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musepia 님의 서재입니다.

무격(武覡)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musepia
작품등록일 :
2022.05.22 14:07
최근연재일 :
2022.08.14 13:34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6,320
추천수 :
116
글자수 :
180,418

작성
22.06.05 21:20
조회
103
추천
2
글자
9쪽

제 16장 : 붉은 댕기 2

DUMMY

무격들은 각자 자신의 주변에 있는 마희를 소멸하며 태호를 주시했다.

태호는 아이가 있는 마희 셋을 그저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셋은 줄지어 천천히 걸었다.

맨 뒤에 있던 아이가 앞에 어른들보다 보폭이 좁아 제 발에 걸려 털썩 넘어졌다.

아이가 넘어졌으나 앞에 선 마희 둘은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그 덕에 아이는 앞으로 질질 끌려갔다.

끌려가면서도 다리는 다른 마희들과 좌우를 맞춰가며 버둥거렸다.


태호가 아이를 일으키려다 멈췄다.

멈춰선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휙’


지훤의 화살이 날아들어 앞서 걷는 마희 둘의 몸통을 곧장 꿰뚫었다.

그들이 소멸하자 끌려가던 아이는 더 이상 끌려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누운 채 허공을 향해 작은 두 발을 허우적거리며 걸음마를 할 뿐이었다.

태호는 그 자리에서 돌이라도 된 양 우두커니 서서 괴로운 듯 아이를 내려다 보았다.


‘휙’


지훤의 두 번째 화살이 아이의 심장을 관통했다.


“무슨 짓이야?”


지훤이 달려와 태호에게 물었다.

태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짧은 탄식만을 내뱉었다.

소멸하는 아이를 보며 태호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이와 여동생이 겹쳐져 미간 사이에서 아프고 괴로운 무언가가 퍼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마희 앞에 감정 세우지마. 아이가 아니다. 이미 마희 아니냐. 우린 무격이다. 게다가 너는 태호다!”


지훤의 말에 태호가 깊은 숨을 내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주변을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마희가 모두 소멸되고 타석과 겸주까지도 걱정스레 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태호는 허리를 굽혀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그 이상의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태호, 놈들은 바닥에서 솟구쳤고 이 성황당에 걸린 오색의 비단 끈이 손목에 이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네.”


타석의 말에 겸주가 조용히 성황당 뒤쪽을 가리켰다.


“이곳에 정한수가 있습니다.”


겸주의 말대로 성황당 나무 뒤쪽 움푹 파인 곳 안쪽으로 맑은 물이 담긴 물그릇이 있었다.

물그릇 위로 보름달이 말갛게 떠 있었다.


“주술인가?”


타석의 말에 겸주는 주술일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무격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태호의 안색을 살폈다.




[과거 어느 날, 태호家]

태호가 아명인 묵으로 불리던 시절, 다섯살 아래 여동생 희원과 묵은 둘도 없는 우애를 자랑했다.

묵이 열두 살, 희원이 일곱 살이던 해.

어른들은 집안의 큰 행사로 모두 출타 중이었다.


강력한 마희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묵이 상대하기에는 버거웠다.

묵은 죽을 힘을 다해 동생에게 붙은 마희를 떼어냈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아닌 어리고 힘없는 동생부터 공격한 마희가 도무지 용서가 되질 않았다.

어렵사리 마희를 소멸했지만, 동생은 이미 공격을 받아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마희를 없앴다.

묵은 소멸된 마희의 얼굴과 가슴을 쉬지 않고 검으로 찍고 또 내리찍었다.

얼마나 소리를 질렀던지 목이 쉬어 아무런 소리도 나오질 않았다.

미세하게 그의 검이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어린 묵의 마음을 달랬다.


뒤늦게 돌아온 아버지와 삼촌들은 피비린내 진동하는 집안에서 어린 동생을 부여잡고 넋이 나간 채 앉아 살려달라 마른 소리만 지르는 묵을 보며 달려왔다.


묵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그대로 기절한 후 며칠이 지나 깨어났다.

어른들이 어떻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행히 희원은 목숨이 위태롭거나 마희화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희원은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그 곱던 얼굴의 절반은 비단으로 가렸고 목을 물어뜯겨 목소리는 노인처럼 낮고 떨렸으며 말을 하면 소리가 두 갈래로 갈라져 알아듣기조차 어려웠다.

무엇보다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그 어떤 표현도 하질 않았다.

그저 매일 아무말 없이 멍하니 정원만 바라보았다.

본래의 사랑스럽던 희원은 사라지고 그날의 상처를 고스란히 지닌, 오빠가 지켜주지 못한 그 상태 그대로의 희원만이 남아 묵을 원망하는 것만 같았다.


묵은 기절해서 깨어난 후로 단한번도 울지 않았다.

울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무격이 되었을 때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태호 문장에게 결정을 번복해 달라며 자신의 자격에 대해 강력하게 피력했다.

문장은 그렇기에 더욱 묵이 태호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너는 희원을 구하지 못한 게 아니다. 더는 그 누구도 희생되지 않도록 구해라. 희원도 그걸 바랄게다.”


문장의 말에 태호는 그럴 수 없다했다.


“어린 동생 하나 지키지 못했는데 어찌 세상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제 동생의 얼굴은, 목은 흉터투성이입니다. 저를 보십시오. 희원의 흉터는 제 대신이었습니다. 제 목소리를 들어보십시오. 희원이 잃어버린 목소리, 그것 또한 제 대신이었습니다.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태호의 말에 문장이 답했다.


“누구도 어린 묵이 희원을 지키지 못했다 생각지 않는다. 어린 묵은 희원을 지켰고 구했다. 잘못이 있다면 어린 너희들만 두고 집을 비운 어른들에게 있다. 네가 어린 날의 희원을 살렸듯 구라하. 지키고 살려라. 이제 너는 태호다. 태호로 살아라. 그게 어렵다면 희원을 위해서라도 태호로 살아라.”


처음 무격으로 출정하던 날 태호는 희원을 찾았다.

여전히 멍하게 정원만을 바라보는 동생의 앞에 눈을 맞추고 앉았다.

태호의 기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동생이 옅은 미소를 짓는 것만 같았다.

그도 미소를 지어보였다.


“희원아, 언제고 너는 이 오래비가 지킨다. 걱정말거라. 무슨 일이 생기든 내가 언제든 네 곁에 나타날 것이다. 건강히만 있거라.”


태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희원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여전히 그를 보질 않았다.



##



겸주가 물그릇 아래를 파내니 제웅(짚으로 만든 사람 형상의 인형)이 나타났다.

제웅의 손목에는 성황당 오색끈이 묶여있고 가운데에는 붉은색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황평상>이라 적혀있었다.

겸주는 그 자리에서 제웅을 부적과 함께 불태우고 성황당 주변을 정리한 후 동이 틀 때까지 성황당 주변을 기도하며 돌았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마을 마희들을 위함이었다.


태호는 아이가 소멸한 자리에 떨어진 타다 남은 붉은 댕기를 집어 자신의 검집 손잡이에 단단히 묶었다.



##



주막에 들른 무격을 보며 주모가 반색해 달려 나왔다.


“마희를 다 잡아주신거지요? 밤새 한 놈도 나타나질 않았습니다요.”

“예, 모두 소멸하였습니다.”


겸주가 답하자 주모가 아이와 사라진 마을 사람들의 행방을 물었다.


“역시나 마희가 끌고 갔던 겁니까?”

“주모, 궁금한 것이 있소.”


태호가 묻자 주모는 무엇이든 물으라 했다.

무격은 주모에게 황평상이란 자를 아는지 물었다.


“황평상이면 우리 지방관 어르신 함자지요.”

“지방관?”


무격은 관아에서 만난 지방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에 올라 관아로 향했다.



##



무격이 황평상을 찾자 동헌(직무를 보는 곳)에서 지방관이 나왔다.


“밤새 도움 주신 덕에 마을 내에서는 별고 없었습니다.”


황평상이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태호가 검집에서 검을 꺼내 그의 목을 겨누자 주변에 있던 나졸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황평상 역시 당황하여 무슨 일인지 묻고 또 물었다.


지훤은 황평상의 내동헌(침소)으로 발길을 옮겼다.

얼마지 않아 화가 잔뜩 난 지훤이 파해부 한 뭉텅이를 손에 쥐고 나타났다.


“네 이놈! 마을 사람들을 위해 나눠주라 전한 파해부가 어찌 네놈 침소에 그득 붙어있는게냐?”


지훤의 말에 태호의 눈이 살벌하게 번뜩였다.


“아닙니다. 다 나눠주고 남은 것들을 보관한 것일 뿐입니다.”

“내 어제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라 전한 파해부의 숫자는 집집마다 전해 줄수 있도록 마흔장을 주었느니라.”


겸주의 말에 지훤이 파해부를 다섯장씩 황평상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황평상이 파해부를 얼굴에 맞은 횟수는 정확히 여덟 번이었다.


“어찌 나랏녹을 먹는 자가, 백성을 지켜야 할 지방관이란 자가!!”

“잘못하였습니다. 살려주십시오.”


황평상이 태호의 칼날을 피해 두 손을 모아 빌며 말했다.

태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의 칼날 역시 조금도 움직이질 않았다.

타석은 조용히 그런 태호를 바라만 보았다.


그때였다.

내동헌에서 한 여인이 달려나와 황평상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싹싹 빌었다.


“무격님 무격님들 저는 황평상의 아내 강씨입니다. 제 이야기를 좀 들어주십시오. 마희가 출몰하면 막을 자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먼저 죽어버리면 백성들을 어쩌겠습니까? 도망이 아니었습니다. 오해십니다.”

“오해? 막을 자가 필요해? 막을 자가 필요하여 파해부를 제 혼자 독차지하고 방안에 꼭꼭 숨어있었단 말이냐? 황평상은 들라. 네놈은 언제 마희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느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격(武覡)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제 44장 : 기필천의 밤 22.08.14 127 1 8쪽
43 제 43장 : 세자 22.08.07 49 1 9쪽
42 제 42장 : 비극 22.08.05 46 1 9쪽
41 제 41장 : 드러나는 그림자 3 22.07.31 42 1 9쪽
40 제 40장 : 드러나는 그림자 2 22.07.29 47 1 9쪽
39 제 39장 : 드러나는 그림자 22.07.17 63 1 9쪽
38 제 38장 : 급습 3 22.07.16 51 1 9쪽
37 제 37장 : 급습 2 22.07.10 57 1 9쪽
36 제 36장 : 급습 22.07.10 64 1 9쪽
35 제 35장 : 수수께끼 22.07.03 56 1 9쪽
34 제 34장 : 이상한 물 22.07.02 66 1 9쪽
33 제 33장 : 붉은 이슬 7 22.06.26 67 1 9쪽
32 제 32장 : 붉은 이슬 6 22.06.25 64 1 9쪽
31 제 31장 : 붉은 이슬 5 22.06.20 67 1 9쪽
30 제 30장 : 붉은 이슬 4 22.06.19 78 1 9쪽
29 제 29장 : 붉은 이슬 3 22.06.19 69 1 9쪽
28 제 28장 : 붉은 이슬 2 22.06.18 75 1 9쪽
27 제 27장 : 붉은 이슬 22.06.16 69 1 9쪽
26 제 26장 : 동공 22.06.15 86 1 9쪽
25 제 25장 : 수전(水戰) 22.06.14 92 1 9쪽
24 제 24장 : 사화산 마희 2 22.06.13 92 1 9쪽
23 제 23장 : 사화산 마희 22.06.12 78 1 9쪽
22 제 22장 : 산전(山戰) 22.06.12 88 1 9쪽
21 제 21장 : 그날의 비밀 2 22.06.10 86 1 9쪽
20 제 20장 : 그날의 비밀 22.06.09 79 1 9쪽
19 제 19장 : 의심 22.06.08 97 1 9쪽
18 제 18장 : 우호(友好) 22.06.07 111 2 10쪽
17 제 17장 : 기묘한 무녀 22.06.06 112 2 9쪽
» 제 16장 : 붉은 댕기 2 22.06.05 104 2 9쪽
15 제 15장 : 붉은 댕기 22.06.05 119 3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