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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연재수 :
1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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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549
추천수 :
2,493
글자수 :
702,223

작성
09.02.15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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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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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8쪽

베나레스의 총사(171)

DUMMY

“격발!”

그 모습은 흡사 용의 대가리에 창을 박아 넣는 것 같았다. 머스킷총이 뿜어낸 연기 사이사이에서 자동인형처럼 전진하던 빌랜드군이 피를 흩뿌리며 쓰려졌다. 드디어 사람 죽어나가는 비명소리도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그 지옥 같은 현실에 개의치 않고 장전된 총을 더 가까이 들고 다가선 빌랜드군이 정지했다. 한편 히스파니아 보병대를 지휘하던 대령은 검으로 적의 대열을 가리키며 돌격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보병대가 함성을 지르며 뛰었고 바닥에 엎드려 있던 총사대도 일어나 뛰면서 거대한 돌격이 개시되었다.

빌랜드 레드코트들이 돌격을 감행하는 히스파니아군에게 총구를 겨눴다. 그러나 히스파니아군이 돌격전에 감행한 사격 때문에 마치 벽에 구멍이 난 것처럼 상당수의 보병들이 쓰러져 있었다. 히스파니아군의 함성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사격 명령이 떨어졌고 곧 총검을 쥐고 눈앞까지 뛰어온 히스파니아군을 머스킷총의 격발 연기가 덮쳤다.

그러나 히스파니아군의 거대한 물결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히스파니아군 보병들이 빌랜드군 대열을 파도처럼 때렸다. 일부는 총탄에 맞았음에도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적군을 대열을 때린 뒤 스러져내렸다. 서로가 몸을 부딪치는 과정에서 총검에 의해 첫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제는 총격전이 아닌 백병전이었다. 날카로운 총검을 이빨삼아 서로를 물어 죽이려는 원초적인 큰 싸움에 승리의 행방이 결정될 터였다.


벨린 데 란테는 그 한복판에 있었다. 처음에 그는 마치 모든 것을 방관하려는 것처럼 서 있었다. 양측이 뒤엉켜 대열의 구분이 가지 않았다. 붉은 제복을 입은 자들과 푸른 제복, 혹은 녹색 제복을 입은 자들이 총검으로 서로를 밀치고 찌르고 쓰러뜨려 짓밟았다. 한쪽에서는 후방에서 대기하던 후사르 기병대가 전진 나팔을 울려대며 우회기동을 감행하고 있었다. 기병대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난장판을 피해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아마 적의 기병대를 요격할 목적인 듯했다.

벨린은 우회하는 기병대를 따라 눈을 돌려 서서는 까트린 데 세비아노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잠시나마 맡은 바 임무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그가 지휘하던 대대는 유리한 고지에서 싸움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이제 빌랜드군은 아군을 구원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대를 전진시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사태를 미리 예견한 히스파니아군의 거대한 매복에 빠져 패배를 피할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머스킷총을 두 손으로 꾹 쥐고, 벨린은 내면 속의 다른 자신이 그렇게 유혹하는 소리를 들었다. 까트린은 그의 아이를 잉태하였다. 만약 그가 죽고 여제가 모든 사실을 안다면 누가 아이와 어머니를 지켜주겠는가. 여제는 질투심에 도의를 넘어설 가능성이 충분한 여성이었다. 만약 그가 살아 돌아간다면 여제는 그것에 적이 만족한 나머지 까트린 데 세비아노와 아이를 건드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벨린은 곧 위험한 불장난을 거듭하고 있는 붉은 제복의 마녀를 떠올렸다. 안젤라 노스트윈드, 그녀는 이 전장의 어딘가에 아직 있었다. 지금도 여러 명의 히스파니아군을 총검으로 해치우고 그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젤라를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사람을 찾아내는데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가 그녀를 피한다 해도, 그 마녀는 냉혈한 암살자가 되어 또 한 번 그가 보는 앞에서 누군가를 죽일지도 모른다.

벨린은 중얼거렸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그건 너무 가혹해.’

건너편에서 검은 삼각모를 쓴 레드코트가 장전을 끝마치고 총을 겨누고 있었다. 벨린이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벨린은 자신이 든 게 장전이 되지 않은 빈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무리수를 두느니, 있을 지도 모를 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그는 총을 세운 다음, 미소를 지으면서 모자를 벗었고 벨린 데 란테를 겨눈 그 빌랜드 보병은 주저 없이 총을 쏘았다.

벨린은 총구의 화염을 보았지만 움찔하지 않았다. 브라운 베스 머스킷총의 총탄이 벨린 데 란테의 옆구리를 맞춰 치명상을 입혔다. 그러나 이 총사대 소령을 죽이기에는 부족했다. 벨린은 모자를 다시 쓰고 총을 들었다. 상대방은 총탄에 맞은 히스파니아 군인이 멀쩡히 뛰고 있는 데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질겁하여 총검을 곧추세웠고, 벨린 데 란테가 그에게 폭발적인 에너지로 덮쳐들어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적군이 나가 떨어졌다. 벨린은 쓰러진 적군의 등을 총검으로 찔렀다. 옆구리에서 피가 스며들었고 슬그머니 상상하기도 힘든 통증이 머리털을 쭈뼛 세웠다. 그래서 그는 적의 시체 앞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숨도 찼고 목도 말랐지만 어느 하나 해소할 길이 없어 한숨만 나오려는 순간에.

누군가 그의 머리에 권총을 겨눴다.

벨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위를 올려보았다. 천사처럼 당당한 권능을 지니고 있는 듯한 미모의 갈색머리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의 피처럼 붉은 제복이 오늘처럼 햇살에 반짝거려 어울리기는 처음이었다.

안젤라가 속삭이듯 말했다.

“벌써 포기한 거야, 자기?”

벨린이 옆구리를 쥐고 신음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나는 이미 가망이 없어.”

“엄살 부리지 말고 어서 일어나지 그래. 자기를 비겁하게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거짓말.”

벨린 데 란테가 주저앉은 채 키득 웃으며 말했다.

“너는 이미 무장도 하지 않은 선량한 여자를 쐈어. 네가 나를 아직까지 살려두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군.”

“별 다른 이유는 없어. 벨린 데 란테.”

안젤라가 권총으로 벨린의 뒤통수를 찌르며 내뱉었다.

“다만 네 비열하고 이기적인 눈빛을 보게 되면 너를 죽여야 하는 당위성과 그 후에 이어질 복수를 분명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거야. 그래야 너를 죽인 이후에 네가 관계를 맺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너를 총애하던 그 아름다운 여제와 더불어서….”

벨린이 힘겹게 일어났다. 그 혼란스러운 백병전의 한복판에서 벨린 데 란테와 안젤라 노스트윈드는 동떨어진 어느 곳에 있는 듯한 양상이 펼쳐졌다.

안젤라가 옆구리를 쥔 벨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권총으로 겨누었다.

"내가 그때 널 왜 안 죽였는지 알아?"

벨린이 갈색 눈으로 머스킷트리스를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가 나를 타락시켰다는 것을 알고 후회하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너를 아직 사랑해서 그랬던 거야.”

“입 닥쳐, 벨린!”

안젤라가 흉악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쏘아붙였다. 그녀의 눈망울에 가득 괴여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삼키며 내뱉었다.

“천박한 스페냐드 사내 같으니, 7년 동안 변한 게 하나도 없어!”


---------


거의 다 끝나가는 이 마당에.. 연재가 지지부진해지는 것을 사과드립니다. 아무래도 금전적인 수익이 되는 데다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을 하다보면... 상대적으로 돈벌이 안 되는 제 개인적인 작업은 잠시 미루어질 수밖에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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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베나레스의 총사(150) +26 08.12.21 2,578 1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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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베나레스의 총사(148) +17 08.12.15 2,573 10 9쪽
150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698 9 9쪽
149 [부록]베나레스의 총사에 대한 작가의 덧붙임(1) +14 08.12.12 3,482 5 15쪽
148 베나레스의 총사(146) +19 08.12.12 2,785 1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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