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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사탕의 책장입니다.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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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사탕
작품등록일 :
2014.06.28 12:48
최근연재일 :
2015.10.05 14:53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11,211
추천수 :
63
글자수 :
141,630

작성
14.06.29 09:23
조회
445
추천
1
글자
10쪽

첫 번째 이야기 (2)

DUMMY

고소한 밀가루와 버터냄새가 나는 마가렛을 뒤로하고 그녀는 빵 봉투를 안고는 타박타박 걸음을 옮겼다. 올 때는 화만 나 있었지만 지금은 어쩐지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녀와 이안은 이야기라는 이름의 이 세계에서는 부부였다. 게다가 이안은 처음 봤을 때와 다르게 아주 다정했고 정말 남편처럼 그녀를 대했다. 그녀가 불편해하는 것, 이를테면 같은 침대를 쓰는 것 같은 것은 언제나 그녀의 결정대로 따라주었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그에 대한 태도였다. 이안은 처음부터 이걸 ‘이야기’라고 불렀다. 그는 이야기 밖의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녀는 이야기의 사람, 아더가 쓴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야기가 하나의 세계가 된다면, 이건 다른 세계로 와서 똑같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거지만…. 그렇지만 이안은 이걸 연극이라고 말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라고 말했지만 그에게는 어쩌든지 같은 것 아닐까?


창조자인 아더와 그를 위해 일하는 이안에게 있어 피조물인 그녀의 존재는 과연 어떨지, 그녀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 복잡하네.”


리지는 걸어가다 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그녀가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기에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답이었다. 가슴엔 천근보다 무거운 고민을 안고 그녀는 바람보다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있는 힘껏 쾅 닫고 뛰쳐나오다시피 한 문을 이번에는 조용히 열고 들어가서 그녀는 부엌의 찬장에 물건을 정리하고, 이안에게 가져다줄 차와 과자를 준비했다. 아주머니가 주신 귀한 과자도 함께였다. 새빨간 체리를 술에 절이고 초콜릿으로 코팅을 한, 아주 비싼 녀석이었다.


“이안!”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그를 부르자, 언제나처럼 이안은 서재에서 답했다. 그녀는 마치 정말 부인이 된 기분으로 쟁반에 차와 과자를 올려 들은 뒤 서재로 걸어갔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창에서부터 바람이 들어와 그녀의 머리칼을 매만지고 방밖으로 달려 나갔다. 잠시 눈을 찌푸리다 바람이 좀 잔잔해지자 그녀는 그제야 탁자에 쟁반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직도 하늘거리며 춤추고 있는 커튼을 끈으로 묶어 고정시키고, 창문을 반은 닫자 아까보다 들어오는 바람이 훨씬 줄어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이안과 정확하게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화끈 하고 달아오르는 얼굴에 그녀는 황급히 다시 고개를 돌리고 테이블의 맞은편에 마주 앉았다.


따뜻하게 데워놓은 찻잔에 찻물을 따르자 달콤한 향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찻잔 두 개가 전부 차자 이안은, ‘고마워’ 하고 말하고는 차를 들었다.


“이안, 그리고 이거. 오늘 마가렛 아주머니가 주셨어.”


그녀가 그릇에 담긴 초콜릿을 가리키며 말을 걸었다. 이안의 시선이 그쪽을 잠깐 향하더니, 어쩐지 한숨을 쉬었다. 리지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 했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이안은 그리 대답하고 초콜릿을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곧 다정히 웃으며 말했다.


“맛있네. 마가렛에게 뭔가 답례라도 해야겠어.”

“버릇없긴.”


자기보다 스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께 말버릇 하고는. 리지는 한마디 쏘아주고 자기도 초콜릿으로 손을 뻗었다. 이안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체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가렛 아주머니가 특별히 주신 선물인데다가, 이곳에 온 이후로 초콜릿은 너무 비싼 녀석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달콤하지만 동시에 씁쓰레한, 모순적인 맛을 가진 기묘한 음식.


초콜릿이 혀끝에서부터 녹아내리자 간만에 맛본 단것에 그녀는 황홀한 기분이 들어 표정이 절로 풀렸다.


“행복해 보이는데?”

“그럼, 당연하지.”


그녀는 속으로, 생크림 케이크도 한 조각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이안이 뭐라고 대답할지 너무도 뻔 했다.


이안은 고작 하나를 먹고는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다. 오히려 차만 한잔을 더 따랐다. 평소라면 무언가를 읽고 있었을 텐데, 평소와 다르게 그저 차를 마시며 말도 없이 그녀를 계속 바라보기만 했다.


오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그녀만 괜히 바라보는 것에 예민해져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갈색의 찻물만 바라보았다. 물론, 체리 초콜릿을 우물대는 것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한 주먹정도 되던 것이 어느새 다섯 개도 남지 않게 되자, 이안이 그릇에 다시 가져가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제 그만 먹도록 해.”

“왜?”

“네 얼굴이 빨개.”


이안은 어쩐지 후회 막심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빨가다니? 덥지도 않아 지금, 봄이 다가오긴 하지만 아직 쌀쌀하다구. 벽난로의 불도 그렇게 세지 않은데?”


하지만 정말로 그녀의 뺨은 발그스름했다.


“절임이라도 술은 술이니까 말이야.”

“아냐, 나 그렇게 약하지 않은데? 학교 다닐 때도 얼마나 잘 먹었는데.”

“저녁은 무리겠군.”


이안은 완전히 그녀의 말을 무시하는 듯 혼자 중얼 거렸다. 그 얼굴은 아까 맛있다며 다정히 웃던 모습과는 영 딴판인지라, 그녀는 어쩐지 서러워 졌다. 돌아오며 했던 생각이 머릿속을 헤매다 불쑥 입으로 튀어나왔다.


“이안. 너는 이 세계를 어떻게 생각해?”


그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물기 젖은 녹색 눈동자, 마치 보석 같은 눈동자가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세계가 이야기라면, 그 속의 사람들은?”


그녀가 말하는 것이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이안은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것은 아주 기묘한 위화감이었다. 이 눈을, 내가 어디선가 보았던가? 낯설지만 낯익은 아주 그리운 느낌의 눈을.


그러나 무언가 깨달을 것 같은 바로 다음순간, 이안은 찬물에라도 맞은 듯 다시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이야기를 넘나드는 이안이 아니라, 이야기속의 인물이어야 했다. 그것이 그의 일이었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회피하는 대답을 하려니 저도 모르게 그 눈까지 피하게 되었다. 모양새가 이상한 것은 저도 이미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히 그녀도 그것을 알아챘다.


“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르겠어. 네가 말한 대로 그게 세계라면, 이게 나한테 세계가 아닐 이유도 없지 않을까?”


그녀가 재차 물었다. 그녀는 이야기 속 리지의 남편 이안에게 묻고 있을게 아니었다. 이안을 연기하고 있을 이안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 단순한 사실에 이안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못 이겨 결국 이안은 대답을 하기로 결정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 하는 게 맞겠지.”


이안은 몸을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좀 더 편한 자세를 위해 팔걸이에 팔을 얹으며 다리를 꼬았다. 이야기에 들어오고 나서 이안이 하던 자세와 똑같았지만 그녀는 알아챘다. 방금 전까지의 이안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이안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몸에 배어있던 다정함과 부드러움이 사라지고 마치 날이 아주 잘 서있는 칼 같은 사내가 나타났다. 아더와 있을 때는 몰랐던 오만함까지.


이전에는 몰랐던 바로 그 느낌을 그녀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야기 속의 이안과 밖의 이안은 달라.”


발그스레한 뺨을 우울한 표정으로 물들이며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나는 똑같은걸.”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다시금 강렬한 기시감이 이안에게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 느낌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이안이 물었다.


“왜 그래? 뭐가 문제야?”


검은 눈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이 오븐 안에 들어간 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무엇이 문제냐면….


곧이라도 입술이 열려 무언가 가슴 속에 있던 것이 뛰쳐나올 것 같이 두근댔다.


시선이 얽혔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고, 이안은 묻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적이 눈처럼 방안에 쌓였다. 어쩐지 권태로움을 담고 있는 검은 눈을 바라보며, 그녀는 알아챘다. 제 심장이 이제 두 번 다시없을 정도로 두근대며 피를 온몸에 보내고 있단 것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까보다 더 붉어진 얼굴로 그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는 몸놀림 이었지만 이안은 등받이에 기댄 몸을 일으킬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앉아 그녀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오늘은 나 이만 잘게.”


잘게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고 그녀는 몸을 획 돌려 방을 나갔다. 금발이 찰랑찰랑 거리며 멀어지는 것을 이안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제 방에 들어가고 나서야 이안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하….”


몸을 앞으로 숙이자 머리칼이 흘러 얼굴을 가렸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가 두고 간 식은 차와 아직 몇 알 남은 초콜릿이 남아있었다.


이안은 그 둥그런 것을 집어 잠시 바라보다 입에 넣었다. 혀 위에서 몇 번 굴리자 금세 녹아 달콤한 향과 맛을 입안 가득히 채운다. 그리고 그 달콤한 것을 삼키고 나면, 어쩐지 씁쓸한 맛이 남아 목을 메이게 한다.


그렇기에 아주 독한 술에 절였겠지. 이로 물자마자 바스라 지는 체리는 아주 독한 술을 품고 있었다. 마치 이안의 오래된 기억처럼.


“마지막 여행이라고 했지….”


마치 독이라도 마신 듯 이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검을 쥐는 사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운 손이 꾹 주먹을 쥐었다. 아주 거세게 힘을 준 듯 관절에 핏기가 없어져 하얘질 정도였다.


시간의 의미가 없어진 몸이 된 이후 아더에게 부탁하기를 수만, 언제나 때가 아니라고 거절당하기만 했었다. 그동안 지나쳐온 이야기는 그야말로 수억,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인물을 만나고 세계를 부수어 왔다.


그럼에도 마치 가슴에 박힌 비수마냥 도저히 뽑히지 않는, 아니 뽑을 수 없는 그녀와의 기억.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어서도 건네지 못한 말을 건네고 싶어 참아온 영겁의 세월이 이제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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