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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사탕의 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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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사탕
작품등록일 :
2014.06.28 12:48
최근연재일 :
2015.10.05 14:53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11,213
추천수 :
63
글자수 :
141,630

작성
14.07.26 04:38
조회
421
추천
3
글자
12쪽

첫 번째 이야기 (8)

DUMMY

“이안!”


눈물 젖은 그녀의 눈이 대번에 커졌다. 지직, 하는 소리를 내며 창은 아직도 그의 살점과 옷가지를 태우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창에 손을 가져갔다.


“이안, 정신 차려! 왜 네가!!”


아까 머리가 잡혀 날려진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손바닥에서부터 올라왔지만, 그녀는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이안의 등에서부터 몸을 꿰뚫은 그 창을 빼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람들은 조용했다. 어쩐지, 아무도 말을 꺼낼 엄두를 내지 않고 있었다. 리지의 눈물방울이 불의 창에 떨어져 타오르는 소리가 가장 컸다.


리지가 아무리 노력해도 쌀 한 톨만큼도 움직이지 않던 창은 저 멀리 남자가 손을 한번 튕기자 연기처럼 사라졌다. 코를 찌르는 그 끔찍한 냄새만 남기우고.


“이건 내가 바란 결과가 아닌데.”


저 멀리 흉성의 남자는 우울한 어조로 말했지만, 리지는 듣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오로지 이안에게만 박혀있었다. 쉴 새 없이 떨리는 손으로 얼룩진 이안의 뺨을 만지고, 애써 구멍 난 가슴을 외면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안 돼, 이안. 네가 나를 여기로 데리고 왔잖아. 이렇게 가버릴리가 없어, 그치?”


이안은 뭐라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소리가 나지 않았다. 수도꼭지라도 열린 것처럼 리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마치 온몸의 물이 사라져야 이안이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이안, 제발. 안 돼. 가버리지마.”


그녀는 끊임없이 이안을 만지며 애원했고 부탁했다. 그녀에게 이안은 이 세계에서의 전부였다. 그를 잃어버린 다는 것은 단 한 번도 상상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쓰러져있는 이안과 그를 안고 있는 리지에게로 한 남자가 걸어왔다. 가슴에 청염의 브로치를 단 공작이었다.


“루드비안, 역시 너였구나.”


이안은 그를 바라보더니, 한번 고개를 젓고 다시 리지에게로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제 뺨을 그러쥐고 있는 리지의 손에 성한 쪽의 손을 포개어 한번 긴 숨을 내쉬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 둘을 지켜보던 공작도 이안이 숨을 멈추자 길게 한숨을 내뱉곤 고개를 돌려 다시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리지는 흐릿해진 눈동자로 제품에 안겨있는 이안을 계속 바라보았다. 어울리지 않는 갈색 머리로 염색한,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에, 심지어 한쪽 팔은 거의 날려 먹다시피 한 그녀의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운 남편을.


저 건너편에서 그 둘을 지켜보던 또 한사람도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또 이렇게 잃어버리고 말았군. 난 참 멍청하단 말이야.”


그리고 다시 짐승의 남자는 고개를 들어 흉성이 어린 붉은 눈동자로 어린 양떼 같은 인간의 무리를 바라보았다.


“뭐, 다시 찾으면 어딘가 에선 나오겠지.”


그는 마치 울듯이 웃으며 외쳤다.


“사랑스러운 나의 죽음이여!”


그러자 그의 머리 위에서부터 시작해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검도 방패도 소용없었다. 그 포효하듯 넘실대는 홍염 앞에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흩어지는 양떼처럼. 그리고 그는 유유히 양떼를 헤집으며 사냥을 시작했다. 불꽃으로 만든 울타리 안에서 그는 유일무이한 늑대이자 폭군이었다.


청염의 공작은 간신히 살아남은 기사단과 병사, 사제들을 긁어모아 대항하고 있었다. 곧 수도에서 추가 증군이 올 것 이라는 게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그들도 희망에 가득 찬 마음으로 큰 기대를 걸고 있진 않았다.


리지는 멍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배려인지, 아니면 조롱인지. 불꽃은 교묘하게 그녀와 이안을 스쳐만 지나갔다. 바로 옆에서 화염이 작열해 사람이 터져 죽어 나가는 것은 그녀에게 전혀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그녀와 이안이 짐승 앞에 서있을 때 뒷걸음치던 이중의 하나일 테고, 이안의 가슴에 불꽃이 박힐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였으니까.


그녀의 손은 여전히 이안의 손 안에 그대로 잡혀있었다. 그녀는 발밑에서 폭탄이 터진다 하더라도 그 손을 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의 기나긴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얇은 눈썹 모양의 달, 달이 붉었다.


그 붉은 달처럼 일순 그녀의 마음도 붉게 타올랐다. 리지는 눈물을 훔치지도 않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대낮처럼 밝은 광장의 안에는 타오르다 만 사람들과 여기저기 많이 부족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마치 심장이 식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리지는 그들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람은 더 이상, 그녀의 애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리지의 눈은 오로지 단 한사람을 찾고 있었다. 불꽃을 제 수족처럼 다루면서 인간과 짐승의 탈을 번갈아 쓰는, 하지만 알맹이만큼은 틀림없는 짐승의 것인 그 남자를.


마침내 리지의 눈이 그를 따라 잡았을 때, 그는 전장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이안의 숨을 빼앗아간 그 남자는,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자신이 만든 이 지옥과도 같은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으아아!”


리지는 저도 모르게 포효하듯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들었던, 그녀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던 숲속에서의 외침과 닮아있었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다만 눈앞이, 시야가 붉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안의 뺨에 입 맞추고 그의 손을 가슴팍에 가지런히 모아 주었다. 그리고 일어섰다. 어딘가의 뼈에 금이 갔는지 부러졌는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고통이 종아리에서부터 밀려들었지만 어떻게든 일어섰다.


주변에 이미 남아있는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다행일지도 몰랐다. 그녀로서는. 어쩌면 누군가 있었다면 리지는 그 사람을 먼저 죽여 버렸을지도 몰랐으니까.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깨진 칼과 피 묻은 방패 따위가 바닥을 굴러다녔지만, 그녀는 그것들을 다룰 줄 몰랐다.


저기 쓰러져있는 갑옷을 입은 기사의 등에 빠끔히 활이 보였다. 그녀는 발치에 누워있는 이안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그가 입은 흰색 셔츠는 가슴 한가운데 검게 구멍이 나 있었다. 검지와 엄지를 붙여 만든 동그라미 정도 되는 그 틈은 불에 타올라 피조차 새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걸음을 옮겼다.


“으윽, 윽.”


걸을 때마다 정말로 아파 저절로 비명이 나왔지만,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걸었다. 다시 흐를 것 같은 눈물도 꾹 참았다. 시체를 밟는 느낌은 정말로 기묘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죽은 기사의 등에서 활을 꺼냈다. 활을 꺼내 시위를 당겨볼 틈도 없이 절명했는지 활은 깨끗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화살, 화살은 반절 넘게 부러져 있었다. 하지만 리지는 상관없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방해가 되지 않게 다듬고 뿌연 시야를 가리는 눈물도 닦아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시위에 몇 개 되지 않는 멀쩡한 살을 얹고 그 끔찍한 마수를 겨눠 줄을 당겼다.


그 남자는 간만의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시골 마을들만을 습격했기 때문에 피엔르나같은 대도시는 그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었다. 특히 사람들을 지휘하는 저 공작은 여태까지 없던 흥미로운 상대였다. 아니, 흥미로웠던 상대라면 조금 전까지 있긴 했다만 더 이상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저 공작이 그나마 유일했다.


그는 우아하기 짝이 없는 발걸음으로 전장을 걸으며 불길을 휘둘렀다. 짐승의 모습으로 목덜미를 물어뜯는 것도 좋아하는 방법이긴 했지만, 완전 갑주를 뒤집어 쓴 기사단을 상대하는 데는 역시 화염이 제격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한 겹의 기사단만을 더 제거하면 저 성가시지만 사랑스러운 공작의 눈알은 어떤 소리를 내면서 씹힐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바로 그 때, 기묘한 느낌이 그의 왼편에서 날아들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홍염을 두른 팔을 들었다.


퍽-!


무른 토마토를 벽에 던진 듯한 소리와 함께, 처음으로 그는 고통을 느꼈다.


“이건….”


화살이었다. 그가 팔에 두른 홍염과 함께 그의 팔을 꿰뚫은 것은.


그가 화살을 잡아 뽑으려 거칠게 힘을 주자, 갈퀴모양으로 생긴 화살 촉이 그의 살점을 물고는 놔주지 않았다. 그 후끈한 고통을 즐기며 그는 억지로 화살을 잡아 뽑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화염이 폭발했다. 그의 반대편에서 공격하려던 기사 둘 셋이 후끈한 공기의 폭발에 밀려 날아갔고, 망토자락은 미친 듯이 펄럭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눈도 제대로 못 뜰 정도의 열풍이 그를 휘감았다.


하지만 저 멀리, 그의 사랑스러운 적수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화염이 미치지 않을 정도의 먼 곳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그 쪽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 그대였어…!”


상대가 누군지 알아채자 마자 그 남자는 환호하며 그녀에게로 달려들었다. 그것은 실로 진실된 환호였다. 백 수십 걸음만큼 떨어져 있는 거리를 마치 날듯이 달려, 열풍을 날개삼아 그녀에게로!


엘리시아는 차분히 다음 살을 들어 시위에 겨누었다. 표적은 그녀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목표를 가리키는 손가락은, 그의 이마 한 중앙을 겨누고 있었다. 줄을 당기는 손가락이 마치 타들어 가는 듯 아팠다.


그녀는 몰랐지만, 그녀의 뒤편에서 부터 은은한 달빛이 그녀를 향해 내리쬐고 있었다. 검게 물들였던 머리는 그 달빛을 맞을수록 원래의 색인 금색을 되찾아 가고 있었고 그녀가 들고 있던 활은 마치 대사제가 끼고 있던 서클릿마냥 자애로운 은빛을 뿜어가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사람들은 그녀를 바라보며 신께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열 몇 걸음도 남지 않은 거리에서 그녀는 줄을 놓았다. 화살은 그녀의 슬픔과 분노만큼이나 격렬하게 바람을 갈랐다. 그리고 다시금, 마수의 살을 꿰뚫었다. 그를 보호하듯 불어 대던 열풍도 몸에 두르고 있던 화염도 그녀의 화살을 막지 못했다.


지켜보는 이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날듯이 달리던 남자는 걸음을 멈추었다. 눈도 못 뜨게 만들던 열풍도 멈춰 있었고, 퇴로를 막던 화염들도 사그라지듯이 식어가고 있었다.


단지 그녀만이 다음 화살을 다시 시위에 걸고 있었다. 남자는 부들부들 떨더니, 얼굴에 박힌 화살의 깃을 잡았다. 그리곤 아까와 마찬가지로 힘을 주어 거칠게 뽑아냈다. 위치가 위치니 만큼 아까와는 비교도 안되는 화끈한 통증이 뇌를 찢어발길 듯이 파고들고 그 통증만큼이나 뜨끈한 피가 투두둑 소리를 내며 바닥을 장식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 고통이 달콤하기만 했다.


“좋아, 좋아.”


남자는 텅 빈 왼쪽 눈을 찡그리며 화살을 내팽개쳤다. 그 촉에는 흉성의 상징과도 같던 붉은 눈동자가 박힌 큰 구가 꿰여있었다. 비어있는 눈에서 피가 흘러 얼굴을 적셨다.


“그대를, 사랑스러운 내 적으로 인정하겠어.”


다시금 자신을 겨눈 화살을 보면서도 남자는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루쉐도 그렇게 정한 것 같으니까 말이야.”


한쪽 눈을 잃어버리고도 그 마수는 즐거운 듯,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 리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를 악물고 줄을 놓았지만, 이번의 화살은 아까와는 영 다르게 그의 손아귀에 쉽게 잡히고 말았다.


“역시 아직은 무리인가.”


그는 웃음을 거두며 세 번째 화살도 바닥에 버리곤, 망토자락을 한손으로 잡았다.


“내 목숨을 위협할, 단 한명의 적이 나타났으니 오늘은 이만 해야겠군!”


마치 연극배우가 마지막 비장의 대사를 외치듯, 그는 광장의 모든 살아있는 이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외쳤다. 그리고 망토자락을 한번 흔들자 어느새 검은 짐승이 되어 크게 도약해 지붕을 밟으며 유유히 사라졌다.


마침내 상황을 파악한 공작이 사제들을 불러 그녀의 신변을 수습하고, 마수의 눈을 성수에 보관하라고 소리를 지를 때 이미 리지는 활도 손에서 떨어트린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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