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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pia 님의 서재입니다.

무격(武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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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usepia
작품등록일 :
2022.05.22 14:07
최근연재일 :
2022.08.14 13:34
연재수 :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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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8
추천수 :
116
글자수 :
180,418

작성
22.06.16 21:05
조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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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제 27장 : 붉은 이슬

DUMMY

몸 밖까지 튀어나왔던 동공이 빨려 들어간 시량은 그대로 제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타석이 시량의 팔다리를 묶고 입에 재갈을 물렸다.

매석이 박재화와 시량의 곁으로 다가서려 하자 이선이 그를 제지했다.

주화 역시 매석을 붙잡았다.


“이번은 아닌 듯 합니다.”


주화의 말에 매석은 무격들을 잡아 먹을 듯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곳에는 그보다 더한 분노를 느끼는 이가 따로 있었다.

타석이 시량과 박재화를 묶자 겸주가 그들에게 부동부틀 붙였다.

이동하는 동안은 기절한 것처럼 가만히 있을 것이었다.

타석이 허리를 펴자 지훤은 기다렸다는 듯 매석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이선도 태호도 막을 수 없었다.


“지훤, 무슨 짓이야?”


태호의 말의 들리지 않는 듯 지훤의 활시위는 점점 더 곡선을 깊게 드리웠다.

타석이 문득 지난 대화를 떠올렸다.


“이 것이 바로 가슴에 서린 일인가?”

“예? 형님? 지훤 형님에게 가슴에 서린 일이라니요? 게다가 호위무사와요?”


타석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겸주가 화들짝 놀라 큰 소리를 냈다.


“지훤, 말을 먼저 해보게. 활부터 내려놓으시게. 오해가 있다면 풀면 되고 사실이라면 그때가서 생각해도 늦이 않네.”


이선이 지훤에게 천천히 다가서며 말했다.

이선은 지훤과 시선을 맞추며 다가섰지만, 지훤의 시선은 매석과 주화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영문을 알리없는 매석과 주화도 어리둥절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까 일로 이런다면 화가 난 사람은 지훤이 아니라 나지.”


매석이 가소롭다는 듯 왼쪽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태호가 지훤의 활을 손으로 잡아 내렸다.


“좋아. 무슨 일인지 말을 해. 말을 해야 돕든 말리든 하지. 이건 아니야.”


타석도 활 앞을 가로막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훤이 아드득 소리를 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나부끼자 지훤 얼굴의 흉터가 훤히 드러났다.

항상 밝고 장난기 많은 지훤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 적은 본적 없는 무격이기에 지금 그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난감했다.

지훤은 누군가 흉터에 대해 물으면 언제나 웃으며 사냥을 하다 다쳤다고만 했다.

무격에게도 단한번도 흉터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없었다.

사실 지훤 가문에서 그를 무격에 추천하고 최종 선출 될 때까지도 그의 흉터가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무격은 가문의 대표자이기도 해 몸과 마음이 모두 단정하고 건강해야했기 때문에 문중에서는 그의 선출을 꺼렸다.

하지만, 지훤 문장인 표가 이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지훤을, 이제까지 영으로 불리던 그를 지훤으로 선택했다.



[12년 전, 강주]

지훤이 영이던 시절, 그의 얼굴에는 그늘 하나 흉터 하나 없이 맑았다. 어머니 차혜 부인은 장남인 을과 차남인 영을 데리고 친정에 가던 길이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지훤은 단 한순간도 그 날을 잊은 적이 없었다.

본가와 외가의 거리가 크게 멀지 않아 항상 차혜 부인은 아랫사람들 없이 형제만 단촐하게 데리고 숲길을 지나 걸어다녔다.

그날도 그랬다.


“어머니, 오늘은 외숙부께 검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지훤의 말에 차혜 부인이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머니를 쏙 빼닮은 지훤은 생글생글 웃으며 숲길을 뛰다 걷다 쪼그려 앉아 벌레들을 구경하다 바쁘고 즐거운 한때를 즐겼다.


“영! 어서 오렴. 영!”


그날따라 줄을 지어 커다란 버섯 하나를 나르는 개미군단이 영을 사로잡아 꼼짝없이 길가에 쪼그리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리질 않았다.

형이 달려올 때까지도 영은 개미에게 흠뻑 빠져있었다.


“영! 어머님이 부르시잖아.”


차분한 을이지만, 을 역시도 어린아이인지라 동생이 반해 버린 개미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그때였다.


“앗!”


외마디 소리에 을이 벌떡 일어났다.

형의 움직임에 영도 반사적으로 일어나 형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앞서 걷고 있던 곳이었다.

차혜 부인은 미소를 잃지 않고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이슬이 너무 많이 맺혀있구나. 다른 길로 가야겠다. 감기 걸릴라.”


차혜 부인의 말에 형제가 앞다퉈 어머니께 달려갔다.


“가까이 오지 말거라. 옷이 젖으면 외숙부께 검술을 배우기 어려울 것이다.”


웃는 차혜 부인은 정말 이슬에 머리며 옷이 젖어있었다.

다만, 이슬의 색깔이 이상했다.


“어머니, 이슬이 붉은 색입니다.”


지훤 가문의 색인 흰색 도포가 온통 붉은 얼룩으로 엉망이었다.

차혜 부인은 지난 주 밤새 지은 아들들의 옷이 자신의 옷처럼 망가지는 게 싫어 아이들에게 가까지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머니의 머리에 맺힌 이슬을 털어드리고 싶었다.


“옷을 망가뜨리는 게 더 불효니라!”


차혜 부인 특유의 낭랑하고 높은 음으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웃으며 말했지만, 난생 처음 보는 붉은 이슬에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세 사람은 붉은 이슬이 맺힌 전나무 숲길 대신 옆으로 난 오솔길을 택했다.

걷는 동안 어머니의 젖은 머리와 옷은 말라갔다.

외가가 멀리 보일 즈음 차혜 부인이 온몸을 떨더니 거친 숨을 내쉬었다.


“어머니, 감기에 걸리신 게 아닙니까?”

“괜찮다. 약간 오한이 드는 것도 같은데 외가에 가서 따뜻한 차 한잔 마시고 쉬면 금새 괜찮아질게다. 걱정 말아라.”


차혜 부인도 이상하다 느꼈지만, 걱정 가득한 어린 아이들을 보며 애써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분명 일반적인 감기 기운과도 또다른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숲길을 전부 벗어났을 때 차혜 부인은 우두둑 소리를 내며 목과 어깨를 꺾기 시작했다.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어머니, 어디가 아프신 겁니까?”


어린 아들들의 질문에 차혜 부인은 거친 숨소리만을 냈다.

아이들이 어머니에게 달라붙으려 하자 차혜 부인은 거칠게 밀어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온 것인지 두 아들들은 저 만치 멀리 나가떨어졌다.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저희가 무얼 잘못하였습니까?”

“너무 아프셔서 그러십니까? 외숙부를 모셔 올까요?”


아이들이 다시 일어서 다가서자 차혜 부인은 다시한번 아이들을 밀쳐냈다.

아이들은 또다시 어머니에게 달려갔고 그러면 어머니는 또다시 다시 밀어냈다.


“도망쳐...라....”


혼신을 다해 어렵사리 말을 하며 온 몸에 검푸른 핏줄이 돌기 시작했다.


“도망쳐! 을... 영을 데리고 어서...”


그게 차혜 부인의 마지막 말이었다.

말이 끝나자 그녀는 바닥에 누워 온몸을 꺾으며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을은 우는 영의 손을 잡고 외가로 달렸다.

영은 어머니의 곁에 있겠다고 했지만, 을은 영의 손을 놓지 않고 달렸다.


그날 이후 영이 어머니를 다시 만난 적은 없었다.

아이들의 울음 소리에 달려나온 외숙부는 그길로 누이에게 달려갔고 아이들은 일주일 정도 외가에 머물렀다.

어머니도 외숙부도 외가로 돌아오질 않으셨다.

일주일째 되던 날, 본가의 작은 숙부가 형제를 데리러 왔다.

숙부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질문에도 답해주질 않았다.


“작은 숙부님, 저희 어머니는 어디에 계십니까? 왜 외가에 돌아오지 않으신 것입니까? 어디가 아프신 것입니까?”


아이들의 간절한 질문에도 괴로운 듯 미간만 찌푸릴 뿐이었다.

작은 숙부는 본가 대문 앞에 서서 두 아이의 어깨를 단단히 부여잡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눈에도 붉은 눈물이 맺혔다.

그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끌어안았다.

직감적으로 어머니에게 무슨 변고가 생겼다는 걸 느낀 형제는 목을 놓아 울었다.

형제의 울음소리에 지훤 가문 어른들이 모두 달려 나왔다.


“아니지요? 아니지요? 아니라고 말씀 해주십시요!”


아이들의 질문에 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아버지는 어디 계십니까? 아버지께 여쭐 것입니다!”


영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아버지를 찾았다.

문장이 그런 영을 안았지만, 영은 발버둥을 치며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께 여쭐 것입니다! 놔 주십시오. 어머니는 어디에 계십니까? 어머니!!!!”


아이는 목이 쉬는 줄도 모르고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울며 찾으면 당연히 달려올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의 앞에 나타나질 않았다.

그 설움에 울고 두려움에 울고 답답함에 울고 처음 느껴보는 가슴 아픔에 울었다.

작은 숙모가 달려나와 을과 영을 끌어안고 함께 울었다.

숙모의 눈물이 불안한 결과를 두려운 일이 있음을 알리는 것만 같아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울었다.


“지훤 을! 지훤 영! 뚝 그치거라!”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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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제 37장 : 급습 2 22.07.10 57 1 9쪽
36 제 36장 : 급습 22.07.10 64 1 9쪽
35 제 35장 : 수수께끼 22.07.03 56 1 9쪽
34 제 34장 : 이상한 물 22.07.02 66 1 9쪽
33 제 33장 : 붉은 이슬 7 22.06.26 67 1 9쪽
32 제 32장 : 붉은 이슬 6 22.06.25 64 1 9쪽
31 제 31장 : 붉은 이슬 5 22.06.20 6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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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 29장 : 붉은 이슬 3 22.06.19 69 1 9쪽
28 제 28장 : 붉은 이슬 2 22.06.18 74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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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제 26장 : 동공 22.06.15 86 1 9쪽
25 제 25장 : 수전(水戰) 22.06.14 92 1 9쪽
24 제 24장 : 사화산 마희 2 22.06.13 92 1 9쪽
23 제 23장 : 사화산 마희 22.06.12 78 1 9쪽
22 제 22장 : 산전(山戰) 22.06.12 88 1 9쪽
21 제 21장 : 그날의 비밀 2 22.06.10 86 1 9쪽
20 제 20장 : 그날의 비밀 22.06.09 7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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