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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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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1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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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3
글자수 :
702,223

작성
09.02.0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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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베나레스의 총사(168)

DUMMY

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군악대가 우렁찬 행진곡을 연주하였다. 기수가 앞으로 움직이면서 히스파니아 제국의 깃발과 펠리페 총사연대의 깃발이 같이 펄럭거렸다.

벨린은 가벼운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뒤로 500명이 넘는 1개 총사대대가 총검달린 머스킷총을 지향자세로 파지하고 용감히 따라나섰다. 그들의 눈앞에는 언덕 맨 끝에 포진한 포병대와 그 언덕 아래의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적의 포탄이 곳곳에 떨어지며 위협을 주었지만 직접적인 피해는 주지 못했다. 적의 붉은 물결이 또렷이 보일 때까지, 선형 대열을 이룬 총사들은 계속 전진할 태세였다. 그런 다음 적들에게 한방 먹일 수 있다면 저 레드코트들은 적의 머스킷총이 무려 100미터나 떨어진 거리에서 아군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데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모두들 의기양양하였다. 벨린이 검을 뽑아들고 전진 중인 대위에게 말을 걸었다.

“방금 전의 광경이 좀 어리둥절했겠지. 그들은 내 옛 전우들이었어.”

청년 티를 벗지 못한 대위는 모자를 잡고 경의를 표했다. 그는 겁에 질리지는 않았지만 숨쉬기조차 곤란한 심리적인 압박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벨린이 말했다.

“자네 이름이 뭐지?”

“리카르도입니다. 소령”

“내 지시를 따라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 그 보라색 가루를 술병에다 탄 거 말일세.”

리카르도 대위가 긴장한 어조로 대답했다.

“저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군인이라면 비겁한 일이라 해도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 하니까요. 다만 좀 궁금한 게 있긴 합니다만.”

리카르도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어떻게 그 술을 드셨는데 다른 사람들처럼 골아 떨어지지 않은 거죠?”

벨린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간단한데도 설명하기 참 골치 아픈 질문이군. 그저 내 몸은 그런 술을 백잔 이상 마신다 해도 이상이 없다는 걸로 알고 있으면 돼. 하지만 말이야.”

갈색머리 총사가 사악한 얼굴로 킥킥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임신한 여자의 뱃속에 있는 아기는 약간 위험할지도 몰라.”

“임신한 여자라고요?”

대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물었다. 벨린이 도리어 반문했다.

“자네 결혼했나?”

“약혼녀가 있습니다. 톨레도에요.”

리카르도 대위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벨린이 대꾸했다.

“나는 한때 서른이 되기 전까지는 혼인서약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지. 그런 날을 한참 앞두고 이런 선택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젊은 대위는 계속 무언가를 물어보고 싶어 갈등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포의 포성과 함께 군악대의 연주를 제외하고는 침묵이 흘렀다. 아군의 기마포병대가 바로 앞에 있었다. 일제 포격을 끝낸 포병들이 전진하는 총사대대에게 함성을 질렀다. 그들이 모자를 벗고 흔들어대면서 히스파니아! 히스파니아! 하고 외쳤다. 전진하는 총사들도 그들의 외침에 호응하며 함성을 질렀다. 곧 히스파니아! 라고 외치는 함성이 적의 포성을 가리고 휘몰아쳤다.

포병대 소령이 다가왔다. 푸른 제복과 얼굴에 온통 검은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소령이 외쳤다.

“아군이 계속 포격을 가하고는 있지만 비축된 탄약이 30분 후면 바닥이 나게 돼. 그 이상은 포격으로 저들의 진영을 흔들 수 없어. 우리는 곧 반격을 당할 거고 탄약이 떨어지면 후방으로 잠시 후퇴할 수밖에 없네.”

“여제 폐하 만세.”

벨린이 간단히 대답했다. 포병대 소령이 존경을 담아 모자를 벗고 경례했다. 벨린은 모자챙을 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응례한 다음, 포병대가 방열해 놓은 5파운드 포를 지나치고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언덕을 완전히 내려오자 발목 높이만한 푸른 잡초들이 발을 휘감아 전진속도가 늦어졌지만 빌랜드군의 붉은 대열은 이제 불과 700미터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기마포병대를 지나치고 포병들의 함성이 다시금 일제 사격의 포성으로 대체되자, 벨린은 잠시 끊겼던 대화를 이었다.

“그 금발머리 큐레시어 기억하나? 그녀가 내 아이를 가졌다네.”

“뭐라고요?”

리카르도 대위가 내뱉었다. 놀랐다기보다는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벨린 데 란테 시니컬하게 내뱉는 저 말들이 음탕한 농담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에 그런 것이었다.

벨린이 다시 키득 웃었다.

“그녀는 자기가 임신했다는 것조차 몰라. 날짜를 헤아려보니 벌써 한 달이 다 되었는데도 말이야. 나는 어제야 그 사실을 눈치채고 밤새 조금 죄책감을 느끼긴 했어. 지금까지 이런 사고를 터트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

“바보 같군요.”

긴장이 풀린 리카르도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벨린이 농담조로 말을 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무슨 2세기 전의 기사인 줄 알고 있다니까. 그런 여자가 내 아이를 가진 줄도 모르고 전쟁터로 나간다며 완전무장을 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였겠어?”

“저는 당신을 보고 바보 같다고 한 겁니다. 소령.”

벨린이 의외라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리카르도가 말했다.

“모두들 당신을 보고 희대의 난봉꾼이고, 무모한 도박사라고들 말한답니다. 설령 당신이 알고 지내던 그 많은 여자들을 포기하고 그녀와 결혼할 수밖에 없다면, 싸움을 포기하고 돌아갔어야지요. 왜 총살형 집행장의 행렬에 따라 걸어가는 거죠?”

벨린은 전방을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리다 진지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거야 말로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거든.”

어느덧, 빌랜드 레드코트들의 대열이 또렷이 보였다. 그들이 쓴 검은 모자와 붉은 제복, 겨누고 있는 머스킷총까지도. 빌랜드 포병대가 쏘아오리는 포탄은 이제 그들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벨린 데 란테가 쉰 목소리 외쳤다.

“제 자리에 섯!”

총사 대대의 대열이 척 하고 발 구르는 소리와 함께 멈추었다. 약 이백 미터 너머에 적들의 대열이 있었다. 보통 군인들로서는 교전을 하기에는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거리였다. 그러나 총사들은 달랐다.

벨린이 총을 들고 리카르도에게 말을 건넸다.

“저들에게 한방 먹여줄 수 있겠나. 목이 쉬어서 더 이상 소리를 지를 수 없군.”

“물론입니다.”

대위가 신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사브레를 들어 올리며 “조준!”이라고 외쳤고, 벨린을 포함한 다른 총사들이 강선이 파인 짧은 머스킷총을 적에게 겨눴다. 적들은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햇빛에 반짝거리는 히스파니아군의 총열을 보았을 때 짤막한 고함과 함께 수백발의 메마른 총성이 터져나왔다.

“격발!”


---------


연재가 늦고 있죠. 실은 요즘 게임개발사에 취직되어 간단한 일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재미있는 설정 짜기랍니다.

(어떤 게임, 어느 회사인지는 묻지 마십시오.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라서요)


사실 돈 되는 일거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부득이하게 이번화가 좀 늦었습니다. 회사일도 중요한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는 투잡이 원활하게 되겠습니다. 아무튼 마무리 잘 짓겠습니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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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베나레스의 총사(170) +21 09.02.10 2,850 11 9쪽
172 베나레스의 총사(169) +24 09.02.07 2,604 12 7쪽
» 베나레스의 총사(168) +27 09.02.03 2,635 9 7쪽
170 베나레스의 총사(167) +30 09.01.29 2,669 12 12쪽
169 베나레스의 총사(166) +26 09.01.26 2,726 12 10쪽
168 베나레스의 총사(165) +33 09.01.22 2,810 12 10쪽
167 베나레스의 총사(164) +28 09.01.22 2,737 9 7쪽
166 베나레스의 총사(163) +27 09.01.18 2,692 1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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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베나레스의 총사(156) +22 09.01.07 2,696 13 8쪽
158 베나레스의 총사(155) +21 09.01.06 2,748 9 8쪽
157 베나레스의 총사(154) +19 09.01.04 2,567 12 7쪽
156 베나레스의 총사(153) +28 08.12.31 2,659 13 12쪽
155 베나레스의 총사(152) +25 08.12.25 2,729 12 9쪽
154 베나레스의 총사(151) +21 08.12.22 2,468 11 10쪽
153 베나레스의 총사(150) +26 08.12.21 2,577 12 8쪽
152 베나레스의 총사(149) +23 08.12.18 2,720 12 9쪽
151 베나레스의 총사(148) +17 08.12.15 2,572 10 9쪽
150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697 9 9쪽
149 [부록]베나레스의 총사에 대한 작가의 덧붙임(1) +14 08.12.12 3,481 5 15쪽
148 베나레스의 총사(146) +19 08.12.12 2,784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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