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177 회
조회수 :
987,495
추천수 :
2,493
글자수 :
702,223

작성
09.01.06 00:34
조회
2,748
추천
9
글자
8쪽

베나레스의 총사(155)

DUMMY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제국을 이끌 새로운 황제 폐하를 옹립하려 합니다.”

동방회사 총수의 목소리는 미로 정원 속에 숨은 총사대에게도 분명해 들렸다. 수풀 속에 몸을 숙인 이사벨이 주먹을 불끈 쥐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녀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려 했기 때문에 벨린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막아야 했다.

“저 천한 것이 감히.”

여제가 이죽거렸다. 벨린이 그녀를 달랬다.

“고정하십시오, 폐하. 저것을 제가 책임지고 보내버릴 테니.”

한편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사벨이 이를 갈고 있으리라 상상도 못한 주스티안 데 모리체는 미동도 못하는 자코모 다빈치의 반응에 신이 난 모양이었다.

“선생도 아시겠지요?”

주스티안이 은빛 왕관을 들어 보이며 으스댔다.

“과거 이 제국이 창궐했을 때부터 이 황제의 관에 어떠한 마법적 계약이 결려 있었는지 말이지요.”

다빈치가 인상을 찌푸렸다.

“잘 안 들리는군, 주스티안. 뭐라 씨부리는 거지?”

주스티안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이 황제의 관의 역사가 어떻게 되는지는 당신이 더 잘 알고 있겠지요. 그 위대하던 고대의 로마네스 제국의 황제가 기독정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월계수관을 대신하여 축복받은 은으로 주조한 것이 아닙니까. 즉 이 관은 황권신수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마법적 계약의 산물이라 이 말입니다. 그 사례가 어떻든 간에 옛날부터 이 관을 쓴 적법한 후계자는 황제로써의 대우를 받아왔지요. 모든 신민들의 정신과 충성심으로 아우러지는 마법적 계약에 의하여….”

“수작떨지 마시지.”

다빈치가 큰 목소리로 말을 가로막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 계약은 위법이야. 너는 추기경도 아니고, 이곳은 이 제국이 처음으로 창궐한 톨레도의 대성당도 아니야. 황권신수설과 연계된 마법적 계약은 자격과 조건이 맞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반란자들이 역모를 꾸며왔지만 대부분 실패한 게 바로 그 때문이지.”

여유를 찾은 비어든 박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친애하는 자코모 다빈치 박사. 당신의 말이 맞기는 맞지. 하지만 당신은 흑마법의 발전을 너무 간과하였소. 로마네스 제국의 황제가 처음으로 수립한 이 마법적 계약은 천오백 년 전의 마법기술이요. 사백 년 전, 이 나라의 초대 황제인 아스틴 데 아라고른이 간단히 명문만 손본 이후로 아무도 이 계약을 보강하지 않았소. 아마 히스파니아인들은 어느 누구도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할 거라 여겼겠지.”

비어든 박사의 목소리는 이사벨과 벨린의 귀에까지 미쳤다. 벨린 데 란테는 어느 총사대원에게 장전된 강선파인 머스킷총을 뺐어 들었다. 그는 금속제 총열이 어둠속에 반짝거리지 않도록 수풀 속에 총을 숨기고 기회를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비어든 박사가 승리감에 번뜩이는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계속했던 것이다.

“지난 천 년 간 빌랜드의 흑마법은 어마어마하게 발전하였소. 그 소리는 우리의 마법적 수단이 어떠한 마법적 계약이라도 교란시켜 모두가 인정하게 만들 수 있게 만들었단 소리요. 우리는 이미 그 조건을 충족시켰소. 당신의 그 성전기사단 연구를 이 제국 사람들에게 소개함으로써 이 나라의 모든 신민들에게 암시를 심어주었거든.”

지금까지 침착함을 유지하던 다빈치의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설마. 네가 퍼트린 그 소문이….”

“왜 우리가 하필이면 이사벨이라는 이름과 관련된 소문을 퍼트렸겠소. 그것은 바로 이 관의 마법적 계약을 교란하고 왜곡하기 위해서였지요. 즉 우리는 ‘악소문’이라는 강력한 흑마법으로 이 나라 사람들에게 과거의 이사벨 여제와 지금의 이사벨을 동일하게 보도록 조종했던 것이오. 굳이 풀어 말하자면 무고한 성전기사단을 제거하여 잔혹함을 드러낸 여제가 아닌 제2황녀가 황제가 돼야 한다는 암시를 심어주었달까. 거기에다 그 암시가 ‘제2황녀가 황제에 오를 수 있다면 누구의 손에, 어느 곳에서나 대관식을 치러도 상관없다’는 논리적 확증으로 발전한다면 내가 저 관에 부린 교란 마법은 논리적으로 성립되기 때문이요.”

다빈치가 분노에 몸을 떨었다.

“이 교활한 흑마법사 같으니. 네 놈의 목숨을 진작 끊어놨어야 했는데….”

비어든 박사는 느긋했다.

“나를 얼간이가 아닌 마법사라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군. 애당초 이 싸움은 당신이 지고 들어가는 거였단 거요. 당신이 모시는 이사벨 데 아라고른을 어디에다 숨겨 놨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나를 죽인다 해도 이 대관식을 막을 수는 없소. 왜냐. 나는 내 조국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이 저 대관식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신이 노리던 바는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요.”

바로 그때였다. 다빈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팡이를 휘둘러 기습을 가했다. 푸른 아우라가 그의 몸에서 용솟음치며 뿜어 나오더니, 지팡이 끝에서 번개처럼 이글거리는 빛살이 발코니를 향해 방사되었다.

그러나 비어든 박사가 가만두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지팡이를 다빈치의 것과 교차해서는 검은 방어막을 만들어서 방사되는 빛살을 막았다. 다빈치의 푸른 빛살은 허공에서 검은 방어막과 신경전을 벌였고 마치 검을 맞물려 밀어내기를 하듯 두 마법사가 이를 악물로 힘겨루기를 벌였다.

주스티안 데 모리체가 뒤에서 깔깔거렸다.

“결국 협상을 결렬되었군, 다빈치 박사. 당신의 업적으로 우리 혁명이 성공을 거뒀으니, 우리 편에 들어선다면 좋은 파트너가 되리라 여겼는데.”

주스티안이 황제의 관을 디에네 황녀의 머리 위로 천천히 들이밀었다. 멍하니 있던 디에네 황녀가 황제의 관으로 눈을 돌렸다. 순간 황녀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가득찼다. 그녀가 넋이 나가 뇌까렸다.

“싫어! 가시 면류관이야!”

황녀가 울음을 터트리며 발버둥 쳤다. 그녀가 머리를 마구 내저으며 관을 피하려고 하는 바람에 그녀를 붙잡고 있던 주안 스피놀라가 힘을 주었다. 주스티안 데 모리체도 쩔쩔맸다.

그때 벨린이 총을 겨누며 일어났다. 그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처음에는 누구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주스티안의 시선은 황녀의 머리에 고정되어 있었고, 주안 스피놀라는 황녀의 목을 졸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다시금 주스티안은 그녀의 머리에 황제의 관을 씌우려고 했고, 문득 어둠 속에서 주안 스피놀라는 어두컴컴한 미로 정원의 한 가운데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포착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바로 그 순간 다빈치가 마력을 극한으로 증폭시켜며 버럭 외쳤다.

“지금일세, 벨린! 놈을 죽여!”


-------------


이것이 성전기사단의 진실에 대한 소문을 그들이 퍼트리려 한 이유입니다. 황제의 관과 계약적 마법이라. 사실 이 세계 마법은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겟어요. 실은 서유럽의 모 철학자가 쓰 국가 계약론에서 얻은 아이디어지요...


한가지 사소한 재미가 있습니다...


스페인어로 이사벨, 혹은 이사벨라라는 이름은 제가 좋아하는 영어식 이름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총사대의 강선파인 머스킷총 '바인 베스'와 실제 역사에서 영국군이 쓰는 총이며 빌랜드인이 쓰는 총인 '브라운 베스'에는 베스라는 공통적인 단어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뒤에 있는 이 '베스'라는 명칭이 여자의 애칭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습니다.(사실 총을 뜻하는 독일어 '부스'에서 따왔다는 설이 더 유력하지만요) 그리고 그 베스는 대표적으로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의 애칭이지요.

빌랜드군의 진군 장면에서 빌랜드 총사들은 갈색머리의 안젤라를 자신들의 총에서 딴 애칭인 '마녀 중대장 베스'로 부릅니다.


여기서 뭔가 맞물리지 않나요? 이름에 얽힌 벨린, 이사벨, 안젤라의 상관관계가... 이 소설의 내면구조를 구성하는 복선 및 암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베나레스의총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7 외전 - 긴귀쟁이 독립전쟁(1) +15 09.04.08 2,769 12 7쪽
176 베나레스의 총사 후기 +52 09.03.19 4,323 10 6쪽
175 베나레스의 총사(172, 마지막화) +93 09.02.23 5,041 16 15쪽
174 베나레스의 총사(171) +25 09.02.15 2,948 10 8쪽
173 베나레스의 총사(170) +21 09.02.10 2,851 11 9쪽
172 베나레스의 총사(169) +24 09.02.07 2,605 12 7쪽
171 베나레스의 총사(168) +27 09.02.03 2,635 9 7쪽
170 베나레스의 총사(167) +30 09.01.29 2,669 12 12쪽
169 베나레스의 총사(166) +26 09.01.26 2,726 12 10쪽
168 베나레스의 총사(165) +33 09.01.22 2,811 12 10쪽
167 베나레스의 총사(164) +28 09.01.22 2,738 9 7쪽
166 베나레스의 총사(163) +27 09.01.18 2,693 11 10쪽
165 베나레스의 총사(162) +22 09.01.16 2,559 12 8쪽
164 베나레스의 총사(161) +21 09.01.14 2,595 10 9쪽
163 베나레스의 총사(160) +20 09.01.13 2,634 13 9쪽
162 베나레스의 총사(159) +34 09.01.12 2,716 10 7쪽
161 베나레스의 총사(158) +31 09.01.09 2,846 12 10쪽
160 베나레스의 총사(157) +14 09.01.09 2,676 13 8쪽
159 베나레스의 총사(156) +22 09.01.07 2,696 13 8쪽
» 베나레스의 총사(155) +21 09.01.06 2,749 9 8쪽
157 베나레스의 총사(154) +19 09.01.04 2,567 12 7쪽
156 베나레스의 총사(153) +28 08.12.31 2,659 13 12쪽
155 베나레스의 총사(152) +25 08.12.25 2,729 12 9쪽
154 베나레스의 총사(151) +21 08.12.22 2,469 11 10쪽
153 베나레스의 총사(150) +26 08.12.21 2,578 12 8쪽
152 베나레스의 총사(149) +23 08.12.18 2,721 12 9쪽
151 베나레스의 총사(148) +17 08.12.15 2,572 10 9쪽
150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697 9 9쪽
149 [부록]베나레스의 총사에 대한 작가의 덧붙임(1) +14 08.12.12 3,482 5 15쪽
148 베나레스의 총사(146) +19 08.12.12 2,784 12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