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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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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08.12.22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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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베나레스의 총사(151)

DUMMY

비어든 박사가 발코니로 뛰어가며 소리쳤다.

"노망난 늙은이께서 납셨군!"

마법사가 발코니에 서 있던 총사들을 밀쳤다. 아리엘을 꼼짝 못하게 붙들고 있던 안젤라가 그녀를 벽으로 밀쳤다.

"여기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안젤라가 아리엘을 사냥감처럼 쳐다보며 일렀다. 그리고는 머스킷총을 들고 외쳤다.

"전투 준비!"

처형을 준비하던 레드코트들이 창가로 뛰어갔다. 이는 처형이 연기되었다는 뜻이었다. 포로들이 믿을 수 없다는 투로 곧바로 눈을 떴다.

반면 주스티안 데 모리체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 또한 안절부절 못하다 창가로 뛰었다.

혁명을 원하는 자들이 잔디밭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지팡이 끝에 푸르스름한 불빛을 발산하며 다빈치가 서 있었다. 오직 그 하나 뿐이었다. 푸른빛에 드리워진 그림자라고는 이 란툰반도의 마법사 하나 뿐이었다.

비어든 박사가 외쳤다.

"세뇨르 자코모 다빈치. 이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구려. 당신의 그 위대한 해부학 도구들과 발명품은 그간 안녕하였소?"

다빈치가 명량한 어조로 응수했다.

"내 새끼들 말인가? 자네의 새끼들처럼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았지. 그저 내 연구실에서 얌전히 잠이 들어 있었거든. 그건 그렇고. 잠시 나와 얼굴을 마주보는 게 어떤가. 자네가 벌인 이 작당질 때문에 할 이야기가 있는데."

비어든 박사가 코웃음치며 대꾸했다.

"대화를 원한다면 이쪽으로 오는 게 어떻소. 거기서 체통맞지 않게 소리지를 게 아니라."

그 말에 다빈치가 흐드러지게 웃더니 일갈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딕! 나는 자네가 하고 있는 짓에 정말이지 실망을 금할 수 없군."

"남의 나라의 혁명을 지원한 거 말이오?"

비어든의 질문에 다빈치가 도리질을 쳤다.

"아니, 자네의 새끼들이 나같은 늙은이에게 총을 겨누고 있지 않은가. 마법사로서, 응당 지녀야할 자신감과 긍지를 세속적인 무기 따위에 팔아넘기고 있다니. 쯧쯔."

제대로 된 도발이었다. 비어든 박사는 얼굴이 단단히 붉게 달아올라서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안젤라가 뒤에 있었다. 박사가 그 빌랜드 머스킷트리스와 눈을 마주쳤다.

그가 다빈치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일렀다.

"총을 거둬. 저 늙은이는 내가 상대할 테니."

안젤라가 긴장한 어조로 대꾸했다.

"제 마법이 통하지 않아요. 혹시 매복한 적들이 있나 해서 주변을 탐색하려고 해봤지만..."

"저 교활한 란툰반도 늙은이가 방어막을 친 거다. 그러니 몸으로 직접 움직일 수밖에. 지금 당장 총사들을 이끌고 사방을 철저히 뒤져라."

안젤라가 예스 마이로드 하고 대답했다. 그녀가 몸을 돌려 흥미로운 표정으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스피놀라에게 말했다.

"이곳은 당신들이 맡아. 우리가 알아서 혁명을 지켜줄 테니까."

창가에서 총을 겨누던 빌랜드 총사들이 뒤로 물러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안젤라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허리춤에서 총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벽에 밀쳐놨던 아리엘의 머리채를 잡아끌어서는 목에 총검을 겨눴다.

스피놀라가 그 모습을 빤히 보더만 혀를 찼다.

"그게 당신을 파멸로 이끌지도 모르겠군."

안젤라는 그저 차가운 눈빛을 한차례 쏘아 보내더니 아리엘을 끌고서는 총사들을 따라 뛰었다.


한편 빌랜드 총사들이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비어든 박사는 드디어 나설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가 다빈치에게 소리쳤다.

"이제 조건은 동등해졌어."

반면 50미터 떨어진 잔디밭에 서 있는 다빈치는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자네가 겁에 질리지 않았다면야 이렇게 주저할 이유가 없지. 당장이라도 내게 치명적인 저주를 걸고 싶을 텐데?"

"듣던 중 반가운 소리!"

비어든 박사가 내뱉었다. 그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면서 빌랜드어로 만들어진 짤막한 주문을 읊조리자 그의 몸에서 검은색 아우라가 샘솟았다.

주스티안 데 모리체가 소리쳤다.

“지금 뭐하려는 거요?”

“보고만 있으시오. 캐임브릿지 박사의 힘을 보여주지.”

비어든 박사의 대꾸와 동시에 그가 갑자기 팟! 하고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이미 지상의 잔디밭에 나타나 있었다. 위협적인 검은 아우라를 발산하면서 그가 자코모 다빈치와 5미터 떨어진 앞에 나타났다.

두 마법사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는 둥그런 안경이 서로의 검은 아우라와 푸른 아우라를 투영하며 반짝반짝 빛이 났다.

자코모 다빈치가 그 붉은 머리 빌랜드인 마법사에게 푸른빛의 지팡이를 겨눴다.

“제노아 공국에서 어린아이처럼 치고 박고 싸운 이후로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군.”

다빈치가 너스레를 떨었다. 비어든 박사가 란툰반도 마법사의 푸른색의 아우라에 저항하며 지팡이를 똑바로 겨눴다. 그의 지팡이 끝에서 뿜어 나온 검은 아우라가 푸른 아우라와 대립했다.

비어든 박사가 숨을 고르며 한마디 했다.

“당신은 뒤끝이 너무 심해, 노망난 늙은이.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힐 참인가?”

“자네가 미꾸라지처럼 도주하지만 않았어도 진작 이 싸움은 끝났을 거야. 그러게 무고한 제노아 시민 5백명을 왜 쓸데없이 죽였단 말인가.”

비어든 박사가 코웃음 치며 지껄였다.

“그 공격에 참여했던 빌랜드 마법사들 가운데 절반이 당신한테 죽었어.”

“아하, 잘 알겠네. 즉 우리는….”

다빈치가 활짝 웃더니 기습적으로 지팡이를 뻗으며 외쳤다.

“청산할 빚이 너무 많군!”

일순간 푸른 아우라가 비어든 박사를 덮쳤다. 발목 높이로 자란 잔디들이 일직선으로 꺾였다. 검은 아우라로 맞서던 비어든 박사가 아우라에 날려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다빈치가 완전히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빌랜드 마법사가 조소를 흘리며 외쳤다.

“힘겨루기를 하기엔 당신은 늙었어!”

그가 악에 받친 주문을 내뱉었다. 빌랜드 고어로 이루어진 주문이었다. 빛을 응축한 듯한 날카로운 흑색 광선이 다빈치의 아우라를 꿰뚫었다. 누구나 봐도 그 광선은 형상화된 비수이자 저주였고, 위협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다빈치는 의연했다. 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오른쪽으로 살짝 몸을 틀었고, 검은 광선이 그의 아우라를 뚫어버렸음에도 간단히 피했다.

다빈치를 지나친 검은 광선이 궁전 정원의 조각상에 적중하여 폭발을 일으켰다. 굉음과 함께 초록색 불기둥이 치솟더니 공간이 왜곡되는 듯한 충격파가 자코모 다빈치의 삼각모를 저만치 날렸다.

“미 블레타(내 차례군)”

백발 머리칼을 드러낸 다빈치가 라투니스어로 내뱉었다. 보통의 음성이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권능이란 것까지 용솟음 치고 있었다. 물론 그 말은 마법적 주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공격에 실패한 비어든 박사는 즉각 지팡이를 휘둘러 아우라를 불러 모았다. 그 라투니스어가 뜻하는 말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코모 다빈치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의 몸 주변에서 맴돌던 안개 같은 푸른색 아우라가 일초도 채 지나지 않아 사방으로 증폭되었다. 다시 한 번 그 마법사가 절제된 동작으로 지팡이를 휘두르자, 궁전 높이 만하게 증폭된 그 아우라가 마치 높이 치솟은 파도가 바위를 때리듯 빌랜드인 흑마법사를 향해 덮쳤다.


* * *


벨린 데 란테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과다출혈로 정신을 잃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그의 마지막 자리는 아스티아노 골목의 차가운 디딤돌이 될 터였고, 그 디딤돌은 안젤라가 선물한 배에 박힌 총검을 눌렀으며 총검의 끝은 그의 상처를 더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총사대 제복을 자신의 피로 적시며 그는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몸뚱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구제되었다.

벨린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누군가 그의 이마에 등잔을 들이밀었다. 눈이 부셨다. 그가 손을 들어 등잔 빛을 가리자, 그를 둘러싸고 있던 이들이 히스파니아어로 지껄여댔다.

시간이 지나자 벨린 데 란테는 모든 물체를 또렷이 보기 시작했다. 삼각모를 쓴 군인들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리비나리(헌병군)들이었다. 그들은 피 묻은 총검으로 무장했고, 얼굴과 제복에는 화약의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었다. 한차례 전투를 치른 모양이었다.

벨린은 한동안 일어설 기력도 회복하지 못했다. 누군가 그의 배와 어깨에 박힌 총검을 빼내고 붕대를 감아놓았다. 안젤라의 공격은 치명적인 부분을 빗겨났지만 그는 이미 많은 피를 흘렸고 아프기 짝이 없었다.

아직 그는 아스티아노 시내에 누워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어디의 한복판인지 그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고 총성은 멎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동안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윽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타났다. 다른 헌병군처럼 제복을 차려입었는데, 금술이 달린 고급지휘관의 수장에 붉은색 주교 모자를 쓴 늙은이였다. 그 또한 전투에 휘말렸는지 화약 그을음이 가득 묻어 있었고, 매우 초췌하고 근심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가 부상당한 벨린 데 란테를 내려보았다. 갈색머리 총사는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리베라 추기경이었다.

반역자에 불과했던 자가 이번에는 그의 목숨을 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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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베나레스의 총사(156) +22 09.01.07 2,696 1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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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베나레스의 총사(153) +28 08.12.31 2,659 13 12쪽
155 베나레스의 총사(152) +25 08.12.25 2,729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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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베나레스의 총사(150) +26 08.12.21 2,578 1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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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베나레스의 총사(148) +17 08.12.15 2,572 10 9쪽
150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697 9 9쪽
149 [부록]베나레스의 총사에 대한 작가의 덧붙임(1) +14 08.12.12 3,482 5 15쪽
148 베나레스의 총사(146) +19 08.12.12 2,784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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