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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pia 님의 서재입니다.

무격(武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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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usepia
작품등록일 :
2022.05.22 14:07
최근연재일 :
2022.08.14 13:34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6,324
추천수 :
116
글자수 :
180,418

작성
22.06.26 21:31
조회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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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제 33장 : 붉은 이슬 7

DUMMY

지훤이 유유히 일어서 문 밖으로 나섰다.

예속은 표정 변화없이 차를 마셨다.

이선이 매석과 주화에게 자신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지훤이 한 말이 다 사실인가?"

"사실은 무슨, 음해라 하지 않았나?"

"예, 이선. 천관과 재상 두분을 욕되게 하는 어거지입니다."


매석과 주화의 말에 이선이 날카롭게 그들의 눈을 바라보며 다시한번 물었다.


"한치의 거짓도 없어야 할 것 일세. 만일 숨김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이야기하는게 좋을 걸세."

"거짓은 무슨! 저자야 말로 이번 실례에 대해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일세."


매석과 달리 주화는 아무 말이 없었다.


"주화?"


이선의 채근에도 주화는 말이 없었다.

매석이 그런 주화를 바라보며 짜증이 난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이봐, 천관 어른이 욕되게 된 일이야. 네가 입 다물어 버리면 오해만 커진다고."

"매석 잠시만, 주화에게도 생각이 있을 것 아닌가. 주화 왜 갑자기 말이 없지?"


잠시 말 없이 있던 주화가 갑자기 눈동자를 좌우로 이리저리 굴렸다.

초점을 잃은 상태로 눈동자를 좌우로 굴릴 때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기의 흐름으로 무언가를 살필 때였다.

천관 집안의 아이이나 남자 아이에 선대 천관이 낳은 아이가 아닌 이름 없는 무녀들 중 하나의 자손인 주화는 의례 집안에서 그러하듯 태어나자마자 절로 보내졌다.

버려지듯 동자로 자라온 아이가 왕의 호위무사가 되기까지의 일들은 아직 소상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아이의 능력에 대해서는 소문이 무성했다.

정확하게 몇살부터 공수(신령이 무당의 입을 빌어 의사를 전달하는 것)를 했는지는 모르나 아이를 데리고 있던 절의 주지가 천녀 문하생들이 수련하는 수경천으로 아이를 안고 뛰어 왔을 때 아이는 공수 중이었다.

그때 주화의 나이 겨우 네살이었다.

때마침 수경천을 들렀던 지금의 천관이 아이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수경천에서 기를 것을 명하였고, 아이가 열여덟이 되던 해 호위무사가 됐다.

천관 집안의 아이들은 대게 공수를 하기 때문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 아이가 그 능력을 받는 경우도 희귀할 뿐만 아니라 아이의 공수 능력은 월등하여 소위 백발백중이었다.

그 능력에 질린 주지가 아이를 데리고 수경천까지 달려온 것이었다.


드르륵


지훤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모두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한 손에는 작은 분재가 들려 있었다.

분재를 회의 탁자 정중앙에 내려놓자 분재의 정체가 드러났다.

작은 전나무였다.

품에서 작은 호롱병을 하나 꺼내 마개를 열고 붉은 방울 몇방울을 전나무 뿌리쪽 구멍에 맞춰 넣었다.


"지훤, 그거 마희의 피 아니야?"


태호가 벌떡 일어서며 지훤에게 다가가자 지훤이 미소를 지으며 도포 안쪽에 있는 해독부를 펼쳐보였다.


"걱정마. 겸주에게 부탁해 미리 해독부를 지녔으니까. 그리고 태호의 말처럼 이것은 마희의 핏방울입니다. 더불어 이 분재는 재상께서 나누어 준 뿌리에 구멍이 난 전나무 묘목입니다."

"이 무슨 해괴한 짓인가!!"


매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훤, 말도 안돼는 짓은 이쯤해서 그만 둬. 참는데도 한계란게 있어."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는 조금 더 봐야할 것일세."


지훤은 자리에 앉아 계속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주화의 곁으로 가 주화의 황금색 머리끈을 검으로 잘라냈다.

주화가 두 눈을 쉬지 않고 깜빡이며 경련했다.

지훤은 잘라낸 황금색 머리끈을 구멍 위에 올리고 태웠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태연하게 앉았다.


"너 주화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틈타 그의 머리끈을 잘도 잘라내 태웠으렸다!"


매석이 주먹을 쥐자 이선이 그의 어깨를 누르며 진정시켰다.

가만히 상황을 둘러보던 예속이 미소를 지으며 매석을 향해 말했다.


"매석, 지금까지의 일들은 모두 지훤이 예의를 벗어난 행동을 한 것이 맞습니다. 허나, 지금은 지훤이 왜 그러는지 들어보자는 자리이지요. 끝까지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예, 예속을 생각해 참겠습니다. 허나, 지훤의 음해임이 밝혀지는 순간은 저도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매석의 말을 마지막으로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주화는 계속해서 두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일각(15분)이 지나 전나무가지 사이사이로 붉은 이슬이 피어올랐다.

일순, 기필천 내의 무격과 호위 모두 긴장했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지훤의 말에 매석이 음해라고 소리를 질렀다.


"닥치거라!"


주화였다.

주화는 어느새 두 눈을 부릅뜨고 눈 한번 깜빡이지 않은 채 지훤을 바라보았다.


"네 이놈 감히 재상을 욕되게 하지 말지어다."


묘한 쇳소리가 섞인 여인의 음성이었다.

매석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주화를 바라보았다.


"재상께서는 진정 나라를 위함이었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것은 안타까우나 그것이 어찌 우리 집안의 탓이란 말이더냐."


겸주가 합장하고 주화에게 물었다.


"신분을 밝히시지요."

"어머니! 어머니가 맞으십니까?"


매석이 주화를 향해 말했다.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그득했다.


"아들아, 울지 말아라. 네 아버지는 국경과 백성의 생명을 지키고자 전나무숲을 전소하고 다시금 살려 내신 분이다. 얼토당토 않는 말에 휩쓸리지 말거라. 너는 재상 복명정의 아들이다!"

"예, 부인의 말씀대로라면 재상께서는 이 일과 무관하다 할 수도 있겠습니다. 허나, 재상과 뜻을 함께하지 않은 가문들의 멸족을 어찌 설명하시렵니까?"

"감나무 가지 위에서 쉬던 까마귀가 날아 다 익은 감 하나가 떨어져도 우리 탓이라 할 놈이구나."

"주화 장난은 여기까지다. 그만해!"


지훤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겸주가 염주를 꺼내 들고 독송을 시작했다.

매석은 무슨 짓이냐며 겸주를 말리려고 했고 타석이 자리에서 일어서 그런 매석의 어깨를 잡았다.


"아수라장이네요."


예속이 이선과 태호를 향해 말했다.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이자 예속이 들고 있던 부채를 접어 들고 탁상을 쾅 내리쳤다.

부채에서 퍼져나간 파장이 주화를 향했고 주화는 이내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매석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예속에게 달려들려 하자 타석이 매석의 두 무릎을 걷어차고 그의 머리채를 쥐어 무릎을 꿇였다.


"주화 일어나세요."


예속의 말에 주화가 비몽사몽 눈을 떴다.


"지훤, 지훤의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또한, 그간 지훤 가문이 이 일의 원인을 찾기 위해 긴 시간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알았습니다. 모든 정황과 근거가 들어맞지만, 명확한 증거가 부족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지요. 매석과 주화는 각각 의심의 여지가 있습니다.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단 말입니다. 이 일은 서로 완벽한 물증과 증인이 있지 않는 한 더 묻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훤이 그럴 순 없다고 했지만, 예속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호위를 모두 돌려보내고 무격들 앞에 선 예속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재상은 알면서도 혹은 모른 채 전나무숲을 전소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일 알고 그랬다 해도 여진을 이기기 위한 술책 정도였을 것입니다. 이후 몇몇 가문들이 겪은 일은 상장군 가문 내 또다른 원인이 있는 듯합니다. 이 부분은 함께 찾아보시지요. 더불어 천관은 지훤의 생각처럼 깊숙이 연관이 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허나, 어디까지나 정황이네요. 전나무 구멍에 마희의 피를 넣고 천관 가문의 황금띠를 태워야 붉은 이슬이 맺힌다는 건 누구에게 들었나요?"


지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말 할 수 없는 증인 혹은 증거로는 그 무엇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파문 당한 천관의 무녀들에게 들었습니다."

"증거가 증인이 약하면 되려 해를 입지요."

"하지만, 명백하게 천관이 연관되어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훤 가문은 왜 이 일을 모두 알면서도 함구하고 있습니까?"

"그건, 그건···."

"때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천관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재상의 일도 엉뚱하게 불똥이 튈 수 있습니다. 지훤의 마음은 알지만,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합니다. 큰 적을 잡을 때는 어느때보다도 더 신중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지훤이 깊은 한숨을 내쉬자 예속이 따스하게 미소를 지었다.


"지훤, 이제 패가 어느정도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그 패를 가리기 위해 전심을 다할 것이고 지훤은 보다 더 치밀해야 할 것입니다. 천관과 재상이 무격 가문을 공격했다면, 무격도 가만히 있 진 않을 것입니다. 지훤 따로 태호 따로 모든 가문이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무격은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무격 대회의가 열려야 할 것 같군요."


무격 대회의라는 말에 무격들 모두 깜짝 놀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격 대회의는 그간 단 한번도 개최된 적 없는 회의로 선대 무격들은 물론, 무격 가문의 문장과 유사가 모두 모이는 회의이다.

무격 대회의의 안건은 공공의 적, 혹은 최악의 마희를 상대 할 때로 정해져 있었다.


첫 대회의 개최, 안건은 공공의 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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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제 43장 : 세자 22.08.07 49 1 9쪽
42 제 42장 : 비극 22.08.05 47 1 9쪽
41 제 41장 : 드러나는 그림자 3 22.07.31 42 1 9쪽
40 제 40장 : 드러나는 그림자 2 22.07.29 47 1 9쪽
39 제 39장 : 드러나는 그림자 22.07.17 63 1 9쪽
38 제 38장 : 급습 3 22.07.16 51 1 9쪽
37 제 37장 : 급습 2 22.07.10 57 1 9쪽
36 제 36장 : 급습 22.07.10 64 1 9쪽
35 제 35장 : 수수께끼 22.07.03 56 1 9쪽
34 제 34장 : 이상한 물 22.07.02 66 1 9쪽
» 제 33장 : 붉은 이슬 7 22.06.26 68 1 9쪽
32 제 32장 : 붉은 이슬 6 22.06.25 64 1 9쪽
31 제 31장 : 붉은 이슬 5 22.06.20 67 1 9쪽
30 제 30장 : 붉은 이슬 4 22.06.19 78 1 9쪽
29 제 29장 : 붉은 이슬 3 22.06.19 69 1 9쪽
28 제 28장 : 붉은 이슬 2 22.06.18 75 1 9쪽
27 제 27장 : 붉은 이슬 22.06.16 69 1 9쪽
26 제 26장 : 동공 22.06.15 86 1 9쪽
25 제 25장 : 수전(水戰) 22.06.14 92 1 9쪽
24 제 24장 : 사화산 마희 2 22.06.13 92 1 9쪽
23 제 23장 : 사화산 마희 22.06.12 78 1 9쪽
22 제 22장 : 산전(山戰) 22.06.12 88 1 9쪽
21 제 21장 : 그날의 비밀 2 22.06.10 86 1 9쪽
20 제 20장 : 그날의 비밀 22.06.09 79 1 9쪽
19 제 19장 : 의심 22.06.08 97 1 9쪽
18 제 18장 : 우호(友好) 22.06.07 111 2 10쪽
17 제 17장 : 기묘한 무녀 22.06.06 113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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