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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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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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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2,223

작성
08.12.2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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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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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베나레스의 총사(150)

DUMMY

“관심 없다니까. 저 계집애만 있으면 돼.”

안젤라가 데 란테의 여종을 쳐다보며 흡족하게 미소를 지을 즈음이었다. 문가에서 두 발을 모아 경례하는 소리가 났다. 비어든 박사와 주스티안 데 모리체, 스피놀라 중령이 들어오고 있었다.

승자와 패자가 마주쳤다. 엄연히 표현하자면 그랬다. 주스트로 코트를 입은 히스파니아 동방회사의 총수가 입 꼬리를 올렸다. 그는 드디어 모든 조건을 충족하고 이 도발적인 혁명을 승리로 이끈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승리감에 번뜩이는 표정을 짓는 이는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그처럼 승리를 갈망하는 붉은 머리 빌랜드인 마법사는 아직 승리를 확정하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그가 불쑥 말했다. 빌랜드인들의 언어로.

“안젤라, 이들을 어디서 찾았지?”

안젤라가 도도하게 대꾸했다.

“식은 파이 먹기나 다름없었지요. 저쪽 거울에 포크스 기관으로 작동하는 비밀의 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모두 쥐새끼처럼 숨었더군요.”

비어든 박사가 안경을 번뜩이며 피칠갑이 된 포로들을 둘러보았다. 딱정벌레껍질처럼 반짝거리는 그의 눈이 갈색머리 아리엘에게 고정되었다. 그녀는 으스러진 왼팔을 움켜잡고 있었는데, 빌랜드 마법사와 눈을 마주치자 똑바로 노려보며 적개심을 드러냈다.

마법사가 소리 없이 웃었다.

“우리 흥미로운 잡종의 약점을 찾았군. 이거 참 감동적인걸. 이거야 말로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아닌가.”

비어든 박사가 학구적인 눈으로 아리엘의 턱을 잡고 이곳저곳 살폈다. 아리엘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비틀었다. 마법사의 차가운 손에 소름이 돋기도 했지만 기분 나쁜 그의 눈동자에 겁을 집어먹은 탓이기도 했다.

팔짱을 낀 안젤라가 말했다.

“제게 기회를 주신다면 벨린 데 란테를 사로잡아 오겠습니다. 박사께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그를 케임브리지로 데려가서 시험대상으로 쓸 거야. 우리의 마법전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유전학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면야….”

한편 주스티안은 빌랜드인들의 대화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디에네 황녀는 무사한가?”

주스티안의 물음에 주안 스피놀라 중령이 불편한 얼굴로 나섰다. 그가 포로들 앞을 가로질러 벽에 기대앉은 디에네 데 아라고른 앞으로 갔다. 까트린 데 세비아노와, 벨린의 전우들이 그를 차갑게 쏘아보았다.

탈진한 조안이 서 있도록 부축하며 알레한드로가 말했다.

“당신이 평생 악몽을 꾸길 기원하지.”

스피놀라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가 고개를 숙여 디에네 황녀를 살폈다. 황녀는 외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스피놀라가 큰 목소리로 대꾸했다.

“멀쩡하군요. 돈 주스티안. 당신이 꼭두각시를 원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겁니다.”

주스티안이 흥분한 얼굴로 일렀다.

“어서 황제의 관을 가지고 오게. 이 자리에서 저 분을 황제로 옹립해야 내가 수상이 될 테지.”

그때 이를 갈고 있던 까트린이 큰 소리로 이죽거렸다.

“누가 네깟 것을 수상으로 인정한데?”

모두들 그 말을 들었다. 붉은 제복차림의 안젤라와 비어든 박사가 하던 말을 멈추었다. 주스티안이 승리감에 번뜩이는 얼굴로 까트린을 흘겨보았다. 부상과 패배에도 불구하고 까트린은 아직 굴복하지 않았다. 마치 눈동자에 서린 기병의 긍지가 마지막 발악을 하는 듯했다.

스피놀라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가 심각한 어조로 충고했다.

“죽음을 자초하고 싶은 거요?”

“아냐, 내버려 두게.”

주스티안이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저들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으니까.”

주스티안이 비어든 박사에게 눈짓했다. 박사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렸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쯤은 박사에게 일도 아니었다.

앞으로 제국의 독재자가 될 저 동방회사의 총수는 무자비한 숙청을 원했다.

박사가 명령했다.

“저들을 처형해, 안젤라. 너를 닮은 저 계집애만 빼고.”

“예스, 마이 로드.”

안젤라가 머리를 조아렸다. 포로들에게 총을 겨누던 레드코트들이 플린트 락 격발장치를 조작했다. 그 모습을 본 포로들이 벽 뒤로 바짝 붙었다.

레드코트들을 지휘하던 올리버가 검을 뽑아 드는 동안 안젤라가 앞으로 나섰다. 머스킷트리스의 목적은 분명했다.

“하찮은 목숨을 연장해준 네 주인에게 나중에 감사를 드리렴.”

안젤라가 아리엘의 손목을 확 잡아챘다. 그러나 아리엘은 순순히 끌려올 마음이 없었다.

“싫어!”

그녀가 옆에 서 있던 까트린의 옷을 붙잡았다. 적의 총구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까트린은 흠칫 놀랐다. 그러나 곧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 차렸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행동을 취했다.

까트린이 손을 움직였다. 그녀가 마치 누군가 지시한 것처럼 자신의 옷자락에서 아리엘의 손목을 때어 놨다.

아리엘이 울먹였다.

“안 돼요! 이래선 안 돼!”

까트린은 아리엘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대신 그녀는 붉은 제복을 입은 머스킷트리스를 노려보았고, 이렇게 내뱉었다.

“벨린이 복수할 거다.”

안젤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이 레드코트 머스킷트리스는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자들에게 모욕을 줄 마음이 없었다. 그녀는 흥 하고 돌아섰다. 아리엘은 따라가지 않기 위해 필사코 바닥에 늘어졌지만 안젤라의 완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군도를 든 올리버가 외쳤다.

“조준!”

가운데 서 있던 알레한드로가 양옆으로 까트린과 조안을 끌어 모았다. 빌랜드 총사들의 머스킷총이 그들을 정면으로 겨눴다. 아리엘이 울먹이며 비명을 질렀다. 바닥에 주저앉은 정신나간 황녀는 지그시 쳐다보고만 있었다.

포로들은 눈을 감았다. 곧 또 다른 구령소리에 맞추어 빌랜드 총사들이 방아쇠를 당기려던 때였다.

갑자기 열어둔 발코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마치 구세주처럼 울려퍼졌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라.”

마치 하늘에서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주스티안이 깜짝 놀라 외쳤다.

“어디서 나는 목소리지?”

주안 스피놀라가 발코니 쪽으로 뛰어갔다. 그가 데리고 온 변절한 총사들과 빌랜드 총사들도 따라나섰다.

그들은 아스틴 궁정의 풀밭 한 가운데서 푸르스름한 불빛을 발견했다. 사람이 서 있었다. 검은 색 프록코트를 입은 키 큰 노인이 푸른빛을 발산하는 지팡이를 들고 서 있었다.

노인이 외침을 이어갔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라.”

“이런, 제기랄.”

주안 스피놀라가 입을 벌렸다. 그가 동상처럼 굳어있는 비어든 박사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인지 알겠는데. 당신도 누구인지 알겠소?”

비어든 박사는 여전히 심기가 불편했다. 무언가 그의 기분을 나쁘게 한 게 틀림없었다. 마법사가 소리를 질렀다.

“갓 뎀!”

곧이어 자코모 다빈치의 목소리가 이 빌랜드 마법사가 다른 것에 자존심이 상했음을 모두에게 까발렸다.

“잘 있었나, 얼간이 딕? 자네는 여전히 장님처럼 지내는 모양이군. 그 촘촘한 마력 탐색망을 가지고도 어떻게 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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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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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베나레스의 총사(149) +23 08.12.18 2,720 12 9쪽
151 베나레스의 총사(148) +17 08.12.15 2,572 10 9쪽
150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697 9 9쪽
149 [부록]베나레스의 총사에 대한 작가의 덧붙임(1) +14 08.12.12 3,482 5 15쪽
148 베나레스의 총사(146) +19 08.12.12 2,784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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