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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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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223

작성
09.01.16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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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베나레스의 총사(162)

DUMMY

* * *

부엉이가 우는 깊은 밤이었다.

이사벨 여제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있는 방은 이 마을에서 가장 좋은 농가였지만 마루는 삐거덕거렸고 창틈으로는 차가운 초봄의 밤바람이 스며들어왔다. 벽난로는 있었지만 불을 피우지는 않았다. 미장이질이 오래되어 불을 피울 때마다 연기가 방안으로 스며 들어와서였다.

깨끗하고 아늑하지 않은 장소에서 오래 지내는 것처럼 고귀한 여성에게 불편한 일도 없겠다. 그러나 여제로 등극한 이후 제9대 히스파니아 황제, 이사벨 데 아라고른 2세는 진정한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초월한 철의 여인처럼 행동했다.

이사벨은 주스티안의 혁명 이후 드레스를 입지 않았다. 그녀의 복장은 타이트한 야전총사연대의 초록색 제복과 공백자리에 있는 총사대장의 은빛 휘장으로 한정되었다. 어렵게 쟁취한 황제의 관은 일단 아스티아노의 안전한 금고에 보관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관을 뒤로하고 카탈루니아의 평원의 어느 시골마을로 행군했다. 최전방에서 회군하여 전투태세를 준비한 펠리페 총사연대와 함께.

제복차림의 이사벨은 두 다리를 꼰 상태로 팔짱을 끼고 만족스럽지 않은 얼굴로 상대를 응시했다. 정중한 자세로 서 있는 상대는 금술 견장이 달린 제복에 사브레를 찬 대령이었다.

“그래서….”

이사벨이 말을 이었다.

“짐은 주스티안의 음모를 막고 그를 체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훗날 평화가 돌아오면 그를 국가반역죄로 재판에 회부하여 광장에 메달 수 있겠지. 그 전까지는 정치범들의 감옥에 가두고 비참한 삶을 연명하도록 먹이나 주는 게 최선일 것이다.”

“포 임페라도 데 글로리아.”

삼각모를 옆구리에 낀 연대장이 목례했다. 그는 호세 루이스 카라카스 대령이었다. 히스파니아의 위대한 승리로 일컫는 란츠베르크 전투를 선봉 지휘한 유능한 야전지휘관으로 명성이 높았다. 동방회사의 혁명 직후, 그는 국경에 있던 전 병력을 서둘러 수도로 회군시켰고 그 덕분에 여제는 수도의 치안이 불안해지기 전에 잔적을 소탕하고 즉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여제가 몇 번 메마른 기침을 토하고서는 입을 열었다.

“의회는 짐을 지지하고 있다. 저 멍청한 섬나라의 침략자들이 아직 우리의 땅에 건재하지만, 그들이 어떠한 정권을 세우든 간에 신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아스티아노의 난 때 실패하고서도 짐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아스티아노의 난'으로 명명된 주스티안 데 모리체의 1차 혁명이 있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공격이 시작된 그날 밤에만 양측에 가담한 많은 군인들이 죽고 다쳤다. 아스티아노에 주둔한 카라비나리(헌병군) 연대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흉갑기병대와 헌병군 보병들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지만 상대적으로 진압당한 혁명군 측은 조기에 항복함으로써 몰살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이들은 주스티안 데 모리체의 휘하에 있던 동방회사군과 그들의 혁명을 지원하기 위해 파병된 빌랜드의 레드코트들이었는데, 빌랜드 레드코트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빌랜드인들은 자신들의 사령관 격인 마법사가 죽은 것을 감지하고 미리 세워둔 긴급 계획에 따라 2차 작전의 일환으로 신속히 후퇴한 것이었다.

여제의 군대는 그 빌랜드인들을 추격할 여유가 없었다. 1개 대대 정도 되는 그 빌랜드 레드코트들은 아스티아노의 성벽을 빠져나와 근교를 원을 그리며 행군했고, 도시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빌랜드 대사관에서 남은 빌랜드인들과 후퇴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남아있는 동방회사군 잔당과 빌랜드인들의 부대와 합류하여 빌랜드 왕의 명령을 받고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혁명을 지원하는 것으로 패권을 잡지 못했다면, 자기들이 병력이 상륙한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황권을 찬탈하자는 음모가 아니겠는가.

그에 대한 증거로 빌랜드군은 수도를 향해 점차적으로 포위망을 좁혀왔다.

여제의 기침이 발작적으로 심해졌다.

“톨레도 공작이 2만 대군을 집결하여 이번 주 내로 당도하면, 찰스 스튜어트. 그 멍청한 빌랜드 왕은 자기들 군사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 동방의 자기네 식민지라도 팔아야 할 거야….”

이사벨 여제가 거칠게 숨을 쉬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카라카스 대령이 앞으로 다가오며 우려를 나타났다.

“주치의를 부르겠습니다. 폐하.”

그녀가 손을 저었다.

“다빈치 박사는 지금 여기에 없다. 짐이 그를 아스티아노로 심부름 보냈다.”

“디에네 마마 때문입니까?”

“그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겠지.”

이사벨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대령을 올려보았다.

“이제 그만 나가보도록 하여라. 대령. 아까 전에 약을 먹었으니 좀 쉬어야겠다.”

여제가 손수건으로 입을 막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대령은 포 엠페라도 데 글로리아 하고 외치며 방을 나섰다.

이사벨은 테이블에 놓인 램프를 끄고 낡은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다른 신하들의 만료를 뿌리치고 야전에 어울리는 가장 혹독하면서도 합리적인 잠자리를 택한 거였다. 허나, 이런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군주의 권한을 이용하여 약간의 따스함 정도는 누려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녀를 만족할 것이라면 이 세상에 단 하나 뿐.

그녀가 총사대 외투를 덮고 누운 상태로 오한에 덜덜 떨리는 몸을 웅크렸다.

‘벨린….’

눈을 감은 여제는 그녀의 사냥꾼을 떠올렸다. 그가 입었던 배신과 상처가 얼마나 심했는지 여제는 짐작할 뿐이었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를 그런 식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황위를 물려받은 여인이라는 운명을 타고났음에도 벨린 데 란테는 분명 그녀의 첫사랑이었고 그와의 인연을 어떻게 시작하였건 간에 그것을 유지하는 일은 그녀의 몫이었다.

이사벨은 벨린이 그녀의 곁에 남기를 바랬다. 비록 그가 떠나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설득해야만 했다. 그가 그녀의 인생에서 사라진다면 삶이 다시 바짝 메마를 게 뻔했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절대로.

‘돌아와 줘. 제발….’

여제의 눈물이 외투를 적셨다. 그가 어떤 상처를 입었든 간에, 그녀가 노력한다면 치유하지 못할 게 어디 있으랴. 그러나 현실은 이사벨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는 오한을 숨긴 채 몸을 떨면서 이불 대용의 외투를 온몸으로 품는 것이었다. 또 다른 운명의 순간에 앞서 기적을 가져다 준 그녀의 사냥꾼을 간절히 바라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얕은 잠에 빠져 있던 여제는 문득 밖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잠이 깨자마자 오한이 살아났고 이가 서로 부딪치며 몸이 저절로 떨렸다.

이 야심한 시각에 누군가 말을 타고 왔다는 것은 무언가 중요한 용건이 있다는 뜻일 터였다. 아마도 중요한 전령인 모양인데…. 허나 그녀는 몸을 일으킬 기운이 없었다. 온 몸이 으스스하게 떨려서 일어나는 것조차 무리였다.

이윽고 그녀의 처소를 지키던 위병들과 누군가가 언쟁을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비록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언쟁은 10초 만에 끝이 났고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폐하.”

누구인지 구분가지 않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사벨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누구냐.”

그녀가 가냘픈 목소리로 응답했다. 상대는 대답 대신 문을 열었다. 램프 불빛이 세어 들어왔다. 삼각모에 제복을 차려입은 사나이가 문가에 서 있었다.

이사벨은 멍한 얼굴로 벽에 등을 기대에 침대에 앉았다. 그 사나이가 들고 있던 램프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절을 했다. 램프의 불빛으로 그의 구릿빛 얼굴과 윤기 나는 갈색 머리칼, 여자처럼 수려하면서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순간 여제는 사무치던 그리움이 터지고 말았다.

“벨린.”

벨린 데 란테가 문을 닫았다. 그는 예의 여제와 밀회를 즐길 때처럼 사악하게 웃지 않았다. 대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서 있었다. 여제의 애간장이 타들어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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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베나레스의 총사(172, 마지막화) +93 09.02.23 5,041 16 15쪽
174 베나레스의 총사(171) +25 09.02.15 2,948 10 8쪽
173 베나레스의 총사(170) +21 09.02.10 2,851 11 9쪽
172 베나레스의 총사(169) +24 09.02.07 2,605 12 7쪽
171 베나레스의 총사(168) +27 09.02.03 2,635 9 7쪽
170 베나레스의 총사(167) +30 09.01.29 2,669 12 12쪽
169 베나레스의 총사(166) +26 09.01.26 2,726 12 10쪽
168 베나레스의 총사(165) +33 09.01.22 2,810 12 10쪽
167 베나레스의 총사(164) +28 09.01.22 2,738 9 7쪽
166 베나레스의 총사(163) +27 09.01.18 2,693 11 10쪽
» 베나레스의 총사(162) +22 09.01.16 2,559 12 8쪽
164 베나레스의 총사(161) +21 09.01.14 2,595 10 9쪽
163 베나레스의 총사(160) +20 09.01.13 2,634 13 9쪽
162 베나레스의 총사(159) +34 09.01.12 2,715 10 7쪽
161 베나레스의 총사(158) +31 09.01.09 2,846 12 10쪽
160 베나레스의 총사(157) +14 09.01.09 2,676 13 8쪽
159 베나레스의 총사(156) +22 09.01.07 2,696 13 8쪽
158 베나레스의 총사(155) +21 09.01.06 2,748 9 8쪽
157 베나레스의 총사(154) +19 09.01.04 2,567 12 7쪽
156 베나레스의 총사(153) +28 08.12.31 2,659 13 12쪽
155 베나레스의 총사(152) +25 08.12.25 2,729 12 9쪽
154 베나레스의 총사(151) +21 08.12.22 2,468 11 10쪽
153 베나레스의 총사(150) +26 08.12.21 2,578 12 8쪽
152 베나레스의 총사(149) +23 08.12.18 2,720 12 9쪽
151 베나레스의 총사(148) +17 08.12.15 2,572 10 9쪽
150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697 9 9쪽
149 [부록]베나레스의 총사에 대한 작가의 덧붙임(1) +14 08.12.12 3,482 5 15쪽
148 베나레스의 총사(146) +19 08.12.12 2,784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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