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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pia 님의 서재입니다.

무격(武覡)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musepia
작품등록일 :
2022.05.22 14:07
최근연재일 :
2022.08.14 13:34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6,319
추천수 :
116
글자수 :
180,418

작성
22.06.18 09:51
조회
74
추천
1
글자
9쪽

제 28장 : 붉은 이슬 2

DUMMY

“을! 영!”


아버지는 문중 도포가 아닌 검은색 도포를 두르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디에 계십니까?”


을이 먼저 달려가 무릎을 꿇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형제의 부친인 지훤 경공은 차갑고 딱딱한 말투로 답했다.


“돌아가셨다.”


형제가 그럴리 없다며 펄쩍 뛰자 경공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어린 영이 그런 아버지를 따라가며 불렀지만, 단한번도 뒤돌아보거나 발걸음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복도 바닥에 엎드려 우는 영을 일으킨 손은 마찬가지로 어린 을이었다.


“영아 일어나. 어머니를 뵈러 가자.”


을도 눈물이 그렁그렁하였지만, 차분하게 말했다.


“어머니가 어디 계시는데?”


영의 말에 을은 영의 어깨를 감싸고 걸었다.

형제의 주변으로 일가 어른들이 함께 했다.

아무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형제도 더 이상 어른들에게 어머니에 대해 묻지 않았다.

문중의 사당에 들어서자 차혜 부인 위패와 향이 피워져있었다.



##



유독 차혜 부인의 외모를 쏙 빼닮은 영은 자라며 더욱 어머니를 닮아갔다.

영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날로 커져만 갔다.

여덟 살이던 어린아이가 어머니 없이 열한 살이 된 어느 날 늦은 밤.

낮에 먹은 수박 때문인지 소피가 급해 잠에서 깬 영이 까만 옷을 입고 출타하는 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다시 가문의 흰색 도포를 둘렀던 아버지였기에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출타시에는 반드시 가문의 도포를 입어야 하기 때문에 영은 소피가 마려운 것도 잊고 아버지의 뒤를 밟았다.

아버지는 말도 타지 않은 채 집에서 가까운 선산으로 향했다.

아버지와 거리가 자꾸 멀어져 뛰듯이 따라간 영은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자신 앞의 광경에 입을 딱하고 벌렸다.

선산에서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버드나무 숲 한가운데 눈부시게 하얀 팔각형의 사당, 그 앞에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흐느껴 울고 있었다.

기묘하게도 사당은 팔면 모두 창호를 곱게 붙인 창은 있었지만, 어디에도 입구가 없었다.

경공의 흐느껴 우는 소리 뒤로 미세하게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이어 기괴할 정도로 소름끼치는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영은 순간 뒷걸음을 치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비명 소리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것은 분명 차혜 부인, 어머니의 것이었다.

그길로 집으로 달려온 영은 동이 틀 무렵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꿈에서 만난 어머니는 따뜻하고 다정하고 달콤한 향이 가득했다.

어릴 적처럼 영아~ 하고 불러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잠에서 깬 영은 잠시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다 벌떡 일어서 옷을 입으며 달려 나갔다.

정신없이 뛰쳐나가는 동생을 보고 을이 붙잡았다.


“아침 일찍부터 어른들께 말도 없이 어딜 가는 거야?”


영은 두 눈을 반짝이며 환하게 웃었다.


“형! 나 어머니를 찾은 것 같아. 아니 찾았어!”

“아니 얘가 무슨 잠꼬대야. 아직 잠이 덜 깼구나?”

“아니야. 분명 어머니야!!”

“그래 살아 계시다치자 그럼 왜 집에 안오시고 어디에 계신단 거야?”


영이 잠시 주변을 두리번대더니 을에게 귓속말을 했다.


“어젯밤에 선산에 있는 사당에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어?”

“어젯밤?”

“응, 어제 밤늦게 아버지께서 출타하시기에 따라갔다가...”

“어머니를 ㅤㅂㅚㅆ다고?”

“아니, 만난 건 아니고 분명 어머니 목소리였어.”

“그럼 아버지께서 왜 말씀을 하지 않으신건데?”


순간, 영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형에게 어머니의 비명소리를 들었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울고 계셨거든.”


점점 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영을 보며 을은 동생이 잠이 덜 깬 게 확실하다며 나가지 못하게 했다.

뾰로통해진 영은 형에게 붙잡혀 아침밥을 먹을 때에도 아버지의 안색을 살폈다.

밤새 울었던 아버지의 얼굴은 붓기 하나 없이 침착해 의문이 일었지만, 영은 자신이 들은 어머니의 목소리만이 진실이라며 다시금 마음을 다졌다.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영은 형에게 반드시 어머니를 모셔오겠다며 말릴 틈도 없이 뛰쳐나갔다.


낮에 다시 찾은 사당은 단정했고 주변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했다.

버드나무 숲 한가운데라 그런지 조금 어두웠지만 주변은 고요했고 새소리만 지저귀고 있었다.

영은 조심스레 사당을 돌아본 뒤 아버지가 앉아 있던 자리에 서서 사당을 향해 외쳤다.


“어머니, 어머니! 저에요. 영입니다.”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자 영은 조금 더 소리를 키워 차혜 부인을 불렀다.


“어머니! 어머니! 영이 왔습니다!!”


그때였다.

안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영이 다급하게 창 앞으로 달려가 매달리며 창문을 두드렸다.


“어머니, 어머니, 무슨 일이십니까? 저 영입니다!”


창문을 마구 두드리던 중, 창살 하나가 부러졌다.

부러진 창살을 꺾어 구멍을 만들며 영은 울었다.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여인의 비명은 쉬지 않았고 안에서는 쇠가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륵 철컥. 스르릉 철컥’


출처를 알 수 없는 쇠소리에 가슴이 조이는 듯한 영은 급한 마음에 주변의 돌을 집어 창틀로 던졌다.

나무로 된 창틀이 부서졌지만 다시 쇠창살이 나타났다.

쇠창살이 나타나긴 했지만, 다행히 안의 상황은 들여다 볼 수가 있었다.

영은 얼굴을 밀고 쇠창살 가까이 붙여 안을 들여다보았다.

코를 찌르는 썩은 내에 잠시 창살에서 떨어졌으나 이내 다시 숨을 참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사당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중앙 쇠로된 기둥 앞에 어머니가 고개를 숙이고 웅크리고 있었다.

옛날처럼 곱게 머리를 빗어 올리지 않아 산발은 하였으나 새하얀 비단 도포를 두른 조금 야윈 듯한 어머니가 확실했다.


“어머니, 어머니!!”


영이 쇠창살 사이로 자신의 팔뚝을 밀어 넣어 버둥거렸다.

창살 폭이 좁아 팔을 밀어 넣자 도포가 말려 올라갔다.

맨 팔뚝을 앞으로 쭉 내밀고 차혜 부인을 향해 간절하게 뻗고 또 뻗었다.


“어머니, 어머니. 저입니다. 영입니다. 저를 잊은 신 것은 아니시지요? 살아 계실 줄 알았습니다. 저를 한번만 바라봐 주세요. 어머니.”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차혜 부인은 몸을 앞뒤로 흔들며 괴이한 소리를 낼 뿐 영을 바라보진 않았다.

그때였다.

영의 뒤로 바람이 불어 사당 안으로 꽃잎과 함께 날아들었다.

꽃을 좋아했던 차혜 부인은 꽃잎이 날아들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킁킁 소리를 냈다.

영이 활짝 웃으며 다시한번 그녀를 불렀다.


“어머니, 저예요. 막내에요.”


영의 목소리에 차혜 부인이 광속과도 같은 속도로 영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얼굴의 핏줄은 온통 새까맸고 두 눈은 흰자와 동공의 경계가 없었으며 고약한 냄새가 났다.

집에 계신 할머니보다도 더 늙어버린 어머니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두 발은 그 자리에 얼음처럼 굳어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신이 들어 도망치고 싶었지만, 차혜 부인이 영의 두 팔을 꽉 쥐고 있어 도망칠 수도 없었다.

차혜 부인의 두껍고 긴 손톱이 아들 영의 말랑하고 여린 두 팔을 파고들었다.


“아파요. 아파요... 어..머..니. 놔주세요.”


어머니라는 말이 간신히 나왔다.

어머니였지만,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영은 눈물을 흘리며 놔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차혜 부인은 아이를 더 자신에게 잡아 당기기 위해 있는 힘껏 아이의 팔을 잡아 당겼다.

팔이 뽑힐 것만 같아 손톱이 파고 드는 것은 아픔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가까이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며 도망칠 방법을 찾던 영은 그제서야 어머니의 목과 허리 두 발과 팔에 쇠고랑이 채워져 있는 것을 알았다.

쇠고랑은 다시 쇠사슬로 연결돼 있고 그 쇠사슬의 끝이 바로 쇠기둥이었다.

차혜 부인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 것인지 엄청난 힘으로 아들을 향해 부딪혀왔다.

아들의 팔에서 피가 흐르자 어머니는 귀를 찢는 듯한 포요를 하며 한층 더 달겨들었다.


“영아!!”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영이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린 순간 엄청난 통증과 동시에 뜨거운 무언가가 이마와 얼굴에서 흘러내렸다.

아버지와 문중 어른들, 형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세상은 온통 빨갛고 더는 자신의 팔을 잡은 어머니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히 붙잡고 선 창살 너머의 존재가 정말 어머니인지 아닌지도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다만, 달려오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절망과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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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제 40장 : 드러나는 그림자 2 22.07.29 47 1 9쪽
39 제 39장 : 드러나는 그림자 22.07.17 63 1 9쪽
38 제 38장 : 급습 3 22.07.16 51 1 9쪽
37 제 37장 : 급습 2 22.07.10 57 1 9쪽
36 제 36장 : 급습 22.07.10 64 1 9쪽
35 제 35장 : 수수께끼 22.07.03 56 1 9쪽
34 제 34장 : 이상한 물 22.07.02 66 1 9쪽
33 제 33장 : 붉은 이슬 7 22.06.26 67 1 9쪽
32 제 32장 : 붉은 이슬 6 22.06.25 64 1 9쪽
31 제 31장 : 붉은 이슬 5 22.06.20 67 1 9쪽
30 제 30장 : 붉은 이슬 4 22.06.19 78 1 9쪽
29 제 29장 : 붉은 이슬 3 22.06.19 69 1 9쪽
» 제 28장 : 붉은 이슬 2 22.06.18 75 1 9쪽
27 제 27장 : 붉은 이슬 22.06.16 69 1 9쪽
26 제 26장 : 동공 22.06.15 86 1 9쪽
25 제 25장 : 수전(水戰) 22.06.14 92 1 9쪽
24 제 24장 : 사화산 마희 2 22.06.13 92 1 9쪽
23 제 23장 : 사화산 마희 22.06.12 78 1 9쪽
22 제 22장 : 산전(山戰) 22.06.12 88 1 9쪽
21 제 21장 : 그날의 비밀 2 22.06.10 86 1 9쪽
20 제 20장 : 그날의 비밀 22.06.09 79 1 9쪽
19 제 19장 : 의심 22.06.08 97 1 9쪽
18 제 18장 : 우호(友好) 22.06.07 111 2 10쪽
17 제 17장 : 기묘한 무녀 22.06.06 112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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