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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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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2,223

작성
09.02.10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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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베나레스의 총사(170)

DUMMY

네번째 일제사격이 빌랜드군을 짓뭉겠다. 사격을 끝낸 히스파니아 총사들은 능숙하게 총을 재장전하였다. 즐거운 살육의 장이었다. 핏빛 제복 때문에 피를 흘리고 있는지 구별이 가지도 않는 저 뻣뻣한 자동인형들을 연달아 깨부수고 있었으니 그럴 법도 하였다.

리카르도가 유쾌하게 말했다.

"아직까지도 버티다니, 저놈들 용하군요. 일개 대대에 연대가 전멸하는 꼴을 보고 싶은 모양이죠?"

"슬슬 준비해야 되겠군."

벨린 데 란테가 머스킷총의 부싯돌 격발장치를 뒤로 잡아당기며 말했다.

"나는 이들이 헛되이 죽는 걸 바라지 않아. 이처럼 용감한 총사들이 모인 대대가 단지 무모한 자살공격 때문에 죽어나간다면 그건 어마어마한 사치가 되겠지."

"그렇다면 이 자리를 끝까지 고수할 필요는 없는거군요."

"놈들이 인내심을 잃을 때까지만이야. 빌랜드군의 장교들이 앞으로 갓을 외친다면 우리는 뒤로 돌아 후퇴하는 거다."

바로 그때였다. 다섯 번째 장전을 마친 히스파니아 총사들은 연달아 막심한 타격을 입은 빌랜드군 진영에서 나팔소리가 울려퍼졌다. 전진 나팔이었다. 나팔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선형 대형으로 길게 펼쳐진 빌랜드군이 일순간 거대하게 척! 하고 발을 굴렀다.

이윽고, 머스킷총을 든 레드코트들이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사살당해 쓰러진 전우의 시체를 짓밟고. 그 길고 거대한 이오횡대 대열이 발을 맞추어 걸어 나왔다.

히스파니아 총사들은 긴장했다. 족히 2개 연대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선형대형이 일개 대대를 포위하고자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저들이 사거리 내에서 일제사격을 가한다면 일개 대대쯤은 단번에 와해될 수도 있었다.

벨린이 웃었다.

"드디어 걸려드는군."

그 갈색머리 총사가 총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조준!”

총사들이 철컥 하고 머스킷총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호응하듯이 빌랜드 보병들이 척, 척 발걸음을 맞추며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아직 그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만약 그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더 이상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격발!”

요란한 총성과 함께 연기가 뿜어 나오면서 시야를 가렸다. 앞으로 나가던 빌랜드군이 또 한 번 우수수 쓰러져 내렸다. 그러나 적군은 무려 300미터를 길게 늘어선 2개 연대 규모의 레드코트들이었다. 가늘고 긴 붉은 물결은 멈출 줄을 몰랐고, 다시 한 번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들은 점차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지더니 히스파니아 총사대대를 향해 척! 하고 뛰었다.

벨린이 소리쳤다.

“후퇴, 후퇴한다!”

“후퇴하라!”

히스파니아 장교들이 복창했다. 총을 장전하던 총사들이 뒤로 돌아 내달렸다. 히스파니아 국기와 총사연대 군기가 펄럭였다. 곧이어 빌랜드군의 함성이 울러 펴졌다.

레드코트들이 이렇게 외쳤다.

“갓 세이브 킹!”

리카르도가 기수들을 따라 맨 마지막으로 뛰려던 차였다. 그는 후퇴 명령을 내린 벨린 데 란테가 어느 한 곳에 눈을 고정한 것을 목격했다. 그는 도저히 후퇴할 움직임이 아니었다. 무언가에 사로잡혀 꼼짝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소령!”

그러나 등을 보고 선 벨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리카르도는 침을 삼키며 진격하는 적군을 힐끔 흘겨보았다. 군악대와 기수를 앞세우고 수많은 머스킷 보병들이 일렬로 서서 진군하는, 어마어마한 위용이었다. 잠잠하던 포격이 다시 이어지더니 이곳저곳에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적의 진군을 방해하려는 아군의 포격인 듯했다.

무심결에 리카르도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벨린의 시선을 따라잡아 그 보고 있던 정체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빌랜드군의 대열과는 별개로 동쪽을 향해 동떨어져 있는 어느 레드코트였다.

리카르도는 믿을 수 없었다. 총을 새로 장전한 벨린 데 란테가 그 레드코트를 향해 총을 겨누었던 것이다. 그러자 상대도 총을 겨누었다.

한 순간, 그 젊은 대위는 음침한 기운을 느꼈다. 그것이 대위에게 깨우친 바는, 당장 정신이 나간 소령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벨린에게 뛰어갔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를 잡으려는데...

포탄이 두 총사를 스치고 작렬했다. 리카르도는 반사적으로 벨린을 밀쳤고, 벨린 데 란테는 무언가에 튕긴 것처럼 거칠게 나가 떨어졌다. 그는 쓰러지는 순간 총으로 겨누고 있던 그 갈색머리 머스킷트리스의 총구가 번쩍 하는 광경을 보았다.

그녀가 쏘아올린 총탄은 아주 찰나의 순간에 그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선 대위를 꿰뚫어버렸다. 몇 초 후 풀밭에 주저앉은 벨린 데 란테가 고개를 위로 올리자, 대위는 가슴을 움켜잡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져서는 죽었다.

머스킷트리스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벨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쏘지 못한 총을 들었다. 죽은 대위는 허망한 눈동자만 내보일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벨린은 앞을 보았다. 빌랜드군의 대열이 얼굴이 또렷이 구분 갈 정도로 가까이 와 있었다. 이런 와중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후퇴하는 것뿐이었다.

벨린은 총을 들고 히스파니아군 진영으로 뛰기 시작했다. 총탄 한발이 관자놀이를 스쳤다. 빌랜드군의 대열에 섞인 저격병들이 사격을 가한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레드코트들의 대열 속에 숨은 안젤라가 저격을 가한 것일지도 모른다.

진격하는 빌랜드군을 피해 그는 재빨리 언덕을 다시 올랐다. 전속력으로 뛰는 벨린의 시야에, 앞서 후퇴하여 어느 정도 나아간 녹색 제복의 총사들이 보였다. 그들의 앞에는 히스파니아 포병대가 연속적으로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 포병대의 뒤에 못 보던 긴 대열이 보였다. 푸른 제복의 히스파니아군이었다. 군기를 펄럭이며 선 그 머스킷총 보병대가 일제히 총검을 장착하더니 별안간 한 목소리로 외쳤다.

“히스파니아!”

히스파니아군이 진군하기 시작했다. 후퇴한 녹색제복의 총사대가 누군가의 명령으로 멈춰 서서는 대열을 갖추고 엎드렸다. 아군이 진격하기를 기다리려는 듯했다. 언덕을 다 오른 벨린 데 란테는 포복하여 배수의 진을 친 총사들과 가까스로 합류하였다. 그가 미끄러지듯이 야전총사대의 대열 앞에 엎드리자마자 언덕을 따라서 빌랜드군의 검은 삼각모가 해가 떠오르듯이 솟아올랐다.

어떤 총사가 외쳤다.

“저들이 못 봤어요! 언덕 위 깊숙한 곳에 아군이 숨어있었다구요! 그걸 몰라 여기까지 겁도 없이 온 겁니다!”

“제대로 걸렸군! 놈들은 후퇴하기엔 너무 늦었어!”

또 다른 누군가 외쳤다. 맞는 말이었다. 총사들의 등 뒤까지 접근한 히스파니아군이 절도 있게 척 하고 발을 굴러 섰다. 이제는 빌랜드군도 그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히스파니아군이 언덕 깊숙한 곳에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레드코트들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진격한 병력이 후퇴한다면 큰 불상사를 초래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제부터는 히스파니아군 누구나 빌랜드군 병사들의 얼굴을 또렷이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이 연주하는 군가도 분명히 들렸다. ‘브리타나여 영원하여라’라는 곡이었다. 엎드려서 적을 기다리던 총사들의 얼굴에 새로운 긴장감이 서렸다. 그들의 등 뒤에서 어느 히스파니아 보병대 장교가 사브레를 뽑아들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조준!”

절제된 드럼소리가 신호를 보냈다. 격철이 부딪치는 연속적인 쇳소리와 함께 히스파니아군이 적의 붉은 물결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그럼에도 빌랜드군은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무표정한 레드코트들의 기계적인 행군은 아예 히스파니아군을 집어삼키려 했고, 마침내 어느 외침이 그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를 깨트렸다.

“격발!”


--------

이 글 이후 쓰게 될 제 차기작은.. 현재 온라인 게임으로도 만들어질.. 그런 작품이 되겠습니다. SF인데요... 좀 많이 흥미롭습니다.. 현재는 설정을 짜고 있구요. 이번주 내로 모든 기초가 다져질 텐데.. 본격적인 소설 집필은 아마 다음주부터 하겠네요. 연재는 잘 모르겠어요. 해도 좋을 텐데 아직 합의가 안 되어서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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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베나레스의 총사(148) +17 08.12.15 2,572 10 9쪽
150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697 9 9쪽
149 [부록]베나레스의 총사에 대한 작가의 덧붙임(1) +14 08.12.12 3,482 5 15쪽
148 베나레스의 총사(146) +19 08.12.12 2,784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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