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musepia 님의 서재입니다.

무격(武覡)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musepia
작품등록일 :
2022.05.22 14:07
최근연재일 :
2022.08.14 13:34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6,314
추천수 :
116
글자수 :
180,418

작성
22.06.25 09:35
조회
63
추천
1
글자
9쪽

제 32장 : 붉은 이슬 6

DUMMY

본가는 영의 상태를 보고 발칵 뒤집어졌고 정우와 겸주 문장이 급히 달려왔다.

영은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을은 영이 깨어나길 바라는 마음과 아버지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 매일 같이 새벽 기도를 올렸다.

매일매일 동생이 처음 말했을 때 같이 산에 가지 않은 자신을 탓했다.

그런 을의 마음을 읽었는지 지훤 문장이 을의 곁에 앉았다.


"을아!"


문장이 을의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을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래 울어라. 울어도 된다. 결코 네 잘못이 아니다. 영이의 잘못도 아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니 울어도 괜찮다."


열 살도 넘은 도령이 할아버지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울었다.

문장은 그런 을의 등을 토닥였다.

하루를 꼬박 울고 을은 일주일간 심한 열병을 앓았다.

이 열병은 을이 성인이 된 후에도 후유증을 남겼다.


한달 만에 정신을 차린 영은 그 이후에도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일주일 만에 입을 연 영이 한 첫마디는 '아버지는?' 이었다.

돌아온다던 아버지는 자신이 얼굴에 깊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형제가 나란히 서희에게 아버지가 왜 내려오지 않으시는지 물었을 때 서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내려오지 않고 계시는 거야."


서희는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답을 했다.


"어머니는 그때 그 붉은 이슬 때문에 저리 되신 건가요?"


영이 묻자 서희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덕주에서 붉은 이슬을 맞은 삼촌들은 해독부로 나으셨잖아요? 자연히 생긴 이슬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왜 붉은 이슬을 만든 건가요?"


영이 다시 한번 물었다.


"그건 어른들이 찾고 있다. 반드시 찾을 테니. 너무 심려치 말거라."


서희의 답변을 들은 형제는 싸늘한 표정을 했다.

그리고 더는 부모에 대해 묻지 않았다.

다만, 몇 달이 지나 두어번 정도 아버지를 뵙기 위해 산에 올라가보겠다고 한 적은 있었지만, 그것도 허락되질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영의 상처가 흉터만 남았을 때, 을과 영이 몰래 딱 한번 그곳을 찾은 적이 있었다.

눈부시게 하얀 팔각의 사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에는 위패만한 아주 작은 비석 하나가 있었다.

비석에는 '지훤 준의 사랑하는 두 자녀, 이곳에 잠들다'라고만 쓰여있었다.

지훤 준은 을과 영의 할아버지이자 경공의 아버지, 이전 지훤 문장의 이름이었다.

형제는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며 눈물을 쏟았다.

작은 비석을 쓰다듬는 을은 마른 기침을 멈추지 못했고 영은 비석을 바라보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현재 : 기필천]


예속을 포함한 무격과 호위가 기필천 둥근 탁자 앞에 둘러앉았다.

지훤은 본래의 명석한 눈빛으로 돌아왔지만, 싸늘한 표정만은 그대로였다.


"지훤, 호위들에게 활시위를 겨눴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이야기 해주실 수 있습니까?"

"12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그리고 이틀 전에도 붉은 이슬이 나타났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붉은 이슬은 전나무숲에만 맺힙니다. 12년 전에는 한시진(2시간) 정도만 맺히고 그대로 타서 없어졌습니다. 무방비로 당했지요. 10년 전에는 한달 가량 매일 맺혔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12년 전 일을 비밀에 붙였기에 그 사실을 상세히 모르던 자제들이 의심 없이 채취하러 갔고 과거와 달리 생명력이 길어진 붉은 이슬은 자제들이 직접 닿지도 않았는데 몸에 스며들었죠. 다행히 겸주 가문 해독부 덕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틀 전 전나무숲에서 또다시 붉은 이슬이 맺혔습니다."

"10년 전 사건은 나도 어른들께 들어 알고 있어. 아직까지 원인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아니고, 지훤 가문에서 누군가 나무에 마희를 피를 흡수시켜 자라도록 덫을 놓은 것이라고 했지만,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계속해서 이슬이 맺혀야 하는 데 그러질 않으니 모두들 마희가 주동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했지."

"태호의 말이 맞아. 하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달라. 이슬은 마희 하나에 한번! 그러니 12년 전에는 한번 10년 전에는 한달간 매일 하나씩 그리고 엊그제 붉은 이슬이 또 맺혔지."


지훤의 말에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매석이 발끈했다.


"그래서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지? 게다가 나와 주화는 10여년전 사건과는 전혀 무관하질 않아? 우리에게 활을 겨눈 것은 폐하께 겨눈 것과 진배없어."


지훤이 매석과 주화를 한번씩 바라보고 예속을 향해 몸을 틀었다.


"예속, 전나무숲하면 떠오는 게 있질 않으십니까?"

"아···."


이선이 낮은 외마디 탄식을 뱉었다.

이선의 반응에 매석과 주화가 그를 바라보았다.

이선은 무격들과 호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훤이 매석과 주화를 의심하는 것은 전나무숲과 천관 때문이오?"

"말도 안돼!!!"


매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화를 냈다.


"매석 자리에 앉으시지요. 지훤이 의심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터. 들어본 후 화를 내도 늦지 않습니다."


예속이 매석을 진정시켰다.

매석이 자리에 앉자 지훤이 말을 이었다.


"20년전 문하시중(재상)이 천관의 조언으로 나라 안 모든 전나무를 뽑아내고 유일하게 상장군 소유의 토지에서만 전나무를 관리 한 적이 있었죠."


재상 복명정은 복매석의 아버지로 평로진 근처 국경에서 여진과 빈번한 싸움이 일자 고심에 빠졌다.

그의 고민을 알게 된 복씨 가문 유사인 재호는 천관의 조언에 따라 복명정과 상극인 전나무의 씨를 말리고 대신 가문 소유 토지에만 전나무를 새롭게 키우라는 것이었다.

이후 무격 등 양반가문의 소유 토지에만 전나무 숲을 조성할 수 있도록 씨앗을 선물하였다.

천관의 말처럼 고려군은 승전보를 울렸고 여진의 침입은 더 이상 없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졌다.

재상과 뜻을 달리하던 이들의 집안에만 역병이 돌기 시작한 것.

처음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이라 생각하여 안타깝게만 여겼으나 몇몇 가문에서는 가문의 승려나 무당들의 의심으로 재상에게 받은 전나무숲을 불태웠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시 조성된 전나무숲들이 생기며 흉흉한 소문도 유야무야 되었다.


"그 일은 다 소문이야. 우리 가문에서 전나무숲을 전소시킨 것은 사실이나 천관의 조언이 아니라 당시 전나무에서 생긴 원인 모를 진드기가 온 나라의 곡식을 병들게 했기 때문이네. 또한 건강한 전나무 5000그루는 우리 소유 토지에 심어 관리 한 후 그 묘목을 각 문중에 선물해 다시금 사람들이 전나무숲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왔다고. 무슨 얼토당토하지 않은 음해야?"

"음해인지 아닌지는 끝까지 들어보면 알겠지."


지훤은 펄쩍 뛰는 매석의 말을 끊고 다시 전나무숲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연스레 조성된 전나무와 재상에게 받은 묘목으로 키운 전나무는 땅과 맞닿은 부분의 뿌리에 다른 점이 있었다.

재상의 전나무에는 붓이 하나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나 있었다.

지훤 가문에서도 처음에는 나무를 의심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이슬이나 안개 등을 의심했으나 지훤의 삼촌인 명오가 전나무숲을 샅샅이 뒤지던 중 구멍을 찾아냈다.

인근 산에 있는 나무와 비교해보니 없는 것이었다.

지훤 가문의 전나무숲은 일정한 위치에 구멍이 있었고 붉은 피딱쟁이 같은 것이 잡혀 있었다.

그날부터 명오는 재상에게 전나무 묘목을 받은 가문의 숲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나무들의 공통점을 지훤 가문에 알렸다.

지훤 가문의 의원인 정우는 일찍이 차혜 부인이 맞은 붉은 이슬은 마희의 핏방울일 가능성이 높아 꾸준히 조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슬로 맺혔는지 답을 찾지 못하던 터에 명오의 노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점차 의심되는 인물들의 수사망이 좁혀져 왔다.

갑자기 전나무를 전소 시키고 문중 별로 자신들이 키운 구멍 난 묘목을 전달한 재상.

조언 혹은 조종한 천관.

이중, 12년전 사건 직전 지훤 가문 소유의 전나무숲을 지나친 사람은 천관이었다.

10년전에도 천관이었으며 어제는 천관 가문의 홍주화가 있었다.


"말도 안돼는 억지다! 지훤 네가 정녕 우리와 끝을 보고 싶은 게냐?"

"감히, 천관 어른을 욕되게 하다니요. 지훤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아십니까? 천관께서 그럴 이유도 없고 마희의 피를 어디서 구해서 그런 짓을 하신단 말입니까? 게다가 나무에 붓는다고 붉은 이슬이 맺힌다는 건 말도 안돼는 음해입니다."


매석과 주화가 불같이 화를 내며 매석이 검을 뽑아 들었지만, 지훤이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격(武覡)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4 제 44장 : 기필천의 밤 22.08.14 127 1 8쪽
43 제 43장 : 세자 22.08.07 49 1 9쪽
42 제 42장 : 비극 22.08.05 46 1 9쪽
41 제 41장 : 드러나는 그림자 3 22.07.31 42 1 9쪽
40 제 40장 : 드러나는 그림자 2 22.07.29 47 1 9쪽
39 제 39장 : 드러나는 그림자 22.07.17 63 1 9쪽
38 제 38장 : 급습 3 22.07.16 51 1 9쪽
37 제 37장 : 급습 2 22.07.10 57 1 9쪽
36 제 36장 : 급습 22.07.10 64 1 9쪽
35 제 35장 : 수수께끼 22.07.03 56 1 9쪽
34 제 34장 : 이상한 물 22.07.02 66 1 9쪽
33 제 33장 : 붉은 이슬 7 22.06.26 67 1 9쪽
» 제 32장 : 붉은 이슬 6 22.06.25 64 1 9쪽
31 제 31장 : 붉은 이슬 5 22.06.20 66 1 9쪽
30 제 30장 : 붉은 이슬 4 22.06.19 78 1 9쪽
29 제 29장 : 붉은 이슬 3 22.06.19 69 1 9쪽
28 제 28장 : 붉은 이슬 2 22.06.18 74 1 9쪽
27 제 27장 : 붉은 이슬 22.06.16 68 1 9쪽
26 제 26장 : 동공 22.06.15 86 1 9쪽
25 제 25장 : 수전(水戰) 22.06.14 92 1 9쪽
24 제 24장 : 사화산 마희 2 22.06.13 92 1 9쪽
23 제 23장 : 사화산 마희 22.06.12 78 1 9쪽
22 제 22장 : 산전(山戰) 22.06.12 88 1 9쪽
21 제 21장 : 그날의 비밀 2 22.06.10 85 1 9쪽
20 제 20장 : 그날의 비밀 22.06.09 79 1 9쪽
19 제 19장 : 의심 22.06.08 97 1 9쪽
18 제 18장 : 우호(友好) 22.06.07 111 2 10쪽
17 제 17장 : 기묘한 무녀 22.06.06 112 2 9쪽
16 제 16장 : 붉은 댕기 2 22.06.05 103 2 9쪽
15 제 15장 : 붉은 댕기 22.06.05 118 3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