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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사탕의 책장입니다.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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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사탕
작품등록일 :
2014.06.28 12:48
최근연재일 :
2015.10.05 14:53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11,200
추천수 :
63
글자수 :
141,630

작성
14.06.29 09:18
조회
418
추천
1
글자
12쪽

첫 번째 이야기 (1)

DUMMY

“이안! 이안!”


엘리시아가 멀리서부터 이안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 이안은 찻잔을 소리 없이 내려놓고 반 정도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물론 책갈피를 끼워놓는 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보랏빛의 꽃을 말려 만든 책갈피였는데, 얼마 전 엘리시아가 직접 꺾어온 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지나고, 문이 벌컥 열렸다. 땋인 금발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이 출렁이며 들어왔다. 환하게 웃으며 달려온 그녀는 이안의 옆 의자에 뛰어들 듯이 앉으며 그녀가 이렇게 달려 들어온 이유를 말해 주었다.


“다음 여왕의 계절부터 축제가 열린대.”

“벌써 그럴 시긴가?”

“그래. 이번에는 갈 수 있지?”

“계속 말했지만, 비싸.”


표정하나 안 바뀌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엘리시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또 돈 얘기야. 벌면 되잖아?”

“네가 사냥은 안 하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그렇잖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지. 나는 사냥 같은 거 한 번도 해본 적 없다고.”

“그건….”


입이 말랐는지 이안은 다시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향긋한 차향이 엘리시아의 코끝에까지 맴돌았다. 예쁜 손놀림으로 다시 찻잔을 내려놓고 그는 말을 이었다.


“이쪽으로 넘어오기 전의 너고. 엘리시아는 사냥꾼이야.”


그녀는 꿍한 표정으로, ‘여자가 사냥꾼이라는 게 말이나 돼?’ 하고 궁시렁 거렸다. 이안은 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책을 집어 들며 말했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되어있어. 자꾸 이렇게 투덜거리면 다음부터는 기억을 지워버릴 거야.”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삐죽이 내밀었다. 이제 둘이 같이 지낸지 꽤나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이안도 그게 그녀의 버릇이란 걸 안다.


그리고 그녀가 불만이 가득한건 축제 때문이라는 것도 알만큼의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네가 사냥을 시작해서 충분히 돈을 벌기 전까진, 축제에 갈 순 없어.”


이야기에 들어와 그녀가 리지라고 불리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남편에 걸맞게 꽤나 다정하게 대해주는 그였지만, 이렇게 냉정하게 말할 때는 죽어도 들어주지 않는 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안을 졸랐던 것이 어디 지금이 처음이랴. 이안이 사냥해온 동물들의 가죽과 뿔, 뼈, 고기들을 팔러 시내에 나갔을 때 케이크를 딱 한 조각만 먹자고 졸라도 냉정하게 걸음을 돌렸던 그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얄밉기 그지없는지라 그녀는 녹색 눈을 얇게 뜨며 이안을 흘겨보았다. 이안은 그녀를 가만히 마주보다가 머리에 묻은 검은 실이 눈에 들어왔다. 금발 사이에 검은 실은 꽤나 눈에 띄었다.


“또 옷가게에 다녀왔어?”

“아…, 아닌데?”


흘겨보던 눈이 대번에 커지며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이안은 작게 한숨 쉬며 리지의 머리에서 실을 떼어주었다.


“내가 혼자 숲에 들어가서는, 현상유지가 끝이야.”


이안이 쐐기를 박았다. 그녀는 부루퉁하게 입을 내밀고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알았어, 가면 되잖아?”


그녀는 꼭 축제를 한번 가보고 싶었다. 외국에도 한번 나가보지 못했는데, 꿈속에서 이렇게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니. 당연히 축제를 경험하는 것은 이 정교한 꿈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조금 아껴서 축제에 가볼 수도 있을 텐데, 굳이 그녀를 숲으로 내몰려는 이안이 매정하기만 했다.


“뭐해? 일어서지 않고.”


냉혹하기 짝이 없는 남자는 예의 그 귀찮음이 반쯤 서린 얼굴을 하곤 어느새 자리에 일어나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녀는 이안의 허리를 꼭 껴안고 숲으로 끌려들어가는 중이었다. 등에는 딱 세 번 당겨본 활과 화살 통이 메여 있었다. 애초에 이안은 그녀에게까지 말을 태우려고 했지만, 발을 걸어보지도 못하는 그녀를 보며 포기했다. 그리고는 그녀를 안아 태우고는 멋들어지게 휙 올라 탄 것이다.


떨어지지 않으려면 꼭 잡으라던 그의 말을 기억하며 그녀는 소리 없이 웃었다. 로맨스 소설에 나오던 오토바이 타는 고등학생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미소는 말이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가 오토바이를 타본 적은 없었지만 차라리 말보다는 오토바이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나마 그녀가 좀만 늦추어 달라고 말을 할 수 있게 된 시점은 이미 숲에 도착해 이안이 속도를 줄인 다음이었다. 하얘진 얼굴로 그녀는 이안의 허리께만을 꼭 안고 있었다.


“팔 좀 풀어봐.”


이안의 말에 그녀는 빼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 안고 있던 손을 풀었다. 이안은 말에서 날듯이 사뿐하게 내렸다.


“내릴래 아니면 타고 갈래?”

“내릴래.”


거의 울상이 되다시피 한 그녀를 보며 이안은 약간 웃음기를 머금은 채 그녀를 안아 내려주었다.


“이안, 근데 다짜고짜 숲으로 오면 어떻게 해? 나 아직 쏠 줄도 모르는데.”


그녀는 아직 조금 흰 얼굴로 숲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안은 짧게 괜찮아,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말을 주변 나무에 묶어놓고 향을 피웠다. 혹시 모를 맹수를 대비하는 향이었다.


말이 그럭저럭 안전해지자 이안은 다시 리지에게 걸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등에 매여 있는 활과 화살 한발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활에 걸어봐.”


리지는 울상이 된 표정으로 얼추 흉내를 냈다. 이안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다시 그녀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그리고는 좀 둥치가 굵은 나무에 칼로 가위표를 내곤 손짓했다. 쏴보라는 의미였다.


리지는 한숨을 내쉬고 화살 깃을 잡아 시위에 걸고 당겼다. 생각보다 쉽게 당겨져서 자세는 나쁘지 않았다. 화살근처의 왼손 검지로 표적을 겨누고, 시위를 놓으면 된다지만, 활을 처음 쏴보는 사람의 명중률이야 그녀가 생각해도 엉망진창일게 분명했다.


그래도 옆에 서있는 이안이 무서워 그녀는 최대한 잘 맞추려 실눈을 뜨고 겨누어, 마침내 화살을 날려 보냈다.


쐐액! 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간 화살은 놀랍게도 가위표의 정 중앙에 명중했다. 그녀는 기뻐 팔짝팔짝 뛰었다.


“이안 이안, 이것 봐. 내가 맞췄어! 한번에!”

“별로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돼. 너는 리지니까.”


기뻐하는 그녀와 달리 이안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박힌 화살을 뽑아왔다. 고개를 갸웃 하는 그녀에게 다시 화살을 건네주고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 했다.


그녀는 백번의 시위를 당기고 나서야 잠시 쉴 수 있었다.


“그래도 좀 잘 맞아서 쏘는 보람은 있네.”

“여기 물.”


이안이 물통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뚜껑을 돌려 열고 물을 한 모금 머금었다. 그리고 물통은 계속 들고 있었다. 보호구를 차기는 했지만 너무 많이 시위를 당겨 손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뭘 잡는 거야?”

“글쎄, 나오는 대로 무엇이든.”

“그동안 이안이 잡았던 건 뭔데?”


이안이 눈을 살짝 감더니 손가락을 꼽았다. 그리고는 금방 고개를 저으며,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얄밉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통을 건네주었다. 이안은 물통을 건네받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말을 타고 한 바퀴 돌아볼까?”

“숲을?”

“그래. 조금 위험하겠지만, 조심하면 괜찮을 거야.”


조금 위험하다는 말에, 그녀는 단번에 얼굴이 하얘지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싫어. 오늘은 여기까지 할래.”


이안은 알았다고 말하고는 다시 그녀를 말에 태워주려 다가왔다. 그러다, 잠깐 그가 멈칫했다. 무언가 있는 건가 싶어 리지도 덩달아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숲이 울부짖었다.


바람소리인지, 아니면 숲에 살던 맹수의 울음소리인지 마치 거세게 목을 놓아 울부짖는 외침이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리지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펄떡 뛰어오를 뻔했다.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


이안은 굳은 표정으로 숲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빽빽이 나무로 가득 차 더 이상 길도 없는 어두운 숲속을. 아까 피워두었던 향이 알싸한 연기만을 남기고 안개처럼 길을 감싸고 있었다.


“이젠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어.”


이안은 표정을 풀지 않은 채 그녀를 안아 안장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정말 아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모습으로 날쌔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은 아까보다 더욱 빨리 날듯이 달렸다. 다리 아래에서 움직이는 말의 근육을 느끼며 그녀는 질색을 하면서도 이안을 안은 팔에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유도 알지 못했지만 숲을 향해 있는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더 이상 이안은 숲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축제 생각에 몸이 달아있는 리지만 심통을 부릴 뿐이었다. 리지를 들여보내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이제는 자기조차 숲에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사냥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하고 씩씩거리며, 그녀는 빵집으로 향했다. 방금 전에도 숲에 들어가서 빨리 무엇이든 잡아 돈을 마련해 여유롭게 축제를 기다리자고 주장하다가 이안이 단칼에 거절하는 바람에 얼굴이 빨개진 채로 혼자 문을 쾅 닫고 나온 것이었다.


달콤한 냄새가 나는 빵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좋은 마가렛 아주머니가 일을 하고 계셨다. 아주머니는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다가도 리지가 들어오자 금세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잠시 기다리라고 자리를 권해 주었다.


아주머니는 반죽을 하며 묵묵히 리지가 투덜대는 것을 들어주었다. 젊은 새댁이 남편의 욕을 해대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닌데다가, 심지어 자기도 그랬던 것이다.


“아줌마, 왜 그렇게 싱글벙글 이에요?”


한창 욕을 하다가 어쩐지 이상하게 웃고 있는 마가렛을 보며 엘리시아는 눈을 흘겼다. 제대로 들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아니었다.


“보기가 좋아서 웃지.”


반죽의 모양을 잡아 틀에 올려놓으며 마가렛은 대답했다.


“이렇게 욕을 하는데 뭐가 보기가 좋아요! 정말. 축제 한번 가자는 게 그렇게 어려운건가.”


소리를 빽 지르는 그녀를 보면서도 마가렛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말이다. 너도 언제나 이안이 차와 함께 먹을 과자를 잊지 않고 사가잖아?”


엘리시아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갑자기 조용해졌다. 마가렛은 그럼 그렇지 하는 심정으로 반죽을 매만지며 계속 말을 이었다.


“게다가 같이 다니는걸 보면 그도 널 아끼는 게 다 티가 나. 귀하게 생각하는 게 다 눈에 보이는걸.”

“아줌마가 몰라서 그래요.”

“이 나이쯤 되면 몰라도 다 보이게 되어있어.”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지만 귀까지 붉어진 리지가 귀여워 마가렛은 또 좋을 때라며 호호 웃었다. 오븐에 반죽을 전부 넣고 나서 마가렛은 손을 닦고 리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빨리 둘을 닮은 애라도 봤으면 좋겠네.”


그리고는 언제나처럼 그녀와 이안이 좋아하는 빵과 이안이 차와 함께 곁들일 과자 그리고 이런 시골마을에서는 찾기 힘든 특별선물까지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아줌마. 내일 또 올게요.”

“잘 가렴.”


다시 새 반죽을 만드느라 리지를 배웅하지는 못했지만, 건네는 인사에는 다정함이 듬뿍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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