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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1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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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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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3
글자수 :
702,223

작성
09.01.09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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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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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0쪽

베나레스의 총사(158)

DUMMY

벨린 데 란테는 총사대 본부가 보이는 북쪽 복도로 뛰었다. 그곳은 아직 여제의 근위총사들이 점령하지 않은 지역이었다.

북쪽 복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상주하는 인원들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복도마다 미늘창을 들고 서 있던 근위총사 의장대는 물론 시종, 시녀조차 유령처럼 사라져 있었다. 복도의 샹들리에와 램프 등은 꺼져 있었으며 창가에서 발산되는 야외의 가스등 불빛을 제외하고 빛은 존재하지 않았다.

계단이 보였다. 벨린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는 두 여자가 서로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었고, 안젤라가 그녀를 가지고 무슨 짓을 벌이게 될지 상상만 해도 오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분명 그의 가슴 아픈 상처를 후벼 팔 함정을 준비했을 것이다.

계단을 내려간 벨린은 북쪽 현관에 다다랐다. 어두운 홀이 나타났다. 누군가 계단 옆에 서 있었다. 기둥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나이였다.

벨린이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주안 스피놀라.”

스피놀라 중령이 무표정한 얼굴로 벨린을 톺아보았다. 그가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의 혁명은 보기 좋게 실패해버렸군. 자네의 총탄 한 발에 의해서.”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요.”

벨린이 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이 배반할 생각을 했죠? 10년 동안 근위 총사로 있으면서 폐하를 경호했던 사람이 무엇이 아쉬워서?”

스피놀라가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부와 명예 때문은 아니야. 주스티안은 복수가 탐욕으로 변질되어 타락했지만, 나는 순전 복수를 위해 지금까지 일했어.”

스피놀라가 제복 코트 품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목에 걸고 있던 십자가였다. 벨린은 그 십자가가 로마네스식 십자가가 아니라, 프로테스탄트풍의 십자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벨린이 이제야 수긍하겠다는 투로 말했다.

“당신 신교도였군.”

스피놀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할아버지는 마르틴 루터 신부와 다니치에서 성경을 배포했던 사람이었네. 아버지는 히스파니아의 신교도를 이끌던 유력한 목사였고 말이야. 황제 페란테 2세는 신교도가 두려워 우리 가문을 몰살하도록 명령을 내렸어. 하지만 나는 용케 살아남았고 다니치로 도주했네. 거기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히스파니아로 돌아와 어느 머스킷총 연대의 군인이 되었지. 그때부터 신의 은총으로 승승장구했던 거네.”

벨린은 잠시 복수도 잊은 채 듣기만 했다. 스피놀라가 아득한 목소리로 즐기듯이 말했다.

“나는 황제가 보낸 근위총사들이 아버지를 교회에서 죽이고 불태웠을 때부터 복수를 갈망했던 사람일세. 주스티안 데 모리체도 마찬가지야. 그의 가문은 위그노 집안이었어. 카탈루니아어로 신교도 상공업자를 뜻하는 말이지. 그는 황제가 발렌시아 칙령을 깨고 위그노들의 재산을 몰수하자 가문의 밑천을 가지고 홀란드로 도주했었다네. 그 또한 이 나라 황실이 파탄나길 갈망했지. 비록 계획대로 동방회사의 총수가 된 이후로는 복수보다는 욕심에 눈이 멀긴 했지만 우리의 목적은 같았어. 그래서 나는 5년 동안 그 자의 하수인이 되었던 거지. 그 자는 내게 이 나라의 근본을 바꾸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벨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피놀라가 웃으며 물었다.

“자네…. 나를 죽이러 온 건가? 여제의 사냥꾼은 한번 잡은 표적을 놓치는 법이 없다는 그 명성을 지키려고?”

벨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을 죽일 마음이 없어요. 당신은 여제에게 가서 심판을 받아야 할 겁니다. 지금 나는 내 전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어요. 남자에게 사랑도 필요하지만 재산도 필요한 법이지요.”

“그 빌랜드 여자.”

스피놀라가 벨린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눈동자는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자네를 파탄 낼 거야. 그 여자가 자네의 여종을 데리고 총사대 본부로 도망갔다네.”

스피놀라가 품안에서 납작하고 작은 유리병을 꺼내었다. 포도주처럼 보였다. 그가 코르크 마개를 입으로 뽑고 그 안에 든 액체를 단숨에 마셨다.

스피놀라 중령이 말을 이었다.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잔혹함을 읽었네. 그녀는 자네가 벌인 그 소꿉놀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거든. 처음에는 좀 당황했던 거 같아. 허나, 자신이 상실한 것을 그 여종이 가지고 있는 것을 깨닫자 그만….”

스피놀라가 기침을 시작했다. 그가 무릎을 꿇더니 바닥으로 피를 토해냈다. 벨린은 그가 쓰러질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그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내 식구들은 아스티아노에 있네. 그들에게는 진실을 숨겨주게나. 그 아이들까지 복수의 길로 들이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 자네에게 내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이 있네…. 자네는 내가 지금까지 본 총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재라는 거야. 더구나 자네는 마음조차 냉철하니 충분히 자중할 수 있을 거야. 그딴 집착 따위는. 이건 마지막으로 하는 말인데.”

벨린이 우울한 얼굴로 그의 마지막 말에 귀를 기울였다.

스피놀라가 눈을 감으며 킥킥 웃었다.

“부디 애인과 아내가 한 자리에 만나지 않기를.”

그의 발작적인 웃음소리가 꺼지는 촛불처럼 사그라졌다. 벨린은 그가 숨을 거둘 때까지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총사대 중령의 숨이 멎자 벨린이 작게 중얼거렸다.

“당신만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벨린은 현관을 통해 밖으로 뛰어나갔다. 총사대 본부 연병장에 모인 빌랜드 레드코트들이 자기들 말로 소리치며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총사대 본부는 서쪽 문과 가까웠다. 그들이 서쪽 문으로 도망치기 전에 따라잡아야 했다.



안젤라 노스트윈드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비어든 박사가 살해당하리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매우 강력한 흑마법사였다. 그를 죽일 수 있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대체 그를 죽인 그 자코모 다빈치라는 마법사는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란 말인가?

주군의 마지막 마력이 사그라지는 것을 탐지한 안젤라는 다빈치가 당장 이곳을 급습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다빈치는 그들을 헤치러 오지 않았고, 그들은 덕택에 시간을 벌었다.

마법사가 없는 이상 빌랜드인들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분노한 스페냐드 여제에게 개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도망쳐야 했다. 빌랜드 총사들은 살아남길 갈망하며 철수준비를 마쳤고 팔짱을 낀 안젤라 옆에서 올리버가 아스틴 궁전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렸다.

“신이시여. 비어드 박사의 영혼을 보살피소서.”

안젤라는 심술궂은 얼굴로 연병장 바닥에 주저앉은 갈색머리 여인을 내려 보았다. 벨린의 여종, 아리엘이었다. 두 팔이 밧줄로 묶인 그 젊은 여인이 자기와 쌍둥이처럼 닮은 빌랜드 여자를 노려봤다.

머스킷트리스가 분노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 주인이 우리에게 상상도 못할 타격을 가했구나.”

아리엘이 도발적으로 머스킷트리스를 노려보았다. 화가 난 안젤라는 아리엘의 머리칼을 잡아 끄집어 올렸다. 강제로 일어서게 하기 위해서였다.

빌랜드인들이 전방에서 누군가를 발견한 것이 바로 그때였다. 총사들이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푸른 제복을 입은 히스파니아 총사가 삼각모도 쓰지 않고 산발을 휘날리며 전속력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아리엘은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주인님! 여기에요, 주인님!”

안젤라는 아리엘이 소리치도록 내버려 두었다. 총사들을 따라 후퇴하던 올리버가 뒤를 돌아보았다. 안젤라가 그에게 일렀다.

“먼저 철수하도록 해. 뒤를 보지 말고 달려. 어떻게든 저 괴물을 잠재우고 따라가지.”

“하지만, 안젤라!”

“어서!”

안젤라가 버럭 외쳤다. 겁에 질린 올리버가 안젤라에게 경례하고서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벨린 데 란테가 다가오고 있었다. 빌랜드 머스킷트리스는 아리엘을 뒤로 안고 그녀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바짝 겨누었다.

그녀가 웃는 얼굴로 벨린 데 란테를 맞이하며 인질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오늘 네 주인에게 또 한 번 마음의 상처를 남길 거란다. 더욱 미쳐 날뛰도록. 그 광기가 놈을 파탄에 빠트릴 수만 있다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겠어.”

이윽고 벨린 데 란테가 10미터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안젤라가 놀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어서 와, 자기. 머리칼을 풀고 다니니까 꼭 계집애 같네.”

벨린의 얼굴에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그녀를 놔줘.”

그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안젤라가 비웃었다.

“왜? 이 년이 우리의 싸움과 상관없다고 주장하고 싶은 거야?”

벨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아리엘은 죄가 없어. 너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애야.”

“천만에. 허튼소리 집어 치워, 벨린.”

안젤라가 비아냥거렸다.

“이런 인형을 가지고 놀았을 정도로 나를 용서할 수 없었던 거야? 이 위선자. 지금까지 수많은 여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으면서, 자기가 입은 상처는 관대히 넘길 수 없다, 이거야?”

벨린이 조용히 반문했다.

“내가 언제 네 마음에 상처를 입혔었지?”

-------

2연참. 요즘 봉인을 풀고 있습니다. 일이 생겼거든요. 일종의 워밍업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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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ment ' 31

  • 작성자
    transistor
    작성일
    10.12.17 15:02
    No. 31

    애인과 아내가 한 자리에 만나지 않기를ㅋㅋ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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