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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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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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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12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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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베나레스의 총사(147)

DUMMY

“안젤라... 주인님의 원수...”

레드코트를 입은 그녀가 입 꼬리를 올렸다.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 웃음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나를 아는군. 벨린 데 란테의 노예.”

아리엘의 목소리가 겨울새처럼 떨렸다.

“주인님이 당신에 대해 말해주었어…. 나를 닮았다고….”

아리엘이 안젤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안젤라는 그녀가 잘 볼 수 있도록 머리에 쓴 삼각모를 벗어 들었다. 아리엘과 똑같은 색의 갈색머리칼과 키가 크고 날씬하며 가슴이 크고 굴곡이 살아있는 몸매. 허나 결정적으로 아리엘은 그녀의 얼굴에서 현기증을 느꼈다. 그녀는 마치 아리엘이 다른 옷을 입고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코끝이 더 날카롭고, 눈매가 위로 올라갔으며 눈동자의 갈색이 좀 더 짙다는 것 정도…. 허나 그 외에는 완벽히 빼닮았다. 마치 쌍둥이처럼.

안젤라가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 내려왔다. 아리엘은 뒤로 물러날 엄두도 못 내고 주저앉아 있었다. 각오는 했지만 충격이 극심했다. 이렇게 닮을 수 있다니. 주인님은 지금까지 원수를 데리고 산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그 복수심을 다스릴 수 있었던 거지?

안젤라가 황녀를 끌어안고 주저앉은 아리엘 앞에 섰다. 그녀가 허리를 숙여 데 란테의 시종을 내려 보며 마치 흥정하는 것처럼 혼잣말을 했다.

“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솔직히 기분이 나쁜걸.”

머스킷트리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늑대소년이 너 따위 것으로 소꿉놀이를 했었다니.”

두 여자의 눈이 마주쳤다. 아리엘이 남은 용기를 쥐어짜며 내뱉었다.

“나는 당신 같은 마녀가 아니야. 당신처럼 주인님을 고통에 빠트리지는 않아.”

안젤라가 손바닥으로 아리엘의 뺨을 힘껏 때렸다. 그녀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럼에도 아리엘은 굽히지 않았다. 그녀가 안젤라를 노려보며 이렇게 내뱉었다.

“주인님이 너를 죽이려고 돌아오실 거야.”

“그래, 맞아.”

안젤라가 아리엘의 머리채를 끄집어 올리며 웃어보였다.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바지.”

* * *

히스파니아 제국 도시의 상수도는 도심 아래 지하 5미터에 거미줄처럼 구성되었다. 특히 아스티아노의 상수도는 아스티안 초대 황제가 고대 도시의 원형에 아스티아노를 세웠을 때부터 보존되어 있었다. 아스티아노를 세우기 전, 이 도시는 고대 로마네스 제국 시절 히스파니아 속주의 수도였다. 란툰 반도 사람들은 지하에 상하수도를 매설하는 기술을 갖추고 있었기에 고대 도시를 원형으로 하는 많은 에우로파의 도시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횃불을 들어 올린 근위총사들이 천천히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들의 맨 앞에는 자코모 다빈치와 이사벨 여제가 있었다. 바닥에는 수로에서 유입된 상수도의 물이 무릎까지 차 있었고 초조한 얼굴의 여제 옆에서 다빈치는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것도 명량한 목소리로.

“아스티아노 전역에는 이러한 상수도가 있어서 모든 우물과 수도관, 분수대로 물을 공급합니다만 사실 황궁으로는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사벨1세 시절, 여제가 반역에 대비한다고 황궁의 상수도와 도시의 상수도를 분리시켜버린 것이지요. 그럼에도 아직, 황궁 내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상수도 통로가 있습니다. 바로 아스티아노 대학과 궁전의 미로정원 간의 상수도지요.”

자코모가 손에 든 지팡이 끝에는 푸르스름한 불빛이 사방을 환히 밝히고 있었는데 이 불빛은 횃불보다도 밝았고 은은했다. 그 빛에 드러난 총사들의 얼굴이 약간은 차갑고 으스스해 보이기는 했지만 아무도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푸른 불빛에 드러난 이사벨은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긴장과 걱정 때문인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기색이었다.

그럼에도 대마법사는 떠들어댔다.

“이사벨1세가 이 상수도를 폐쇄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답니다. 이곳은 아스티아노 대학과 궁전을 몰래 오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지요. 그 옛날 아스티아노 대학이 세워지기 전 대학은 히스파니아 성전기사단 본부였거든요. 그녀는 이 통로를 통해 지금은 의학부 건물로 쓰이는 성전기사단장 미카엘 발부아의 집무실을 밀회하고는 했지요. 그리고는 성전기사단을 모조리 척살하자 그곳을 대학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봐, 박사.”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이사벨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짐이 간혹 그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적이 있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귓가에 들리지도 않는다.”

“여유를 가지시지요, 폐하.”

늙은 마법사가 활짝 웃어보였다.

“반란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이제 모든 군주의 왕이시잖습니까.”

“황제의 관을 쓰기 전까지는 칭호만 황제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금은….”

여제의 목소리가 한청 작아졌다.

“그딴 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벨린 데 란테 때문입니까? 아니면 디에네 황녀 마마?”

“둘 다야. 그들의 안위는 지금 짐에게 엎친 데 덮친 격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어둠속으로 더욱 깊이 나아갔다. 그러나 여제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마력으로 불을 밝히는 지팡이를 쥔 다빈치 박사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데 란테 대위는 정신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고 있어요. 비록 그 임무가 배신에 대한 복수로 무시무시하게 중첩되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의 그 복수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다. 대체 어느 정도의 충격이었으면….”

“대위는 그 일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마법사가 애도를 표하며 말했다.

“비극으로 공연해도 될 정도지요. 딱한 일입니다. 그가 복수에 성공하길 신께 기도할 수밖에요. 그러니 폐하께서는 황궁을 탈환하는데 힘을 기울이셔야 합니다. 디에네 황녀 마마도 폐하의 소중한 혈육이 아닙니까.”

“그 아이에게 너무 큰 죄를 지었다.”

여제가 후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짐처럼 살기를 강요했지. 그 유약한 마음으로 어떻게 그런 짓을. 그러니 머리가 이상해질 수밖에.”

그들은 막다른 골목에 당도했다. 쇠로 만든 사다리가 보였다. 여제가 총사대원들에게 눈짓했다. 발이 날렵한 총사대원이 머스킷총을 등에 매고서는 사다리로 뛰어갔다.

그가 소리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오르더니 지상으로 향하는 뚜껑을 열고 주위를 살폈다.

잠시 후, 그가 돌아와서 보고했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합니다. 폐하.”

“미로정원과 연결되어 있더냐?”

“신께 맹세코 그렇습니다, 폐하.”

“더 이상 주체할 시간이 없다.”

여제가 사다리를 가리켰다. 총사대 장교들은 사브레를 뽑아들었고, 부사관들은 은밀히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윽고 장교들이 선두에 서서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 뒤를 총사대원들이 일렬로 줄지어 따랐다.

이사벨이 말했다.

“모두가 오르려면 시간이 약간 걸릴 게야. 우리는 2개 중대나 되니까. 그때까지 적들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텐데.”

자코모 다빈치가 말했다.

“제 감각은 항상 깨어있습니다, 폐하. 마법사는 누구나 보이지 않는 곳을 감지할 수 있지요.”

“만약 적들도 그대처럼 강력한 마법사가 있다면 어떡하지? 그들이 요망한 마법을 부려 우리를 발견한다면...”

다빈치가 피식 웃었다.

“저들은 제 마력에 의해 은폐되고 있습니다. 지팡이에서 흘러나오는 이 빛이 보이십니까. 이것은 ‘성 우베르티노의 그림자’입니다.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최초로, 가톨릭 기독정교에서 대대로 필사한 성마법 주문이지요. 흑마법을 부리는 자들은 이 빛이 수호하는 이들을 결코 탐색할 수 없답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성문 안 그림자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 말에 이사벨 여제는 안심한 기색이었다. 다빈치 박사가 덧붙였다.

“만약 누군가 이 주문을 깨트린다면, 그 자는 제가 처리해야할 1순위가 될 것입니다. 그래봤자 누구일지 뻔하지만 말입니다.”

“그게 누구지, 박사?”

자코모 다빈치가 상대에 대한 경멸을 담아 대답했다.

“저는 그를 ‘붉은머리 얼간이’라고 부르지요.”


---


일부러 부록을 새글과 함께 올립니다.(따끔한 눈총이 무서워서)

그림 잘 그리시고 사극에 관심있는 화백님(ㅜㅜ)을 찾습니다. 삽화를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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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697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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