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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1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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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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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2,223

작성
09.01.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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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베나레스의 총사(164)

DUMMY

여 기병대원과 총사는 어느 아름드리 나무 아래에 앉았다. 햇살이 포근한 오후였다. 펠리페 연대 소속의 총사대원들은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시골 도로변의 가로수 아래에서 낫잠을 자고 있었다. 전형적인 시에스타의 시간. 전장에서도 낯잠을 즐기는 히스파니아 군인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까트린은 두 다리를 모아 앉아서는 기병도를 벨트에서 풀어 무릎위에 얹었다. 그녀가 착용한 큐레시어 흉갑은 굴곡있는 표면이 매끈하였으며 견고하고 무거워보였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몸에 꽉 맞게 조여진 그 은빛 흉갑이 그늘 사이로 스며나오는 햇빛에 반짝반짝 빛났다.

“전투가 벌어진다 해서 찾아왔어. 데 란테.”

까트린이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벨린이 지긋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디에네 황녀는 어쩌고?”

“폐하께서 그 임무를 철회하셨어.”

까트린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날 좋아하지 않아. 네가 더 잘 알면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벨린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알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무엇 때문에 여인의 몸이면서 죽는 걸 자초하지?”

“기병의 꿈은 제대로 된 전장에서 전사하는 거야.”

그녀가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번쩍이는 제복을 차려입고 나왔어.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돌만(기병용 외투)에 흉갑을 새로 손봤지. 큐레시어들은 전투가 벌어질 때만 흉갑을 입어. 화약무기가 지배하는 시대에 기병이 갑옷을 입는다는 건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지.”

“그래봤자 총탄이 너희들의 갑옷을 뚫을 거야.”

벨린이 충고했다. 까트린은 그 말에 키득거리며 웃었다.

“총검만 막을 수 있다면 상관없어. 사실 우리가 신경 쓰는 건 눈먼 총알 따위가 아니라 너희들의 그 빛나는 총검이니까.”

까트린이 명량하지만, 약간은 쓸쓸한 느낌이 나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들이 내 상관을 죽였어. 벨라트리스 중령 말이야. 반란자들이 아스티아노에 주둔한 헌병군 지휘관을 모두 총살했을 때 계셨어. 그는 우리의 시간을 끌어주기 위해 최후까지 저항했던 사람이엇어.”

“죽은 사람은 잊는 게 좋아. 카발리스.”

벨린이 팔베개를 하고 누우며 말했다.

“내일 있을 전투에서 그의 복수를 하고 싶거든 그게 현명해.”

“아리엘도 말이야?”

까트린이 말했다. 벨린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네가 그녀를 위해 싸우지 않겠다면, 나라도 그녀를 위해 싸우겠어. 그녀가 내게 무슨 교훈을 주었는지 너는 몰라, 벨린. 그녀는 정말 천사처럼 착했어. 네가 그를 정말 노예처럼 부렸다는 게 너무도 가혹하다 싶을 정도였다구. 온갖 험한 꼴을 다 당했을 텐데 그 선량함을 유지한다는 건 그녀가 정말 너한테 왔던 천사였다는 증거야. 그런 여자를 함부로 죽이다니. 지옥에 떨어질 마녀 같으니라고.”

까트린이 보이지 않는 적을 노려보며 내뱉었다. 나무그늘 아래 잔디에 누운 벨린은 갈색 눈을 깜빡이며 허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술 고프군.”

벨린이 하늘을 올려보며 중얼거렸다. 까트린은 흉갑의 리벳부분을 풀어서 벗었다. 요란한 쇳소리가 나면서 흉갑이 앞뒤로 분리되어서는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낫잠을 자는 병사들 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기병도도 풀어서 놓았다.

그리고는 벨린 데 란테의 곁에 미끄러지듯 옆으로 누웠다.

그녀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말해줘. 벨린. 너는 무엇 때문에 싸우지?”

“내 업보를 끝낼 수 있다면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되겠지.”

벨린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까트린은 그 말에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는 대답을 하는 대신 뒤돌아 눕는 벨린 데 란테의 위로 올라타서는 손을 바닥에 짚고 그를 내려 보았다.

그녀가 단단히 홀린 어조로 말했다.

“나 두려워. 벨린.”

“이러지 마. 데 세비아노.”

벨린이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며 대꾸했다. 까트린은 굽히지 않았다.

“너를 잃을까봐. 네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 폐하에게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너를 위해 끝까지 헌신했던 아리엘처럼 나도 마음속에 간직할 수는 있잖아.”

벨린도 굽히지 않았다. 그가 이죽거렸다.

“이럴 기분이 아냐. 카발리스. 아니, 그런 눈으로 나를 내려 보고 있다니 참 어이가 없군. 너 지금 나를 무슨 특별한 사내로 보는 거야? 나는 지금 어느 누구에게도 애정을 느끼지 않아. 너나 고상하신 여제 폐하나. 나는 그저 내 잘못을 남에게 덮어씌우고, 어이없는 복수를 한답시고 너 같이 매력적인 여인들과 하룻밤을 취하면서 쾌락만 즐긴 한량에 불과――”

까트린 데 세비아노가 벨린의 입술을 먼저 훔쳤다. 벨린 데 란테는 그것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는 마치 원초적인 반사작용처럼 자연스레 그녀의 입으로 혀를 말아 넣었다. 그리고는 몸을 재빨리 돌려 자기 위에 올라탄 까트린 데 세비아노와 자리를 바꿔치지 했다.

까트린이 젊은 총사의 등을 잡고 더욱 안으로 끌어들었다.

“제법인걸. 세비아노.”

벨린이 막간을 이용하여 놀랍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까트린이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속삭였다.

“어이없는 건 너야. 우리라고 기분 좋은 걸 싫어하는 줄 알아? 더구나 내일이면 죽을지도 모를 판에, 너처럼 젊고 잘생기고 삐뚤어진 사내를 어떻게 마다해.”

다시 한 번 짙은 키스가 이어졌다. 시에스타가 서로의 잠재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시간으로 변모하기는 시간문제였다.

약간의 이성을 유지하던 두 남녀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처에 헛간이 하나 있었다. 그곳이라면 이 짧은 시간을 남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보내기에 충분하리라.

그들은 남들 몰래, 들고 있던 무기들을 질질 끌고 헛간으로 걸어갔다. 내부에는 가축 먹이로 보관해놓은 밀짚더미들이 가득했다. 구멍 난 지붕 틈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스며들어왔다. 벨린 데 란테가 문을 닫자 페르몬의 향기 같이 사람을 매혹시키는 은은한 땀냄새가 건초냄새에 섞여 두 남녀를 흥분시켰다.

두 남녀는 허겁지겁 제복을 벗었다. 무거운 흉갑을 질질 끌고 온 까트린은 갑옷을 집어 던지자마자 아버지가 물려준 모직 돌만과 기병대 자켓을 연달아 벗어 던졌다.

서두르려는 여 기병에게 벨린이 옷을 벗으며 충고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여제가 너를 총살시킬걸.”

“상관없어.”

알몸이 된 그녀가 벨린 데 란테와 건초 더미 위로 허물어지며 말했다.

“어차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텐데.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년의 기둥서방 따위는 될 수 있잖아. 고귀하신 분이라면 그 정도는 이해하실 거야.”

“너를 위해서 했던 말이야. 네 가문을 이어야 한다며.”

벨린이 사과하며 그녀와 다시 입을 맞췄다. 깊은 전희에 빠져들 때까지, 살갗을 간질이는 건초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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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의 마지막 정사씬을 끝으로 다음 장은 대망의 마지막 대전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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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베나레스의 총사(168) +27 09.02.03 2,635 9 7쪽
170 베나레스의 총사(167) +30 09.01.29 2,669 12 12쪽
169 베나레스의 총사(166) +26 09.01.26 2,726 12 10쪽
168 베나레스의 총사(165) +33 09.01.22 2,810 12 10쪽
» 베나레스의 총사(164) +28 09.01.22 2,738 9 7쪽
166 베나레스의 총사(163) +27 09.01.18 2,692 1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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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베나레스의 총사(156) +22 09.01.07 2,696 1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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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베나레스의 총사(148) +17 08.12.15 2,572 10 9쪽
150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697 9 9쪽
149 [부록]베나레스의 총사에 대한 작가의 덧붙임(1) +14 08.12.12 3,481 5 15쪽
148 베나레스의 총사(146) +19 08.12.12 2,784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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