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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1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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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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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3
글자수 :
702,223

작성
09.01.1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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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베나레스의 총사(159)

DUMMY

안젤라는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녀가 삼각모를 눈 밑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깊게 눌러 썼다.

안젤라가 나직이 말했다.

“내가 그들을 죽이고 싶어 죽였는 줄 알아?”

“거짓말.”

벨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자리에서 너 같은 년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순진한 사내를 이용해 먹어 자기 입맛대로 가지고 놀다 버리는 거였겠지. 어디 한번 말해보시지. 브라운 베스. 우리가 한때 함께 싸웠던 그 많은 사람들을 네가 함정을 파서 죽였을 때, 정녕 죄책감 따위는 조금도 느끼지 않았어?”

안젤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벨린은 그녀를 차갑게 쏘아보았다. 그가 들고 있던 머스킷총을 지향자세로 겨눴다.

“너는 언제나 거짓말만 일삼아.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하기엔 나는 너무 지쳤어. 그러니까 이제는….”

“그들이 나를 의심했던 건 거짓말이 아니야.”

안젤라가 말을 가로막았다. 벨린 데 란테에게는 그녀의 바짝 마른 입술이 움직이는 것만 보였다.

“그들이 먼저 나를 욕보인 다음 죽이려 했어. 우리가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을 때. 네가 국제여단 사람들과 정찰 임무를 나갔을 때. 머스킷총을 정비하던 나한테 그 자들이 들이닥쳤어. 그런 다음…. 그 자들은….”

안젤라의 음성이 격앙되었다. 벨린은 그저 비웃었다.

“네 음흉한 속셈을 그들이 눈치 챘으니 그랬겠지. 너는 흑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걸 모두한테 숨겼어. 심지어 나한테까지도. 내가 너와 비무장이 되어 사랑을 나눌 때, 언제든지 내 머리를 조종하고 심지어는 복상사로 위장할 수 있도록 그랬던 거 아냐?”

안젤라가 외쳤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아니었어, 벨린 데 란테!”

벨린의 입술에서 경련이 일었다. 머스킷트리스가 외침을 이었다.

“그저 창녀의 사생아에, 더러운 놈들한테 총질과 마법을 배우고 사람을 죽여 히스파니아로 도망쳤던 계집애에 불과했단 말이야! 네가 의심하는 것처럼 신교도들의 사주니, 빌랜드의 스파이니 그런 것은 전혀 말도 안 되는 네 망상이야! 네가 나한테 언제 마음의 상처를 입혔냐고? 너는 항상 내 말을 믿은 적이 없어. 네가 내 말을 믿지 않고 나를 내쫓았던 그 후부터, 나는 정말 네가 원한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기계가 되어버렸던 거야! 봐! 이렇게 무고한 처녀의 머리에다 총을 겨눌 정도로 뻔뻔하게!”

벨린은 차가운 눈동자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겁에 질린 아리엘만이 신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그게 네 변명이야? 오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안젤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벨린이 실소를 터트렸다.

“그럼 차라리 도망칠 것이지.”

그가 머스킷총의 격발장치를 잡아당기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든 마음의 평안을 찾았을 거야. 심지어는 오해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식으로 이성을 되찾을 수도 있었을 거야.”

“거기서 나를 좋아했던 히스파니아인은 없었어. 자기.”

안젤라가 울먹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모두가 나를 영혼까지 차가운 이국의 마녀로 알았지. 오직 너만이 내게 마음을 열었어. 그들이 네게 나를 모함하도록 놔둘 순 없었어.”

“이기주의자.”

벨린이 안젤라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도 세상이 온통 자기 것인 줄 아나 보지? 과거 일을 더 후벼 파기는 싫으니 이제 그만 아리엘을 놔줘. 그녀는 너처럼 타락하지 않았으니까.”

안젤라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두 뺨에서 눈물이 타내려 턱 끝에서 떨어져 내렸다. 벨린은 그저 더 이상은 속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벨린의 등 뒤에서 총사대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삼각모를 푹 눌러 쓴 안젤라가 내뱉었다.

“너는 오늘 내게 또 한 번 상처를 입혔어. 벨린 데 란테.”

안젤라가 고개를 들어보였다. 눈동자와 동공이 구별가지 않을 정도로 짙은 갈색 눈에 눈물이 괴어 있었다.

“비어든 박사는 나에게 아버지와 같아. 너와 헤어진 이후, 나에게 유일하게 관심을 보여 왔던 사람은 그뿐이었어. 박사는 살인혐의로부터 나를 사면해줬고 너를 상대할 정도로 강해질 수 있게 해줬어.”

근위총사들이 그들을 발견하고 뛰어 들어왔다. 안젤라가 고함쳤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가져가마! 벨린 데 란테!”

“잠깐!”

낌새를 눈치 챈 벨린이 외쳤다. 권총을 든 안젤라가 아리엘의 등을 발로 찼다. 벨린이 방아쇠를 당기려 했지만 아리엘에게 가려 안젤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리엘이 앞으로 고꾸라지려 하자 벨린은 총을 버리고 앞으로 뛰었다. 그가 돌에 걸려 넘어지려는 아리엘을 붙잡는 순간. 권총의 짧은 총성이 울려 퍼졌다.

주인의 품에 안긴 아리엘의 몸이 들썩였다. 벨린의 얼굴로 피가 튀었다. 아리엘을 품에 안은 그는 밑을 내려 보았다. 그녀의 등 가운데에 뚫린 도토리만한 구멍에서 검붉은 피가 솟아올랐다.

벨린이 경악한 나머지 입을 벌렸다. 붉은 제복차림의 안젤라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가 잠시 뒤를 돌아보더니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권총을 벨린에게 던졌다. 완전한 절교를 선언하는 듯이. 권총이 그의 곁에서 무거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아리엘은 초점 잃은 눈으로 벨린을 바라보며 나무토막처럼 주인의 품으로 쓰러져 내렸다. 벨린은 아무 말도 못하고 아리엘을 안은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빌랜드군을 쫓는 총사대원들의 대열이 파도처럼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두 전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신이시여.”

아연실색한 알레한드로가 중얼거렸다. 조안은 몸에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자신의 총을 떨어뜨렸다. 그는 죽은 아리엘의 얼굴을 확인했고, 그녀의 의연한 표정에 죄책감이 폭발한 듯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벨린 데 란테는 혼이 달아난 얼굴로 여전히 주저앉아 있었다. 조안의 울음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총성이 울려 퍼졌지만 그에게는 머나먼 곳의 마지막 일처럼 아늑했다.


---------------


21장 - 감정이 원하는 대로가 끝이났습니다. 결국 아리엘은 안젤라의 응징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처음 쓸때부터 결정했던 거라, 이 운명을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어요.


22장은 '대회전' 마지막 장으로써... 2부의 마지막 전투입니다. 평야 전투이며 2부에 얽힌 모든 사건이 종식되는 장이랍니다..


요즘 새로운 일을 시작할 거 같아요. 그냥 글다듬어 투고도 좀 하고, 새글도 써보고 그러려구요. 추천글이 올려왔던데 참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많은 분들이 더 많이 읽어보신다면 저야 기분이 좋겠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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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4

  • 작성자
    Lv.55 문휴
    작성일
    09.01.13 17:47
    No. 31

    사연이라....
    뭐...사람마다 느낌의 차이는 있겠지만 제가 보는 관점에서 안젤라는 상당히 극한의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네요.
    자신이 입은 마음의 상처가 그만큼이라 하여 산 목숨들을 거둔다면 벨린이 입은 마음의 상처에 대한 대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입장만을 항상 주장하는....
    울 어머니께서 즐겨보시는 주말연속극에 저런 여자들 자주 나옵디다.
    보면 항상 저런 여자가 극의 실마리를 쥐고 흔들던데 여기서도 그러려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델타식스
    작성일
    09.01.13 20:37
    No. 32

    이렇게되는군요.. 여자란 존재는 무서운겁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sfartar
    작성일
    09.03.23 21:33
    No. 33

    아리엘과 잘될줄 알았는데....
    건필요.......흠
    비극으로 결말인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transistor
    작성일
    10.12.17 15:10
    No. 34

    이렇게 가는군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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