형님과 닮았나요? 그분은 정말 엄청난 미남이라고 들었어요. 저희 겸주에서도 처자들이 항상 그분 이야기를 하거든요."

"나도 어려서만 봐서 지금 모습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태호와 어딘지 분위기가 굉장히 비슷해. 태호도 미남이기도 하고. 조금 다른 점이라면 내 기억에도 을은 항상 미소를 짓고 있었지."

"을?"

"응, 지훤 을, 나와 동갑이니 올해 열아홉이겠네. 어려서는 자주 봤었는데 을이 몸이 약해 점점 만나는 횟수가 줄어서··· 그러고 보니 보고싶네."

"아, 저도 한번 뵙고 싶네요. 형님의 형님이자 형님의 친구인 태호 형님을 닮은 을 형님을요.“


타석이 해맑게 웃는 겸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생각에도 을은 겸주를 만나면 막냇동생을 챙기 듯 다정하게 챙길 것이 분명했다.



[곽주]

무격이 곽주에 다다르기 전까지 마희 무리를 봤다는 이들을 만나진 못했다.

갑작스럽게 내린 비로 주막에 다리가 묶인 무격은 방하나를 잡았다.


"주인장, 혹 흥화진 마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시오?"


겸주가 평상에 앉아 젊은 주인장에게 물었다. 주인장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이내 손뼉을 탁하고 쳤다.


"흥화진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은 마희가 한놈씩 나타나는 게 아니고 두 놈, 세 놈 이렇게 무리를 지어 나타난답디다. 용주에서 온 보부상 하나가 있으니 그이가 돌아오면 한번 물어보슈. 아무래도 용주와 흥화진은 붙어 있으니 아는 게 좀 있지 않겠소?"

"그 보부상 언제 돌아오는지 아십니까?"


태호가 묻자 주인장이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는 모르죠. 하지만, 해가 지고 비가 내리니 곧 돌아올 겁니다. 내일모레까지 방을 잡아뒀으니까 말이죠. 아! 마침 저기 돌아오네요. 이보게. 이보게."


용주에서 온 보부상은 무격들을 보고는 귀신이라도 본 듯 주막 입구에 우뚝 멈춰서서 두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이분들 무격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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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제 44장 : 기필천의 밤 22.08.14 127 1 8쪽
43 제 43장 : 세자 22.08.07 49 1 9쪽
42 제 42장 : 비극 22.08.05 47 1 9쪽
41 제 41장 : 드러나는 그림자 3 22.07.31 42 1 9쪽
40 제 40장 : 드러나는 그림자 2 22.07.29 48 1 9쪽
39 제 39장 : 드러나는 그림자 22.07.17 63 1 9쪽
38 제 38장 : 급습 3 22.07.16 51 1 9쪽
37 제 37장 : 급습 2 22.07.10 57 1 9쪽
36 제 36장 : 급습 22.07.10 64 1 9쪽
35 제 35장 : 수수께끼 22.07.03 56 1 9쪽
34 제 34장 : 이상한 물 22.07.02 66 1 9쪽
33 제 33장 : 붉은 이슬 7 22.06.26 68 1 9쪽
32 제 32장 : 붉은 이슬 6 22.06.25 64 1 9쪽
31 제 31장 : 붉은 이슬 5 22.06.20 67 1 9쪽
30 제 30장 : 붉은 이슬 4 22.06.19 78 1 9쪽
29 제 29장 : 붉은 이슬 3 22.06.19 69 1 9쪽
28 제 28장 : 붉은 이슬 2 22.06.18 75 1 9쪽
27 제 27장 : 붉은 이슬 22.06.16 69 1 9쪽
26 제 26장 : 동공 22.06.15 86 1 9쪽
25 제 25장 : 수전(水戰) 22.06.14 92 1 9쪽
24 제 24장 : 사화산 마희 2 22.06.13 92 1 9쪽
23 제 23장 : 사화산 마희 22.06.12 79 1 9쪽
22 제 22장 : 산전(山戰) 22.06.12 89 1 9쪽
21 제 21장 : 그날의 비밀 2 22.06.10 86 1 9쪽
20 제 20장 : 그날의 비밀 22.06.09 79 1 9쪽
19 제 19장 : 의심 22.06.08 97 1 9쪽
18 제 18장 : 우호(友好) 22.06.07 111 2 10쪽
17 제 17장 : 기묘한 무녀 22.06.06 113 2 9쪽
16 제 16장 : 붉은 댕기 2 22.06.05 104 2 9쪽
15 제 15장 : 붉은 댕기 22.06.05 119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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