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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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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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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3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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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베나레스의 총사(153)

DUMMY

광장에는 화약연기가 자욱했다. 곧이어 병사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면서 양측의 군대가 정면충돌했다. 산발적인 총소리와 대포소리를 뒤로하며 헌병군은 바리케이드를 뛰어넘었고 동방회사군과 빌랜드군은 바리케이드 뒤에 숨어 총검을 휘두르며 공격군을 저지했다.

군세가 한쪽으로 기울 때까지 기다릴 여력이 벨린에게는 없었다. 그는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야음의 전장을 탐색했다. 적들의 방어망을 깨부술 돌파구가 마련된다면 당장 궁전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어느 한 곳에 시선을 집중했다.

아스틴 광장에는 각각 동쪽과 서쪽에 서로를 마주보고 초대황제 아스틴 데 아라고른과 전쟁 영웅 곤살로 데 코르도바 원수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 동상은 벽돌로 지어진 직사각형의 상층부를 포함하여 높이가 115미터나 되었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상층부가 높이의 반이었고 나머지는 청동제 동상이었다.

벨린의 눈앞에 광장의 서쪽 동상, 곤살로 데 코르도바 원수의 동상이 보였다. 총사대를 최초로 창설했다는 바로 그 장군이 검을 뽑아 든 채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과 화약 연기, 간간히 빛을 발하는 머스킷총과 대포의 섬광이 번개처럼 번쩍거리면서, 완전무장한 장군을 묘사한 그 동상은 마치 유령 같았다.

벨린은 그 동상을 향해 신중히 총을 겨누었다. 그는 나무를 원하는 방향으로 쓰러트리려면 어디를 도끼질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에게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이 거대한 동상은 반란군과 빌랜드군이 친 바리케이드와 연계되어 있었고 헌병군의 등잔과 횃불들로 인해 그 그림자가 아스틴 궁전의 남쪽 벽까지 미쳤다.

“마지막이군요, 어머니.”

벨린이 중얼거리면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댔다.

“이딴 것 이제 지겨워.”

그가 머스킷총을 격발했다. 격발장치의 불꽃이 번쩍 일면서 화염처럼 붉은 충격파가 총강 내에서 뿜어 나왔다. 그 붉은 충격파는 총구 끝에서 순식간에 응집되어 목표물로 방사되었고, 누군가에게 그 모습은 광선처럼 집중된 붉은 빛살이 동상의 받침부분에 작렬하여 폭발이 일어나는 바로 그 광경이었다.

목표물이 폭발하면서 발산된 붉은 빛살이 로켓처럼 하늘로 튀어올랐다. 벨린은 총을 들고 창문을 넘어 바닥으로 뛰었다. 그와 함께 밑 부분이 산산 조각난 코르도바의 동상이 앞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받침대의 남은 부분은 하중을 견딜 수 없었고 결국 그 위대하고도 거대했던 동상은 바리케이드 뒤에서 응사중인 동방회사군의 머리 위로 기울어 쓰러졌다.

둔중한 소음에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무너진 동상받침대에서 돌가루가 튀었고 먼지가 하늘 높이 솟구쳐 흘렀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벨린 데 란테는 먼지가 자욱한 광장을 향하여 뛰기 시작했다. 부상의 통증에서 해방되어 마치 온 몸을 바람에 실은 것처럼, 겁을 상실한 갈색머리 총사의 발놀림이 동상이 깔린 적의 바리케이드를 깊숙이 찌르고 들어왔다. 동상이 쓰러진 충격에 동방회사군 병사들이 비틀거리며 일어났지만 벨린 데 란테는 애당초 그들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곧이어 돌파구를 발견한 헌병군이 총검돌격으로 벨린의 뒤를 따랐고 적들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헌병군의 총검에 대비해야만 했다.

곧 함성과 비명, 포성과 총성이 함께 뒤섞였다. 그럼에도 벨린은 외부의 소란에서 자신의 정신을 격리한 듯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적들이 그의 존재를 발견하기도 채 전에 적의 진지를 깊이 찌르며 옆으로 쓰러진 코르도바 원수의 동상으로 재빨리 몸을 붙였다.

벨린이 신속히 코르도바 원수의 군도를 잡고 그의 등 위로 올랐다. 그가 빌랜드 레드코트들이 지키는 방어선의 내부로 뛰기 시작하자 적의 돌격을 지켜보던 레드코드들이 히스파니아 총사를 발견했다. 그들은 빌랜드어로 아우성을 치며 동상 위의 벨린을 발견했고 즉각 총격을 가했다.

벨린 데 란테의 발밑으로 불꽃이 연달아 튀어 올랐다. 몇몇 총탄은 위로 튀어 올라 그의 몸을 스쳤고, 그가 직감으로 머리를 숙이자마자 총탄 하나가 귓가를 때리고 하늘로 날았다. 그럼에도 벨린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제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의 집착에서 초월하였다. 여기서 멈춘다는 것은 무의미하게 쓰러지는 것을 뜻했고, 그것은 복수를 끝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코르도바 원수의 머리는 반쯤 무너진 궁전의 석벽에 걸쳐져 있었다. 동상의 머리끝까지 주파한 벨린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레드코트들의 총탄을 무릅쓰며 펄쩍 뛰었다. 석벽을 넘어 지상으로 발을 디딘 그는 잔디밭과 관상용 나무로 뒤덮인 아스틴 궁전의 앞뜰에 몸을 굴렸다.

이백 미터 전방으로 아스틴 궁전 본궁의 잔디 연병장이 펼쳐져 있었으며 동쪽에는 무도회장과 미로정원이 서쪽 끝에는 총사대 본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코모 다빈치 박사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단호하고 리듬 있는 손짓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의 입에서는 라투니스어로 된 오래 된 주문들이 마치 성령의 부름을 받은 성자의 방언처럼 끊임없이 기계적으로 내뱉어졌다.

“모세투스 데 플레마 인 카르테!”

다빈치의 몸은 그가 발산하는 푸른 마력 아우라에 의해 완전히 잠식당해 있었다. 안경의 렌즈마저도 성당의 푸른 스테인 글라스처럼 푸르게 보일 지경이었다. 곧 성령의 형상을 한 거대한 아우라의 파도가 해일처럼 빌랜드 마법사의 검은 방어막을 때렸다. 기가 질린 리처드 비어든 박사는 지팡이를 세로로 들고 검은 아우라로 벽을 생성했고 그 해일이 검은 방파제를 때리자 망치로 붉게 달아오른 쇠를 두드리는 것처럼 불꽃이 번쩍 튀어 올랐다.

비어든 박사가 소리를 질렀다.

“노망난 노인네!”

그와 동시에 다빈치는 자신의 주문을 완성했다. 마침내 다빈치가 단호한 손놀림으로 지팡이를 내리자, 그가 응집했던 마력의 해일이 마치 댐이 무너지듯 빌랜드인 마법사의 방어벽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자코모 다빈치가 온 집중을 다하여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그 운명의 순간에 마력을 느끼는 모든 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어마어마한 충격이 진동을 일으켰다.

아스틴 광장 방향에서 화려한 붉은 불꽃이 하늘 높이 퍼져 올랐다. 순간 다빈치가 눈을 부릅뜨고 내뱉었다.

“사이프러스의 키레네?”

그러나 그것은 호시탐탐 공격할 때를 노리던 빌랜드 마법사에게 결정적인 기회였다. 다빈치의 공격이 주춤한 틈을 타서 비어든 박사가 빌랜드의 고어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주문을 영창했다. 그 주문에 의해 그의 지팡이에서 일직선의 검은 광선이 뻗어 나와 대각선 방향으로 아우라의 파도를 지졌다. 깜짝 놀란 다빈치를 뒤로 흠칫 물러났고 비어든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예리하게 잘려나간 다빈치의 아우라 속으로 비어든 박사가 지팡이를 내밀어 파고들었다. 검은 아우라가 실린 비어든 박사의 지팡이가 다빈치의 지팡이를 검처럼 때렸다. 다빈치는 뒤로 물러나며 지팡이를 막았고, 신이 난 비어든 박사는 그대로 지팡이를 검처럼 휘두르며 다빈치를 연달아 공격했다.

다빈치는 비어든의 공격을 막으면서 힐끔 힐끔 어둠 속의 미로 정원을 살피었다. 대담한 기습공격이 들키지 않도록 이 흑마법사를 붙들어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흑마법의 힘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이 시기에 이 강력한 흑마법사를 처단하는 것은 다빈치로서도 어려울 일이었다. 저 얼간이는 악착같이 달려들 것이고, 사실상 그가 지칠 때까지 붙잡아두는 것만이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그나저나 사이프러스 마녀의 기운이라. 다빈치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벨린 데 란테는 아직 살아 있다. 그가 여제를 염려하여 말하지 않았던 추측이 틀린 것이었다.

이렇게 기쁠 수가 있나. 얼굴에 미소를 띄우면서 자코모 다빈치는 힘든 기색도 없이 비어든 박사의 공격을 막아냈다. 벨린이 이곳에 개입한다면 그의 부담을 한껏 덜어줄 것이다.


“신이시여.”

총사대원 차림의 이사벨 여제는 성호를 그었다. 미로 정원의 수풀 속에 숨은 그녀의 주변에는 근위총사대원들이 숨을 죽이고 공격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2개 중대 정도 되는 총사대원들이 있었고, 황궁에 남아 있던 배신자들도 같은 규모였다. 허나 그들은 빌랜드군의 도움을 받고 있었으므로 수적으로는 여제가 불리했다. 또한 배신자들을 이끄는 수장은 풍부한 전투 경험을 자랑하는 주안 스피놀라였다. 반면 이사벨은 전투경험이 전무했고 전술이라고 해봤자 책을 보거나 장군들에게 교습을 받은 게 전부였다.

그러나 이사벨은 작금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잘 알았다. 기습을 가하는 것이었다. 다빈치 박사가 적의 강력한 마법사를 끌어내어 적들의 감시를 교란시키는 사이, 기습적으로 궁전의 본 건물을 기습하여 탈환하는 것이었다. 허나 그러기 위해서는 적의 병력이 분산되어야만 했다. 다빈치 박사의 출현으로 적들이 수색을 강화하면 필시 많은 병력들이 궁전 안을 떠날 테니, 그때를 노리는 것이 이사벨의 계획이었다. 만약 신이 그들을 돕는다면 그들은 궁전 안에 잔류한 적은 병력을 상대하여 궁전 내부를 점거할 것이고, 본진을 잃은 적들은 그들의 혁명에 필요한 중요한 요인들을 잃은 채 다른 곳으로 후퇴하다 지리멸렬할 터였다.

이사벨은 잠시 멍한 얼굴로 두 마법사가 전투를 벌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불꽃놀이로군.”

빌랜드 흑마법사가 지팡이로 다빈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흑마법사가 지팡이로 다빈치를 내리칠 때마다 푸른 불꽃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빈치가 무척이나 유리해보였는데 이렇게 뒤로 물러서는 것이 혹시나 무슨 신호는 아닐까 싶어, 이사벨은 수풀 속에서 신중히 예의주시하던 참이었다.

그때 어느 총사대원이 보고했다.

“폐하. 적들입니다.”

일련의 군사들이 궁전에서 뛰어나왔다. 빌랜드 레드코트들이었다. 그들이 미로정원과 50미터 떨어진 뒷문을 통해 빠져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대열을 갖추었고, 곧 이어 양쪽으로 흩어져 부채꼴로 펼쳐 후방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점차 미로 정원 쪽으로 다가왔다. 히스파니아 총사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고, 이사벨 아라고른 또한 머리를 바짝 숙였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저들이 더 가까이 오기까지 기다렸다가는 발각당하고 말거야.”

“하지만 여기서 저들을 공격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사벨이 흥분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기습을 가해서 궤멸시킬 수는 있을 거야. 저들이 가까이 다가올 때 일제사격을 가한다면….”

그때 차가우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여제의 말을 가로막았다.

“고정하시지요, 폐하.”

이사벨이 뺨을 파르르 떨며 뒤로 고개를 휙 돌렸다. 5미터 떨어진 곳에 삼각모를 잃어버린 갈색머리 총사가 서 있었다. 어깨와 배에 붕대를 둘렀지만 그의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여제를 바라보는 눈빛 또한 변하지 않았다.

“벨린...”

여제가 울먹이듯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괴어 흘러내렸다. 벨린 데 란테가 재빨리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는 서버리는 바람에 적에게 노출될 뻔한 이사벨 여제를 힘껏 품에 안고 수풀 속으로 허물어져내렸다.


--------


이거 좀 오랜만이군요. 이럴 수가... 죄송합니다. 연말이라 모임도 많았고, 돈벌려고 주간 알바도 잠시 하고 그랬어요. 다행히 제 진가를 알아보는 새 프로젝트가 생겨서 때려치긴 했지만 말입니다. 킥킥.


아... 이게 사실상 2008년도 마지막 글이에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다음화는 2009년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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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베나레스의 총사(170) +21 09.02.10 2,851 11 9쪽
172 베나레스의 총사(169) +24 09.02.07 2,605 12 7쪽
171 베나레스의 총사(168) +27 09.02.03 2,635 9 7쪽
170 베나레스의 총사(167) +30 09.01.29 2,669 12 12쪽
169 베나레스의 총사(166) +26 09.01.26 2,726 12 10쪽
168 베나레스의 총사(165) +33 09.01.22 2,811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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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베나레스의 총사(163) +27 09.01.18 2,693 11 10쪽
165 베나레스의 총사(162) +22 09.01.16 2,559 1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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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베나레스의 총사(156) +22 09.01.07 2,696 1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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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베나레스의 총사(154) +19 09.01.04 2,567 12 7쪽
» 베나레스의 총사(153) +28 08.12.31 2,660 13 12쪽
155 베나레스의 총사(152) +25 08.12.25 2,729 12 9쪽
154 베나레스의 총사(151) +21 08.12.22 2,469 11 10쪽
153 베나레스의 총사(150) +26 08.12.21 2,578 12 8쪽
152 베나레스의 총사(149) +23 08.12.18 2,721 12 9쪽
151 베나레스의 총사(148) +17 08.12.15 2,572 10 9쪽
150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697 9 9쪽
149 [부록]베나레스의 총사에 대한 작가의 덧붙임(1) +14 08.12.12 3,482 5 15쪽
148 베나레스의 총사(146) +19 08.12.12 2,785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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