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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사탕의 책장입니다.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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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사탕
작품등록일 :
2014.06.28 12:48
최근연재일 :
2015.10.05 14:53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11,187
추천수 :
63
글자수 :
141,630

작성
14.09.01 23:19
조회
696
추천
3
글자
9쪽

첫 번째 이야기 (16)

DUMMY

이사카는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침대에 눕혀진 그녀는 악몽이라도 꾸는지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웅얼대며 자꾸 달싹대는 입술만 아니라면 시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녀의 목은 침대보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하얫다.


게다가 얇은 목의 왼쪽부터 오른쪽 쇄골까지 빨간 줄이 마치 목걸이라도 된 것처럼 그녀의 목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길고 깊은 상처에서 그녀는 거의 다섯바가지 정도의 피를 쏟아냈다. 온몸에 있는 피란 피는 다 쏟아내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녀의 가슴에 놓인 활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지금 숨을 마실 수 없었을 것이다. 활이 가진 치유의 권능, 루쉐의 힘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끔찍한 여자의 힘이었지만, 어쨌든 리지가 살아있다는 것에 이사카는 감사했다.


셀 수도 없이 기나긴 세월 속에 그에게 적의를 불태운 것은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그에게 죽음을 안겨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면 다시 또 얼마나 긴 시간이 흘러야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다시 찾을 수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마저도 불투명했다. 그녀는 최후의 순간 결국 스스로를 해치고 말았다. 이사카는 작게 한숨지었다.


아니 그것을 과연 자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복수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위의 대상과 주체가 우연히 일치 했을 뿐인 그것을. 그녀가 행한 것은 그야말로 이사카를 절망으로 떨어트리기에 합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짊어진, 이사카가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의 깊은 절망의 크기였다.


그녀는 그것이야 말로 이사카에게 주어진 합당한 복수라고 판단했으리라. 제 목숨마저 하찮은 그에게 있어 유일하게 의미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리지, 소중하고 소중한 제 죽음이었다.


그녀는 정확하게 판단했다. 이사카는 그녀의 증오가 그곳 까지 닿아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가 원하는 것을 숨김없이 드러냈었다. 그녀가 제 목을 찌르던 순간, 그는 긴 생에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절망감을 맛보았다. 그는 다시금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제게 조건을 제시한 그들을 떠올리며 잠시 이를 부득 갈았다.


“이안…”


리지는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연인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한숨과도 같은 목소리로 내뱉어진 이름은 대답해줄 이가 없어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그녀를 대신해 가슴위의 활이 애처로운 빛을 냈다.


남자는 활에 제 몸이 닿지 않게 조심하며 리지의 상처를 살폈다. 잠깐이라도 몸이 닿는 순간, 루쉐의 힘은 사라지고 성물은 쓸모없는 쇳조각이 될 것이다. 전에 그가 서클릿을 움켜 쥐었을 때처럼.


그것이 루쉐와 그의 관계였다. 그는 달빛을 삼키고 부순다. 그리고 활이 빛을 잃은 순간 그녀는 마지막 숨을 내뱉게 될 것이 분명했다.


상처는 끔찍했다. 금방이라도 다시 피가 흐를 것 같은 시뻘건 단면이 마치 지옥의 입구마냥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는 홍염을 부리는 권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러진 뼈를 붙이거나 찢어진 살을 아물게 할 수는 없었다.


“예전에도 언젠가….”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하나뿐인 눈을 질끈 감았다. 과거를 떠올리려 할 때면 으레 찾아드는 끔찍한 고통이었다. 마치 머릿속을 버터나이프로 후벼 파는 것 같은 둔중하면서도 날카로운 통증이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그는 다시 눈을 떴다. 통증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움직일 수 있었다. 찬장에서 붕대를 꺼내 그녀의 상처 부위를 감쌌다. 보통 인간이라면 다섯 걸음을 채 옮기기 전에 죽었을 만큼 큰 상처였다. 상처가 벌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붕대를 동여맨 후 그는 침대 근처의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침대 기둥에 몸을 기대며 그는 길고 기나긴 한숨을 내뱉었다. 루쉐와의 만남은 그의 정신을 너무도 피로하게 만들었다. 이사카는 눈을 감았다. 그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휴식을 위해.


그 후로 긴 시간동안 리지의 정신은 무의식을 방황했다. 의식의 세계로 돌아가려 할 때마다 끔찍한 통증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통증을 피해서, 그리고 또 생각하는 것을 피해 도망쳤다. 그곳은 그녀의 낙원이었다.


세계는 평화로웠다. 고통은 없었고, 증오도, 분노도 없었다. 이안은 살아있었고 마을은 평화로웠다. 마치 모든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흘러갔다. 다만 아더는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그녀는 그녀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리지는 꿈에서 다시 떠올렸다.


“리지, 눈을 감지마.”


이안은 그렇게 그녀에게 말했다. 꿈속에서조차 그 사실을 떠올리면 그녀는 무의식의 세계에서도 도망쳐 다시금 육체로 정신을 돌렸다. 몇 번째의 도망인지, 얼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지도 못했지만 다시 육체에 깃든 그녀의 정신은 마침내 도망치지 않아도 될 정도의 통증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을 적시는 서늘한 액체가 그녀의 정신을 일깨웠다. 참으로 오랜만에 리지는 육체에 명령을 내렸다. 눈을 뜨라는.


긴 휴식에 익숙해져 있던 눈은 시야에 잡힌 물체를 제대로 보여줄 수 없었다.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흐릿하게 보이는 상으로 그 물체가 무엇일지 추리해 내기엔 너무 긴 시간동안 잠들어 있었다.


몇 번 더 눈을 깜빡이고 나서야 그녀는 제대로 물체를 인식할 수 있었다. 불꽃의 새가 조각된 동그란 모양의 은색 철. 그것은 안대였다. 그제서야 그녀의 머리는 무엇이 제게 입맞추고 있는지 알아챘다.


그녀는 팔을 들어 그를 밀치려 했지만 아주 자그마한 움직임에 온몸은 비명을 질렀다. 마치 달아오른 철에 여린 살을 지지는 듯한 화끈한 통증이 뇌를 찢어발길 듯 달려들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사카는 즉시 얼굴을 뗐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물이 떨어져 이불을 적셨다. 피가 섞여 밝은 분홍빛의 동그라미가 몇 개, 이불을 물들였다.


그녀는 입을 적시는 물을 힘겹게 삼키곤, 간신히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예쁜 얼굴은 사납게 일그러진 채였다.


“우악스러운 인사방법이군.”


이사카는 비아냥거리듯 말했지만 그녀는 대답 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피가 흐르는 입술을 엄지로 훔쳤다. 살점이 뜯어져 너덜거렸지만, 마치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보는 앞에서 상처가 나았다. 피는 제 위치로 돌아가고 떨어진 살점도 원래 있었던 곳으로 가 붙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좋은 꿈 꾸셨나, 엘리시아?”

“내 이름을 부르지마! 빌어먹을.”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어울리지 않는 욕을 하며 사납게 소리 질렀다. 그의 상처는 나았지만 리지의 입에서는 피의 비린맛이 났다.


“왜 날 데려왔어, 이사카?”


그녀는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시 뜬 녹색 눈은 어느새 습기를 먹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이사카는 그녀의 어깨 밑으로 손을 넣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이불이 내려가며 그녀의 가슴께에 있던 활도 아래로 뚝 떨어졌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은 끔찍한 정도였지만, 그녀는 비명을 내뱉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해 지는 것을 이사카는 알 수 있었다.


간신히 침대에 똑바로 앉은 그녀의 녹색 눈이 대답을 바라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잠시 마주보다가 그는 입을 열었다.


“너는 나를 밤이라 부르는군.”


이사카, 그것은 밤을 의미하는 고대의 언어였다. 밤의 마수인 그를 지칭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주교가 말했다. 오랜 예언이 그렇게 정해왔다는 말과 함께.


“나는 밤이 아니지만, 만약 내가 밤이라면 그대는 새벽이겠지.”


그는 침대의 옆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새벽이 밤을 끝내주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했어.”


리지는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끼도 없이 단추가 두 개 풀린 얇은 셔츠와 잃은 한쪽눈을 안대로 감추고 나머지 한쪽 눈으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는 그를.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 알려주지. 그대는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 만약 듣고 싶다면.”


몸을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며 그는 기다렸다. 그를 마주보고 있는 새벽이, 무슨 대답을 할지. 그녀는 잠시 대답 없이 그저 그를 바라 볼 뿐이었다.


창밖의 하늘은 점차로 색이 변하고 있었다. 하늘의 끝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밤의 옷자락을 날카로운 새벽이 비수처럼 찢어발기며, 푸르며 검은 하늘을 밝은 빛으로 조각내고 있었다.


그녀는 느리게 한번 눈을 감았다 뜨며, 천천히 밝아지는 하늘을 뒤에 둔 채 앉아있는 그를 눈에 아로새겼다. 그리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말해.”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USB가 망가진 충격에서 돌아오는데 이만큼의 시간이 들었다고, 작게 변명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무기력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연참대전을 신청했습니다.

많은 분들께 보여드릴수 있는 글이 되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여기에다가 슬쩍 적어놓고 갑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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