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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빈 님의 서재입니다.

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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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최근연재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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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2.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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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148)

DUMMY

자코모 다빈치가 상대에 대한 경멸을 담아 대답했다.

“저는 그를 ‘붉은머리 얼간이’라고 부르지요.”

“붉은머리 얼간이?”

총사 제복차림의 이사벨 여제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데 주의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물 흐르는 소리가 그들의 작은 목소리를 가려주고 있었기에.

다빈치가 지팡이를 땅에 짚고 말했다.

“실은 얼간이 딕, 빌랜드치 딕 비어든이라고 하기도 했지만요. 그의 이름은 리처드 블레이너 비어든입니다. 저는 그와 란툰 반도의 로마네스 교황청 휘하 성 베네딕토 아카데미에서 물리학과 화학을 배웠었지요.”

“화학과 물리학도 마법학의 일종이냐?”

이사벨은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다빈치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말했다.

“가정교사들이 폐하께 교양과목을 가르치실 때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짐은 라투니스어와 란툰 반도의 언어, 정치학, 철학, 종교학, 역사, 미술사를 배웠다.”

“혹시 그 치들이 수학과 화학, 물리학, 천문학은 가르치지 않던가요?”

이사벨 여제가 실소를 터트렸다.

“그것을 짐이 알아서 무엇을 한단 말이냐? 그대처럼 대단한 주치의가 있는데.”

“그럼 간단히 이야기를 좀 해보는 게 어떨까요. 그 자를 제가 왜 싫어하는지 대해서요. 폐하께서 덕분에 긴장을 풀고 계시니 말입니다.”

팔짱을 낀 이사벨은 어깨를 으쓱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다빈치의 지성과 입담이 절박한 위험에 처해 있는 히스파니아 제국의 군주를 조금이나마 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마법사들이 처한 입장은 말입니다.”

다빈치가 천천히 입을 땠다.

“단순히 형이상학적인 마력을 표출해내는 초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답니다. 아주 오래 전, 즉 역사가 쓰이기 이전의 원시사회서부터, 형이상학의 섭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자는 동시에 형이하학까지 탐구하는 현자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머리가 좋고 아는 게 많기 때문이었지요. 물론 머리가 좋고, 재능이 있다고 전부 마법을 부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즉 선천적으로 마법을 부릴 수 있는 형질은 드문드문 나타나는 유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즉, 타고난 혈통을 물려받고 머리가 좋은 이가 마법을 부리는 이치를 깨달았다는 거 아니냐?”

“그렇습니다, 폐하. 그래서 학문을 연구하는 이들이 유명한 마법사가 되었던 거지요. 아주 옛날부터 말입니다. 고대에는 피타고라수스 학파, 미케네 학파, 키레네 학파 따위가 있었고, 좀 발전해서는 아르키메데스, 시오노스, 플라토누스, 프톨레마이우스 같은 천체학자나 수학자가 있었지요. 그 전통 때문에 근래의 대마법사들 가운데는 유명한 학자가 아닌 이가 없습니다. 빌랜드 사람으로는 토마스 홉스와 프란시스 베이컨, 제국 사람으로는 후안 카를로스 시마니오 로드리고, 미카엘 세르반테스, 란툰반도 사람으로는 제 조부 레오나르도와 갈릴레이 갈렐리아노 등이 있지요. 모두들 형이하학에서도 큰 공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아무튼 그들은 각자 학파를 만들었는데, 형이상학을 보는 방식이 달라서 다른 계열의 마법 분야를 창시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명칭도 달랐어요. 정령마법으로 시작해서, 원소마법, 분자마법, 천체마법, 천체 점성술, 성마법, 흑마법 등등. 그들이 이해하는 공식에 따라서 표출된 마법의 주문이 달라졌지요. 나중에 그들은 결국 형이하학까지 발전시켜 과학이라는 말을 만들었고 마법과 구분지었습니다.”

이사벨 여제는 아직까지는 설명을 잘 듣고 있었다.

“그런데 북방의 야만인들이 로마네스 제국을 침공하여 제국이 멸망한 뒤부터는 좀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고대의 전통이 부흥했습니다만, 인본주의자들이 흔히 말하는 암흑시기가 도래하면서 사제가 마법사의 노릇을 했던 거지요. 그래서 위대하신 교황 성하의 가톨릭 교회는 그 유명한 미케이아 공의회에서 성마법을 유일한 마력의 수단으로 인정했던 겁니다. 전지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의 힘을 빌린다는 뜻으로 말이지요. 다니치의 어느 신부가 부패한 교회에 반발하여 종교혁명을 일으킨 뒤에는 그 성마법이라 하는 것도 양 갈래가 되어버렸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게냐?”

이사벨이 물었다. 마법사가 간단히 대답했다.

“마법과 과학은 세상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따르며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폐하.”

“세상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누가 정하지? 군주들인가? 아니면, 마법사?”

“모두의 의지에 달린 일이지요.”

다빈치가 숨을 고른 후 말했다.

“마법사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꿉니다. 그들은 주문을 외워 무언가를 일시적으로 강화시키거나 생명을 살상할 수도 있고 물질을 파괴할 수도 있지만, 어느 개념을 발전시키거나,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도 있습니다. 만능학자인 셈이지요. 즉 세상의 방향이 그들의 피를 요구할 수도 있고, 그들이 세상에 피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잘 이해가 안 가는군.”

이사벨이 인정했다. 다빈치가 덧붙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3~400년 전에 있었지요. 아직 종교가 모든 이들의 마음에 동일한 믿음을 심어주었을 시대까지만 해도 전쟁에서는 마법이 빠질 수 없었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많은 마법사들이 전쟁터에서 헛되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적군의 마법에 몸이 타기도 했지만, 창이나 화살, 검 따위에 찔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지요. 그것은 그들의 군주가 승리를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빌랜드와 프란세 왕국의 전쟁을 아십니까? 루이 왕은 노르망디 공작의 영예를 지키기 위해 자기 왕국의 모든 신민들을 가려, 마력을 부릴 수 있는 자들을 강제 징집했습니다. 그들에게 1년간의 속성교육을 시키고 전쟁터로 몰아, 위대한 발견과 발명을 해낼 수 있는 잠재된 학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어요. 그리하여 결국 프란세는 일종의 학문적 멸망을 맞이해버렸고 약소국으로 전락한 겁니다.”

이사벨이 조용히 말했다.

“그 운명을 바꾼 이들은 바로 너희 마법사들이었지.”

다빈치가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저 베이컨이라고 하는 빌랜드 마법사가 그 무렵 화약을 발견합니다. 그 발명품의 파괴력은 공격 마법과도 자웅을 겨룰 정도였지요. 게다가 훨씬 싸게 먹히기도 했고요.”

“그 뜻은….”

자코모 다빈치가 명령하게 말했다.

“타락한 마법사는 세상을 말아먹기 충분한 개자식이란 말이지요. 마치 언젠가는 모든 것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고 다짐하는 성냥개비 하나처럼요. 아 그러고 보니 그 얼간이의 별명이 하나 더 생각났군요. 불타는 성냥개비 딕이었죠.”

이사벨 여제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그 빌랜드 마법사가 그렇게 위험한 인물이란 말이냐.”

“그는 위험한 혁명을 꿈꿉니다.”

다빈치가 투덜거렸다.

“하긴 그 전부터 빌랜드 자식들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지요. 종교혁명 이후 흑마법을 재창조하고 마법사들을 다시 전장으로 보낸 자들입니다. 비어든은 프란시스 베이컨과 이자크 뉴튼을 잇는 빌랜드 흑마법파의 후계자구요. 빌랜드의 찰스 왕에게 달라붙어 마법사단을 강성히 하고 전 에우로파의 패권을 잡으려는 속셈입니다. 마법사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단 말입니다.”

이사벨이 이지적으로 에메랄드빛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짐은 옛날부터 왜 너희 같은 마법사가 권력에 욕심을 품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다빈치가 냉소를 흘렸다.

“혹시 마법결사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역사를 공부할 때 배웠었다. 이 나라가 건국되기도 전에 마법사의 왕이라는 자가 있었다지. 교황이 그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십자군 전쟁을 펼치지 않았느냐.”

“그런 작자를 보고 얼간이라고 하는 겁니다. 저 같은 마법사들이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온 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굴복시킬 수 있겠습니까? 군주가 마법을 배울 수는 있어도, 마법사가 군주가 될 수는 없는 겁니다. 신민들을 다스리는 카리스마는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다빈치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노 마법사의 눈이 크게 떠지더니 눈앞에서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지켜본 이사벨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냐, 박사.”

란툰반도의 마법사가 긴장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 얼간이가 이 주변으로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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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나레스의 총사(148) +17 08.12.15 2,573 10 9쪽
150 베나레스의 총사(147) +24 08.12.12 2,698 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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