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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pia 님의 서재입니다.

무격(武覡)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완결

musepia
작품등록일 :
2022.05.22 14:07
최근연재일 :
2022.08.14 13:34
연재수 :
44 회
조회수 :
6,311
추천수 :
116
글자수 :
180,418

작성
22.06.07 12:25
조회
110
추천
2
글자
10쪽

제 18장 : 우호(友好)

DUMMY

“제가 아닙니다.”


무녀가 단호하게 답했다.


“좋다. 네가 아니라 하자. 그럼 누구란 말이냐.”

“아직은 심증입니다. 심증이라 말씀 드릴 수 없고 그것을 찾는 것 또한 무격님들의 일이시지 이년의 일은 아니지요.”


무녀는 흥화진 소식을 들은 날 새벽 황주가 마희에 당하는 꿈을 꾼 채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 너무도 선연하여 일어나 신당에 들어 기도를 올리는데 이번에는 막으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할머님께서 명하신 것이지요. 사람을 살리라 하신 거지요. 그리고 무격께서 오실 것이라는 것도 알려주셨습니다. 그날 지방관 황평상의 아내가 신당을 찾았고 그이를 통해 무격께서 오시기까지만이라도 황주를 지켜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무녀는 성황당에 정한수를 떠 둔 것은 성황당을 기점으로 마희가 다른 지역으로 퍼저나가는 걸 막기 위함이었고 황평상 제웅의 손목에 성황당 끈을 묶어 둔 것은 마희들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늦춰 피해를 줄이고자 한 방책이었다는 설명이었다.


“사실 황평상의 이름을 적을 필요는 없었습니다만, 그리해두면 마희를 잡고 무녀의 짓임을 직감한 여러분께서 저를 찾아와 주시지 않겠습니까? 애석하게도 저는 이곳을 떠날 수 없는 몸입니다.”

“무슨 뜻이오?”

“말 그대로 저는 이곳에 갇혀있는 몸입니다. 그 옛날 애동 시절 잘못을 하나 단단히 했지요. 그 덕에 이 신당에 평생 묶여 사는 신세입니다. 누굴 돕고 싶어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마희는 누구의 짓이란 말인가?”

“누구의 짓이라기 보다는 마희들이 무격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움직임을 주시해?”

“예, 흥화진처럼 새로운 마희들이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이번 황주 마희는 무격들께서 움직이는 동선을 미리 파악하고 이전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무격들께서 도달해야 하는 곳에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하도록 막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막아? 누가 어떤 연유로?”

“그것까지는 이년의 몫이 아니라니까요. 저는 드릴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다 드렸습니다. 더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무녀의 방에서 무격이 나오자 겸주가 기도를 멈추고 일어섰다.

무녀의 방책에 대해 설명을 들은 겸주가 말했다.


“거짓은 아닌 듯합니다. 게다가 이곳 탱화를 살펴보니 예사 무녀가 아닌 듯합니다.”


겸주의 말에 탱화를 찬찬히 살펴보던 태호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사천왕의 발목마다 찍힌 이 작은 낙관,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예 형님, 태호 본가 사당 가장 구석에 작은 사천왕 탱화였을 것입니다. 태호가 뿐 아니라 무격 가문 모든 본가 사당 안쪽에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사천왕 탱화가 있을 것입니다.”


겸주의 설명에 지훤이 기억을 더듬었다.


“맞아. 우리 본가 사당에서도 있어. 그 사천왕들의 발목에도 작은 낙관이 있어 어릴 적에는 만져본 적도 있어.”

“사천왕 탱화 발목에 낙관을 찍는 분은 진묵 대사 한분 뿐입니다. 대사께서는 본디 한 곳에 머무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저희도 이렇게 우연히 탱화를 접하곤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보호할 이유가 있는 곳에만 탱화를 남기셨습니다. 아마 악의가 있는 무녀는 아닌 듯합니다.”



##



진묵은 겸주 가문의 고승으로 주로 사천왕 탱화를 그렸다.

현 무격 겸주가 태어나기 이전에 열반에 들었기에 겸주는 진묵을 만나 본적은 없었으나 집안 어른들로부터 자주 그에 대해 들었다.

본가의 모든 탱화를 비롯한 그림은 그가 그린 것이었다.

겸주가 아명인 원으로 불리던 어린 시절 사천왕 발목의 낙관이 궁금해 아버지께 물었던 적이 있었다.


“진묵 대사님은 나도 어릴 적 한번 뵀다. 물감과 오랜 타지 생활로 누더기가 된 옷을 입고 계셨는데 눈빛이 얼마나 맑던지 어린 마음에도 기분이 참 좋더구나. 아마, 그때도 그림을 그리러 오셨던 걸로 기억한다. 외벽에 그림을 그리실때는 나도 곁에서 있었는데 그때 낙관을 하나 꺼내 찍으시더구나.”


진묵은 자신이 그린 사천왕이더라도 낙관이 없으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겸주의 아버지 권은 어린 마음에 자신의 물건에 이름을 새기듯 그림에 새기는 것이냐 물었고 진묵은 파안대소하며 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맞다고 몇 번이고 답을 해주었다.


이후 진묵을 만난 적은 없었다.

본가에 찾아오는 일도 없었다.


권이 나이가 들어 열두살 즈음 되었을 때, 한밤에 그림자가 그였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집안 어른들은 진묵이 사천왕 탱화를 그리면 그곳은 무사무탈하며 잡귀나 어려움으로부터 보호받는다고 했다.

몇몇 어른들은 진묵의 부름에 사천왕이 벽화에서 걸어나와 악귀들을 심판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권이 당시 겸주 문장인 아버지께 물었으나 문장은 그저 이야기에 살이 붙은 모양이라며 웃기만 했다.



##



무격은 신당을 나서며 황평상 부부를 그 지역 지방관에게 넘기고 서경으로 향했다.

서경으로 향하는 내내 지훤은 무녀의 말이 머리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농인 듯도 참인 듯도 한 그 표정도 잊을 수 없었다.


“참일까? 농일까?”


지훤의 물음에 태호가 잠자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참일 수도 농일 수도. 짐작가는 데가 있나?”

“어? 네가 어떤 일로 내 물음에 답을 해?”

“항상 실없는 소리를 해서 그렇지 질문에 답을 하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어.”

“실없기는! 항상 아주 진지한 물음이었다고.”


태호가 괜한 말을 했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박차를 가했다.

앞서가는 태호를 따라 박차를 가해 따라가며 지훤이 계속해서 치근덕거렸다.

뒤따라 가던 겸주가 타석에게 말했다.


“지훤 형님은 진지함과 농이 너무 빠르게 전개가 됩니다.”

“그게 지훤의 매력 아니겠느냐?”

“그 매력에 태호 형님이 두통이 생기신 듯합니다.”

“그런가? 하하하하.”



[북계 : 서경]


늦은 시각 도착한 서경은 활기가 넘쳤다.

북계에서 세 번째로 큰 지역답게 대형 숙소인 원도 있었다.

삼층으로 된 자비원에 들어서 방을 잡으려 하자 이번에도 방이 두 개뿐이라고 했다.

태호가 재빠르게 타석과 한방을 쓰겠다고 말하려는데 지훤이 선수를 쳤다.


“대장이 나랑 쓰고 타석 형님과 겸주가 한방을 쓰면 되겠습니다.”


태호는 입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못마땅하다는 듯 잠시 입술을 꾹 다물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털썩 앉은 지훤이 어정쩡하게 서 있는 태호를 바라보다 검 손잡이에 묶인 댕기 조각을 발견했다.


“대장, 그 댕기... 그 아이건가?”


지훤의 질문에 태호는 별말 없이 검을 내려놓고 도포를 벗었다.


“내가 대장을 안다면 꽤 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아는 태호는 어릴 적에도 우는 걸 본적이 없는 걸?”


지훤의 울었다라는 단어에 태호가 미세하게 움찔하였다.


“무슨 일인지 물어도 답 안해주겠지?”


지훤이 대답 자체를 포기한 채 물었다.


“내 누이동생이 그 아이만 할 때, 마희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목숨은 부지했다.”


태호는 다탑에 앉으며 짧게 답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놀란 건 지훤이었다.


“뭐? 태호가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는데?”

“공격한 마희는 바로 소멸됐고 아이는 살았으니 소문 날일이 뭐에 있겠는가?”


한탄처럼 들리기도 한숨처럼 들리기도 했다.

지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난 창을 열어 달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던 지훤이 몸을 돌려 태호에게 말했다.


“너는? 너는 괜찮았어?”


진지하게 묻는 지훤의 질문에 태호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태호는 대답 대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조금은 슬퍼 보이는 듯도 했다.

그런 태호를 바라보는 지훤의 얼굴 흉터에 달빛이 부드럽게 돌아 반짝였다.


“나는 대장 너를 온전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보다. 너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네가 내 가장 절친한 벗이거든.”


지훤의 말에 태호가 피식하고 코웃음을 쳤다.


“절친한 친구가 그렇게 없냐?”

“뭐? 너야말로 샌님처럼 맨날 말도 잘 안하고 웃지도 않고 조금만 흐트러져도 난리를 치면서 친구가 하나라도 있긴 하냐?”


태호가 고개를 내저으며 잠자리에 들 준비나 하라고 면박을 주었다.


“태호!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 나는 내 얼굴 보고 울지 않는 아이는 네가 처음이었어. 그래서 속으로 외쳤지. 이 녀석이다. 이 녀석이라면 내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

“뭐?”


지훤의 황당한 결론에 태호는 연이어 콧방귀를 끼며 이불을 정돈했다.

이불 정돈이 끝나기 무섭게 지훤이 벌러덩 태호의 자리에 누웠다.


“야 니 자리로 가라고!”

“니 자리 내 자리가 어딨어. 친구 사이에. 나 오늘 좀 피곤했다. 대장이 저쪽에 이불 다시 깔아.”


태호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으며 오른발로 지훤의 등짝을 밀어 맨바닥으로 굴려버렸다.


“아 정말, 정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지.”

“어, 없어!”


태호가 지훤이 이불을 제대로 깔지도 못했는데 초를 꺼버렸다.


“야! 정말!!”


지훤이 한참을 풀썩거리다 자리에 누웠는지 조용해졌다.

태호는 창 너머 푸르게 스며드는 달빛을 바라보며 낮에 있던 일들을 복기했다.

진평 무녀가 정말 지훤을 만난 적이 있는 것인지 농이었는지 궁금해 입을 열려던 찰나에 지훤이 먼저 말했다.


“태호, 네 탓이 아니다.”


갑작스런 지훤의 말에 태호는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여동생, 그리고 그 아이. 둘 다 네 탓이 아니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여동생 이야기하고 그래서 미안하다.”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의 전개에 태호는 두 눈만 껌뻑거렸다.

하지만, 지훤의 말이 조금은 위로가 된 듯도 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진평 무녀를 언제 보았는지나 기억해 내. 맨날 여자 얘기만 하더니 정작 만났던 사람은 기억도 못하는 건가?”

“아 그러게 말야. 너무 많은 여인들을 보아서인지 도통 기억이 안나네. 진평 무녀도 나의 아리따움에 반한거겠지 뭐!”


지훤이 농담처럼 가볍게 말했지만, 어둠 속 그의 표정은 짐짓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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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제 39장 : 드러나는 그림자 22.07.17 62 1 9쪽
38 제 38장 : 급습 3 22.07.16 51 1 9쪽
37 제 37장 : 급습 2 22.07.10 57 1 9쪽
36 제 36장 : 급습 22.07.10 64 1 9쪽
35 제 35장 : 수수께끼 22.07.03 56 1 9쪽
34 제 34장 : 이상한 물 22.07.02 66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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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제 32장 : 붉은 이슬 6 22.06.25 63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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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 29장 : 붉은 이슬 3 22.06.19 69 1 9쪽
28 제 28장 : 붉은 이슬 2 22.06.18 74 1 9쪽
27 제 27장 : 붉은 이슬 22.06.16 68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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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 23장 : 사화산 마희 22.06.12 78 1 9쪽
22 제 22장 : 산전(山戰) 22.06.12 88 1 9쪽
21 제 21장 : 그날의 비밀 2 22.06.10 85 1 9쪽
20 제 20장 : 그날의 비밀 22.06.09 7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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