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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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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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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22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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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65)

DUMMY

두 남녀에게 시에스타는 무한정으로 길었다. 무언가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 때는 지극히 짧은 순간처럼 느껴지지만, 그 몰입의 경지를 초월하면 한없이 길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랬다. 벨린 데 란테는 여자와의 잠자리 경험이 노련한 인사였고 그는 여제를 상대하든 창녀를 상대하듯 성심성의로 임하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기분이 한결 이상했다. 땀으로 젖은 까트린의 젖가슴과 목덜미 같이 민감한 부분을 입과 손으로 애무하면서 그는 보통의 흥분과 쾌락을 초월한 어느 뜨겁고도 은은한 생기를 느꼈다. 처음에는 눈을 감고 신음을 참던 까트린 데 세비아노가 점차 눈물을 삼키고 입을 막을 때까지, 그는 그 새로운 느낌에 취해 완전히 몰입해버렸고 급기야 여 기병대원이 참지 못하는 수준까지 갔다.

이윽고 몸이 극도로 달아오른 두 남녀는 서로가 제대로 교감하는 체험을 하였고 그로 인한 쾌락이 정수리 끝까지 올라갔다. 까트린은 기병의 버릇대로 총사의 배 위로 타 내렸다. 그 강렬한 쾌감으로 말미암아 두 남녀가 절정에 다다르자, 벨린 데 란테는 그 여성의 몸 안에 자신의 최후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쏟아냈다.

까트린은 눈을 감고 그가 남긴 따스한 것을 받았다. 그녀는 거친 숨결을 토해내고 그의 품으로 쓰러져내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치고 신음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잘난 총사 자식... 약속해... 이 까트린 데 세비아노가 너를 이기기 전까지는 죽지 않겠다고...”

벨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슬픔이 감도는 갈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품에 안긴 금발머리 여 기병의 머리를 쓸어 만질 뿐이었다.


* * *


그날 저녁, 히스파니아 제국의 동쪽 대로를 통해 제국 육군사령관 톨레도 원수가 8개 연대를 거느리고 도착했다. 그가 통솔해온 부대들은 4개 사단에 편성되어 있던 부대들로 병종이 다양했다. 탈레스와 톨레도의 척탄병 연대, 코르도바 총사연대를 포함한 정예부대도 있었고, 히스파니아군이 일명 제15보병연대와 제21보병연대라 부르는 발렌시아, 셰비아 연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기병으로는 제4기병연대로 호칭되는 산티아고 기병연대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막강한 5파운드포와 12파운드포로 무장한 2개 포병연대가 각각의 연대에 배속되어 있었다. 이 부대들은 지난 10년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온 정예부대의 후신이었지만 상당수의 정예병들이 전사하는 바람에 모병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신병들로 급조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위용은 웅장했고, 사기도 충천했다. 이제 히스파니아 제국의 8대 황제, 이사벨 2세는 도합 1만 7천명의 정예 보병과 천명이 넘는 기병, 100문이 넘는 야포와 박격포를 거느리게 되었다.

그들과 대적할 빌랜드 레드코트와 동방회사군의 반란자들은 2만명이 넘는 진중한 부대의 대열을 이끌고 아스티아노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산 마리아까지 집결했다. 한때 여제가 회군을 결심했던 산 마리아는 이제 스스로를 혁명군이라 부르는 무리들의 치하에 떨어졌고 새 황제를 폐위할 목적을 가진 그 연합군대는 목초지로 활용되는 드넓은 벌판에서 황제의 군대를 발견하고 전투를 준비했다.

짧은 대치기간, 팽팽한 긴장감이 양측 군대에 흘렀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마지막 밤, 히스파니아군 참모들은 적군을 섬멸할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황제를 옹위하는 히스파니아군의 지휘관은 톨레도 공작이자 육군 원수인 로베르토 데 피사로였고, 그들이 파악한 혁명군의 지휘관은 빌랜드 국왕으로부터 직접 파견된 원수인 뉴 빌랜드 공작 아서 월슬리였다. 그는 인내심이 강한 신대륙 식민지 출신 장군으로, 식민지 전투에서 수많은 히스파니아 군대를 격파한 명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아스티아노 정변에서 빌랜드의 마법사단을 지휘하던 비어든 박사가 사망한 후, 빌랜드가 마치 준비한 것처럼 매복해 투입한 흑기사 같은 자였다.

총사대장 휘장을 가슴에 찬 이사벨 여제의 주변으로 히스파니아군 최고 지휘관들이 둘러 서 있었다. 삭발한 머리에 붉은 수염을 기른 기골이 장대한 톨레도 공작이 여제 곁에 서서 테이블에 놓인 지도를 보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빌랜드군은 뚝심이 강합니다. 월슬리가 지휘하는 군대라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그들은 명령이 내려지지 않는 한 인형처럼 요지부동이지요. 총포탄이 두렵지 않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저들의 군대는 머스킷총을 우리보다 빨리 쏩니다. 만약 우리 군이 저들의 대열에 먼저 뛰어든다면 막대한 타격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카라카스 대령이 말했다.

“첩보에 따르면 저들은 마법사단으로 대열보병들을 보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공격한다면 그들은 주특기인 흑마법을 사용하여 아군의 정신을 기만하고 대열을 흐트러트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저들의 머스킷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것이지요.”

애꾸눈을 한 장교가 피사로 원수의 주변에 서 있었다. 피사로 원수가 그를 노련한 눈매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달고, 자네는 뉴 히스파니아에서 월슬리의 군대와 싸운 적 있지 않은가?”

“지금 까지 맞선 놈들 가운데 그런 놈들도 없습니다. 각하.”

이달고 소령이 말했다.

“비록 포병전력은 우리가 우세하지만, 저들의 대포도 그 수가 만만치 않습니다. 만약 포격전이 이어지고 우리의 보병들이 그 포격을 견뎌내야 한다면 저들이 십중팔구 유력합니다. 포격전이 벌어지면 방벽에 틈이 생기고 그 틈이 전술적인 약점으로 작용합니다. 저들의 방벽은 우리보다 분명 튼튼한데 후방에 숨어있던 동방회사의 반란자들이 전력의 공백을 메우고 침투하기라도 하면 승산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전투가 장기화되기 전에 끝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저들을 격파할 수 있겠느냐.”

여제가 지휘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지휘관들은 선뜻 작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양측의 전력이 이렇게 팽팽한 이상 작전은 더더욱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피사로 원수가 제안했다.

“우리의 총사연대는 저들의 소화기 사거리 밖에서 적들을 저격할 수 있지. 숙련된 총사들이 먼거리에서 화망을 구성하여, 적들의 좌익이나 우익을 공략한다면…?”

피사로 원수가 총사대 대령에게 눈을 돌렸다.

“카라카스. 자네 연대의 전력은 어디까지 회복되었지? 자네의 연대가 선발로 나서 저들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히고 놈들이 인내심을 잃을 때까지 기만할 수 있겠나?”

대령은 우려를 표했다.

“제대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부대는 1개 대대 뿐입니다. 각하. 지금 전략적 필요에 의해 그 대대를 적진 한 가운데로 돌격시켜야 한다는 것입니까?”

히스파니아 육군 원수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의 부대에 돌격전에 능한 대대장이 있다면 기꺼이 그럴 셈이네. 만약 그가 성공하면 그와 자네의 부대는 폐하를 위해 큰 영광을 세운 셈이니까. 충분히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겠지.”

카라카스 대령은 난색을 표했지만 어쩔 수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투로 말했다.

“사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총사가 한 명 있기는 합니다. 모든 이들이 죽음의 공포에서 무릅쓰도록 대담한 돌격전을 치를 수 있는 자이죠.”

톨레도 공작이 물었다.

“그가 누구지?”

“벨린 데 란테 소령입니다. 각하.”

그 말을 경청하던 이사벨 여제의 안색이 삽시간에 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지휘관들은 여제의 변화한 심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직 이달고 소령만이 어두운 얼굴로 여제의 눈치를 보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 상태로 서 있을 뿐이었다.

벨린 데 란테라는 이름은 톨레도 공작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그가 부관에게 물었다.

“이달고, 그 벨린 데 란테는 친구 말일세. 혹시 저번 까살라에서 저격전을 수행하던 대장이 아니었나?”

“그렇습니다. 각하. 아주 유능한 총사지요.”

“이번에도 그가 살아남는다면, 그야말로 천운이 따른다고 해야겠군. 물론 그가 또 한번 선봉을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네만.”

톨레도 공작이 그렇게 말했다. 별안간 이사벨 여제는 더 이상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잠시 나갔다 오마’라고 작게 말하고서는 비틀거리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어리둥절해하는 지휘관을 뒤로하고 이달고 소령이 황급히 따라 나섰다.

농가의 뒷마당으로 나온 여제는 나무기둥을 잡고 쓰러졌다. 소령이 그녀를 부축했다.

그녀가 소리없이 울면서 중얼거렸다.

“이럴 순 없다, 이 이럴 순 없어….”

“고정하십시오, 폐하.”

애꾸눈 소령이 침착하게 그녀를 달랬다. 허나 여제는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이달고, 너는 짐에게 받은 칙명이 있어 알지 않느냐. 짐은 벨린에게 응당 포상을 내려야 한다. 짐의 성은을 입었으니 그는 이제 부귀영화를 누려야 해. 더 이상 그가 자신의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릴 때까지 도박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단 말이야. 하지만 짐은 도저히 그를 막을 수 없어. 더구나 그의 이번 도박은 도저히 승산이 없다.”

“그렇다면 폐하, 그를 강제로 곁에 두시지요.”

이사벨이 실의에 빠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벨린 데 란테를 막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를 강제로 막아야 한다면 짐은 황위라도 내놔야할 거야. 하지만 짐은 그럴 수가 없어. 그럴 용기가 없기에 이렇게 우는 거야….”

여제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리며 슬픔에 겨워 중얼거렸다.

“오, 신이시여. 제발 그를 운명에서 구하소서.”


------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가는 거군요. 이 소설에 정 많이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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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베나레스의 총사(167) +30 09.01.29 2,669 12 12쪽
169 베나레스의 총사(166) +26 09.01.26 2,726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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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베나레스의 총사(163) +27 09.01.18 2,693 1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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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베나레스의 총사(153) +28 08.12.31 2,659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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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베나레스의 총사(151) +21 08.12.22 2,469 11 10쪽
153 베나레스의 총사(150) +26 08.12.21 2,578 12 8쪽
152 베나레스의 총사(149) +23 08.12.18 2,721 12 9쪽
151 베나레스의 총사(148) +17 08.12.15 2,572 10 9쪽
150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697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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