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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사탕의 책장입니다.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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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사탕
작품등록일 :
2014.06.28 12:48
최근연재일 :
2015.10.05 14:53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11,188
추천수 :
63
글자수 :
141,630

작성
14.09.12 23:56
조회
524
추천
3
글자
9쪽

문장 사이의 간격 (2)

DUMMY

물에 젖은 땅을 맨 발로 밟아가며 그녀는 잠시 걸었다. 발에 닿는 바닥은 흙도 돌도 아닌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이 공간에 창고로 보일만한 건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말라버린 흰색의 나무와 검은 바닥, 그리고 중간 중간 마치 부서진 건물의 잔해처럼 남아있는 흰색 돌 뿐이었다. 아니 나무도 어쩌면 나무가 아니라 나무모양의 돌일 수도 있다.


처음 왔을 때 보았던 흰색 돌로 만들어진 분수대도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끌려가면서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아더를 불렀다.


“아더. 창고가 어디 있어?”


아더는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멈추었다. 그들이 멈춘 곳에는 흰색의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 이었는데, 하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 했다.


방금 전까지 글을 쓰고 있었던지 책상 위에는 그 나무의 색만큼이나 흰 종이들이 몇 장 흩어져 있었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던 커다란 깃펜이 아직 잉크가 묻은 채로 종이의 옆에 놓여 있었다. 여기는 새도 없는 것 같은데, 무엇으로 만든 깃펜일까?


아더가 그녀의 손을 놔주자 그녀는 조심스레 책상으로 다가 갔다. 제일 위에 놓여 있는 종이에 검은 색으로 몇 줄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그 내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종이를 집어 들기 전에 흰 손이 종이 위를 덮었다. 아더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안 돼.”

“미안.”


그녀가 재빨리 사과했다.


“뭐, 다 쓰면 금방 보여줄게.”

“아까처럼 주인공이 되는 건 싫어.”


그녀는 눈을 찌푸리며 말했고 아더는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어지간히 싫었나봐?”

“응. 돌아오고 나서 너무… 이상한 기분이었어.”


그녀는 저 멀리 느껴지는 기억을 돌이키며 말했다. 바로 조금 전의 일이었지만 마치 꿈을 꾸기라도 한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감정을 모조리 잃어버렸기 때문일까…. 이야기의 중간에 그녀가 느꼈던 감정은 이제는 아주 약하게만 남아있었다.


“왜 이상할까? 책을 읽는 것과 많이 달라?”


아더가 물었다. 그녀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물어봤다.


“책을 읽는거 하고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

“하지만 네가 이야기를 읽을 때 너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잖아. 같이 분노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면서.”


그녀는 반박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더가 한 말은 틀린 점이 조금도 없었다.


“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어딘가 이해가지 않는 구석이라도 있었나?”


아더는 물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 이야기에서 엘리시아가 했던 행동들은 나름대로 전부 합리적이고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도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엘리시아였을 때 했던 행동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상황에서 당연히 할 수 있을법한 행동들이었다. 다만 문제는 엘리시아에서 다시 돌아올 때 발생한 괴리감이었다.


그녀는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건, 책을 읽는 것하곤 끔찍할 정도로 달라.”

“그래?”


아더가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더는 해본 적 없어? 네가 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는 일.”


그녀의 물음에 아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지, 이야기를 여행하는 사람이 아니야. 생각해봐, 상식적으로 이야기 속에 들어갈 순 없잖아?”

“이 상황 자체가 별로 상식적이진 않은 거 같은데. 세계가 이야기라는 것부터 말이야.”


그녀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아더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안이 있는 거지. 내가 만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찾기 위해서….”


그녀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웃지 않는 아더는 너무 낯설어서 어색했다. 그 낯설음을 없애기 위해 그녀는 다시 아더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아더, 그 이야기에서 이사카가 헤매던 시간말야. 너무 길었던 거 같아.”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말했다.


“꼭 그렇게 긴 시간동안 괴로워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결국에는 죽어버리다니. 너무 슬픈 결말이야.”

“그게 그 캐릭터에게 제일 알맞은 성격인걸.”

“그치만….”

“그리고 이사카가 헤매던 건 그 이야기에서 적지도 않는걸. 물론 설정은 그렇게 짰지만.”


아더의 말은 너무도 이상했다. 이상해서 그녀는 이해 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녀의 말에 아더는 고운 얼굴을 살짝 난감한 듯 찌푸렸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하고 고민하는 게 분명했다. 이야기 밖에 사는 아더의 감각을 그녀에게 설명해주는 것은 2차원에 사는 사람에게 3차원을 설명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실제로 그들은 서로 다른 차원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더가 쓴 이야기 속에 살아가는 그녀니까.


“나는 그냥 이사카의 캐릭터를 짰을 뿐이야. 긴 시간동안 자신의 죽음을 찾아 헤매는 인물로. 세계는 이야기대로 흘러가니까, 물론 내가 짜놓은 설정대로 그는 헤맸겠지만.”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너도 네 세계에서 이야기를 많이 읽었잖아. 이런 설정 조금 흔하지 않아?”


아더는 쑥스러운 듯이 웃으며 덧붙였다.


“내가 좋아하는 설정이거든.”


그녀는 아무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가 읽었던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도 고통스러워하는 캐릭터들은 많았다. 게다가 시간의 흐름은 이야기에 있어서는 원하는 만큼 흘러갈 수도 되감을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작가가 원하는 대로.


“이리 와봐.”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그녀를 아더가 불렀다. 흰 문고리를 잡은 채였다. 언제 생겨났는지 책상 옆에 문이 하나 생겨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존재하던 것처럼 너무도 당연하게.


모두 색깔을 맞추기라도 했는지 책상과 똑같은 눈이 부실정도로 흰색이었다. 아더는 망설임 없이 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닫혀있던 문 뒤에는 아무것도 없이 황량한 공간만이 존재했지만, 그가 연 문의 너머에는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이런 거 영화에서 많이 봤던 것 같아.”


그녀는 작게 중얼거리며 문의 근처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문턱에서 잠시 망설였다. 조금 두려웠던 까닭이다. 하지만 먼저 안에 들어간 아더가 그녀를 돌아보며 재촉했다.


그녀는 흘깃 문안을 살폈다. 이곳과는 달리 꽤나 어두운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끝도 없이 빽빽이 차있는 책장이 있었다. 그녀는 그 수에 압도되어 입을 벌렸다.


그리고는 문턱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천장도 존재하지 않는지 책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올라 있었다. 그리고 좌로 우로 둘러봐도 오로지 책장만 존재했다. 지평의 끝까지 오직 책장으로만 가득 찬 공간.


그녀가 발을 떼자 물기로 인한 발자국이 생겼다가 금방 사라졌다. 마치 그녀가 걸음을 옮기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두 번째 걸음부터는 더 이상 발자국이 생기지 않았다. 그녀는 신기해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녀를 반긴 것은 그쪽을 향해서도 끝없이 늘어서 있는 책장들이었다.


방금 전 그녀가 들어온 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당황한 그녀를 다시 아더가 불렀다.


“뭘 그렇게 놀라고 있어?”

“아더, 문이….”


그녀가 다시 아더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품에 두꺼운 책 두 권을 안고 있었다. 두툼해 보이는 표지는 사람을 향해 던지면 충분한 흉기로 쓰일 수 있을 만큼 딱딱해보였다. 두 권의 책은 표지 색을 제외하면 모조리 똑같았다. 한 권은 검은색, 또 한 권은 붉은색이었다.


아더가 먼저 검은 표지의 책을 내밀며 말했다.


“자. 이게 방금 네가 여행했던 이야기.”


그녀는 그가 건네는 책을 받아들어 반사적으로 제목을 확인했다. 검은색의 투박한 표지에는 직접 휘갈겨 쓴 듯 한 흰색의 글씨가 적혀있었다.


“여명의 성녀…?”

“주인공이 엘리시아니까.”


아더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제목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당혹함이 서린 눈으로 책에서 눈을 뗐다.


“이거 분명히 모르는 글잔데, 내가 어떻게 읽을 수 있는 거야?”


표지에 적힌 글자는 그녀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글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그 글씨를 읽어냈다. 너무도 당연하게, 아더도 그녀와 같은 언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건넨 말이 위화감이 전혀 없었으니까.


아더는 으음, 하고 책을 품에 안고 팔짱을 꼈다. 아까부터 계속 그녀에게 설명을 해주어야 할 일이 생겼는데 하나같이 골치 아프기 짝이 없었다. 속으로 이안에게 찬사를 보내며 아더는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쓰는 게 나니까. 이야기 속 인물이 사용하는 언어는 결국 내가 쓰는 언어로 적혀있지. 언제쯤 되어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는 작게 한숨을 쉬곤 말을 이었다.


“그런 사소한건 신경 쓰지 말고, 한번 읽어봐.”


작가의말

아슬아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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