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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1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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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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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3
글자수 :
702,223

작성
08.12.12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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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9쪽

베나레스의 총사(146)

DUMMY

여러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잠에 취했던 알레한드로가 벌떡 일어나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게 무슨….”

“쉿.”

까트린이 입에다 손을 댔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알레한드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 큰 덩치에 비해 하염없이 작아 보이는 권총이었다.

알레한드로는 머스킷총 또한 옆에 세워놓고 있었다. 만약 습격을 당한다면 누군가 총을 한정 가지고 있는 편이 옳았다. 디에네 황녀의 입을 틀어막은 까트린에게는 힘든 일이었고, 비록 잠에서 깼지만 의식이 몽롱한 조안에게는 무리였다. 결과적으로 몸을 떨고 있는 아리엘만 남은 셈이었다.

알레한드로의 눈길에 아리엘이 일어났다. 거인 총사가 그녀에게 권총 손잡이를 내밀며 나직이 말했다.

“이것을 쓰는 법을 아시오, 세뇨리타?”

아리엘이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아니요. 총사님. 저는 그런 건 도저히….”

“아주 간단하오.” 알레한드로가 권총의 플린트락 장전장치를 잡아당긴 다음 더욱 깊게 내밀었다.

“적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되지. 이것만 있다면 어린 아이라도 숙련된 군인을 죽일 수 있소.”

“네….”

아리엘이 마지못해 권총을 받아 들었다. 바로 그때, 건너편 벽에서 기계장치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복도로 이어지는 숨겨진 통로에서 발자국 소리가 연달아 바닥을 때렸다.

‘들킨 거야?’

까트린이 속으로 뇌까렸다. 순간, 입을 틀어 막힌 채 까트린의 품 안에 있던 디에네 황녀가 발버둥을 멈췄다. 그녀도 느낀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의 운명이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었다는 것을.

계단을 오르는 듯한 발소리가 점차 가까이 들렸다.

알레한드로가 총검이 착검된 머스킷총을 문에 겨눴다. 아리엘도 두 손으로 권총을 꼭 쥔 채 벽에 기대어 섰다.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그들 둘 뿐이었다. 디에네 황녀 때문에 까트린은 무기를 들고 덤빌 수 없었던 것이다.

황녀와 함께 까트린 또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기병도를 뽑았다.

그들 모두 벽 건너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너편의 누군가가 문을 열 때 사용하는 레버를 당겼다.

문이 열리자마자 틈 사이로 여려 개의 총구가 삐죽이 파고들었다.

“조심해요!”

까트린이 외침과 동시에 그 총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독한 화약 연기가 뿜어졌다. 총탄이 벽에 부딪쳐 튀어 오르면서 돌이 깨지는 듯한 파쇄음이 터졌다.

날카로운 여자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총소리에 놀란 디에네 황녀였다. 까트린은 그녀를 품에 안고 반사적으로 엎어졌다. 아리엘도 고개를 숙였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알레한드로가 맨 처음 방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자에게 총격을 가했다.

샹들리에의 불빛 아래로 붉은 제복을 입은 총사가 썩은 나무처럼 쓰러졌다. 모두들 그것을 똑똑히 보았다. 붉은 제복 차림의 총사라니. 레드코트였다. 레드코트는 빌랜드 군사의 상징과도 같았다.

순간, 어둠속에 숨어있던 레드코트들이 세인트 존 하고 외치며 움직였다. 그들이 연기를 헤치며 시체를 뛰어넘고 방안으로 달려들자 알레한드로가 총검으로 그들을 가로막았다. 저들은 일제사격을 가했으니 총격을 가할 수 없었다.

“쏴요, 아리엘!”

여러 명의 레드코트들이 덮치는 순간 거인 총사가 외쳤다. 그러나 겁에 질린 아리엘은 바로 쏠 수 없었다.

그 주저의 순간이 화근이었다. 레드코트들이 진입하며 쏜 총탄 한 방이 그녀의 왼팔에 맞았고, 총상의 충격과 동시에 그녀는 총을 떨어뜨리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이 자식들!”

까트린은 그 광경을 똑똑히 보았고, 이성을 잃어버렸다. 그녀는 디에네 황녀를 구석으로 밀쳤다. 그리고는 방안으로 밀려들어오는 레드코트들을 향해 기병도를 겨누고 달려들었다.

알레한드로의 총검과 까트린의 기병도가 레드코트들의 진격을 막아내는 사이 총에 맞은 아리엘은 필사적으로 디에네 황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황녀가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총탄에 의한 부상은 아리엘에게 어마어마한 고통과 심리적인 충격을 안겼다. 그녀는 울음이 터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뼈가 부러지는 듯한 고통과 꿈틀거리는 왼팔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 허나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용기를 발휘했고 디에네 황녀를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다.

아리엘은 멀쩡한 오른팔을 더욱 깊게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바닥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는 디에네 황녀를 붙잡아 벽으로 끌어 곁에 안았다.

까트린이 외쳤다.

“도망쳐, 아리엘! 마마를 모시고 반대쪽으로….”

머스킷총의 총성에 기병대원의 말이 끊어졌다. 하지만 아리엘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일어나기에는 너무도 기운이 없었고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반대쪽에 레버를 당기면 열리는 통로가 있었지만, 그곳으로 가기도 전에 적들의 총에 맞아 죽을 것 같았다.

그때, 또 다른 화근이 나타났다. 아까 전의 총상에 부상을 입었는지 까트린이 뒤로 추춤한 사이, 레드코트 한명이 그녀를 개머리판으로 쓰러트리고 돌파해버린 것이었다. 알레한드로는 세 명의 적을 몰아붙이고 있었기에 그 광경을 보지도 못했다.

바닥에 쓰러진 까트린이 이마에 피를 흘린 채 그 자의 다리를 붙잡았지만 소용없었다. 그 자가 황녀를 껴안고 벽에 웅크린 아리엘을 발견하고 총을 겨눴다. 아리엘은 꼭 눈을 감았고, 그 레드코트가 총검으로 그녀를 내리찍으려는 순간.

타앙! 하고 누군가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아리엘이 눈을 떴다. 바닥에 앉은 금발머리 총사가 아리엘이 떨어뜨렸던 권총을 들고 있었다. 그가 권총을 버리고 힘겹게 일어섰다. 환자였기에 아무런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는 절뚝거리며 반대쪽으로 걸어가서는, 마치 운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레버를 향해 비틀거리며 쓰러져 매달렸다.

넋이 나간 아리엘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반대쪽 문이 열렸다. 레버에 매달린 금발머리 총사가 내뱉었다.

“어… 어서….”

조안의 목소리가 아리엘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했다. 그녀는 황녀의 두 어깨를 잡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가냘픈 여인이, 또 다른 여인을 부축하고 뛰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리의 힘이 풀려 그런지, 아니면 생사의 고락을 넘나들고 있어 그런지, 더 이상 뛰는 것이 망설여지지 않았다.

아리엘은 반대쪽 문을 지나면서 레버 앞에서 무너져 내린 조안을 내려다보았다. 모든 것을 초연한 듯한 그의 얼굴이 아리엘의 잔상에 남았다. 이윽고 눈물이 그 잔상마저 가렸다.

‘고마워요, 총사님. 하지만 당신은 내 주인이 아냐.’

그녀가 어두컴컴한 통로로 지나가자마자 문이 닫혔다. 뒤를 돌아본 아리엘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바닥으로 무너진 조안과 다시금 힘겹게 일어서며 적들과 맞서는 까트린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평생 잊지 못할 광경. 그러나 아리엘은 그 광경을 떨쳐내고 다시금 발을 디뎠다. 오르막 계단이 이어졌다. 오르막 계단 맞은편에 무엇이 있는지 아리엘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힘겹지 않았다. 혹시 탈출구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어떻게 해서든 오르려고 애를 썼다. 그것이 마지막 희망이었고, 주인님의 용감한 시종다운 행동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맞은편 문 계단이 불과 몇 발자국 남았을 때였다.

그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 사이로 빛이 쏟아졌다. 아리엘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누군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서서히 아리엘의 눈이 빛에 익숙해지며 문 앞에 선 그 사람의 용모가 드러났다.

핏빛처럼 붉은 제복에 검은 삼각모를 쓴 사람.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무척 익숙한 여성의 실루엣. 그리고 마침내 그 레드코트의 얼굴로 시선이 올라가자, 아리엘은 공포와 분노에 사로잡혀 모든 용기를 포기해버렸다.

주저앉은 아리엘이 에멜무지로 중얼거렸다.

“안젤라... 주인님의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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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을 써주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베나레스의 총사 선작이 드디어 이천오백을 넘었습니다.. 더욱 장족의 발전을 했으면 좋겠습니다만... 뭐 운에 맡겨야지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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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베나레스의 총사(172, 마지막화) +93 09.02.23 5,041 16 15쪽
174 베나레스의 총사(171) +25 09.02.15 2,948 10 8쪽
173 베나레스의 총사(170) +21 09.02.10 2,851 11 9쪽
172 베나레스의 총사(169) +24 09.02.07 2,605 12 7쪽
171 베나레스의 총사(168) +27 09.02.03 2,635 9 7쪽
170 베나레스의 총사(167) +30 09.01.29 2,669 12 12쪽
169 베나레스의 총사(166) +26 09.01.26 2,726 12 10쪽
168 베나레스의 총사(165) +33 09.01.22 2,811 12 10쪽
167 베나레스의 총사(164) +28 09.01.22 2,738 9 7쪽
166 베나레스의 총사(163) +27 09.01.18 2,693 11 10쪽
165 베나레스의 총사(162) +22 09.01.16 2,559 12 8쪽
164 베나레스의 총사(161) +21 09.01.14 2,596 10 9쪽
163 베나레스의 총사(160) +20 09.01.13 2,634 13 9쪽
162 베나레스의 총사(159) +34 09.01.12 2,716 10 7쪽
161 베나레스의 총사(158) +31 09.01.09 2,846 12 10쪽
160 베나레스의 총사(157) +14 09.01.09 2,676 13 8쪽
159 베나레스의 총사(156) +22 09.01.07 2,696 13 8쪽
158 베나레스의 총사(155) +21 09.01.06 2,749 9 8쪽
157 베나레스의 총사(154) +19 09.01.04 2,567 12 7쪽
156 베나레스의 총사(153) +28 08.12.31 2,659 13 12쪽
155 베나레스의 총사(152) +25 08.12.25 2,729 12 9쪽
154 베나레스의 총사(151) +21 08.12.22 2,469 11 10쪽
153 베나레스의 총사(150) +26 08.12.21 2,578 12 8쪽
152 베나레스의 총사(149) +23 08.12.18 2,721 12 9쪽
151 베나레스의 총사(148) +17 08.12.15 2,572 10 9쪽
150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697 9 9쪽
149 [부록]베나레스의 총사에 대한 작가의 덧붙임(1) +14 08.12.12 3,482 5 15쪽
» 베나레스의 총사(146) +19 08.12.12 2,785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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